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91화. 수연과 라면사장
소므니움 아크가 완전히 마무리된 어느 저녁, 가게에는 오랜만에 손님이 뜸한 시간이 찾아왔다. 수연은 마감 준비를 하다 말고, 문득 그날 밤의 일을 다시 꺼냈다.
"사장님, 그때 텅 빈 도시였던 그 밤. 저놈을 그냥 지워버리고 싶으셨죠."
라면사장의 손이 순간 멈췄다.
"……어떻게 알았나."
"비아 씨가 손 잡아주는 거, 봤어요. 그때 사장님 표정, 처음 보는 표정이었거든요."
"그래. 지워버리고 싶었다."
"근데 참으셨네요. 왜 참으셨어요? 비아 씨 때문에요?"
"비아가 잡아준 게 계기였다. 근데 참을 수 있었던 건, 네가 봤으니까."
수연은 그 대답에 순간 말을 잃었다.
"……제가요?"
"그래. 네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참았다. 너는, 나한테 브레이크 같은 존재다."
"브레이크요?"
"내가 선을 넘으려 할 때, 너를 생각하면 멈추게 된다."
"근데 사장님도, 저한테 브레이크 같은 존재예요. 저 원래 성격대로였으면,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그냥 부숴버리고 봤을 거예요. 근데 여기 와서는, 사장님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참게 되더라고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럼 우리, 서로한테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셈이군."
"근데 사장님, 앞으로도 저 때문에 참으셔야 하는 순간, 계속 올까요?"
"올 거다. 아마 점점 더 자주. 네가 나한테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으니까."
수연은 그 대답에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사, 사장님도 참 이럴 땐 갑자기 직설적이시네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장님이 저한테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어요."
그녀의 그 고백에, 라면사장의 귓불이 옅게 붉어졌다.
"근데 사장님, 하나만 약속해주세요. 다음에 또 그런 순간 오면, 저한테 먼저 말해주세요. 참기 힘드시면요."
"……약속하마."
"저도 약속할게요. 사장님이 흔들리시면, 어떻게든 잡아드릴게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짧은 약속을 주고받았다. 그것은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이들이 나눌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도 소박한 다짐이었다.
그날 밤, 마감을 마친 두 사람은 가게 뒷문 앞에 나란히 앉아 오랫동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저 오늘 되게 좋아요."
"나도."
라면사장은 그렇게 짧게 답하며, 드물게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수연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옅게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그 조용한 온기가, 오늘 밤 노바 니발리스의 가장 따뜻한 풍경이었다.
며칠 뒤, 가게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얼굴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헤라, 소예, 마왕, 부관, 미다, 이든 홀트까지, 상담소를 거쳐 간 사람들이 자연스레 단골이 되어 있었다.
"요즘 가게가 부쩍 북적이네요."
세레나가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다 저놈 덕분이다."
그 무렵, 심야 라디오 사연 작가 뮤나 페브가, 이번 아크에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라디오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오늘 밤 사연은, 완주하지 못한 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방송은 곧 도시의 새로운 밤 문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저녁이면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익명으로 나누며 공감했다.
상담소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심각한 위기 상담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고민이나 즐거운 근황을 나누는 자리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갔다.
"녹사 씨, 이런 것도 상담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냥 자랑하고 싶어서 왔는데."
"괜찮다. 자랑도 나눔이다."
그날 저녁, 가게에 모인 단골들은 오랜만에 다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눴다.
"이렇게 다 모이니까 진짜 대가족 같네요."
라면사장은 그 왁자지껄한 풍경을 조용히 지켜보며, 국물을 한 그릇씩 더 나눠주었다.
"사장님, 오늘 손 좀 아프시겠어요."
"이 정도는 괜찮다. 오히려 좋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가게를 자기 자리라고 여기는 거."
어느 날, 비아가 가게 카운터 앞에 앉아 라면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소므니움 같은 문이랑, 나는 뭐가 다르냐……이다."
"둘 다 문이라는 건 맞다. 근데 여는 방식이 다르다. 너는 열고 기다린다. 걔는 열고 당긴다."
"나도 가끔 끌어당기고 싶을 때 있다……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근데 안 그러지 않나."
"안 그런다……이다. 참는다……이다."
"근데 기다리는 거, 가끔 힘들다……이다. 누가 안 들어올 때. 문을 열어놨는데, 아무도 안 오는 날……이다. 그럴 때 좀 외롭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고백에 잠시 침묵했다.
"말해도 된다. 힘들다는 걸 말하는 게, 약한 게 아니다."
비아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세레나가 배운 거, 나도 배웠다……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거……이다. 녹사가 알려준 거다……이다."
"근데 사장님도, 나랑 비슷하지 않나……이다. 사장님도 열고 기다리는 쪽이다……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오게 하고, 스스로 이겨내게 하고……이다."
라면사장은 그 통찰에 옅게 웃었다.
"맞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같은 종류다."
"나는 계속 기다리는 쪽 할 거다……이다. 그게 나다……이다."
도시 외곽 높은 종탑에는, 눈사태 경보를 담당하는 종지기 브란트 오슬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특별한 일이 없어도 종을 꼼꼼히 닦았다.
"위험 없는 날에도 종은 닦아야 해요. 그래야 진짜 위험한 날, 제대로 울리니까요."
그 대답을 듣게 된 녹사가, 어느 날 종탑을 직접 찾아갔다.
"자네 얘기, 들었다. 아무 일 없는 날에도 종을 닦는다고. 나도 비슷하다. 매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별한 위기가 없는 날에도. 그래야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제대로 알아챌 수 있으니까."
"경고하는 자들은, 원래 이런 식으로 사는군요."
"근데 오슬 씨, 힘들지 않으세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매일 하는 거."
"힘들죠. 근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일은 계속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근데 저는, 제가 고맙다는 말 듣는 날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왜인가."
"제가 고맙다는 말을 듣는 날은, 결국 눈사태가 났다는 뜻이잖아요."
녹사는 그 관점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것은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도시 외곽 호수는 겨울 내내 두껍게 얼어 있었다. 그 위에서 시엔 바르는 매일같이 맨발로 스케이트를 탔다.
"조명이 좀 더 있으면 좋겠는데."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어느 날, 그 말을 이리스가 우연히 들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며칠간의 준비 끝에, 두 사람은 첫 시험 공연을 열기로 했다. 밤이 되자 호수 위로 별빛처럼 흩어진 조명들이 켜졌고, 그 아래에서 시엔이 얼음을 지치기 시작했다.
시엔의 맨발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그 위로 쏟아지는 은은한 조명이 마치 별빛이 물 위에 내려앉은 것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오랫동안 박수를 멈추지 못했다.
"감독님도 나와서 인사하세요!"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이리스는 그 부름에 잠시 망설이다가, 조명 조작대 옆에서 짧게 손을 흔들었다. 관객들의 박수가 그녀에게도 향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무대 중앙은 아니었지만, 무대에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서 받는 이 박수가, 그녀에게는 새로운 종류의 벅참을 안겨주었다.
그날 밤, 이리스와 시엔은 이 성공을 라면사장과 세레나에게 신나게 전했다.
"드론이 완전 얼어붙을 뻔했지만, 나중엔 진짜 예뻤어요!"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옅게 웃었다.
"실패도 좋은 과정이다."
가게 안, 그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 도시 사람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군.'
수연이 그 옆에 다가와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창밖에는 오늘도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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