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89화. 마지막 침입과 텅 빈 도시
소므니움과의 대화가 있고 며칠 뒤, 도시는 오랜만에 완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꿈 상점은 거의 손님이 끊겼고, 사람들은 그가 곧 도시를 떠날 거라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궁지에 몰린 존재의 마지막 발악을 감추고 있었다.
그날 밤, 소므니움은 도시 외곽에 홀로 서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지금까지 시도했던 모든 방식을 되짚었다. 개별 접근, 광장에서의 공개 대결, 정식 상점 개업. 무엇도 이 도시를 흔들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모두에게, 동시에. 노바 니발리스가 없었던 세계. 각자의 원래 세계, 끝나기 전의 이야기로."
그는 그렇게 결심하며 도시 전체를 향해 자신의 힘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날 밤, 도시 사람들은 하나둘 잠들며 같은 종류의 꿈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절반이 아니었다. 전체였다.
수연도, 이리스도, 세레나도, 소예도, 헤라도, 미다도,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각자의 원래 세계로 돌아간 꿈에 잠겼다.
세레나는 꿈속에서, 창조물이라 불리기 전의 자신을 보았다. 이리스는 별을 만들던 그 오래된 공방을 보았다. 수연은 검을 쥐기 전,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을 보았다.
각자에게 가장 그리운, 그리고 가장 위험한 풍경들이었다.
가게 안, 라면사장은 그 낌새를 곧바로 느꼈다.
"……전부인가."
그는 서둘러 가게 밖으로 나섰다. 거리는 고요했다. 너무 고요했다. 집집마다 불이 꺼져 있었고, 그 안에서는 아무도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라면사장."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사였다. 그녀 역시 그 이상 징후를 느끼고 거리로 나온 참이었다.
"전부다."
녹사가 짧게 말했다.
"저놈이 정말 마지막 수를 썼군."
그 순간, 비아도 골목 저편에서 걸어 나왔다.
"애들은 괜찮다……이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은 안 걸렸나."
"당연하다……이다. 저놈 힘, 애초에 그리움에 기대는 거다……이다."
세 존재는 그렇게 텅 빈 도시 한가운데서 마주 섰다. 눈 내리는 거리는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오직 그들만이 깨어 있었다.
"이 정도 규모는, 절반의 도시 때보다도 크다."
라면사장이 나직이 말했다.
"근데 방식은 같다……이다. 강제로 끌고 들어간 게 아니다……이다. 다들 스스로 걸어 들어간 거다……이다."
"그럼 나오는 것도, 다들 스스로 해야 한다."
"그래도 되겠나. 이 정도 규모면, 강제로라도 깨우는 게 낫지 않나."
녹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의 손이 순간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한 떨림이었다.
'……지워버릴까.'
그런 생각이 아주 잠깐,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이 너무 쉽고 구체적이어서, 그는 순간 스스로 놀랐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비아였다.
"지우면 안 된다……이다."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라면사장은 그 손길에 순간 멈칫했다.
"……알고 있었나."
"안다……이다. 그 눈빛, 오랜만에 본다……이다."
비아는 그렇게 답하며 그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
"다들 스스로 나와야 한다……이다. 우리가 대신 지워주면, 이 도시 사람들은 다시 스스로 이겨내는 법을 잊는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말이 맞다."
그는 국자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되찾았다.
"고맙다."
"고마울 거 없다……이다. 나도 저 아이들 지켜야 한다……이다."
비아의 시선이 창밖, 여전히 텅 빈 거리를 향했다.
"애들은 정말 다 괜찮나."
라면사장이 물었다.
"괜찮다……이다. 오히려 신났다……이다."
비아의 그 말대로, 거리 한쪽에서는 탄지 로와 피피 모나, 미르 오벨이 잠든 어른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었다.
"엄마, 아빠 다 자고 있어."
피피가 신기한 듯 말했다.
"우리가 지켜야 해."
탄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뭐 하면서 지켜?"
미르가 물었다.
"이야기하면서. 내일 뭐 할지."
탄지의 그 대답에, 아이들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잠든 어른들 머리맡을 돌며, 저마다 나직이 내일의 이야기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엄마, 내일 눈사람 만들자."
"아빠, 나 내일 불씨 살리는 거 더 잘할 거야."
그 작은 목소리들이, 텅 빈 도시의 밤을 조용히 채워나갔다.
녹사는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도시, 아이들이 지키고 있다는 말이 진짜였군."
"항상 그랬다……이다."
비아가 답했다.
"단지 우리가 오늘에서야 정확히 본 것뿐이다……이다."
세 존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도시 곳곳을 순찰했다. 잠든 사람들 중 몇몇은 표정이 편안했고, 몇몇은 미간을 좁힌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저 사람, 힘들어 보인다."
녹사가 한 이웃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예다. 아마 예전 그 세계를 다시 보고 있을 거다."
라면사장이 답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나."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저 아이 스스로 해야 한다."
녹사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예의 곁에 조용히 앉았다. 그녀의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될 것이었다.
가게로 돌아온 라면사장은, 불 앞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곧 냄새가 퍼질 거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진 재료를 하나도 남김없이 꺼내기 시작했다. 이 도시 역사상 가장 큰 조리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텅 빈 거리, 잠든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를 지키는 아이들과 세 존재. 노바 니발리스는 그렇게, 가장 조용하고도 가장 절박한 밤을 지나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냄비 뚜껑을 열고, 오랫동안 우려온 국물의 향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멀리까지 갈 거다.'
