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84화. 절반의 도시
무대의 조명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소므니움은 다시 그 풍경을 다잡으며 물었다.
"여전히 이 순간을 원하시죠. 그건 부정 못 하실 텐데요."
"부정 안 해요. 원해요."
이리스는 그 마음을 이번엔 숨기지 않았다.
"근데 이 꿈을 통째로 가지려면, 그 안에 진짜 사람들이 없어도 괜찮아야 해요. 저는 그게 안 돼요."
"그럼 이 순간 자체를 포기하시겠다는 겁니까?"
"포기가 아니에요. 반품이에요."
이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소므니움은 처음으로 표정에 옅은 균열을 보였다.
"반품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물건을 사고 나서, 원하던 게 아니면 돌려주잖아요. 저는 이 무대, 이 환호, 다 원해요. 근데 이 안에 수연이도 없고 사장님도 없는 버전이라면, 그건 제가 주문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반품할게요."
이리스는 그렇게 답하며, 텅 빈 관객석 너머 부스가 있어야 할 자리를 가리켰다.
"제가 정말 원하는 건, 이 환호를 저 두 사람이 지켜봐 주는 거예요. 그게 빠진 무대는, 아무리 완벽해도 반쪽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사유 있는 반품이에요."
소므니움은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사유 있는 반품이라,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 가장 정확한 표현이군요."
"근데 이게 이상한 게, 저는 그 두 사람이 없어도 무대에 설 수는 있어요. 그건 알아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제가 진짜 원하는 완성된 순간에는 그 두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이리스는 그렇게 정리하며 스스로도 놀랐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갈망을 늘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무조건 억눌러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그 갈망의 정확한 모양을 발견했다.
"당신의 미련은, 무대가 아니었군요."
소므니움이 나직이 말했다.
"무대이기도 해요. 근데 그것만은 아니에요. 저는 제가 이룬 걸,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봐주길 원해요.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안 돼요."
"흥미롭습니다. 저는 늘 미련을 하나의 결과로만 봤는데, 당신은 그걸 두 개의 조건으로 나누는군요."
"저는 원래 연출하는 사람이었어요. 여러 요소를 조합해서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거, 제가 잘하는 일이에요."
이리스는 그렇게 답하며 옅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무대의 풍경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만 돌려드리겠습니다. 반품 사유, 정확히 접수했습니다."
소므니움은 그렇게 말하며, 처음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엔, 그 두 조건이 다 채워진 순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당신 도움 없이."
이리스는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반품이라니. 나도 참 이상한 말을 했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옅게 웃었다. 그러나 그 표현이야말로, 지금 그녀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상담소를 찾아 녹사에게 지난밤의 일을 전했다.
"반품했어요. 원하던 무대이긴 한데, 사유가 있어서 돌려줬어요. 수연이랑 사장님이 없는 버전이라서요."
녹사는 그 설명에 잠시 침묵하다가, 드물게 소리 내어 웃었다.
"좋은 사유다."
그녀는 그렇게 짧게 답하며 수첩에 적었다.
'이리스 사례 — 미련을 두 조건으로 분해. 하나가 없으면 전체를 반품. 저놈이 가장 당황한 사례.'
그 소식은 곧 라면사장에게도 전해졌다.
"반품, 이라……."
그가 그 말을 곱씹으며 옅게 웃었다.
"재밌다기보다는, 정확하다. 저 아이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뭘 원하지 않는지 정확히 구분할 줄 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수연이 물었다.
"이미 하고 있다. 며칠 전, 저놈의 손을 놓았을 때."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스의 방식과 자신의 방식이 서로 다른 결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날 오후, 이리스는 극장 거리로 나가 다시 일상을 시작했다. 다음 공연을 위한 준비, 새로운 배우 섭외, 소품 점검. 그 모든 일들이 어제와 다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제 뚜렷한 그림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때, 그 자리에는 반드시 수연과 라면사장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신입,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네."
수연이 지나가다 말을 건넸다.
"응, 어제 반품 하나 했거든."
"반품? 뭘?"
"나중에 얘기해줄게. 근데 확실한 건, 다음엔 진짜로 무대에 설 것 같아. 그때는 꼭 봐줘."
수연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는 몰랐지만, 이리스의 눈빛에서 뭔가 달라진 확신을 읽어냈다.
"당연히 보러 가지. 사장님도 데리고 갈게."
"약속이야."
가게 안, 라면사장은 그날 저녁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이 도시 사람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저놈을 이겨내고 있군.'
