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4화. 창고에서 나온 사람
다음 날, 소예는 같은 시간에 가게 문 앞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같은 시간인지 알 수 없었다. 이 도시에는 시계가 없었으니까. 그냥 어제와 비슷한 정도로 배가 고파졌을 때 나온 것뿐이었다.
문 앞에서 그녀는 잠깐 망설였다.
또 와도 되는 걸까.
어제 라면사장은 "오고 싶으면"이라고 했다. 명령도 아니었고 초대도 아니었다. 그 애매함이 오히려 소예를 더 오래 문 앞에 세워두었다.
결국 그녀는 문을 밀었다.
"어서 와."
라면사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마치 그녀가 올 걸 알았다는 듯한, 혹은 누가 오든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소예는 그 무심함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카운터 위에는 비아가 앉아 있었다. 오늘은 손에 문고리 대신 어제 그 어묵 꼬치를 들고 있었다. 이미 다 먹은 지 오래된 것 같았지만 놓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소예다……이다."
비아가 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
"……응, 맞아."
"또 왔다……이다."
"응."
"밥 먹으러 왔다……이다?"
"어, 그런 셈이지."
비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기가 뭔가를 증명한 것처럼.
"내가 맞혔다……이다."
"뭘 맞혀. 다 아는 걸 말한 거잖아."
"맞히는 거랑 아는 거는 같다……이다."
소예는 그 논리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자리에 앉았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그녀는 그것도 딱히 의식하지 못했다.
라면사장이 물을 올리며 물었다.
"어제랑 같은 거."
"……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소예는 자기가 뭘 먹었는지도 기억하는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이 가게가 어제와 이어져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 안쪽에서 낮게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벽에 걸려 있던 검은 문틀이 흔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안에서 볼도가 걸어 나왔다.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머리는 어제보다 더 헝클어져 있었고, 후드는 반쯤 벗겨져 있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닫고 카운터로 걸어와 앉았다.
"……왔어요?"
소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볼도는 그녀를 보고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옅게 웃었다.
"새로 왔나 봐요."
"네, 어제부터."
"저 문, 처음 보면 좀 무서울 텐데."
"조금요."
"익숙해져요. 여기 있는 것들 대부분이 그래요."
라면사장이 볼도 앞에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았다. 볼도가 시키지도 않은 것이었다. 국물 색이 여느 때보다 옅었다. 매운 수프 대신 순한 맛 봉지를 골라 끓인 것이었고, 계란도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게 익어 있었다.
"오늘은 순한 걸로."
"이런 것도 팔았어요?"
"눈이 부었잖아."
볼도는 잠깐 멈칫했다.
"……티 나요?"
"안 나면 이상하지."
볼도는 별말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라면사장도 더 캐묻지 않았다. 비아만 카운터 위에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매번 운다……이다?"
비아가 대뜸 물었다.
소예가 놀라서 비아를 쳐다봤다. 그런 걸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도 되나 싶었다.
그러나 볼도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질문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몰라도 돼."
"안다고 안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이다."
"그게 그거야."
"다르다……이다."
볼도는 면을 한 젓가락 넘기며 잠깐 생각했다.
"음. 그냥, 저 안에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무슨 옛날."
"안 좋은 옛날."
"그런데 왜 계속 가."
볼도는 그 질문에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젓가락이 그릇 안에서 잠깐 멈췄다.
"……가야 잊지 않을 것 같아서."
가게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라면사장은 냄비를 젓고 있었다. 그는 그 말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손의 속도가 아주 조금 느려졌다.
비아는 그 말을 곱씹듯 고개를 갸웃했다.
"잊는 게 나쁜 거냐."
"나쁜 건 아니야. 근데 무섭기는 해."
"뭐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언젠가 하나도 기억 안 나게 될까 봐."
비아는 그 말에 대해 한참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평소라면 바로 이상한 결론을 냈을 텐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거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모르겠다……이다."
그건 비아치고는 드문 대답이었다. 소예는 그 침묵이 오히려 진지하게 느껴졌다.
라면사장이 낮게 말했다.
"잊혀지는 거랑,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건 다르다."
볼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저는 뭘 해야 되는데요."
"몰라."
"위로도 안 해줘요?"
"위로는 못 해. 국물은 줄 수 있다."
볼도는 피식 웃었다. 힘없는 웃음이었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그거면 됐어요."
