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85화. 녹사의 정면전
절반의 도시 사건 이후, 소므니움은 더 이상 밤에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낮, 광장 한복판에 그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여러분."
그의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께 선택지를 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근데 이 도시엔, 여러분이 그 선택지를 보지도 못하게 막는 존재가 있더군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굴 말하는 거야?"
"설마……"
소므니움의 시선이 상담소 방향으로 향했다. 마침 그곳에서 나오던 녹사가, 그 시선을 마주 받으며 광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나를 말하는 거군."
"맞습니다. 여러분, 이 존재가 여러분께 뭐라고 하던가요? 미련을 정리하라, 확신을 가져라.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결국은 여러분이 저를 만나지 못하게 미리 겁을 주는 것 아닙니까?"
녹사는 그 말에 짧게 답했다.
"겁을 준 적 없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사실이라뇨. 당신은 제가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정작 제가 여러분께 상처를 입힌 적은 없습니다. 홀트 씨도, 결국 무사히 돌아오셨잖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커졌다.
"맞아, 그러고 보니 딱히 다친 사람은 없었잖아."
"근데 홀트 씨는 며칠이나 못 깨어났었는데."
"그건 저분들이 과장한 거 아니야?"
소므니움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보세요. 저는 여러분께 그리운 것, 원하는 것을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그게 왜 나쁜 겁니까? 이 존재는 여러분께 늘 경고만 했습니다. 두려움을 심어서, 여러분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 겁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경고다."
녹사가 다시 답했다.
"경고와 위협은 다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위험을 말했을 뿐이다."
"위험이라고 하셨지만, 정작 이 도시에서 진짜로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경고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안의 진짜 그리움조차 마주하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했죠. 그게 더 건강한 겁니까?"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녹사는 그 흔들림을 눈치챘다. 그러나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움을 마주하는 것과, 그리움에 잠식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마주하라고 했지, 억누르라고 한 적 없다."
"그럼 왜 상담소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저를 만나기 전에 미리 마음을 다잡게 하신 겁니까? 그건 결국, 제가 오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을 먼저 손보는 것 아닙니까?"
"손보는 게 아니다. 준비시키는 거다."
"그 차이가 뭡니까?"
"손보는 건 남의 마음을 억지로 바꾸는 거다. 준비시키는 건, 스스로 그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을 주는 거다. 나는 아무도 대신 답을 내려준 적 없다. 각자 자기 답을 찾게 했을 뿐이다."
소므니움은 그 반박에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여러분께 직접 여쭤보죠. 저를 만나서, 진짜로 후회하신 분 계십니까?"
광장은 조용해졌다. 아무도 선뜻 손을 들지 못했다.
"보십시오. 아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들, 자기 마음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순간, 헤라가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는 후회 안 해요. 근데 그건 당신 덕분이 아니라, 녹사 씨가 미리 알려준 규칙 덕분에 제가 안 넘어간 거예요."
이어서 소예도, 마왕도, 부관도, 미다도 차례로 앞으로 나섰다.
"저도요. 당신이 보여준 건 달콤했지만, 사장님이랑 녹사 씨가 미리 알려준 게 없었으면 저는 그 안에 계속 머물렀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다! 그 규칙 몰랐으면, 나도 그 힘에 취해서 안 나왔을 거다!"
한 명씩, 한 명씩,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소므니움의 표정이 처음으로 눈에 띄게 흔들렸다.
"……여러분은, 제가 보여준 것보다 저 존재가 미리 알려준 규칙을 더 신뢰하시는군요."
"신뢰가 아니다."
녹사가 정정했다.
"확인이다. 저 사람들은 네가 보여준 것도 겪었고, 내가 알려준 것도 겪었다. 그리고 스스로 비교했다. 어느 쪽이 더 자신을 지켜줬는지."
"그게 바로 제 요점입니다. 결국 저 사람들은 제가 준 경험 덕분에 자기 마음을 알게 된 거잖아요.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 미련들은 평생 확인되지 못한 채 묻혀 있었을 겁니다."
녹사는 그 지적에 잠시 침묵했다.
