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9화. 라면사장의 외출
그날 아침, 가게 문에 낯선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오늘 하루, 개인 사정으로 휴업합니다.'
수연은 그 종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사장님이 가게를 쉬신다고?"
"이런 적, 처음이지 않아?"
이리스도 그 종이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라면사장은 이미 외투를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어디 가세요?"
수연이 물었다.
"멀리 좀 다녀온다."
"어디로요?"
"끝눈 플랫폼."
그 지명에, 수연과 이리스는 서로 마주 보았다. 도시 외곽 끝자락에 있는, 좀처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었다.
"거긴 왜 가세요?"
"볼일이 있다."
라면사장은 그 이상의 설명 없이 짧게 답했다. 평소보다 유독 말을 아끼는 모습에, 수연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저희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된다."
라면사장의 대답은 단호했다.
"오늘은 혼자 다녀와야 한다."
그 말투에서, 두 사람은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게 좋겠다는 걸 직감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
"저녁까지는 돌아온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수연과 이리스는 그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가게 앞에 서서 지켜보았다.
"저런 사장님, 처음 봐."
수연이 중얼거렸다.
"나도."
"끝눈 플랫폼이 뭐 하는 곳인지 알아?"
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은 있는데, 정확히는 몰라. 도시 제일 끝자락에 있는 정거장 같은 곳이라고만 들었어."
가게를 오가던 손님 하나가 문 앞의 종이를 보고 물었다.
"어? 오늘 쉬는 날이에요?"
"네, 사장님이 갑자기 일이 있으셔서요."
수연이 답했다.
"별일이네, 이 가게 문 닫는 거 처음 보는데."
손님은 그렇게 말하며 아쉬운 얼굴로 발길을 돌렸다.
세레나도 소식을 듣고 잠시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 정말 어디 가신 거예요?"
"끝눈 플랫폼이라고만 하셨어요."
이리스가 답했다.
세레나는 그 지명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원장님, 거기 아세요?"
"조금요. 도시가 세워질 때부터 있던 곳이에요. 딱히 쓰임새는 없는데, 도시 경계선 역할을 하는 곳이랄까요."
"거기 사장님이 왜 가신 걸까요?"
세레나는 그 질문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라요. 근데…… 사장님만의 사정이 있으신 거겠죠.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잠시 가게 안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따라가 볼까?"
수연이 문득 말했다.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셨잖아."
"그냥 궁금해서. 뭔가 평소랑 다르잖아."
이리스는 그 제안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사장님이 혼자 가야 한다고 하셨으면, 그럴 이유가 있는 거야."
"……그렇긴 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기다리는 거야. 저녁까지."
수연은 그 말에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각, 도시 중심가에서는 비아가 우연히 녹사와 마주쳤다.
"오늘 라면사장, 가게 안 열었다……이다."
비아가 대뜸 말을 건넸다.
"저도 들었어요. 어디 가셨대요?"
"끝눈 플랫폼……이다."
녹사는 그 말에 순간 걸음을 멈췄다.
"거긴 왜요?"
"모른다……이다. 근데 라면사장, 가끔 그런다……이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어딘가 다녀온다……이다."
"자주 있는 일이에요?"
"자주는 아니다……이다. 근데 몇 년에 한 번씩은 있었다……이다."
녹사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끝눈 플랫폼이라니.'
그녀는 그 지명에서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듯했지만, 굳이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걱정할 일은 아니겠죠?"
비아가 물었다.
"아닐 거예요. 그분 나름의 방식일 테니까요."
한편, 라면사장은 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는 길을 홀로 걷고 있었다.
눈 덮인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도시의 온기가 점점 멀어지고, 사방은 고요한 흰빛으로 가득 찼다.
그의 발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로 이어졌다. 마치 이 길을 이미 수없이 걸어본 사람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몇 시간을 걸어, 마침내 끝눈 플랫폼에 도착했다.
그곳은 낡은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승강장이었다. 오래전에는 무언가를 위해 쓰였을 법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도시의 가장 끝자락,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향하는 경계선일 뿐이었다.
플랫폼 너머로는, 그 어떤 지형지물도 없는 새하얀 설원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무도, 건물도, 심지어 눈 위에 남은 발자국 하나조차 없는, 완전한 무(無)의 공간이었다.
라면사장은 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그 텅 빈 흰빛 너머,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문득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아무것도 없군."
그 말에는 실망도, 안도도 아닌, 그저 오랜 세월 반복해온 확인 절차 같은 담담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더 그 자리에 서서, 바람에 실려 오는 눈발을 맞으며 침묵을 지켰다.
플랫폼의 낡은 나무 난간에는, 오래전 누군가 새겨놓은 듯한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 흔적 위로 손을 가만히 얹었다.
'……이곳에 처음 섰을 때가, 언제였더라.'
