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5화. 동의만 할 수 있는 사람
세레나는 아침이라 부를 만한 시간에 라면가게에 들렀다.
정확히는 그녀 자신도 그게 아침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 도시에는 해가 뜨고 지는 순서가 있긴 했지만, 그 간격이 늘 일정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그 시간을 아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누군가는 기준을 정해야 했고, 대개 그 역할은 그녀에게 돌아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 물도 안 끓었다."
"그래도 아침은 아침이니까요."
라면사장은 그 대답에 별말 없이 냄비를 올렸다. 카운터 위에서는 비아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어젯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세레나는 그 작은 몸에 담요 하나를 살짝 덮어주고서야 카운터에 앉았다.
"오늘은 좀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어디."
"동쪽 골목. 어제 새로 도착한 분이 계신다고 들었어요."
"소예 말고?"
"네. 다른 분입니다."
라면사장은 물을 젓다 말고 잠깐 고개를 들었다.
"동쪽 골목이면 그 폐가."
"폐가는 아닙니다. 아직 아무도 안 산 집이었을 뿐이죠."
"안 산 지 오래됐다는 뜻이잖아."
"오래 비어 있던 집일수록 오히려 좋습니다."
세레나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 흔적도 없으니까요. 새로 온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채울 수 있습니다."
라면사장은 그 말을 듣고 짧게 웃었다.
"너는 늘 그런 식으로 좋게 말한다."
"사실이니까요."
세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코트를 여몄다.
"다녀오겠습니다."
"밥은."
"다녀와서요."
"식으면 다시 끓여야 되는데."
"그럼 그때 다시 끓여주세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가게를 나섰다. 라면사장은 문이 닫히는 걸 잠깐 보다가, 다시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동쪽 골목은 도시의 다른 구역보다 조용했다.
건물들 사이 간격이 넓었고, 아직 정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임시로 머무는 곳이 많았다. 세레나는 익숙한 걸음으로 골목 끝의 낡은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녀가 노크하자 안에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잠시 후 문이 살짝 열리고,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훨씬 더 늙어 보였다.
"……누구세요."
"세레나라고 합니다. 이 도시를 관리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남자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관리라니. 여기도 무슨 규칙이 있나요."
"규칙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면 하나뿐이죠."
"뭔데요."
"당신이 정하는 것 외엔, 아무도 당신에게 뭘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
남자는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런 게 규칙이에요?"
"의외로 지키기 어려운 규칙입니다."
세레나는 문 앞에 그대로 선 채 말을 이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제 집도 아니잖아요."
"당신이 머무는 순간부터는 당신 집입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여기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만들었어요."
남자는 문을 마저 열었다. 세레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턱에 걸터앉듯 자리를 잡았다. 그를 내려다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재하요."
"재하 씨."
"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안 여쭤보겠습니다."
재하는 그 말에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안 궁금해요?"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알아도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재하는 그 말을 곱씹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이상한 동네네."
"자주 듣습니다."
세레나는 잠깐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하나만 여쭤볼게요. 지금, 이 집에 계속 계시고 싶으신가요?"
재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싫으시면 다른 곳으로 옮겨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적은 곳, 사람이 많은 곳, 눈이 안 오는 곳도 있어요."
"……그런 선택지가 있어요?"
"네."
"근데 왜 저한테 물어봐요. 그냥 정해서 데려다 놓으면 안 돼요?"
세레나는 그 질문에 잠깐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정하면, 그건 당신의 자리가 아니게 됩니다."
"무슨 차이인데요."
"제가 명령해서 앉은 자리와, 당신이 스스로 골라서 앉은 자리는 겉보기엔 같아도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재하는 그 말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저는 명령할 수 없습니다."
세레나가 덧붙였다.
"동의만 할 수 있어요. 당신이 여기 있겠다고 하면, 저는 여기 있어도 된다고 답할 뿐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요. 결국 있으라는 거잖아요."
"아니요."
