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41화. 백호전
안개 속으로 들어선 순간, 형사는 소리부터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눈을 밟는 자신의 발소리가 이상하게 멀리서 들려왔다. 마치 소리조차 이 산에서는 얼마나 멀리 퍼질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는 코트 깃을 세우지 않았다. 추위는 이미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지만, 그 추위를 막을지 그냥 견딜지— 그런 사소한 것조차 이 순간엔 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눈보라가 걷힌 자리에, 그것이 있었다.
산 하나를 등에 진 것 같은 크기였다. 흰 털은 눈보다 희었고, 그 위로 성에가 얇게 얼어붙어 있어 움직일 때마다 잘게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두 눈은 겨울 하늘의 색이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건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 아니라, 아주 오래 참아온 자의 피로였다. 백호는 형사가 다가오는 것을 그저 지켜볼 뿐, 발톱을 세우지도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인데, 그 고요가 산맥 전체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형사는 오는 길에 그 증거를 이미 보았다— 무너지다 만 눈사태가 비탈 중턱에 통째로 걸려 있었다. 수백 톤의 눈이 쏟아지겠다는 산의 결심마저 끊긴 채, 흘러내리다 만 모양 그대로 굳어 있었던 것이다. 백호를 둘러싼 눈보라도 마찬가지였다. 눈송이들은 그의 주위 몇 걸음 안으로 들어서면 떨어지기를 멈추고, 허공에 박힌 듯 가만히 떠서 붉은 기 없는 하늘빛만 되비추고 있었다. 내릴지 말지조차, 이 짐승 곁에서는 정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멈춰라." 낮고 굵은 목소리가 안개를 울렸다. 소리라기보다는 진동에 가까웠다— 형사는 그 목소리가 발밑의 눈을 타고 몸속까지 전해지는 걸 느꼈다. "이 산은, 결단하는 자의 걸음을 붙잡는다. 너는 왜 붙잡히지 않지."
형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백호로부터 다섯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야 발을 멈추고, 수첩을 꺼내는 대신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그 안엔 오래전부터 지니고 다니던 낡은 메모 한 장이 있었다. 손끝으로 그 종이의 접힌 모서리를 확인하는 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의례였다.
"지금 제게는, 끊어낼 결단이 없습니다." 그가 답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낮고 정확했다. "정해야 할 것들은 이미 오래전에 전부 정해버렸습니다. 그 뒤로는— 부탁을 지켰을 뿐입니다."
백호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좁아졌다. "부탁과 결단이 다르다고 믿나."
"다릅니다." 형사가 답했다. "결단은 자기 안에서 저울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걸 할지 말지, 자기 무게로 재는 거죠. 부탁은— 저울을 남에게 맡기는 일입니다. 누군가 이미 저울질을 끝내고 저한테 건네준 겁니다. 저는 그걸 받아서, 그냥 나릅니다. 나르는 데는 저울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내 산이 너를 붙잡지 못하는군." 백호가 말했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옅은 감정이 섞였다— 노여움이 아니라, 뭔가에 가까운 인정이었다. "붙잡을 무게가 없으니."
"아닙니다." 형사가 조용히 정정했다. "무게는 있습니다. 다만 그 무게가, 제 것이 아닐 뿐입니다."
산 아래, 결계의 경계쯤에서 수연과 레테는 여전히 발이 묶인 채 안개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 낮은 진동이 발밑을 타고 전해질 뿐이었다. 수연은 그 진동이 대화인지 포효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어 조바심이 났다. 발을 떼려 할 때마다 다리는 여전히 나란히 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고, 그 무력감이 오히려 그녀의 생각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이 산이 훔쳐가는 게 남의 결단이라면, 애초에 이런 산을 세워둔 그 새끼는 대체 몇 명의 걸음을 이런 식으로 뽑아다 썼을까— 수연은 그 생각에 이르자 속이 뒤틀렸다. 청룡의 봄을 훔쳤고, 이제는 사람들의 프러포즈와 이사와 화해를 훔친다. 하나같이, 삶에서 가장 무서운 동시에 가장 사람다운 순간들이었다. 그 순간들만 골라 뽑아가는 손이 있다는 게, 그녀는 견딜 수 없이 미웠다.
그래서 그녀는, 발이 묶인 채로도 할 수 있는 걸 전부 해봤었다. 형사가 안개로 들어서기 전— 결계 밖에서라면 포격이 닿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었다. 하늘로 손을 뻗어 운석 하나를 불러 앉혔다. 공연이었다면 관중석이 뒤집어졌을 크기의, 검은 바위 덩어리가 구름을 밀어내며 산 위로 기울었다. 거기까지는 완벽했다. 이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그 "떨어뜨린다"가, 오지 않았다. 운석은 하늘에 얹힌 채 천천히 식었고, 이윽고 소환이 저 혼자 풀리며 굵은 눈발처럼 흩어져버렸다. '…공연이었으면 피날레라고 부르는 놈인데.' 시작 한 번 못 해본 피날레가, 그렇게 하늘에서 조용히 지워졌다.
