노바 니발리스

제35화. 길 잃은 편지

우체부 얀 스노브는 그날 오후, 배달 가방을 든 채 라면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곧장 배달을 마치고 지나갔을 사람이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걸 보고, 마침 배달을 나서던 수연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저씨, 뭐 하세요?"

얀 스노브는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고쳐 멨다.

"아, 그게…… 잠깐 들어가도 될까 해서."

"들어오세요. 왜 그렇게 망설이세요?"

"좀 상담할 게 있어서 말이야."

두 사람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라면사장이 국자를 든 채 그를 흘끔 보았다.

"오늘은 배달이 아니라 상담인가."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에 쓰여 있다."


얀 스노브는 카운터에 앉아 가방에서 낡은 편지 한 통을 꺼냈다. 겉봉이 누렇게 바랜, 꽤 오래 들고 다닌 듯한 편지였다.

"이거 때문에요."

"누구한테 가는 건데요?"

수연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게 문제야. 수신인이…… 이미 이야기가 끝난 사람이거든."

"이야기가 끝났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얀 스노브는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설명했다.

"이 도시에 배달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편지들이 와. 보낸 사람의 세계에서, 받는 사람이 이미…… 완전히 마무리된 사람인 거야. 죽었거나, 이야기가 끝나서 이 세계 어딘가로 흘러들어왔거나."

"그럼 이 편지 주인도 여기 어딘가에 있는 거예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나도 몰라. 그냥 배달해야 하는데, 주소가……." 그는 편지를 뒤집어 보였다. 수신인 이름만 적혀 있을 뿐, 정확한 주소는 없었다. "이 도시 전체가 주소인 셈이지."


마왕이 마침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그 편지를 흘끔 보았다.

"내 시절에도 그런 편지가 있었지."

"어떤 거요?"

수연이 물었다.

"전사한 병사들 앞으로 오는 위문 편지. 이미 죽고 없는데도, 가족들은 몰랐으니까 계속 편지를 보냈다."

"그럼 그것들은 어떻게 하셨어요?"

"태우라고 명령했다. 그때는 그게 자비라고 생각했거든. 헛된 기다림을 끝내주는 거라고."

마왕은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나중에 알았다. 그 편지들을 계속 쓰던 부모들한테는, 그 편지를 쓰는 행위 자체가 버티는 힘이었다는 걸. 내가 그걸 태워버린 순간, 그들의 버팀목도 같이 태운 셈이었지."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얀 스노브는 그 이야기에 편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이것도 함부로 처리하면 안 되는 거네요."

"안 된다. 절대."

마왕이 단호하게 답했다.

"이번엔 내가 다르게 조언하마. 그 편지, 태우지도 버리지도 마라. 계속 갖고 다녀라. 그게 누군가의 버팀목일 수도 있으니까."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뭐가 고민인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인을 못 찾으면 버려야 하나, 아니면 제가 열어봐야 하나. 며칠째 가방에만 넣고 다니고 있어요."

"버리지 마라."

"근데 언제까지 들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열지도 마라."

얀 스노브는 그 단호한 대답에 눈을 깜빡였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그냥 갖고 있어라. 언젠가 본인이 온다."

"본인이요? 근데 방금 이야기가 끝난 사람이라고……."

"이야기가 끝난 것과,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건 다르다."

라면사장은 그릇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이 도시는 그런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이야기가 끝나고도, 어딘가에 자기 몫의 여운이 남은 사람들. 그 편지도 아마 그 여운 중 하나일 거다."


수연은 그 말에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그 편지, 누가 보낸 거예요?"

얀 스노브는 겉봉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보낸 사람 이름도 흐릿해. 잉크가 오래돼서 그런지, 아니면……." 그는 말끝을 흐렸다. "원래 그렇게 흐릿한 건지도 몰라. 이런 편지들은 가끔 그래."

"열어보면 안 되는 이유가 뭐예요?"

"그 안의 내용은 받는 사람 몫이니까."

라면사장이 대신 답했다.

