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49화. 주작전 (하)
깜빡이던 불빛이, 한순간 완전히 꺼졌다.
수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착각이었나— 그 생각이 스치는 찰나, 드론 표면 전체가 낮게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소리보다 진동이 먼저 왔다. 마을 사람들이 숨죽인 저장고 바닥까지 그 떨림이 전해질 만큼, 낮고 둔중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울림 끝에서, 아주 오래 잠들어 있던 기계 특유의 낮은 기동음이 하늘을 갈랐다.
"…살아났어." 수연이 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같은 순간, 노바 니발리스의 밤하늘. 이리스는 관측탑 꼭대기에 서서, 손끝으로 낡은 제어반의 마지막 스위치를 밀어 올렸다.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몇 달을 매달려 몰래 심어둔 프로그램이었다. 실패작이라 부르며 넘겼던 열 번째 드론, 그 안에 남몰래 감춰둔 마지막 회로.
"…떠, 제발." 그녀가 빌듯이 중얼거렸다.
제어반의 램프들이 차례로 켜지자, 도시의 밤하늘에 떠 있던 아홉 개의 드론이 일제히 반응했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좌표를 표시하거나 신호를 보내는 데만 쓰이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홉 개의 드론은 서로 다른 각도로 정렬하며, 저마다의 몸통 안에 응축해온 빛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야, 저 신입." 도시 어딘가에서 그 광경을 올려다보던 볼도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엔 걱정과 기대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아홉 개의 빛이 동시에, 밤하늘 한 점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빛이 쏘아진 순간, 도시 전체가 잠깐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아홉 줄기의 빛이 밤하늘로 곧게 뻗어 올라가는 광경뿐이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낮고 육중한 공명음이 도시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마치 거대한 종이 아주 멀리서 울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아홉 줄기의 빛은 하늘 꼭대기의 한 점에서 만나, 서로 얽히며 하나의 거대한 빛기둥으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빛기둥이, 밤하늘의 결을 가르며 다른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세계와 세계 사이의 경계는 본래 문으로만 건널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빛은 문을 통하지 않고, 하늘과 하늘을 직접 잇는 다리가 되어 뻗어갔다.
수연이 서 있는 다섯 번째 세계의 하늘에도, 그 빛의 끝자락이 닿기 시작했다. 붉은 달을 배경으로, 서서히 뻗어오는 그 빛줄기의 색은 처음엔 차가운 푸른빛이었다가, 다가올수록 점점 따뜻한 주황빛으로 바뀌어갔다— 마치 색온도 자체가 두 세계의 경계를 건너며 서서히 데워지는 것 같았다.
그 다리가 건너오는 동안에도, 주작의 부리 끝에서는 마을을 겨눈 빛이 임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명령은 아직 살아 있었고, 하늘의 차가운 불도 아직 그치지 않았다. 수연은 바닥난 마력의 밑바닥을 손톱으로 긁어내듯 끌어모아, 마지막 방벽을 세웠다. 세 겹은 어림도 없었다. 딱 한 겹— 그러나 지금까지 세운 어떤 것보다도 넓게. 마을만이 아니라, 저 빛의 다리가 닿아야 할 하늘 한 뼘까지 품는 거대한 곡면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무대막'이라 부르던 그 방어막의— 아마도 지금까지 펼쳐진 것 중 가장 큰 전개였다. 관객석 대신, 마을 하나와 하늘 한 조각을 품는 막. 부서지면 그 조각을 도로 이어 붙이고, 갈라지면 갈라진 결 위에 새 얼음을 덧대며, 그녀는 그 한 겹을 무너지는 속도와 정확히 같은 속도로 계속 다시 지었다. 이기기 위한 방패가 아니었다. 시간을 사기 위한 방패였다— 저 빛이 다 건너올 때까지의, 딱 그만큼의 시간.
"…저게, 노바 니발리스에서 오는 거야?" 수연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아홉 개의 빛이에요." 레테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게 답했다. "이 세계 밖에서, 도시 전체가 저 열 번째 드론을 향해 빛을 보내고 있어요."
형사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두 세계를 잇는 다리군요, 저건."
