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90화. 소므니움과의 작별

도시가 완전히 깨어난 다음 날, 꿈 상점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소므니움이 가게로 걸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수연이 인사를 건넸다. 평소와 달리, 그 목소리에는 경계보다 담담함이 더 컸다.


소므니움은 카운터 앞에 조용히 앉았다.

"주문하시겠어요?"

"네. 제일 맛없는 걸로."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라면사장도, 수연도, 그 요청에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진심이세요?"

수연이 물었다.

"네. 이 도시에서 가장 형편없다는 그 음식, 궁금해서요."

수연은 그 말에 씩 웃으며 콜라 캔과 비빔면 봉지를 꺼냈다. 능숙한 손길로 면을 비비고, 그 위에 콜라를 부었다. 낯선 색과 냄새가 카운터 위로 퍼졌다.


소므니움은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떠 넣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이건 정말 최악이군요. 왜 이런 걸 파는 겁니까?"

"안 팔아. 이건 고르는 거야."

수연이 답했다.

"이 맛, 누가 강요한 거 아니잖아. 내가 직접 비볐고, 내가 직접 먹은 거야. 맛없어도 내 거."


소므니움은 그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이게, 당신들이 계속 저한테 이겼던 이유였군요."

"이제야 알았어?"

"조금은요. 근데 여전히 이해가 다 되지는 않습니다. 왜 굳이 맛없는 걸 자기 걸로 삼는지."


라면사장이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맛없어서 자기 걸로 삼는 게 아니다. 자기가 골랐다는 게 중요한 거지, 맛은 부차적이다. 이 도시 사람들한테는, 완벽하고 달콤한 것보다 이렇게 어설프고 부족한 것에 애착이 더 크게 생긴다. 완벽한 건 대개, 자기가 만든 게 아니니까."


소므니움은 그 설명에 다시 한번 침묵했다. 그러다 옅게, 처음으로 진심 어린 웃음을 지었다.

"오늘, 완전히 졌다는 걸 인정하겠습니다. 당신들 도시는, 제가 지금까지 상대해본 곳들 중 가장 견고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하더군요. 다들 자기 삶의 주인이었으니까요."


"근데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당신들, 저를 미워하십니까?"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미워하지 않는다. 너도 네 나름의 논리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네가 정할 일이다. 우리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소므니움은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당신들다운 대답이네요. 언제나,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거."


그는 그렇게 답을 듣고, 가게 문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이 도시, 정말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또 오지는 마."

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그건 저도 아직 모르겠네요."


소므니움은 그렇게 답하며 옅게 웃고는, 가게 문을 열고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가게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진짜 끝난 거예요?"

수연이 물었다.

"거의. 근데 완전히 끝난 건 아닌 것 같다. 저놈, 아직 뭔가 정리 안 된 표정이었다."


그 예감은, 며칠 뒤 정확히 들어맞았다.

문턱시장 뒤편의 꿈 상점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식이 도시에 전해진 그날 저녁, 라면사장은 가게 마감 후 홀로 밖으로 나섰다. 그가 향한 곳은 도시 외곽, 소므니움이 자주 머물던 그 눈 덮인 벌판이었다.

그곳에는 정말로, 그가 서 있었다.


"오셨군요."

소므니움이 그를 보며 말했다.

"떠난다고 들었다."

"네. 이 도시엔 더 이상 팔 게 없으니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패배감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함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


"추방이 아니라, 폐업이라고 해야겠군요."

소므니움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상하게, 이 도시가 계속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패배한 곳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패배가 아니다."

라면사장이 정정했다.

"너는 이 도시 사람들한테 스스로를 확인할 기회를 줬다. 그것도 나름의 역할이다."

소므니움은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당신은, 저를 위로하시는 겁니까?"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다."


소므니움은 그 대답에 옅게 웃으며, 마지막으로 라면사장을 바라보았다.

"떠나기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 꿈은 안 팔렸습니다. 반품 불가라서요."

그 말에, 라면사장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무슨 뜻이지."


"당신에게 보여드리려 했던 그 꿈, 결국 한 번도 열리지 않았죠. 근데 그건 안 팔린 게 아니라, 반품이 안 되는 종류였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걸 혼자 열어보게 될 겁니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지금 설명해줄 수 있나."