얼음 창은 더 이상했다. 백 발을 짜서 산비탈을 향해 도열시키는 것까진 됐다. 시위를 당기듯 마력을 재우는 것까지도 됐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이 어느새 조용히 내려가 있는 걸 발견했다. 쏘지 않기로 정한 적이 없는데, 쏘기로 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창들은 주인 잃은 병정처럼 허공에 서 있다가 하나둘 바스러졌다. 그 모든 동안, 안개 저편의 흰 그림자는 이쪽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막은 게 아니었다. 막을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마법은 과정의 힘이었고, 과정의 마디마다 결심이 박혀 있었다. 이 산은 그 마디를 정확히 끊었다. 그렇다면— 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힘은 어떨까. 수연은 그 생각 하나를 손안의 온기처럼 꼭 쥔 채, 안개 저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형사, 괜찮겠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괜찮으실 거예요." 레테가 답했다. "저 산은 형사님을 붙잡을 방법이 없어요. 붙잡으려면 먼저 형사님 안에, 지금 이 순간 끊어낼 결단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분은 이미 오래전에 전부 정해버린 사람이죠. 남은 건 부탁뿐이고, 부탁은 저 산이 끊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수연은 그 말에 조금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이상한 서글픔을 느꼈다. 형사가 안전한 이유가, 그가 자기 몫의 결단을 이미 오래전에 전부 써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왠지 다행스러우면서도 쓸쓸했다.
그 대답에 백호는 잠시 침묵했다. 눈보라가 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형사는 그 침묵 속에서, 백호의 거대한 앞발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걸 보았다. 짐승이 추워서 떠는 게 아니었다— 뭔가를 견디는 자의 떨림이었다.
"나는," 백호가 말을 이었다. "결단과 질서의 수호자였다. 사람들이 갈림길 앞에서 망설일 때, 그 망설임 끝에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딛도록— 그 마지막 밀어붙임을 지켜주는 것이 내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걸음을 붙잡는 일을. 결단의 수호자가, 결단을 끊는 사슬이 되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백호의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그러나 뺨을 타고 흐르기도 전에 얼어붙어, 작은 얼음 알갱이가 되어 눈밭 위로 떨어졌다. 톡. 아주 작고 메마른 소리였다. 뒤이어 또 하나가 떨어졌다. 톡. 형사의 발치까지 굴러온 그 얼음 알갱이를, 그는 허리를 숙여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그것은 아주 천천히, 체온에 녹아 물방울로 변했다.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하셨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모른다." 백호가 답했다. "시간의 흐름조차, 이 목에 감긴 실이 결정한다. 다만— 매번 누군가의 걸음이 내 앞에서 얼어붙을 때마다, 나는 그게 느껴진다. 그 사람이 원래 내딛었어야 할 걸음의 무게가. 프러포즈를, 이사를, 화해를— 못 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 사람들의 무게가, 전부 나에게 쌓인다. 나는 그들의 결단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결단이 태어나지 못한 자리를 대신 앓는다."
형사는 그 말을 듣는 동안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지난 삶을 조용히 되짚었다.
그는 한때 사건 현장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문을 부술지, 좀 더 기다릴지. 그 저울질 끝에 그가 내린 선택 하나가,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잃게도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오랫동안, 결단이라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며 살았다. 자신이 저울을 잘못 세울까 봐.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이 건넨 부탁을 지키는 일에는 그 두려움이 스미지 않았다. 부탁은 이미 완성된 저울이었으니까. 그는 그저 그 무게를 놓치지 않고 나르기만 하면 됐다.
주머니 속 낡은 메모의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그 문구를 받았을 때, 그는 그것이 누구의 부탁인지도, 왜 자신에게 왔는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그 부탁을 단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새로 결단할 것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세계가 자신을 붙잡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가 붙잡힐 자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약함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 살아온 방식 자체가 만들어낸, 아주 오래된 종류의 단단함이었다.
"…당신이 앓는 그 무게." 형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어디에 실이 감겨 있는지."
백호는 아주 길게, 마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무게를 확인하려는 듯 숨을 골랐다. "목 뒤다. 갈기 아래, 얼음이 가장 두껍게 앉은 자리. 그러나 경고한다— 이 산에 든 자는, 그 자리에 손을 대는 결단조차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형사가 답했다. "위치만 압니다. 나머지는— 저 산 밖에 있는 사람의 일입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향해 짧게 외쳤다. "목 뒤, 갈기 아래! 얼음이 가장 두꺼운 자리입니다!"
그 외침이 안개를 뚫고 산 아래까지 닿을 수 있을지, 형사 자신도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목소리를 받아 든 것처럼— 산 전체를 가르며 서늘한 빛 한 줄기가 솟구쳤다. 결계 밖에 서 있던 수연이 후드 안의 온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정확히 그 자리를 향해 손을 뻗은 것이었다.