빛의 다리가 마침내 열 번째 드론에 닿았다. 그 순간, 드론 전체가 눈부신 주황빛으로 확 타올랐다— 지금까지 세계에 존재하지 않던 색이었다. 마치 실패했던 별 하나가, 아홉 개의 손길을 받아 마침내 처음으로 자기 몫의 빛을 찾은 것 같았다.
드론의 스피커에서, 낮고 조금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이거 진짜 되네? 야, 수연아! 나 잡혔어! 신호!"
이리스의 목소리였다. 여기, 이 낯선 세계의 하늘까지 도달한 목소리.
수연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달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이 신입아! 살아 있었어?!"
"당연하지! 나 언제 죽는다고 그랬어!" 드론 너머로 이리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거, 내가 진짜 실패작이라고 준 거 아니거든. 언젠가 너한테 필요할 것 같아서— 몰래 심어둔 거야. 최후의 최후에 쓰라고."
"그럼 진작 말을 하지!"
"말했으면 재미없잖아." 이리스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자, 이제 나머지는 내가 조종할게. 거기 큰 새 있지? 눈 크게 뜨고 봐."
수연은 그 말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열 번째 드론이 스스로 고도를 높이며, 서서히 주작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무너지는 속도와 겨루며 붙들고 있던 마지막 방벽을, 그녀는 그제야 조용히 풀었다. 곡면을 이루던 얼음이 잘게 부서져 밤하늘에 흩어졌고, 그 반짝이는 파편들 사이로 드론의 주황빛이 별처럼 통과해 올라갔다. 두 팔이 그제야 축 늘어졌다. 여기서부터는 그녀의 화력이 아니라, 다른 것이 싸울 차례였다.
주작은 여전히 부리 사이에 마을 전체를 겨눈 거대한 빛을 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다가오는 열 번째 드론의 빛을 응시하고 있었다. 회수의 명령이 시키는 대로라면 저것 역시 지워야 할 불씨였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번엔, 명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아주 잠깐 멈췄다.
열 번째 드론이 그의 반쯤 죽은 오른쪽 날개, 잿빛으로 스러진 깃털 하나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작은 빛이, 죽은 깃털의 뿌리 쪽으로 스며들듯 번져갔다.
주작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순간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실패한 채로 버려질 뻔했던 것이, 아홉 개의 다른 손길을 거쳐, 결국 자기 힘으로 처음 켜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지켜왔던 원리와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꺼진 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다시 켜질 자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가 문명과 빛의 수호자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그 원리를, 지금 자신의 몸 위에서 직접 겪고 있었다.
그의 안에서, 아주 오래 눌려 있던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삼켜온 빛들을 떠올렸다— 봉헌받은 성냥개비, 부싯돌, 초 토막, 그 모든 미미한 가능성들. 그는 그것들을 지워온 게 아니라, 사실은 회수해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명령은 그것들을 지우라 했지만, 그의 몸 어딘가엔 그것들이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마치 그 자신이, 꺼진 빛들이 쉬어가는 자리가 되어온 것처럼. 그리고 지금, 실패했던 별 하나가 자기 힘으로 다시 켜지는 걸 보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해온 일의 다른 이름을 깨달았다. 회수가 아니라 안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그 안식이 이렇게 강요된 것이라면, 그건 안식이 아니라 그저 다른 이름의 무덤이었다고.
그는 이 세계에 붙잡혀 세 번 저항하고 세 번 졌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첫 번째 저항은 분노였고, 두 번째 저항은 슬픔이었고, 세 번째 저항은 이미 체념이 반쯤 섞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낯선 존재들이 가져온 이 작은 빛 하나가— 그 체념 밑에 아직 남아 있던 마지막 불씨를 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안 끝났다.'
그 생각이 그의 안에서 소리 없이 울렸다. 그리고 그 울림을 따라, 그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세 겹의 실 중 첫 번째가, 안에서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실이 타요!" 레테가 소리쳤다. 그녀의 손에 들린 깃털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라, 그녀는 황급히 그것을 놓쳤다. "첫 번째 층이— 안에서부터 끊어지고 있어요!"
주작의 몸 전체가 크게 떨렸다. 부리에 물려 있던 거대한 빛이 흔들리며 궤도를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흩어졌다. 마을을 겨누던 그 압도적인 힘이, 대신 텅 빈 하늘을 향해 흩뿌려지며 스러졌다.
