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22화. 눈사람 조각가의 고민

광장 한쪽에 눈사람 조각가 두반 카로의 작품들이 늘어서 있었다. 단순한 눈덩이 두 개짜리 눈사람이 아니라, 섬세하게 깎아낸 표정과 자세를 지닌 조각품에 가까운 작품들이었다.

문제는 그 작품들이 매일 아침이면 조금씩 달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또야."

두반 카로가 아침 일찍 나와 작품을 살피다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분명 완벽하게 마무리했던 눈사람의 팔이, 오늘은 어색하게 굽어 있었다.

배달을 나온 수연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이것 좀 봐라. 어제 분명 이렇게 안 만들었는데."

두반 카로는 손짓으로 눈사람의 팔을 가리켰다. 원래는 우아하게 뻗어 있던 팔이, 지금은 어딘가 엉성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누가 장난친 거 아니에요?"

"장난이라기엔 매일 밤 똑같은 패턴이야. 완성도가 높은 부분만 골라서 조금씩 흐트러뜨려놨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섬세한 부분, 잘 다듬은 부분일수록 더 많이 바뀌어 있어. 대충 만든 부분은 안 건드리고."

수연은 그 설명에 문득 짚이는 게 있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두반 카로는 광장 벤치에 앉아 팔짱을 낀 채 한참을 고민했다.

"혹시 도시 경계 너머에서 뭔가 넘어온 거 아닐까?"

"그런 거면 진작 소문났겠죠."

"그럼 대체 누구야. 이렇게 정교하게, 매일 밤마다."

"CCTV라도 달아보시는 건요?"

"이 도시엔 그런 거 없다."

"그럼 덫이라도……."

"눈사람한테 덫을 놓으라고?"

수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하네요. 누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흐트러뜨리는지."

두반 카로는 그날 밤, 결국 몰래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수연도 호기심에 그 옆에 함께 숨었다.

자정이 넘어서자, 작은 그림자 하나가 광장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비아였다.

비아는 눈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진 부분들을 골라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뾰족했던 코끝을 살짝 뭉그러뜨리고, 매끈했던 팔선을 조금 구부렸다.

"……비아였어?"

수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두반 카로는 그 광경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하는 거냐!"

비아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들켰다……이다."

"내가 며칠 밤을 새워서 만든 걸 왜 매번 망치는 거야!"

"안 망쳤다……이다! 완성됐으니까 되돌려놨다……이다!"

"그게 망친 거지!"

"아니다……이다!"

두 존재의 언쟁이 광장에 울려 퍼졌다. 수연은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켜보기만 했다.


"완성되면 뭐가 문제야?"

두반 카로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완성되면 심심하다……이다."

"심심하다니, 그게 이유야?"

"완성된 건 더 안 봐도 되잖아……이다. 근데 미완성이면 계속 궁금하다……이다. 다음엔 어떻게 될까, 하고."

두반 카로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내 작품이 완성되면 더 안 볼 거란 소리야?"

"그런 뜻 아니다……이다. 그냥…… 완성된 건 이야기가 끝난 거 같다……이다. 근데 나는 이 눈사람들 이야기가 계속됐으면 좋겠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두반 아저씨, 비아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 같아요."

"뭔데?"

"비아는 아저씨 작품을 진짜 좋아하는 거예요. 근데 완성되고 나면 더는 변화가 없으니까, 그게 아쉬운 거죠. 그래서 계속 조금씩 흔들어놓는 거예요. 이야기가 안 끝나게."

두반 카로는 그 설명에 비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근데 왜 하필 내 작품이야? 광장에 다른 사람들 작품도 많잖아."

"아저씨 거는 진짜 살아있는 것 같다……이다."

"살아있는 것 같다고?"

"응……이다. 다른 사람들 눈사람은 그냥 눈덩이다……이다. 근데 아저씨 건 표정이 있다……이다. 팔 각도도 진짜 뭔가 말하는 것 같다……이다."

두반 카로는 그 말에 순간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오랫동안 아무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작품을 봐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있는 걸, 가만히 멈춰있게 두기가 아까웠다……이다."

"……진짜 그런 거냐?"

비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작게 끄덕였다.

"좋아해서 그런 거다……이다. 미워서 그런 거 아니다……이다."


두반 카로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자신이 만든 눈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근데 예술가 입장에선…… 완성이라는 게 중요해. 어디서 손을 놓느냐가 실력이기도 하고."

"그럼 완성 안 하면 안 돼요?"

수연이 물었다.

"완성 안 하면 그냥 미완성품이지, 작품이 아니야."

"근데 비아 입장에선 완성이 곧 끝이라는 게 아쉬운 거잖아요."

두반 카로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떻게요?"

"완성은 완성대로 한다. 근데 그 옆에 새로운 눈사람 자리를 하나 비워두는 거지. 미완성인 채로."

"그게 무슨 의미예요?"

"완성된 건 완성된 대로 두고, 미완성인 건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게 두는 거야. 비아가 그 미완성 쪽만 계속 만지면 되고."

비아가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되냐……이다?"

"대신 완성된 건 건드리지 마라. 그건 내 몫이니까."

비아는 그 조건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다……이다!"


다음 날부터, 광장에는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한쪽에는 두반 카로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눈사람들이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매일 조금씩 형태가 바뀌는 미완성 눈사람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소예도 소식을 듣고 광장에 구경을 나왔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이게 그 소문의 눈사람이에요?"

