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3화.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이름
라면가게에는 아침이 없었다.
시계도 없었다. 대신 냄비가 있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하루가 열렸고, 마지막 손님이 국물을 다 마시면 하루가 끝났다. 그 사이에 몇 시간이 지났는지는 아무도 세지 않았다. 셀 필요가 없었다.
노바 니발리스는 그런 도시였다.
눈이 늘 조금씩 내렸고, 가로등은 밤이 아니어도 켜졌고, 사람들은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보다 지금 뭘 먹었는지를 더 자주 이야기했다. 훗날, 이 도시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대개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여기가 죽은 다음인가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게 된다.
"글쎄."
그의 대답은 늘 그 정도가 된다. 도착한 사람들은 처음엔 실망하다가, 나중엔 그 대답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걸 알게 된다. 끝난 이야기의 결말을 다시 설명당하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지금 이 도시에 도착한 사람은 아직 단 한 명 — 벽을 부수고 들어온 그 마녀뿐이었다.
그날도 라면사장은 냄비에 물을 올렸다.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손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흰 후드에 달린 축 처진 토끼 귀가 먼저 보였고, 뒤이어 회보랏빛 눈이 냄비 쪽을 향했다.
"오늘은 몇 명 온다……이다?"
"몰라."
"모르는데 왜 물을 올리냐."
"올려야 오니까."
비아는 그 말을 잠깐 곱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적으로 맞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비아는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카운터 위로 완전히 기어올라 앉았다. 손에는 낡은 황동 문고리가 들려 있었다. 딱히 목적은 없어 보였다. 그냥 늘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오늘은 창고 안 열 거다……이다."
"어제 그렇게 말하고 열었잖아."
"어제는 사정이 있었다……이다."
"무슨 사정."
"아이스크림이 없었다……이다."
라면사장은 더 묻지 않았다. 비아의 사정이라는 건 대체로 그 정도 수준이었고, 그걸 진지하게 파고드는 순간 하루가 이상하게 길어진다는 걸 그는 오래전에 배웠다.
물이 서서히 끓기 시작했다.
가게 문이 살짝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낡은 후드티에 슬리퍼 차림, 머리는 부스스했다. 그는 인사도 없이 곧장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어서 와, 볼도."
"오늘은 그냥 지나갈까 했는데."
"안 지나갔잖아."
"그러게요."
볼도는 카운터에 팔을 괴고 한숨을 쉬었다. 비아가 그를 흘끔 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또 창고냐……이다."
"오늘만."
"저번에도 오늘만이라고 했다."
"이번엔 진짜 오늘만이야."
비아는 못 미덥다는 얼굴로 그를 보다가, 조금 전 자기가 한 선언을 까맣게 잊은 듯 카운터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오늘은 창고 안 연다고 안 했냐."
라면사장이 지나가듯 물었다.
비아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아까다. 지금은 지금이다……이다."
라면사장은 더 따지지 않았다. 논리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비아가 벽 쪽으로 걸어가 손바닥을 대자, 공간이 얇게 접히며 검은 선이 문 모양으로 이어졌다. 낡은 황동 문고리가 벽에 걸렸다.
볼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문 앞에 섰다. 그는 문을 열기 전, 잠깐 숨을 골랐다.
"저 안에 딱히 특별한 건 없다……이다."
비아가 말했다.
"알아."
"그런데 왜 매번 간다."
볼도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그러고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가게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라면사장은 다시 냄비 앞으로 돌아갔다.
"저 아저씨는 창고에서 뭐 하는데……이다."
비아가 물었다.
"몰라."
"안 궁금하냐……이다."
"궁금한 거랑 물어봐도 되는 건 다르다."
비아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칫하더니,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었다.
"방금 그거 내가 한 말이다……이다."
"자주 하는 말이니까 나도 배웠다."
비아는 그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발을 툭 굴렀지만, 금세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렸다. 카운터 위에 남아 있던 어묵 그릇을 발견한 것이다.
가게 문에는 종이 달려 있지 않았다. 대신 문이 열리면 바깥 공기가 먼저 들어왔다. 그날 들어온 공기는 차가웠지만, 눈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마른 종이 냄새가 났다. 오래된 책, 혹은 오래된 명단 같은 냄새.
라면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표정도 딱히 없었다. 놀란 것도, 슬픈 것도, 안도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 자기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녀는 문턱에서 잠시 멈췄다.
"들어와도 되나요."