세레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당신이 여기 있으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여기 있는 건, 아직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스스로 정했기 때문이에요."
재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 없어요."
"대부분 그렇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아무것도 안 정하면요."
"그럼 그대로 두겠습니다."
"영원히요?"
"필요한 만큼."
재하는 창밖을 바라봤다.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냥 여기 있을래요. 당분간은."
"알겠습니다."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없어도 괜찮고요."
"그 말, 되게 많이 하시나 봐요."
"자주 씁니다. 진심이라서요."
그녀는 짧게 목례하고 골목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시장 광장을 지나던 세레나는 걸음을 멈췄다.
작은 소란이 일고 있었다.
좌판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그 사이 폭이 손바닥 하나 정도 겹쳐 있었다. 한쪽은 마른 과일을 파는 중년 여자였고, 다른 한쪽은 손으로 짠 목도리를 파는 청년이었다.
"매번 그쪽이 넘어온다니까요."
"넘어온 적 없어요. 원래 이 자리였어요."
"어제는 안 이랬잖아요."
"어제는 눈이 많이 와서 좀 옆으로 붙였을 뿐이에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 몇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지만, 아무도 끼어들지는 않았다.
세레나가 다가가자 두 사람 다 동시에 그녀를 돌아봤다.
"세레나 님,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저 사람이 먼저 자리를 침범했어요."
세레나는 두 좌판 사이의 간격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제가 자로 재서 선을 그어드릴까요?"
과일 장수와 목도리 청년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주실 수 있어요?"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러면 내일도, 모레도, 눈이 오나 안 오나 제가 매번 와서 다시 재드려야 할 겁니다. 저는 그럴 시간이 별로 없어요."
청년이 머쓱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두 분이 정하시면 됩니다."
"그게 안 되니까 싸우는 거잖아요."
"싸우는 건, 각자 원하는 게 뭔지 아직 서로에게 말 안 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세레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과일 장수님은 정확히 뭐가 필요하신가요."
여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바구니 두 개 놓을 자리요. 그거면 돼요."
"목도리 청년분은요."
"저는…… 사실 자리보다, 사람들이 제 물건을 보고 지나가는 게 싫어요. 저 여자분 좌판이 더 눈에 띄어서, 다들 그쪽만 보고 지나가거든요."
세레나는 그 대답을 듣고 잠깐 침묵했다.
"두 분이 싸우던 이유가 서로 다르네요."
과일 장수와 청년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저는 자리가 좁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제 물건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고요?"
"그런 것 같은데요."
세레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럼 자리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서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두 좌판의 위치를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광장 안쪽과 바깥쪽으로요."
청년이 눈을 크게 떴다.
"바깥쪽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는 자리잖아요."
"네."
"근데 그 자리, 원래 인기가 많아서 다들 안 비켜주려고 하는데."
"지금은 비어 있습니다. 저분이 괜찮다고 하시면요."
과일 장수는 잠깐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사실 안쪽이 더 편해요. 바람도 덜 불고. 자리 싸움만 안 하면 상관없어요."
"그럼 그렇게 해보시겠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잠깐 바라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요."
"저도요."
세레나는 옅게 웃었다.
"제가 정한 게 아닙니다. 두 분이 정하신 거예요."
"그래도 세레나 님이 물어봐 주셔서 알았어요. 저희끼리는 그냥 자리 얘기만 계속했거든요."
"가끔은 그런 게 필요하죠.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 물어보는 것."
세레나는 두 좌판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던 구경꾼 몇이 흩어졌다. 소란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세레나가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규칙을 새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에게 서로가 원하는 걸 물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명령하지 않는 것.
대신 묻는 것.
라면가게로 돌아왔을 때, 비아는 이미 깨어 카운터 위에서 어묵을 먹고 있었다.
"세레나."
"응."
"오늘도 갔다 왔냐……이다?"
"응."
"몇 명 만났어."
"한 명."