"그건, 인정한다."
광장이 술렁였다. 소므니움의 표정에 옅은 승리감이 스쳤다.
"근데."
녹사가 말을 이었다.
"확인하게 해준 것과, 그 확인 뒤에 붙잡아두려 한 건 다른 문제다. 너는 미련을 보여준 뒤, 거기 머무르게 만들려 했다. 나는 미련을 마주하게 한 뒤, 지금으로 돌아오게 했다. 방향이 반대다."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제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틀렸다고 안 했다. 다르다고 했다. 근데 이 도시 사람들은, 그 두 방향 중 어느 쪽이 자기 삶을 지켜주는지 이미 스스로 확인했다. 방금 다 들었잖나."
소므니움은 그 정리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는 명확하게 녹사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오늘은, 제가 조금 밀린 것 같군요."
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완전히 진 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이 도시에서 가장 깊은 미련 하나를 아직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그는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사라졌다. 광장에는 무거운 정적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뒤섞여 흘렀다.
헤라가 녹사에게 다가와 말했다.
"녹사 씨, 오늘 대단하셨어요."
"대단한 거 없다.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근데 저놈이 마지막에 한 말, 좀 걸리네요. 가장 깊은 미련이라는 거."
이리스가 걱정스레 말했다.
녹사는 그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레나일 거다. 아니면……."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가게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라면사장이 조용히 서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가게에 모인 사람들은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저놈, 다음엔 정말 세레나 씨를 노릴까요?"
수연이 물었다.
"모른다. 근데 준비는 해야 한다."
녹사가 답했다. 세레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옅게 웃었다.
"저는 이제 괜찮을 거예요. 여러분 덕분에요."
그러나 그 밤, 세레나는 홀로 방에 앉아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
그녀는 그 질문에 곧바로 확신에 찬 답을 내리지 못했다. 도시 전체를 짊어져 온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무언가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가게 안, 라면사장 역시 같은 걱정을 안은 채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광장에서의 정면전 이후, 소므니움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도시 사람들은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지만, 라면사장과 녹사만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조용한 게 더 불안하다."
녹사가 말했다.
"저놈, 아직 못 만난 미련이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소므니움은 다시 수연의 꿈에 나타났다.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꿈속, 수연은 낯선 풍경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 도시도 아니고, 그녀가 늘 피해왔던 예전의 기억도 아니었다. 그것은 형체가 불분명한, 안개 낀 벌판이었다.
"오늘은, 다른 걸 보여드리려 합니다."
소므니움의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
"저번엔 실패했으니까요."
"뭘 보여주려는 건데요."
"당신이 부수고 온 것들. 그 이후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안개가 걷히자, 낯익으면서도 낯선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녀가 등지고 떠나온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파괴된 모습이 아니었다. 멀쩡히 웃고, 걷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수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 부수지 않았다면, 있었을 모습입니다."
"당신은 그날, 세계를 부쉈습니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겠죠. 근데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 사람들이 무사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수연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왔다.
풍경 속 사람들이, 하나둘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얼굴과 이름은 이상하게도 흐릿해서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온전함의 감각만은 선명했다.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은, 아무도 잃지 않은 세계라는 감각.
"이 사람들,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가워하고 있죠. 여기서라면, 당신은 아무것도 부수지 않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수연은 그 세계 속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은 매끈했다. 굳은살도, 흉터도 없었다.
'……이 손, 검을 쥐어본 적이 없어.'
그 감각이, 그 어떤 풍경보다 더 크게 그녀를 흔들었다.
수연은 그 광경 앞에서 오랫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소므니움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 그 어떤 미련보다도 무겁고 깊은 것이었다. 그리움이 아니라, 죄책감의 뿌리를 정확히 건드리는 방식이었다.
'……내가, 부수지 않았다면.'
그녀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매끈한 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근데 이건, 내가 아니야. 내가 안 한 선택으로 만들어진 나잖아.'
"울지 마세요. 여기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을 탓하지 않으니까요."
소므니움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러웠다.
수연은 그 말에 한참을 침묵했다. 흐릿한 얼굴들이 여전히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 진짜로 저를 용서한 게 아니에요."