"그러려고 있는 가게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저절로 닫혔다. 그녀는 가게 안을 둘러봤다. 카운터, 낮은 의자들, 김이 서린 창문, 그리고 카운터 위에 앉아 있는 토끼 후드의 아이. 벽 한쪽에는 색이 살짝 다른 부분이 있었다. 얼마 전 새로 메운 자리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저기, 사람인가요?"
"토끼다……이다."
여자는 그 대답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라면사장은 신경 쓰지 않고 국자를 들었다.
"앉아."
여자는 시키는 대로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가장 구석 자리도, 가장 눈에 띄는 자리도 아닌, 딱 중간쯤 되는 자리였다. 그녀는 자기가 왜 하필 그 자리를 골랐는지도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면사장은 더 묻지 않고 냄비 안에 면을 넣었다.
여자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작게 말했다.
"안 물어보시네요."
"뭘."
"제 이름도, 제가 왜 여기 있는지도."
"손님이 알아서 말할 때가 있고, 안 그럴 때가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많아요?"
"안 말하는 쪽."
여자는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처음으로 표정다운 표정이 나온 순간이었다.
"저는 원래 이름이 없었어요."
라면사장은 면을 젓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듣고 있다는 뜻이었다.
"주인공 친구의 친구, 정도였어요. 대사도 몇 마디 없었고. 세 번째 장면쯤에 언급됐다가, 다시는 안 나왔어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제가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안 물어봤어요."
"작가도?"
"작가도요."
여자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억울하진 않았어요. 그냥…… 아무도 안 물어봐서, 저도 저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아무도 묻지 않은 것을 먼저 말했다.
"소예예요. 제 이름."
라면사장은 국자를 젓다 말고 잠깐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그게 다였다. 더 캐묻지도, 특별히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소예는 그 밋밋한 반응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몸을 쭉 내밀어 소예를 빤히 쳐다봤다.
"소예."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불러보더니, 신기한 물건을 확인하듯 다시 한번 불렀다.
"소예, 소예. 이름 예쁘다……이다."
소예는 얼떨떨하게 웃었다.
"……고마워."
"나는 비아다."
"알아. 아까 말했잖아."
"또 말해도 된다. 이름은 여러 번 말해도 안 닳는다……이다."
비아는 대뜸 소예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소예, 콜라 있어?"
"……없는데."
"그럼 사장님한테 달라고 해라. 나는 부탁해도 안 준다……이다."
라면사장이 국자를 든 채 낮게 끼어들었다.
"너도 안 준다."
"치사하다……이다."
비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금세 흥미를 잃은 듯 카운터 위 문고리를 다시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라면사장이 그릇을 내밀었다.
김이 오르는 라면 한 그릇이었다. 계란이 하나 올라가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모양이었다.
"먹어."
"저는 딱히 배가……"
"먹어."
소예는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긴장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했던, 계속 뭔가를 대비하고 있던 자세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맛있어요."
"당연하지."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매일 하는 일이다."
소예는 조용히 라면을 먹었다. 비아는 카운터 위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라면사장을 올려다봤다.
"안 물어볼 거냐."
"뭘."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 어떤 이야기였는지. 왜 세 번째 장면 뒤에 사라졌는지……이다."
라면사장은 냄비를 닦으며 대답했다.
"알고 싶으면 볼 수 있다."
"근데 안 본다."
"응."
"왜."
라면사장은 잠깐 손을 멈췄다.
가게 안의 불빛이 흔들리듯 조용했다. 소예는 라면을 먹느라 그 짧은 정적을 눈치채지 못했다.
"본다고 그 사람이 편해지는 건 아니다."
그가 낮게 말했다.
"손님이 말하고 싶어지면, 그때 듣는다. 그게 아니면, 그냥 여기 앉아 있게 둔다."
비아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없는 대답이다……이다."
"질문이 재미없었다."
"질문은 항상 재미없다. 대답이 재미있어야 한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소예는 어느새 그릇을 반쯤 비웠다. 그녀는 국물 위에 뜬 계란 조각을 젓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여기, 오래 있어도 되나요?"
"손님이 정할 일이다."
"제가요?"
"여기 규칙은 그거 하나다. 떠날지 남을지는 각자 정한다. 정하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소예는 그 말을 몇 번쯤 곱씹는 얼굴이었다.
"……이상한 가게네요."
"자주 듣는다."