"보낸 사람이 하고 싶었던 말은, 받는 사람이 들어야 완성된다. 다른 사람이 먼저 읽으면, 그 말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다."

얀 스노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계속 갖고 다니면 되는 거네요."

"그래. 배달이 늦어지는 게 아니다. 아직 도착할 때가 안 된 거다."


"근데 얼마나 오래 갖고 다녀야 하는지도 몰라요."

얀 스노브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쉬운 일은 아니다."

라면사장은 순순히 인정했다.

"근데 이 도시에 오는 사람들 절반이 그런 식으로 산다. 언제 올지 모르는 걸 기다리면서. 저 구석 자리 그릇 봐라."

그가 가게 한쪽, 아무도 앉지 않는 낮은 의자와 붉은 테두리 그릇을 가리켰다.

"저것도 벌써 몇 년째 저러고 있다. 주인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매일 닦는다."

얀 스노브는 그 붉은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거랑 이거랑 비슷한 건가요?"

"비슷하다. 기다리는 게 일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일도 나쁘지 않다."


수연은 그 대화를 들으며 문득 자신도 비슷한 걸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몰랐지만, 이 도시에 온 이후로 그녀 역시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었다.

"저기, 그 편지, 잠깐 저도 봐도 돼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얀 스노브는 잠시 망설이다 편지를 건넸다. 수연은 겉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수신인 이름 부분만 유독 선명했다.

『라엘 님께』

낯선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수연은 그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만난 적 없는 이름인데, 어딘가 스치듯 지나간 온기가 느껴졌다.

"……이 이름, 뭔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아는 사람이야?"

"아니, 모르는 이름인데……. 그냥 느낌이 그래요."

얀 스노브는 그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나도 처음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비슷한 느낌이었거든. 이 도시 어딘가에서 마주친 적 있는 것 같은 느낌."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게 말했다.

"이 도시엔 그런 게 종종 있다. 직접 만난 적 없어도, 스치듯 이어진 인연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모든 문턱을 넘는 존재들이, 항상 이 가게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가끔은 다른 문으로, 잠깐씩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수연은 그 말에 문득 오래전 하룻밤, 정원의 낯선 문에서 걸어 들어왔던 화려한 손님을 떠올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겨울밤, 자신이 그 손님과 나눈 대화 몇 마디. 그러나 그 기억은 안개처럼 흐릿해서,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붙잡히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아련하지."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가?"

"아니에요. 그냥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얀 스노브는 그 편지를 다시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그럼 그냥 계속 가지고 다닐게요. 언젠가 이 이름의 주인이 오면요."

"그래라."

라면사장이 짧게 답했다.


세레나가 순찰 도중 잠시 들렀다가 그 대화의 끄트머리를 듣고 끼어들었다.

"길 잃은 편지 얘기예요?"

"어, 세레나 씨도 아세요?"

얀 스노브가 물었다.

"조금은요. 이 도시 순찰을 돌다 보면, 가끔 그런 편지를 든 분들을 만나요."

"그런 분들은 어떻게 하시던가요?"

"대부분 얀 씨처럼 그냥 갖고 다니세요. 개중엔 아주 오래, 몇 년째 갖고 다니시는 분도 있고요."

"몇 년이나요?"

"네. 근데 신기하게도, 그런 분들 얼굴이 지치거나 힘들어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오히려 그 편지 하나로 매일을 버티는 힘을 얻는 것처럼 보였어요."

얀 스노브는 그 이야기에 조금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저도 괜찮은 거겠죠?"

"당연하죠. 얀 씨는 지금 누군가의 마지막 마음을 소중히 맡아주고 있는 거예요. 그거보다 중요한 배달이 어디 있겠어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었다. 순찰을 명령하는 자의 미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는 얼굴이었다.


"근데 이 도시엔 그런 편지들이 얼마나 많은 거예요?"

수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세레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정확한 숫자는 저도 몰라요. 근데 적지 않아요. 이야기가 끝난 채로 여기 온 존재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럼 다 이런 식으로, 배달부들이 들고 다니는 거예요?"