"뭐라고 했는데."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고 했지."
비아는 그 대답을 듣고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맨날 똑같은 말 한다……이다."
"맞는 말은 여러 번 해도 안 닳으니까."
라면사장이 냄비 앞에서 낮게 웃었다.
"어디서 들어본 말이네."
"제가 자주 하는 말이라서요."
세레나는 카운터에 앉으며 코트를 벗었다.
"밥, 다시 끓여주실 수 있나요."
"이미 식었다."
"그럼 다시 끓여주세요."
라면사장은 못 이기는 척 새 냄비를 올렸다. 세레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문득 낮게 말했다.
"오늘 그분, 처음엔 아무것도 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냥 있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하나의 결정이죠."
"작은 결정이네."
"작은 결정도 결정입니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면을 넣었다. 비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묵을 마저 씹었다.
"저는요."
세레나가 말을 이었다.
"모두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구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도요. 저는 그저 자리를 만들 뿐이에요."
"그거면 충분하다."
라면사장이 말했다.
"충분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충분하다."
세레나는 그 확신에 잠깐 웃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좀 믿게 되네요."
"믿을 만하니까 그런 거다."
비아가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들었다.
"나도 자리 만든다……이다."
"네가?"
"문 만드는 거다. 그거도 자리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이다."
세레나는 그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비슷합니다."
"그치."
비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어묵에 집중했다. 라면사장은 완성된 그릇을 세레나 앞에 내려놓았다.
"먹어."
"고맙습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소예가 들어왔다. 오늘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배가 고파진 것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소예는 세레나를 보고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또 뵙네요."
"네, 자주 다니는 편이라서요."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마침 잘됐네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소예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뭘요?"
"지낼 곳은 정하셨나요."
"아직요. 그냥 가게 근처 숙소에 있어요."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딱히 뭘 채워야 할 필요를 못 느껴서."
세레나는 그 대답을 가만히 들었다.
"급하실 것 없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다른 곳을 보여드릴게요."
"그건 좀 나중에요. 지금은…… 그냥 여기가 편해서."
라면사장이 냄비를 저으며 무심하게 끼어들었다.
"밥 얻어먹으러 오는 거겠지."
"그것도 있어요."
소예가 순순히 인정하자 비아가 대뜸 손을 들었다.
"나도 밥 얻어먹으러 산다……이다."
"넌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여기 사는 거잖아."
"그게 그거다……이다."
세레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웃었다. 이런 사소한 다툼이 도시 어디에서나 반복된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장 좌판의 두 사람도, 카운터 위의 비아도, 결국 원하는 걸 정확히 말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을 뿐이었다.
"소예 씨."
세레나가 말했다.
"여기 계신 동안은, 무엇도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알아요. 사장님도 비슷한 말 하셨어요."
"저희는 대체로 같은 걸 믿거든요."
"그게 뭔데요?"
세레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아주 담백하게 말했다.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자리라는 것."
소예는 그 말을 이해할 듯 말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이 도시에서는 그런 말들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스며드는 편이었으니까.
세레나는 젓가락을 들며 창밖을 바라봤다. 눈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었다.
동쪽 골목의 낡은 집에도, 지금쯤 같은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었다. 재하가 그 눈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세레나는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한 사람이 스스로 머물기로 정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라면사장은 그 옆에서 묵묵히 그릇들을 정리했다.
그는 하루 동안 이 도시에서 몇 가지 일이 있었는지 세지 않았다. 재하라는 남자가 낡은 집에 머물기로 한 것, 시장 좌판 둘이 자리를 바꾸기로 한 것, 소예가 오늘도 별다른 이유 없이 문을 밀고 들어온 것.
전부 크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그런 작은 결정들이 모여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구도 명령받지 않은 채, 각자 조금씩 자기 자리를 정하면서.
그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세레나가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자리들이 쌓여가는 걸 기록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굳이 나서서 정리하지 않아도, 도시는 스스로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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