그는 남은 면을 마저 먹었다. 그릇을 비우고 나서, 그는 소예 쪽을 다시 보았다.
"어제 처음 왔다고 했죠."
"네."
"괜찮은 곳이에요, 여기."
"그런 것 같아요."
"아무도 억지로 안 물어봐요. 그게 제일 좋아요."
소예는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어제 자기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볼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갑 대신 손목의 낡은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시간을 보기 위한 게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하는 행동 같았다.
"또 올게요."
"내일도 창고 갈 거예요?"
"글쎄요. 봐서."
그는 라면사장을 향해 작게 목례하고 가게를 나섰다.
문이 닫히고, 소예는 잠깐 그 문을 바라보다가 라면사장에게 물었다.
"저 사람, 매일 와요?"
"자주."
"매번 저래요?"
"아니. 오늘은 좀 심했지."
"근데 아무렇지 않게 대하시네요."
라면사장은 그릇을 씻으며 대답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다. 손님이 아무렇지 않은 척할 때, 내가 진지하게 굴면 더 곤란해진다."
소예는 그 말을 곱씹었다. 배려의 방식이 이상하게 뒤틀려 있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정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소예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소예는 안 운다……이다?"
"어? 나?"
"창고 가면. 소예도 운다……이다?"
소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본 적 없어서 몰라."
"가볼래?"
"싫어."
"왜."
"그냥 싫어."
비아는 아쉽다는 듯 입을 삐죽였지만, 더 조르지는 않았다. 대신 카운터에서 폴짝 뛰어내려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콜라 없다고 했는데 진짜 없나 확인해야겠다……이다."
"방금 확인했잖아."
"그건 어제 확인이다. 오늘은 오늘 확인해야 한다……이다."
라면사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소예는 그 대화를 들으며 작게 웃었다.
가게 안은 다시 평소의 소음으로 채워졌다. 냄비가 끓는 소리, 비아가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 창밖에서 내리는 눈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아주 작은 소리.
소예는 자기 그릇에 담긴 라면을 내려다보았다.
어제와 같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제는 이 가게가 그냥 낯선 도착지였다면, 오늘은 아주 조금, 두 번째로 와도 되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젓가락을 들었다.
"저기."
"응."
"저도 뭐 도울 거 없어요?"
라면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뭘."
"가게 일이요. 그냥 앉아서 얻어먹기만 하는 게 좀 그래서."
라면사장은 잠깐 그녀를 보다가, 다시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보지."
그건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소예는 그게 이 가게의 방식이라는 걸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비아가 냉장고 앞에서 소리쳤다.
"진짜 없다……이다! 사장님 거짓말 아니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어른은 가끔 거짓말한다……이다."
"그건 또 어디서 배웠어."
"세레나가 말했다."
라면사장은 잠깐 손을 멈추고 세레나가 대체 무슨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을지 상상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다시 국자를 들었다.
소예는 잠깐 더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래."
라면사장은 그녀가 나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투로 대답했다. 소예는 그 무심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붙잡히지 않는다는 건, 돌아올 이유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문을 열고 나서자 노바 니발리스의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거리는 넓지 않았다.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고, 지붕마다 눈이 얇게 쌓여 있었다. 가로등은 낮에도 켜져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가게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이상했다.
한 시계방은 창문 안에 수십 개의 시계를 걸어두었는데, 바늘이 전부 서로 다른 속도로 돌고 있었다. 어떤 것은 거꾸로 돌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은 그중 어느 것도 고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건 왜 저래요?"
소예가 지나가다 묻자, 노인은 돋보기를 벗지도 않고 대답했다.
"시간은 원래 사람마다 다르게 가."
"그런데 왜 가게에서 팔아요?"
"몰라서 사는 사람도 있고, 알아서 사는 사람도 있고."
노인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소예도 더 묻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는 그런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조금 더 걷자 문을 닫은 가게가 하나 나왔다. 간판은 없었지만, 창문 안쪽에 조명 기구 같은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게 보였다. 먼지가 앉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소예는 그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가, 딱히 이유는 없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골목 끝에서는 군밤을 파는 할머니가 화로 앞에 앉아 있었다.
"하나 먹어볼래?"
할머니가 종이봉투에 밤을 담아 내밀었다.
"돈이 없는데요."