그는 그렇게 확신하며, 마지막 재료를 냄비에 넣었다.
강제로 깨울 수 없다면, 부를 수는 있었다. 라면사장은 가게의 모든 화구에 불을 올렸다. 하나, 둘, 셋. 평소라면 하나로 충분했을 냄비들이, 오늘 밤은 가게 안 가득 늘어서 있었다.
"이 정도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녹사가 잠시 가게에 들러 그 광경을 보며 물었다.
"도시 전체에 닿아야 한다. 그럼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답하며, 육수 대신 토핑 재료들을 아낌없이 볶기 시작했다. 파, 마늘, 계란, 그리고 오랫동안 아껴둔 향신료들까지.
가게 안은 순식간에 진한 냄새로 가득 찼다. 그 냄새는 문틈을 타고, 창틈을 타고, 천천히 거리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통할까요."
세레나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가게로 달려와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잠들지 않은 몇 안 되는 어른 중 하나였다.
"통할 거다."
라면사장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 도시 사람들한테, 이 냄새는 그냥 냄새가 아니다. 여기 있고 싶다는 마음, 여기가 안전하다는 확신, 그 모든 게 이 냄새 하나에 담겨 있다."
냄새는 눈 덮인 거리를 타고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 여정은 느렸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꿈속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문득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세레나의 꿈속, 차갑고 정교한 그 건물 안에서, 그녀는 문득 낯선 향을 느꼈다.
'……이게, 무슨 냄새지.'
그것은 그 건물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몹시 익숙한 냄새였다. 파 냄새, 국물 냄새, 그리고 어렴풋한 계란 냄새.
이리스의 꿈속, 완벽했던 옛 공방 한가운데서도 같은 냄새가 스며들었다.
'……이거, 라면사장님 가게 냄새 아니야?'
그녀는 그 냄새를 따라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도시 곳곳, 잠든 사람들이 하나둘 코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라면 냄새 안 나?"
그 작은 위화감들이, 완벽했던 꿈들의 표면에 아주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가게 안, 라면사장은 냄비 하나를 더 불에 올리며 온 힘을 다해 그 향을 진하게 만들어갔다.
"조금만 더."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오랜 세월 이 가게를 지켜온 손이, 오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도 도울게요."
세레나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섰다. 그녀는 서툰 손길로 도마 앞에 서서 파를 썰었다. 그 정성만큼은 누구 못지않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냄새는 도시 구석구석까지 닿아가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하나씩 이름을 불렀다.
'세레나, 이리스, 수연, 소예, 헤라…….'
그가 부르는 이름은 곧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냄새의 끝자락에 걸리기 시작했다.
세레나가 가장 먼저 눈을 떴다. 그 차갑고 정교한 건물 안에서, 그녀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냄새가 흘러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냄새를 따라가면.'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냄새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눈을 뜬 그녀는 자신의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진한 국물 냄새가 스며들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이리스는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완벽했던 공방의 풍경이, 냄새 하나로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 냄새 끝에서, 그녀는 문득 무대 조명을 손보던 자신의 손 감각을 떠올렸다.
'……저 냄새가, 나를 부르고 있어.'
그녀는 그렇게 확신하며 눈을 떴다.
수연은 이미 그 세계를 나온 뒤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는 걸 느끼며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스! 괜찮아?"
이리스가 눈을 뜨자마자 뛰쳐나온 그녀를 보고, 이리스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응, 냄새 따라왔어."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각자의 꿈에서, 각자의 이유로.
"저는 아버지 젊었을 때 꿈이었는데, 국물 냄새 맡으니까 갑자기 배가 고파지더라고요."
"저는 냄새 맡자마자 그냥 정신이 들었어요."
소예도, 헤라도, 미다도, 부관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냄새를 따라 눈을 떴다. 도시 광장은 어느새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돈키호테는 그중에서도 유독 늦게 나타났다. 그가 광장에 마지막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볼도 씨, 어디 계셨어요?"
"미안하다! 꿈속에 컵라면이 없었다! 그래서 냄새 맡고도 한참 헤맸다!"
그 엉뚱한 대답에, 광장은 오랜만에 웃음으로 가득 찼다.
가게 앞, 라면사장은 그 모든 광경을 문가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둘 돌아오는 얼굴들, 서로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도시.
"……다 돌아왔군."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수연이 그 옆으로 다가와 섰다.
"사장님, 성공했어요."
"냄새가 부른 게 아니다. 다들 스스로 걸어 나온 거다. 나는 그냥, 돌아올 이유 하나를 만들어줬을 뿐이다."
"그것도 대단한 거예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사장님, 손 떨리세요?"
수연이 문득 그의 손을 보며 물었다. 정말로, 그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힘을 좀 많이 썼다."
"쉬셔야겠어요."
"조금만 더 있다가."
수연은 그 대답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문득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럼 이러고 있을게요. 조금이라도 도움 되게."
라면사장은 그 손길에 순간 숨을 멈췄다. 그러나 이번엔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
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잡은 채, 광장의 소란스러운 재회를 지켜보았다. 그 손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라면사장의 떨림을 조금씩 가라앉혀주고 있었다.
세레나가 그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고 옅게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이 도시의 방식대로.
광장은 오랜만의 소란과 웃음으로 가득했다. 텅 비었던 도시가, 이제 다시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란의 중심에서, 문턱시장 뒤편 꿈 상점은 오늘도 손님 하나 없이, 조용히 불이 꺼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