수연은 그 광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주작의 날개 사슬 위로, 첫 번째 실의 자리에 새겨져 있던 무늬가 붉게 타오르며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하나 갔어." 그녀가 낮게 말했다.
곧이어 두 번째 실도 같은 방식으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작의 몸이 그 반동으로 하늘 높이 튕겨 올랐다가, 다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의 부리에서 낮은 신음 같은 울음이 새어 나왔다— 고통의 울음이 아니라, 오래 참아온 것을 토해내는 소리에 가까웠다.
"두 번째도— " 레테가 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저 새가 스스로 끊고 있어요! 우리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형사가 그 광경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세 번째는 남겨뒀군요. 그것까지는 자기 힘으로 안 되는 겁니다."
수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끝에 다시 그 낯선 감각을 불러왔다. 청룡의 사슬을 끊었을 때와 같은 감각— 원인도 절차도 없이, 그저 결과를 세계에 새겨 넣는 힘.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힘을 쓰면 무엇이 남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청룡 앞에서 처음 썼을 땐 마비와 이명이 한꺼번에 덮쳤고, 백호의 매듭을 끊을 땐 옅은 저릿함 한 줄기로 끝났었다. 이번엔 어느 쪽일지 알 수 없었다. 그 대가가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이 힘을 우연히 터지는 무언가로 여기지 않았다— 이건 매번, 그녀 자신이 다시 정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나 이거, 또 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청룡 앞에서 처음 이 힘을 꺼냈을 때는 두려움을 억누르는 게 먼저였다. 지금은 그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두려움에 잡아먹히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차이를 분명히 느끼며, 검을 고쳐 쥐었다. 저 위에서 스스로 두 겹을 태워낸 존재가 있다면, 마지막 한 겹을 끊어주는 건 이제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발판을 연달아 딛고 도약해, 주작의 날개 사슬— 마지막까지 남은 세 번째 실 앞에 다다랐다. 그 실은 앞의 두 겹보다 훨씬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나이테 같은 무늬 대신, 이번엔 촘촘한 글자들이 실 표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그 사람이 이 존재 하나를 붙잡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쓰고 지운 흔적처럼.
"…끊는다."
그녀는 그 실을 움켜쥔 채, 손끝에 불러온 감각을 그대로 풀어놓았다.
**실이 끊어진 상태.**
그녀는 그 결과를 강제로 세계에 새겨 넣었다. 백호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값이 곧장 돌아왔다— 세 겹으로 짜인 실은, 그 대가도 세 배로 받아가는 모양이었다. 손끝이 순식간에 마비됐고, 시야 한쪽이 하얗게 번쩍였다. 팔 전체가 저릿하게 떨렸지만— 처음 청룡 앞에서처럼 힘에 통째로 휩쓸리는 감각은 아니었다. 무릎이 꺾이려는 것을 버티며, 그녀는 끝까지 서 있었다.
마지막 실이, 그 촘촘한 글자들을 따라 쩍 갈라지며 산산이 흩어졌다.
주작의 몸이 순간적으로 축 늘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청룡 때와 달리, 추락하지 않았다. 그의 온전한 왼쪽 날개가 크게 펼쳐지며, 붉은 달빛 아래 스스로 균형을 되찾았다.
반쯤 잿빛이었던 오른쪽 날개의 깃털들이, 하나씩 다시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희미한 주황빛이었다가, 점점 선명한 붉은빛으로 타오르며— 그의 몸 전체가 마치 새로 지핀 불씨처럼 밝아졌다. 그 빛은 뜨겁지 않았다. 다만 온 세상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온기를, 다시 기억해내는 것 같은 빛이었다.
주작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수연을 내려다봤다.
"…고맙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그윽했다— 마치 오래 꺼져 있던 화로에서 처음 피어오르는 불씨의 소리 같았다. "신살의 아이야. 네가 마지막 하나를 끊어줬구나."
"…괜찮아?" 수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괜찮다." 주작이 답했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진짜 괜찮아진 걸지도 모르지."
그는 자신의 날개를 한 번 크게 펼쳐 보였다. 되살아난 깃털 하나하나가 붉은 달빛 아래 반짝였다.