"오늘 처음 온 거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에 쓰여 있어. 도착한 사람은 다 그런 얼굴을 하더라고. 뭐, 아직 두 명밖에 못 봤지만."
할머니는 대답 대신 봉투를 소예의 손에 쥐여주었다.
"처음엔 그냥 받아. 나중에 여유 생기면 갚든가, 다른 사람한테 주든가."
소예는 봉투를 받아 들고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이 도시는 어느 한 사람만 이상한 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같은 규칙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캐묻지 않는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받을 수 있는 걸 내밀고, 받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맡긴다.
광장 쪽에서는 아이들 몇이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팔이 하나뿐이었는데도 눈을 아주 잘 뭉쳤고, 다른 한 명은 웃을 때마다 입에서 작은 종소리가 났다.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소예는 군밤을 까먹으며 광장 벤치에 잠깐 앉았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눈은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춥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이 도시의 눈은, 원래 세계의 눈과는 조금 다른 온도를 가진 것 같았다.
그녀는 문득 라면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멀리서도 창문에 서린 김이 보였다. 저 안에서는 지금도 물이 끓고 있을 것이다. 누가 오든 안 오든.
소예는 남은 밤을 마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그냥 돌아가고 싶어졌을 뿐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 종소리 대신 익숙한 김이 얼굴에 확 끼쳤다.
"다녀왔어요."
"어."
라면사장은 여전히 냄비 앞에 서 있었다. 비아는 카운터 위에서 뭔가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뭐 먹어?"
"군밤 할머니한테 받았다……이다."
"너도 받았어?"
"응. 나는 자주 받는다."
소예는 자기가 들고 온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저도요."
비아가 그 봉투를 흘끔 보더니,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할머니는 다 준다……이다. 도시에서 제일 부자면서 제일 많이 준다."
"부자예요?"
"밤나무가 많다."
라면사장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리고 아무한테도 안 갚아도 된다는 말, 진심이다. 실제로 아무도 안 갚아도 뭐라 안 해."
소예는 그 말을 들으며 손안의 군밤을 내려다봤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손님들이 하나둘 줄었다.
소예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만 가볼게요."
"그래."
"내일도 올게요."
"오고 싶으면."
소예는 그 말이 어제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작게 웃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잠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가게 안에는 다시 라면사장과 비아만 남았다.
비아는 카운터 위에 벌러덩 누워 발을 위로 뻗었다. 다 먹은 군밤 봉투는 배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오늘 손님 세 명……이다."
"넷."
"볼도는 반만 손님이다. 매번 오니까."
"그래도 손님이다."
"그럼 넷……이다."
라면사장은 마지막 그릇을 마저 씻었다. 물소리가 가게 안을 채웠다.
"사장님."
"왜."
"나 처음 왔을 때도 이랬냐."
라면사장은 손을 멈췄다.
"뭐가."
"손님들 밥 주고, 안 캐묻고, 그냥 기다리고."
"그때는 손님도 없었다. 너밖에 없었으니까."
비아는 그 말을 듣고 발을 까딱이며 웃었다.
"내가 첫 번째 손님이었다……이다?"
"손님은 아니었지. 넌 돈을 낸 적이 없다."
"그럼 뭐였는데."
라면사장은 잠깐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대답 대신 마른행주로 그릇을 마저 닦았다.
"그냥 옆에 있었다."
비아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씩 웃었다.
"지금도 옆에 있다……이다."
"알아."
"계속 있을 거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냄비 뚜껑을 덮었다. 오늘 몫의 물은 이제 필요 없었다.
비아는 카운터 위에서 몸을 돌려 엎드리더니, 턱을 괴고 그를 올려다봤다.
"내일은 몇 명 온다……이다?"
"몰라."
"맨날 몰라라고 한다."
"맨날 진짜 모르니까."
"그럼 왜 안 불안하냐."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깐 손을 멈췄다.
"몰라도 되는 걸 불안해하면 끝이 없다."
비아는 그 말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하품을 크게 했다.
"졸리다……이다."
"자."
"여기서?"
"싫으면 방에 가서 자."
비아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그 자리에서 잠든 것이다.
라면사장은 불을 하나씩 껐다. 마지막 불빛 아래, 카운터 위에 잠든 작은 토끼 후드와 텅 빈 그릇들이 남았다.
가게 밖에는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쌓이는 것 자체가 가장 드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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