"아니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냥, 그런 예감이 듭니다. 당신 같은 존재에게는, 결국 언젠가 자기 안의 것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는 걸요."

소므니움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려 눈 덮인 벌판 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잘 있으세요, 라면사장님. 그리고 이 도시도요."


그 말을 끝으로, 그의 형체는 눈발 속으로 서서히 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라면사장은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서,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내가 혼자 열어보게 될 꿈이라.'

그는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속에 담긴 무게만은, 오래도록 그의 마음에 남았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도시로 향했다. 불빛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풍경이, 오늘따라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게로 돌아온 그를, 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맞았다.

"사장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소므니움을 만나고 왔다. 떠났다."


"진짜요? 어떤 대화 나누셨어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답을 고르다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냥, 작별 인사를 했다."

수연은 그 대답에서 뭔가 더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럼 이제 진짜 끝난 거예요?"

"그래. 이번 아크는, 끝났다."

"고생하셨어요, 사장님."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라면사장은 그 온기를 느끼며 옅게 눈을 감았다.


'……반품 불가라.'

그는 그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언젠가 마주하게 될 그 순간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곁에 있는 이 온기가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창밖에는 오늘도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소므니움이라는 낯선 손님을 이겨낸 도시는, 그렇게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소므니움이 떠난 뒤로도 며칠, 도시는 서서히 예전의 리듬을 되찾아갔다. 그러나 완전히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그날 밤, 이리스는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소므니움이 만든 것이 아닌, 그냥 평범한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그녀는 그 사실에 오히려 놀랐다.

'……좋은 꿈도, 나쁜 꿈도 아니었어. 그냥 꿈이었어.'


가게에 도착한 그녀는 그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눴다.

"저도 어제 꿈 꿨어요. 근데 이번엔 그냥 평범한 거였어요."

"저도요. 이상하게, 이제는 꿈꾸는 게 무섭지 않아요."

수연도 맞장구쳤다.


세레나가 그 대화를 들으며 옅게 웃었다.

"이 도시가, 또 하나 진짜에 가까워졌네요. 원래 이 도시는 꿈이 없었잖아요. 이야기가 끝난 사람들한테는, 꿈이 필요 없었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좋은 꿈도 나쁜 꿈도 그냥 자연스럽게 꾸는 도시가 됐어요. 좋은 거예요. 근데 동시에, 대가이기도 해요. 살아있는 곳이 되어간다는 건, 그만큼 흔들릴 일도 많아진다는 뜻이니까요."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조용히 국물을 저었다.

'……꿈이 생긴다는 건,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며칠 전 소므니움이 남긴 말을 다시 떠올렸다. 반품 불가라던 그 꿈. 그것 역시, 언젠가 이 도시에 흐를 시간과 함께 찾아올 것이었다.


며칠 뒤,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녹사 씨한테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헤라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저녁, 가게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녹사는 늘 앉던 상담소 자리에 앉아, 영문을 모른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녹사 씨."

세레나가 대표로 앞으로 나섰다.

"저희, 그동안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요. 소므니움 아크 내내, 저희 다 녹사 씨 덕분에 버텼잖아요."

"감사합니다, 녹사 씨."

"고마워요, 정말로."


녹사는 그 갑작스러운 감사 인사에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그 담담한 얼굴에, 처음으로 뚜렷한 어쩔 줄 모름이 스쳤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었어요."

이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녹사 씨, 늘 사람들 얘기만 들어주셨잖아요. 근데 정작 녹사 씨한테는 아무도 고맙다는 말을 안 했더라고요."


그때, 라면사장이 작은 나무 명패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이거, 자네 자리에 걸어두려고 만들었다."

녹사는 그 명패를 받아 들었다. 그 위에는 짧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경고 담당.'


"이게 뭔가."

"자네가 하는 일, 이름 붙여봤다. 위로가 아니라 경고. 그게 자네답다고 생각했다."

녹사는 그 명패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든다. 마음에."

녹사는 그렇게 짧게 답하며, 그 명패를 상담소 자리 한쪽에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그것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날 저녁, 가게에서는 오랜만에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녹사와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며 웃고 떠들었다.