"……무슨 뜻입니까?"
"이건 그냥,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껍데기잖아요. 진짜 그 사람들이라면, 저한테 화낼 수도 있고, 용서 안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여긴 그런 게 없어요. 다 제가 원하는 대로만 반응하잖아요."
"그게 왜 문제입니까? 당신이 원하는 위안을 드리는 건데요."
"위안이 아니라 거짓말이니까요."
수연의 목소리가 점점 단단해졌다.
"저는 그날, 진짜로 부쉈어요. 그 사실은 안 바뀌어요. 근데 여기서 이 사람들이 웃는다고, 제가 안 부순 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이건, 제가 진짜로 짊어져야 할 걸 회피하는 거예요."
소므니움은 그 대답에 잠시 침묵했다.
"당신은, 이 위안조차 거부하시는 겁니까?"
"거부하는 게 아니에요. 이건 위안이 아니에요. 그냥 예쁘게 포장된 도피예요. 제가 진짜로 필요한 건, 이 사람들이 웃는 가짜 모습이 아니라, 제가 부쉈다는 사실을 안고도 살아갈 방법이에요."
"그 방법을 이미 찾으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못 찾았어요. 근데 여기 머문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지금, 노바 니발리스에서 매일 그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라면사장님 밑에서, 이리스랑 같이, 여기 사람들이랑 같이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안개 속 흐릿한 얼굴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진짜로 미안한 건 맞아요. 근데 그 미안함을, 여기 이 가짜 얼굴들 앞에서 풀고 싶지는 않아요. 진짜 짊어져야 할 무게는, 제가 지금 사는 곳에서 짊어질게요."
"잘 있어."
그녀가 그 온전한 세계를 향해 나직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부순 나로 살게. 그게 내 이야기니까."
그 순간, 안개 속 풍경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흐릿한 얼굴들이 빠르게 흩어지고, 소므니움의 형체마저 순간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의 목소리에서, 처음으로 명백한 동요가 묻어났다.
"당신은, 제가 보여준 것 중 가장 깊은 죄책감 앞에서도, 도피가 아니라 짊어짐을 택하는군요."
"짊어지는 게 익숙해서요. 여기 오기 전부터, 계속 그랬거든요."
수연은 그렇게 답하며 옅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슬픔과 함께, 이상하리만치 단단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소므니움은 그 웃음 앞에서 한참을 침묵했다.
"당신 같은 존재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보통은 죄책감 앞에서 무너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부정하죠. 근데 당신은 그 두 가지 다 아니군요. 죄책감을 인정하면서도, 그걸 회피용 위안으로 바꾸는 걸 거부하다니."
"저 원래 그런 사람이었대요. 근데 여기 와서, 조금 더 확실해진 것 같아요."
수연의 그 대답과 함께, 안개가 완전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방금 흘렸던 눈물 자국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말없이 계단을 내려가, 가게 카운터로 향했다.
콜라 캔과 비빔면 봉지가, 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면을 비비고, 그 위에 콜라를 부었다.
한 젓가락 떠 넣는 순간,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1화 이후, 두 번째였다.
그러나 이번 눈물의 이름은, 그녀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부순 것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부순 나로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진짜로 짊어질게.'
그녀는 그렇게 다시 한번 다짐하며, 오늘 새벽의 무거운 여운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다음 날 아침, 수연은 평소보다 늦게 가게로 내려왔다. 눈이 살짝 부어 있었다.
"수연, 얼굴이……."
라면사장이 먼저 알아챘다.
"어젯밤, 저놈이 왔었어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지난밤 꾼 꿈의 내용을 담담히 전했다. 라면사장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런 방식으로 왔었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사장님, 화나셨어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라면사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네가 그렇게 무거운 걸 혼자 짊어지고 있는 줄, 새삼 다시 느꼈다."
"저 혼자는 아니었어요. 그 순간, 사장님이랑 여기 사람들 생각이 났거든요. 그래서 안 무너진 것 같아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었다. 라면사장은 그 웃음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드물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버텼다."