이번엔 첫 발동 때와 달랐다. 청룡의 목줄을 끊었을 때는 귀가 멍멍해지고 손끝이 마비되고 시야가 하얘졌었다. 그러나 지금, 수연은 눈을 감고 그저 "끊어져 있다"는 결과 하나만을 조용히 떠올렸다. 절차를 강제로 뚫는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할 결과를 부드럽게 불러오는 감각이었다. 손끝에서 서늘한 진동이 한 차례 퍼져 나갔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마비도, 이명도 없었다. 다만 손목 안쪽으로 아주 옅은 저릿함이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산 위에서, 백호의 목에 감겨 있던 얼음 사슬이— 나이테 무늬가 새겨진 그 사슬이— 소리 없이 바스러졌다. 파편들이 눈보라 속으로 흩어지며 반짝였다.
백호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목이 그토록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산 하나만 한 몸이 눈밭 위로 낮아지는 그 동작은, 굴복이 아니라 예의에 가까웠다.
"결단을 이미 끝내고 걷는 자여." 백호가 말했다. 목소리에서 아까의 피로가 걷혀 있었다. "네 걸음이 이 산맥보다 무겁다. 나는 아홉 중 결코 가볍지 않은 축에 든다 여겼는데— 오늘 그 자만을 내려놓는다."
형사는 짧게 고개를 숙여 답했다. "저는 그저 나른 것뿐입니다. 당신이 앓던 무게를, 대신 짊어지진 못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백호가 답했다. "나른 자가 없었다면, 무게는 영원히 그 자리에 얼어 있었을 것이다."
백호는 고개를 든 채, 자신의 앞발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내 원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다른 하늘 아래서. 그때 나는 백호가 아니었다. 끝난 이야기를 거두는 자였지— 선택지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자. 사람이 하나를 고르면, 고르지 못한 나머지들은 어디론가 가야 하지 않겠나. 나는 그 나머지들을 곱게 묻어주는 자였다. 그런데 이 세계에 옮겨진 뒤로는, 장례가 아니라 감금을 맡았다. 아직 묻히지도 못한 선택들을, 태어나지도 못하게 얼려버리는 일을." 그가 낮게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백호로 바뀐 뒤, 나는 그 옛 이름을 부끄러워했다. 지금도 그런가 물으면— 아니다. 오늘부로는 아니다. 백호라는 이름도, 결단을 지키려 했던 그 시간도, 이제는 내 것으로 삼겠다. 옛 이름을 되찾되, 새 이름을 버리지는 않겠다."
레테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나름의 답이네요. 청룡은 새 이름을 벗고 잠들었죠. 당신은 둘 다 걸치고 걷는 쪽을 택하고요."
"각자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백호가 답했다. 그 목소리엔 이제 옅은 온기마저 섞여 있었다.
백호가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그 소리는 사납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게워내는 소리에 가까웠다. 포효가 산맥 전체로 퍼지는 순간, 마을 쪽에서부터 서리가 걷히기 시작했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그 순간 아직도 메뉴판을 쥐고 있던 노인이 문득 손을 들어 "곱빼기로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분명한 결정이었다. 분수대 앞의 남자는 마침내 입을 열어 청혼의 문장을 끝까지 완성했고, 여자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 싸다 만 이삿짐 상자 앞에서, 부부는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낡은 사진첩을 남겨두고 새 커튼만 챙겨가기로, 아주 사소하지만 분명한 결정을 내렸다. 골목마다, 광장마다, 미뤄뒀던 화해와 고백과 이별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소리가 마을 전체를 채웠다.
수연은 그 소리를 산 중턱에서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옆에 선 레테를 돌아봤다.
"…이겼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누굴 이긴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한테 정할 힘을 돌려준 거."
"그리고," 레테가 안개 저편에서 걸어 내려오는 형사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그 힘을 돌려준 게, 결심으로 산 사람이 아니라 부탁으로 산 사람이었다는 것도요."
형사가 두 사람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코트 자락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알갱이 몇 개가 붙어 있었다. 백호의 얼어붙은 눈물의 흔적이었다. 그는 그것을 털어내지 않고, 잠시 그대로 두었다.
"수고했어." 수연이 말했다.
"부탁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형사가 답했다. 그리고 아주 짧게, 평소보다 조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만 오늘은, 그 부탁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세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산을 넘어서자, 두 번째 해방의 온기가 후드 안쪽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발밑의 서리는 어느새 완전히 걷혀, 흙길이 다시 부드럽게 발에 밟혔다. 뒤돌아본 산맥 위로, 백호의 흰 그림자가 천천히 능선 사이로 몸을 눕히는 게 보였다. 잠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기 자리를 지키러 돌아가는 걸음걸이였다.
"다음은 어디쯤일까요." 형사가 걸으며 물었다.
레테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표정에 아주 옅은 그늘이 스쳤다. "이번 방향은— 좀 다르네요. 지금까지는 뭔가가 강하게 저항하거나, 강하게 억눌려 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아무 저항도 없어요. 그냥, 아주 깊이 잠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잠들어 있다는 건." 수연이 물었다. "좋은 신호 아니야?"
"모르겠어요." 레테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깊이 잠든 것도, 결국은 깨어나길 포기한 것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 온기 너머로, 또 다른 방향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번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마치 잠든 것처럼 고요한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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