"그래."

두반 카로가 뿌듯하게 답했다.

"근데 이렇게 매일 바뀌면 안 불안하세요? 애써 만든 게 계속 흐트러지는 거잖아요."

"처음엔 불안했지. 근데 이제 보니까, 이건 흐트러지는 게 아니라 계속 다르게 살아있는 거더라고."

"오, 그거 되게 멋진 관점인데요. 저도 배워야겠어요."

"이게 다 저 조그만 게 가르쳐준 거다."

두반 카로가 비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아는 그 말에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폈다.

"내가 가르쳐줬다……이다!"

"가르쳐준 게 아니라 사고 친 거였잖아."

수연이 옆에서 놀리듯 끼어들었다.

"사고가 아니라 예술적 개입이었다……이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세레나가 알려줬다……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 대화에 웃음을 터뜨렸다. 며칠 전만 해도 소동이었던 일이, 이제는 광장의 훈훈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미완성 눈사람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다.

"오늘은 팔이 좀 짧아졌네."

"어제는 얼굴이 더 웃고 있었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바뀔까?"

그 눈사람은 어느새 광장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어 있었다. 두반 카로도 처음엔 떨떠름해했지만, 점차 그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뭘 바꿨나 보자."

그가 아침마다 가장 먼저 살피는 것도 이제는 그 미완성 눈사람이었다.


수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라면가게로 돌아왔다.

"오늘 재밌는 일 있었어."

그녀가 라면사장에게 말했다.

"뭔데."

"비아가 두반 아저씨 눈사람 계속 흐트러뜨려놓은 거, 알고 보니 좋아해서 그런 거였어. 완성되면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아서 싫었대."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거 이해가 간다."

"진짜?"

"완성이라는 건 무서운 거다."

"왜?"

"완성되면 더 손댈 데가 없다는 뜻이니까. 손댈 데가 없다는 건, 더 나아질 여지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완성해야 할 때도 있잖아."

"그렇지. 근데 완성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나쁜 게 아니다. 그 마음이 있어야 계속 다듬고, 계속 고민하게 되니까."

수연은 그 말에 문득 라면사장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늘 뭔가를 미루고, 확답을 피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것도 완성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비슷한 것일지 몰랐다.

"사장님도 뭔가 완성 안 하고 미루는 거 있어?"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순간 손을 멈췄다.

"……있다."

"뭔데?"

"그건 아직 말할 수 없다."

또 그 대답이었다. 수연은 이제 그 말이 나올 때마다 오히려 궁금증이 더 커졌지만, 더 캐묻지 않고 그냥 웃어넘겼다.

"사장님도 그래?"

"이 가게도 완성이란 게 없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문을 열지만, 매일 다른 손님이 오고, 다른 이야기가 생긴다. 완성되는 순간 이 가게는 그냥 건물이 된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 도시 자체가, 두반 카로의 그 미완성 눈사람과 닮아 있는지도 몰랐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는 곳.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그 대화를 듣고 방긋 웃었다.

"오늘은 광장 눈사람 팔을 조금 더 길게 만들었다……이다!"

"내일은 또 바뀌겠네."

"당연하다……이다! 그래야 재밌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모습에 옅게 웃으며 국자를 다시 들었다. 완성되지 않은 채로 계속되는 것들이, 어쩌면 가장 오래 사랑받는 법일지도 몰랐다.

며칠 뒤, 두반 카로가 직접 라면가게를 찾아왔다. 평소 좀처럼 작업실을 벗어나지 않는 그가 웬일인가 싶어 수연이 놀라 물었다.

"아저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밥 먹으러 왔지. 그리고……."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비아한테 고맙다고 하려고."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한테……이다?"

"그래. 네 덕분에 요즘 작업이 훨씬 재밌어졌다. 예전엔 완성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이제는 완성해도 그다음이 계속 궁금해."

"진짜냐……이다?"

"그래. 예전엔 완성해서 사람들이 감탄하면 그걸로 만족했는데, 이제는 그다음이 궁금해서 자꾸 다음 작품을 구상하게 돼."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미완성 눈사람만 건드려라. 알았지?"

비아는 그 말에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지킨다……이다! 완성된 건 안 건드린다……이다!"

두반 카로는 그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국물이나 한 그릇 줘봐라. 오늘은 내가 쏘는 거니까 다들 편하게 먹어."

가게 안 손님들이 그 말에 반색하며 환호했다. 수연도 그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식사를 마친 두반 카로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문득 라면사장을 돌아보았다.

"근데 사장님, 이 가게는 완성이 뭐라고 생각해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모른다.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

"완성이 없는 것도 나쁘지 않죠. 저도 요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럴지도 모른다. 완성 안 된 채로도 계속 문을 여는 게, 어쩌면 이 가게가 하는 유일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두반 카로는 그 말을 끝으로 옅게 웃으며 문을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라면사장은, 문득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낡은 카운터, 손때 묻은 그릇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손님들의 얼굴. 이 가게 역시, 어쩌면 완성이라는 단어와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곳일지도 몰랐다.

수연은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광장의 그 미완성 눈사람을 떠올렸다. 내일 아침이면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지, 그녀조차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이 도시에 와서야 처음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앞으로 그녀가 이 도시에서 맞이할 수많은 미완성의 순간들 앞에서도 조용히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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