"배달부만은 아니에요. 어떤 건 시장 좌판 밑에 놓여 있기도 하고, 어떤 건 도서관 책갈피 사이에 끼워져 있기도 하고요. 이 도시 자체가, 어떻게 보면 그런 마음들의 보관소예요."

수연은 그 말에 문득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미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실감했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골목 하나하나에, 어쩌면 이런 편지들이 조용히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저도 언젠가 그런 걸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

"아마도요. 마주치면, 오늘 얀 씨한테 해준 것처럼 대해주시면 돼요. 서두르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수연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얀 스노브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근데 만약에요, 만약에 그 사람이 영영 안 오면 어떻게 해요?"

라면사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럼 네가 그 편지의 마지막 주인이 되는 거다."

"제가요?"

"편지는 누군가에게 도착해야 완성된다. 그게 원래 받을 사람이든, 대신 그 마음을 오래 지켜준 사람이든."

얀 스노브는 그 말에 뭔가 뭉클해졌다.

"그럼…… 부담이 좀 덜하네요."

"부담 가질 거 없다. 배달부는 원래 그런 일을 하는 거다. 마음을 옮기는 일."

얀 스노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를 나섰다.


수연은 그가 떠난 뒤 라면사장에게 물었다.

"근데 진짜로 그런 편지들, 자주 있어?"

"가끔 있다. 이 도시가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럼 그 편지들, 다 누군가한테 도착해?"

"대부분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도착 안 하는 것도 있어?"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있다. 근데 그것도, 도착 못 한 게 아니라 아직 도착 안 한 거다."

수연은 그 구분이 묘하게 위안이 됐다.

"그 차이가 뭔데?"

"안 한 건 포기한 거고, 못 한 건 아직 기다리는 거다."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그 대화를 듣고 조용히 끼어들었다. 문고리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평소보다 조금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도 편지 하나 있다……이다."

"너도?"

수연이 놀라 물었다.

"응……이다. 누구한테 쓴 건지는 모른다……이다. 근데 언젠가 쓸 거다……이다."

"어떤 내용인데?"

"아직 정하지 못했다……이다. 근데 다 쓰고 나면, 이 가게 어딘가에 넣어둘 거다……이다. 받을 사람이 올 때까지."

수연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이 도시 구석구석에 그런 식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음들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가게 문을 닫기 전, 그녀는 창밖 골목을 내다보았다. 오늘 밤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편지가 조용히 도착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는, 그 기다림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매일 문을 여는 것으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마지막으로 그 붉은 테두리 그릇을 한 번 더 닦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도 안 왔군."

그 말에는 실망도, 조급함도 없었다. 그저 내일도 같은 자리를 지키겠다는 담담한 다짐만이 담겨 있었다.

며칠 뒤, 얀 스노브는 다시 가게에 들렀다. 여전히 그 편지를 가방 깊숙이 넣은 채였다.

"그 편지, 아직도 갖고 계세요?"

소예가 물었다.

"응. 근데 이상하게 이제 무겁게 안 느껴져."

"왜요?"

"그냥…… 이게 내 일의 일부라고 생각하니까. 배달이 늦어지는 게 아니라, 아직 도착할 때가 안 된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는 라면사장을 흘끔 보며 그렇게 말했다. 라면사장은 대답 대신 그릇 하나를 내밀었다.

"그 마음가짐이면 됐다. 먹고 가라."

"감사합니다."

얀 스노브는 그 그릇을 받아 들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가방 속 편지는 여전히 수신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을 짊어진 사람의 발걸음은 훨씬 가벼워 보였다.


그날 밤, 수연은 잠들기 전 문득 그 낯선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라엘. 여전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이 도시 어딘가에서 그 이름의 주인이 조용히 걸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창밖 골목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이 도시에 도착하는 모든 존재들은, 어쩌면 저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편지를, 혹은 누군가의 기다림을 품고 오는 게 아닐까. 자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었다.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확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 가게가 매일 문을 여는 것처럼, 그 편지도 언젠가는 제 주인을 찾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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