가게 밖으로 나온 라면사장과 수연은, 그 왁자지껄한 소리를 뒤로하고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녹사 씨, 오늘 진짜 행복해 보였어요."

수연이 말했다.

"그래. 오래 기다린 순간이었을 거다."


"사장님도, 언젠가 저런 인정을 받으실 날이 올까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모른다. 근데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수연은 그 대답에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저는 늘 고마워하고 있어요, 사장님한테."

라면사장은 그 손길에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마주 잡았다.

"……나도, 너한테."


그날 밤 늦게, 라면사장은 홀로 남아 지난 아크를 되짚었다. 이번 싸움 내내,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진짜 힘을 쓰지 않았다. 소므니움을 단숨에 지워버릴 수 있었던 그 순간에도, 그는 끝까지 손을 대지 않았다.

'……잘 버텼다. 근데 그 버팀이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람이 소중해질수록.'

그는 그 생각의 끝에서, 문득 낯선 확신 하나를 마주했다. 감정은 규율보다 따뜻했다. 그리고 규율보다 위험했다.

그때, 가게 문이 조용히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수연이었다.

"사장님,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이번 싸움, 몇 번이나 선을 넘을 뻔했다. 내가 넘으면 안 되는 선. 저놈을 대신 지워버릴 뻔한 적이 있었다."

수연은 그 고백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근데 왜 안 넘으셨어요?"

"비아가 잡아줬다. 그리고 너희 생각도 났다. 내가 대신 다 해결해주면, 너희가 스스로 이겨낼 기회를 뺏는 거니까."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사장님이 흔들릴 때, 잡아드릴게요. 비아 씨가 그랬던 것처럼."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나직이 답했다.

"고맙다."

수연은 그렇게 답하며 그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았다. 이 싸움은, 도시의 역사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록되지 않은 싸움이야말로, 이 도시를 지켜낸 진짜 이유였다.


소므니움이 떠난 뒤로도, 이리스는 이따금 그 꿈속 무대를 떠올렸다. 완벽했던 스타의 삶, 그러나 관객석에 아무도 없던 그 반쪽짜리 순간.

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스케치 노트를 펼쳤다. 그녀는 그 꿈에서 봤던 무대의 풍경을 천천히 그려나갔다. 화려한 조명, 만석의 객석, 그리고 중앙에 선 자신의 모습까지.

그림은 놀랍도록 정교했다. 그러나 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이거 말고, 내가 만드는 거.'


다음 날, 그녀는 그 노트를 들고 극장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새로운 페이지를 펼쳐, 이번엔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 완벽하게 서 있는 스타가 아니라 — 무대 뒤에서 조명을 조정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 그림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그림 한구석에, 아주 작게 자신이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도 함께 그려 넣었다.


"뭐 그리세요?"

솔이 지나가다 물었다.

"그냥, 제가 만드는 것들이요. 근데 이번엔, 아주 조금은 저도 그 안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만드는 사람으로서요. 근데 동시에, 그 빛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도요."


그날 이후, 이리스의 스케치 노트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무대 중앙은 아니었다. 그러나 완전히 뒤편도 아니었다.

"이거, 뭔가 새로운 스타일이네요."

세레나가 그 노트를 우연히 보고 말했다.

"저도 아직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이게 지금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그날 저녁, 가게에서는 이리스가 그 노트를 수연에게 보여주었다.

"이 작은 사람, 이게 신입이야?"

"응. 완전히 무대 중앙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조금 더 앞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수연은 그 대답에 흐뭇하게 웃었다.

"천천히 해. 서두를 필요 없어."


그날 밤, 이리스는 잠들기 전 그 노트를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완성된 별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자신이 서 있는 그 구도가 마음에 들었다.

'……이거 말고, 내가 만드는 거.'

그녀는 그 문장을 다시 한번 읽으며 옅게 웃었다. 그것은 완벽한 무대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자신만의 완성을 향한 첫 선언이었다.

창밖에는 오늘도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노트 속 작은 그림은,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소므니움이 남기고 간 자리마다,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새로 그려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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