그 짧은 말과 손의 온기에, 수연은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사, 사장님도 참……."
"왜, 이상한가."
"아니요. 그냥…… 좋아서요."
라면사장은 그 대답에 손을 슬쩍 떼며 헛기침을 했다. 그의 귓불이 옅게 붉어져 있었다. 수연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몰래 웃었다.
그 소식은 곧 녹사와 이리스에게도 전해졌다.
"수연이 진짜 큰 걸 이겨냈네요."
이리스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저놈이 보여준 것 중 가장 무거운 거였을 거다."
녹사가 수첩에 적으며 말했다.
'수연 사례 — 죄책감형 접근. 위안이 아니라 도피임을 정확히 구분. 가장 깊은 층위의 미련도 통과.'
한편, 도시 외곽 눈 덮인 벌판. 소므니움은 홀로 서서 지난밤의 일을 곱씹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동요가 남아 있었다.
'너는 최악의 미래를 스스로 골랐다. 왜?'
그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답했었다.
'내 거니까.'
그 짧은 대답이, 지금까지 그가 만나온 그 누구의 말보다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여자, 대체 어떻게.'
그는 오랜 세월 수많은 존재들의 미련을 다뤄왔다. 그리움에 잠기는 이들, 후회에 무너지는 이들, 죄책감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이들. 그러나 죄책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회피의 구실로 삼지 않는 존재는, 정말로 드물었다.
"저 여자, 뭔가 다르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처음으로 옅은 불안을 느꼈다.
"홀트도, 헤라도, 소예도, 마왕도, 부관도, 미다도, 이리스도, 저 여자까지. 전부, 하나같이."
그는 그렇게 되뇌며 도시 쪽을 바라보았다. 불빛들이 여전히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풍경이, 오늘따라 유독 견고해 보였다.
"이 도시, 정말로 뭔가 이상하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되짚었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는 몇 번의 시도만으로 절반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단 한 명도 완전히 붙잡지 못했다.
'……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그 공통점을 하나씩 헤아렸다. 상담소. 미리 정리된 확신.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존재들 — 라면사장, 녹사, 비아.
"저 셋을 중심으로, 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방벽처럼 짜여 있다."
그는 지금까지의 실패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홀트는 그리움을 인정한 뒤 놓아주었다. 헤라는 완주 없이도 만족을 찾았다. 미다는 미련과 현재를 나란히 두었다. 이리스는 자신의 갈망을 정확히 분해해 반품했다. 그리고 수연은, 가장 깊은 죄책감 앞에서도 도피가 아니라 짊어짐을 택했다.
"제각기 다른 답을 냈으면서도, 결국 전부 나에게 이겼다."
그는 그 사실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보통의 도시라면, 이 정도로 다양한 층위의 미련을 건드리면 최소한 하나쯤은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그 다양함 자체가 서로를 지탱하는 그물처럼 짜여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군."
그의 시선이 도시 중심, 세레나의 사무실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 모두를 품으려 하는 사람."
그는 옅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이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르겠군요."
그날 저녁, 가게에 모인 사람들은 오늘까지의 결과를 정리했다.
"저놈, 지금까지 시도한 사람들 전부한테 밀렸어요."
이리스가 말했다.
"근데 그만큼, 더 신중하게 마지막 카드를 준비할 거다."
녹사가 답했다.
"세레나 씨겠죠."
수연이 말했다.
"아마도. 근데 세레나는 이미 한 번, 자기 미련을 마주한 적이 있다."
녹사가 예전에 세레나와 나눴던 대화, 그리고 비아의 방문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랑은 다른 결로 올 수도 있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세레나를 노린다면.'
그는 세레나가 오랫동안 짊어져 온 무게를 떠올렸다. 도시 전체를 품으려는 그 마음 깊은 곳에, 아직 그녀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미리 알려야겠다."
그가 나직이 말했다.
"저도 같이 갈게요."
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요."
이리스도 따라 일어났다. 녹사 역시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사람은 그렇게 함께, 세레나의 사무실로 향했다. 도시의 마지막 시험이, 이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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