홀트는 그리움을 인정하고 놓아주었고, 헤라는 완주 없이도 만족을 찾았고, 미다는 미련과 현재를 나란히 두었고, 이리스는 자신의 갈망을 정확히 분해해 반품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아직 이 도시의 가장 큰 시험이 남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세레나, 그리고 언젠가는 자기 자신에게도 닿을 그 시험이.
그 시험은 며칠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이리스의 반품 이후 며칠간, 도시는 잠잠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폭풍 전의 정적이었다.
그날 새벽, 세레나는 평소보다 일찍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다가 심상치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거리에 나와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집들이 절반이 넘었다.
"이상하다……."
그녀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거리로 나섰다.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는 집들이 곳곳에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깊이 잠든 채 미동조차 없었다.
"세레나 씨!"
가게 쪽에서 수연이 다급히 달려왔다.
"큰일 났어요, 배달 나갔던 골목마다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어요!"
두 사람은 서둘러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라면사장과 녹사, 비아가 모여 있었다.
"얼마나 되나."
"대략 절반이다."
녹사가 짧게 답했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굳어 있었다.
"절반이라니, 도시 인구 절반이 전부 잠들었다는 거예요?"
"그래. 한꺼번에 이 정도 규모로 손을 뻗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다."
라면사장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뚜렷한 긴장이 묻어났다.
"저놈이 작정했군."
"어떻게 해요? 한 명씩 깨우기엔 너무 많잖아요."
이리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셋으로 나눈다. 나와 녹사, 비아가 각자 구역을 맡는다. 나머지는 깨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잠든 이들 곁을 지키게 한다. 혼자 두지 마라."
라면사장이 빠르게 지시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 따라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게 앞 거리, 라면사장은 첫 번째 잠든 이웃의 손을 잡았다.
"이름을 불러라."
그가 옆에 있던 수연에게 말했다.
"저, 정말 도움이 될까요?"
"체온과 이름, 둘 다 있으면 더 빠르다."
수연은 그 말에 곧장 이웃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이웃은 서서히 눈을 떴다.
다른 골목에서는 녹사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은 무뚝뚝했지만 정확했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고, 짧게 확인시켰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비아가 맡은 구역에서는 좀 더 거친 방식이 동원되었다.
"일어나라……이다!"
그녀가 큰 소리로 외치며 잠든 이들의 어깨를 흔들었다. 무뚝뚝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힘만큼은 확실했다. 몇몇은 그 진동에 놀라 곧바로 눈을 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쉽게 깨어나지는 않았다. 시장 골목의 한 노부부는, 오랫동안 함께 늙어가는 꿈에 깊이 잠겨 있었다. 라면사장이 그들의 손을 잡고 이름을 불러도, 쉽게 반응이 없었다.
"이 정도로 깊으면, 시간이 더 걸린다."
세레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초조해졌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사람들을 계속 모아라. 깨어난 사람들이 다시 잠들지 않도록, 서로 얘기하게 하고 곁에 있게 해라."
세레나는 그 지시에 따라 광장으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깨어난 이들은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저도 진짜 무서웠어요. 계속 그 꿈에 있고 싶었거든요."
"저도요. 근데 누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어요."
사람들의 그런 대화가 광장 곳곳에서 오갔다. 세레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상담소가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도시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이리스는 극장 거리 쪽을 맡아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코모와 솔도 다행히 무사히 깨어났지만, 몇몇은 여전히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일어나요."
그녀가 낯선 이웃의 손을 잡고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 이웃이 서서히 눈을 떴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도시 전체가 다시 깨어났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노부부도, 라면사장이 두 시간 가까이 붙잡고 있던 끝에 눈을 떴다.
"고생하셨습니다."
노부부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괜찮다. 이제 됐다."
가게에 다시 모인 사람들은, 오늘의 사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었어요."
"저놈이 작정하고 힘을 썼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것 같다."
녹사가 그 분석에 덧붙였다.
"근데 결과적으로 다 깨어났다. 저놈의 힘이 아무리 커도, 이 도시가 무너지진 않았다. 사람들이 서로를 지켰으니까. 혼자 자지 말라고 미리 알려준 거, 오늘 제대로 통했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표정이 완전히 밝지는 않았다.
"근데 이 정도 규모로 힘을 썼다는 건, 저놈이 정말로 마지막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 카드요?"
"가장 깊은 미련. 아직 안 건드린 사람이 있다."