기억은 흐릿했다. 그러나 그 흐릿함 속에서도, 이곳에 설 때마다 느끼는 이 감정만큼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아직인가.'
그는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평소 가게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낯선 무게가 담겨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그의 외투 자락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품 안에서 작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낡고 오래된, 그러나 소중하게 간직되어 온 듯한 물건이었다. 그는 그것을 손에 쥔 채, 다시 한번 그 설원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 물건을 다시 품 안에 넣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정확히 읽어낼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더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윽고 몸을 돌려 다시 도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 그의 발걸음은 올 때보다 조금 더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 그는 도시 외곽의 눈밭을 가로지르며 여러 번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끝눈 플랫폼은 이미 저 멀리 흐릿한 점처럼 작아져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몇 번이고 그곳을 향했다.
'……언젠가는, 저 너머에서 뭔가 달라지는 날이 오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시의 불빛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물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곳으로, 그는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 라면사장은 예정대로 가게에 돌아왔다.
"사장님!"
수연과 이리스가 동시에 그를 반겼다.
"다녀왔다."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정말로?"
수연이 다시 물었다.
"말했잖나. 끝눈 플랫폼."
"거기서 뭐 하셨는데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오래된 걸 확인하고 왔다."
"오래된 거요?"
"그래. 아직 안 끝난 것들."
"안 끝난 게, 사장님한테 안 좋은 거예요?"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나쁜 건 아니다. 그냥…… 아직 결론이 안 난 것뿐이다."
"언제쯤 결론이 나요?"
"모른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장님이 정할 수 없는 것도 있어요?"
수연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당연하다. 이 세상엔, 나조차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수연과 이리스는 그 대답에 뭔가 평소와 다른 무게를 느꼈다. 라면사장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드물었다.
수연과 이리스는 그 모호한 대답에 서로 마주 보았다. 더 캐묻고 싶었지만, 라면사장의 표정에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하고 싶다는 신호를 읽을 수 있었다.
"……알겠어요. 저녁 드셔야죠?"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래야겠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답하며 평소처럼 국물 냄비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수연은 그의 뒷모습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오늘 사장님, 뭔가 다녀오신 게 있으신 것 같은데.'
그녀는 그 생각을 하며 조용히 계란을 삶기 위해 물을 올렸다.
그날 밤, 가게 마감 후 수연은 이리스와 함께 가게 뒷문 앞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입, 오늘 사장님 좀 이상하지 않았어?"
"응, 확실히. 평소랑 다른 느낌이었어."
"끝눈 플랫폼이라는 데, 나중에 우리도 한번 가볼까?"
이리스는 그 제안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사장님이 말씀 안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그래도 궁금하잖아."
"궁금하지. 근데 사장님이 준비되셨을 때, 직접 얘기해주실 날이 오지 않을까?"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 많이 컸다. 예전 같으면 그냥 궁금한 대로 캐물었을 텐데."
"그거야…… 사장님한테 배운 거지. 궁금해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거."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가게 안에서는 라면사장이 홀로 남아, 오늘 가져갔던 그 낡은 물건을 다시 품에서 꺼내 보고 있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오래되어 색이 바랜 작은 조각이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오랜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머지않았다.'
그는 그렇게 나직이 중얼거리고는, 그 조각을 다시 소중하게 품 안에 넣었다.
가게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하루가 저물어가는 동안, 라면사장 홀로 간직한 그 오래된 비밀 역시, 조용히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가게는 다시 평소처럼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라면사장의 목소리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마치 어제의 그 낯선 외출은 없었던 일처럼, 그는 다시 국물을 끓이고 손님을 맞았다.
"사장님, 오늘은 완전히 평소 모습이시네요."
수연이 슬쩍 떠보듯 말했다.
"평소가 원래 이렇다."
"어제는 안 그러셨잖아요."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답하며 국자를 들었다. 수연은 그 단호한 태도에 결국 웃으며 물러섰다.
그러나 이리스는 그날 아침, 라면사장의 외투 주머니에서 아주 잠깐 삐져나온 낡은 조각을 목격했다. 그는 곧바로 그것을 다시 안으로 밀어 넣었지만, 이리스의 눈에는 이미 그 짧은 잔상이 남아 있었다.
'……저게 뭘까.'
그녀는 그 궁금증을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담아두었다. 언젠가, 사장님이 스스로 그 이야기를 꺼낼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가게의 하루는 그렇게 다시 평범하게 흘러갔다. 손님들이 오가고, 국물이 끓고, 라면 봉지가 뜯기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어제 있었던 그 낯선 외출은 서서히 일상의 소음 속으로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리스와 수연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장님에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새겨졌다. 캐묻지 않기로 한 그 약속과 함께, 두 사람은 그 비밀을 존중하며 각자의 하루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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