"내 원래 이름은 따로 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이름, 이 배역— 문명과 빛의 수호자라는 이 자리는, 벗지 않으려 한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이건 낯설지가 않아. 꺼진 것에 쉴 자리를 주고, 다시 켤 힘을 주는 일— 그건 내가 원래도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그 말과 함께, 주작이 날개를 크게 한 번 휘저었다. 그 날갯짓을 따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불씨의 기억들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을 광장의 화덕 하나가, 아무도 불을 붙이지 않았는데도 안쪽부터 붉게 달아올랐다. 좌판 주인이 놀라 그 앞으로 달려가, 화덕 안쪽에서 처음으로 피어오르는 열기에 손을 쬐어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관 노파의 창가에 놓인 낡은 등롱 속에서도, 자그마한 불씨 하나가 스스로 피어올랐다— 노파는 그 빛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장간의 차가운 숫돌이 놓인, 오래전 화로가 있던 자리에서도 옅은 불티가 튀어 올랐다. 늙은 대장장이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육 대를 이어온 그 자리에 처음으로 다시 피어난 불씨를 두 손으로 가만히 감쌌다.
젊은 어머니의 방 안, 몰래 켜뒀던 그 초 한 자루도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창문 너머로 그 빛이 골목까지 새어 나와도, 아무도 그걸 회수하러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마을 곳곳에서,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불빛들이 하나씩,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드문드문하던 그 빛들이 점점 늘어나며, 밤의 마을 전체가 서서히 따뜻한 빛으로 물들어갔다. 수연은 그 광경을, 하늘에 뜬 채로 오래도록 내려다봤다.
그 새끼가 지운 세계들은 이렇게 하나씩 늘어만 갔을 텐데, 오늘은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워지는 대신 켜지는 밤. 그녀는 그 생각에 목이 메었다.
주작이 마지막으로 수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면," 그가 말했다. "빛의 아이에게 전해라— 네 실패가 오늘 세계 하나를 다시 켰다고."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열 번째 드론이, 여전히 은은한 주황빛을 머금은 채 그녀 곁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스피커 너머로 이리스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들었어, 방금 그 말."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잠겨 있었다. "실패작이라고 부른 거, 취소할게."
"내가 취소하라고 했잖아, 진작에." 수연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고마워, 수연아. 진짜로." 이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나 이거, 계속 만들면서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거든. 근데 오늘— 확실히 알았어."
드론이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은은한 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하늘로 떠올랐다. 아홉 개의 빛이 다시 그것을 감싸며, 서서히 다리를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주작은 되찾은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붉은 달을 등지고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신살의 아이야."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네가 가는 길 위에, 아직 더 굵은 실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 세계에 빚진 게 없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붉은 달 너머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하늘의 색이 아주 조금씩 옅어지며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날 밤, 마을은 처음으로 온기라는 걸 겪었다. 화덕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에 비친 낯선 붉은빛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여관 노파는 손녀를 품에 안고 화덕 곁에 앉아, 오래전 할머니에게 들었다던 그 "따뜻하다"는 말의 뜻을 처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런 거였구나."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담긴 감정은 기쁨과 서글픔이 반반씩 섞인 것이었다— 평생을 모르고 살아온 것을,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된 사람의 감정.
형사와 레테, 수연은 화덕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오늘, 진짜 잘 됐다." 수연이 화덕의 열기에 손을 쬐며 중얼거렸다. 손끝은 여전히 저릿했지만, 그 저림 위로 처음 느껴보는 온기가 겹쳐지고 있었다.
"세 번째입니다, 그 힘은." 형사가 조용히 말했다. "백호 때보다 대가가 훨씬 무거워 보였습니다. 실이 세 겹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처음처럼 휩쓸리지는 않으시더군요. 끝까지 서 계셨습니다."
"…그런가." 수연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근데 여전히 무섭긴 해. 그냥— 그 무서움 안고 쓰는 것뿐이야."
레테가 옅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무섭지 않아지는 게 아니라, 무서운 채로도 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이 힘을 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수연은 그 말을 화덕 불빛 아래서 오래 곱씹었다. 밤하늘엔 이제 붉은 달 대신, 옅은 새벽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아래, 처음으로 온기를 되찾은 세계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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