그 말에, 가게 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세레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그 시선을 느끼며 옅게 웃었다.
"저는 이제 괜찮아요. 녹사 씨 덕분에요."
"완전히 정리됐다고 확신하나."
세레나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확신에 찬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도시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지만, 가게 안 사람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무거운 긴장이 남아 있었다. 절반의 도시를 한꺼번에 흔든 이 사건은, 소므니움이 결코 물러날 존재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증명했다.
라면사장은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음은, 정말로 큰 것이 온다.'
그리고 그 이후 며칠, 그는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다. 국물을 젓는 손길은 여전했지만, 그 시선이 이따금 먼 곳을 향하는 일이 잦아졌다.
"사장님, 요즘 좀 이상하세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가."
"네, 뭔가 딴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라면사장은 그 지적에 옅게 웃으며 답을 피했다.
그날 밤, 가게 마감 후 홀로 남은 그의 앞에 소므니움이 나타났다. 꿈이 아니었다. 그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소므니움이 그 앞에 직접, 현실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렇게 직접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내 가게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라."
라면사장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걱정 마세요, 무언가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당신에게도, 정말 아무 미련이 없습니까?"
소므니움의 그 질문에, 라면사장은 잠시 침묵했다.
"없다고 했을 텐데."
"그런데 말이죠, 최근 며칠 당신을 지켜보니 조금 다르더군요. 당신의 시선이 자꾸 도시 저 끝, 눈 덮인 벌판 쪽을 향하던데요."
라면사장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것까지 지켜봤나."
"저는 사람들의 미련을 알아보는 데 능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당신 것만은, 오랫동안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서야 조금 알 것 같군요."
"거기서 그만해라."
"보여드릴까요? 아니, 보여드릴 필요도 없겠군요.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시니까. 그저 확인하지 않을 뿐이죠. 당신도, 결국 무언가를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라면사장은 그 지적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침묵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답이었다.
"괜찮습니다. 캐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결국, 이 도시 사람들과 같은 존재라는 걸."
"나는 다르다."
"다르지 않습니다. 미련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신도 시간 속에 발 하나를 걸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라면사장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창밖 저 먼 곳 — 끝눈 플랫폼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내 미련은,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당신 것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니까요. 저는 이미 존재했거나 존재할 수 있었던 가능성만 보여드릴 수 있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제 힘 밖입니다."
그 대답에, 라면사장은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그래서 네가 나를 흔들 수 없는 거다."
"맞습니다. 근데 흔들 수 없다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다른 문제죠. 오늘, 당신 눈빛에서 처음으로 흔들림을 봤습니다."
라면사장은 그 지적을 부정하지 않았다.
"네 말이 맞다. 나도 기다리는 게 있다. 근데 그건 조급하다고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포기한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올 때가 되면 온다."
"그 기다림, 힘들지 않으십니까?"
"힘들다. 근데 그 힘듦이, 내가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므니움은 그 대답에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당신께는, 제가 드릴 게 정말 없군요."
"그래서 실망했나."
"아니요. 오히려 흥미로웠습니다. 미련이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를 만난 건, 아주 오랜만이었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라면사장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사장님, 방금 여기……."
"봤나."
"멀리서, 실루엣만요. 소므니움이었죠."
"그래."
"괜찮으세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답을 고르다가, 드물게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조금, 흔들렸다."
수연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라면사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어떤 게 흔들리셨는데요?"
"말할 수 없다. 아직은."
"……괜찮아요. 안 캐물을게요."
수연은 그렇게 답하며, 대신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특별한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그녀는 이 가게에서 배웠다.
"근데 사장님, 아까 그놈이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사장님이 그것 때문에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아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사장님은 늘 그러셨잖아요. 저희한테는 스스로 이겨내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훨씬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오신 분 같아서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제법 정확한 관찰이군."
"저도 이제 이 가게에서 좀 배웠거든요."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앉아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은 오늘도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사장님, 그 기다리는 거, 언젠가는 저한테도 말씀해주실 거예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답했다.
"때가 되면."
그 짧은 대답 속에, 수연은 처음으로 뚜렷한 확신 하나를 느꼈다 — 언젠가는, 정말로 그날이 올 거라는.
가게 안, 라면사장은 그날 밤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소므니움이 건드린 그 오래된 기다림이, 오랜만에 선명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아직인가.'
그는 그렇게 되뇌며 창밖 저 먼 곳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여전히,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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