문밖에서 눈이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다. 가게 창문에 김이 다시 서렸다. 비아는 카운터 위에서 발을 까딱이다가, 문득 문고리를 들어 허공에 살짝 그어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심심해서 해본 몸짓이었다.
그때 가게 문이 다시 조용히 열렸다.
이번엔 바람도, 냄새도 없었다. 그저 발소리만 들렸다. 정갈하고, 서두르지 않는 걸음.
세레나였다.
흰 롱코트에 눈이 몇 조각 내려앉아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틀어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 열쇠 모양의 비녀가 꽂혀 있었다. 그녀는 가게 안을 한 번 둘러보다가, 소예를 발견하고 아주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늘 도착하셨나요."
소예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환영합니다."
세레나의 목소리는 담백했다. 과장된 다정함도, 형식적인 인사말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투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없어도 괜찮습니다."
소예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라면사장 쪽을 슬쩍 봤다. 그는 여전히 그릇을 닦고 있었다.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세레나는 카운터로 다가와 라면사장 옆에 섰다.
"오늘은 몇 명째인가요."
"둘째."
"첫 번째 분은요."
"창고 갔다."
"어제 그러셨던 분과 같은 분인가요?"
"응."
세레나는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창고에 진심이시네요."
"거긴 진심이 아니면 못 견딘다."
비아가 그 말에 발끈해서 끼어들었다.
"창고는 재밌는 곳이다……이다!"
"재밌으면 왜 매번 울면서 나오지."
"그건…… 감동해서다……이다."
세레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소예를 바라봤다.
"이 도시는 서두르지 않아요."
세레나가 말했다.
"당신이 어떤 이야기였는지, 우리는 몰라도 괜찮습니다. 알아야만 자리를 드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소예는 그 말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애써 국물을 한 숟갈 더 떴다.
"……고맙습니다."
"천천히 결정하세요. 떠날지, 남을지."
세레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라면사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밤은 조용하겠네요."
"아직 모른다."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죠."
"항상 맞으니까."
세레나는 코트를 여미며 가게 문 쪽으로 향했다. 문턱에서 잠시 멈춰, 소예를 한 번 더 돌아봤다.
"내일도 이 가게는 여기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나갔다.
다시 문이 닫히고, 가게 안에는 냄비 끓는 소리만 남았다.
소예는 남은 라면을 마저 먹었다. 국물까지 다 마신 뒤, 그녀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저기."
그녀가 라면사장을 불렀다.
"응."
"내일도 와도 되나요?"
"오고 싶으면."
"안 오면요?"
"안 오면 안 오는 거다."
소예는 그 무심함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를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편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라면사장은 이미 다음 손님을 위해 새 물을 올리고 있었다. 비아는 카운터 위에서 문고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녀를 배웅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소예는 작게 웃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가게 안, 라면사장은 그녀가 나간 문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이야기 속에서, 몇 번째 장면에 등장했다가 사라졌는지. 누가 그녀를 잊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그는 보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오랫동안 지켜온 유일한 규칙이었다. 볼 수 있다는 것과, 봐도 된다는 것은 다르다. 소예가 스스로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그는 그저 물을 끓이고 기다릴 뿐이었다.
그건 볼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몇 년째 같은 창고를 드나들며 우는 이유를, 그는 알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하지만 알아도 되는 것과 아는 것은 달랐다. 볼도가 스스로 문 앞에 앉아 말할 날이 온다면, 그때 국물을 내어주면 될 일이었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그를 올려다봤다.
"오늘도 안 봤다……이다?"
"안 봤다."
"궁금하지 않냐."
"궁금한 거랑 봐도 되는 건 다르다."
비아는 그 말을 가만히 곱씹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거다……이다."
"착한 게 아니라 그냥 규칙이다."
"둘 소예 것 같다……이다."
라면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냄비 속을 들여다보았다.
비아는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며 그를 잠깐 더 바라보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딴 데로 관심을 돌렸다.
"나 배고프다……이다."
"방금 밥 먹었잖아."
"그거는 아까다. 지금은 또 배고프다……이다."
라면사장은 못 이기는 척 어묵 하나를 건넸다. 비아는 그것을 냉큼 받아 물고는 다시 카운터 위에서 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물은 다시 잔잔해져 있었다. 아직 아무도 넣지 않은 면이 카운터 아래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다음 손님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물을 올렸다.
노바 니발리스의 밤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깊어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 이름 하나가 다시 불렸다.
그것으로 충분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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