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52화. 그릇의 자리

가게 뒤편 선반에는,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그릇 하나가 있었다.

붉은 테두리가 둘러진 그 그릇은, 다른 그릇들과 달리 한 번도 손님상에 오른 적이 없었다. 먼지 한 톨 앉지 않을 만큼 정갈하게 닦여 있으면서도, 누구도 그 그릇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가게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도 그 그릇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것이 이 가게의 오래된 침묵 중 하나라는 걸,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이리스는 선반을 정리하다가 그 그릇을 발견했다.

"어, 이거 왜 여깄지? 자리가 이상한데."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별생각 없이 그 그릇을 조금 더 안쪽 선반으로 옮겼다. 다른 그릇들과 나란히 정돈하려는 순수한 의도였다. 그릇 하나가 유독 앞쪽에 튀어나와 있는 게 그녀 눈에는 그저 정리가 안 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 직후였다.

"……뭐 하는 거지."

라면사장의 목소리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낮고, 무거웠다. 이리스는 그 목소리에 놀라 손을 멈췄다.

"아, 그냥 선반 정리하다가요. 이 그릇이 자꾸 튀어나와 있길래……."

"그거, 원래 자리에 놔라."

그의 말투에는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날이 서 있었다. 이리스는 순간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이해하지 못한 채, 반사적으로 그릇을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겼다.

"이, 이렇게요?"

"……그래."

라면사장은 그 그릇이 제자리로 돌아간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숨을 고르듯 어깨의 힘을 뺐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그의 얼굴에 스쳐 간 표정은,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수연은 카운터 너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라면사장이 누군가에게 저런 식으로 날카롭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손님이 무례하게 굴 때도, 재료가 잘못 배달됐을 때도, 심지어 비아가 말썽을 부릴 때도 그는 늘 같은 온도로 대응했다. 그런데 지금, 그릇 하나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사, 사장님……."

이리스가 당황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른 채 혼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라면사장은 그 얼굴을 보고서야 자신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미안하다."

그가 짧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 사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 붉은 테두리 그릇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거…… 왜 그렇게 신경 쓰이세요?"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거기 있어야 한다."

그는 그렇게만 답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 말이 전부였다.


그 짧은 대답 뒤로, 가게 안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소예는 조용히 다가와 이리스의 어깨를 다독였다. 수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상황을 지켜보았다. 카운터 위에 앉아 있던 비아만이, 평소와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비아, 너는 알아?"

수연이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몰라……이다."

비아가 그렇게 답했다. 그러나 그 대답에는 평소의 활기가 없었다. 마치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아니면 정말로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비아는 평소라면 무슨 일이든 참견하고 나서던 성격이었다. 가게 안의 사소한 소동에도 늘 먼저 나서서 "그건 이렇게 하는 거다……이다!"라며 훈수를 두던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그 붉은 테두리 그릇 앞에서만은 유독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수연은 그 낯선 침묵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비아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조용해."

"……이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이다."

비아가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그 말투에서 평소의 장난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연은 그 모습에서, 이 그릇이 단순한 오브제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럼 적어도, 이게 나쁜 건 아니라는 것만이라도 말해줘."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아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거 아니다……이다. 오히려…… 좋은 거다……이다. 아마도."

"아마도?"

"나도 확실친 않다……이다. 근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이다."

비아의 그 애매한 대답은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적어도 이 침묵의 정체가 두려워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수연은 그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동시에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

라면사장은 그 침묵을 깨듯, 다시 평소의 담담한 얼굴로 돌아와 육수 냄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들 봐라.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마침 그 시간, 순찰을 돌던 세레나가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가게 안의 무거운 공기를 곧바로 알아챘다.

"무슨 일 있었어요?"

그녀가 물었다. 소예가 조심스럽게 그릇 소동에 대해 설명하자, 세레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 그릇이요."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선반 쪽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세레나 씨도 아세요?"

수연이 물었다.

"정확히는 몰라요. 다만……."

세레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었다.

"이 도시가 만들어질 때부터, 저 그릇은 저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 기록에는 없는데,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그녀의 그 말은 누구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무겁게 다가왔다. 도시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그녀조차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이 그릇의 정체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라면사장님께는 여쭤보지 않으실 거예요?"

소예가 물었다.

"물어봤자 답해주지 않으실 거예요. 저 표정을 보면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 역시 이 가게의 오래된 침묵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는 듯했다.

그날 저녁, 볼도도 순찰 중 잠시 들렀다가 그 소동의 여파를 전해 들었다. 그는 그릇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거 하나쯤은 있어야지, 가게에."

그가 짧게 남긴 말에, 소예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기다리는 게 있어야, 오늘 하루도 버티는 힘이 생기거든."

볼도는 그렇게만 답하고 다시 밤 순찰을 나섰다. 그의 말은 수수께끼처럼 남았지만, 왠지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날 낮, 손님이 뜸한 시간에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수연에게 다가왔다.

"저기, 수연 씨. 아까 그 그릇 말이에요……."

"응."

"저 진짜 그냥 정리하려던 거였는데, 사장님이 그렇게 정색하실 줄은 몰랐어요."

수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답했다.

"나도 처음 봐. 저런 표정. 사장님이 저렇게 날카롭게 말하는 거."

"뭔가 사연이 있는 그릇 같긴 한데……."

"물어보지 마."

수연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어?"

"이 가게엔 그런 게 좀 있어. 물어봐도 답 안 나오는 것들. 근데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야.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이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이 가게에서 지내며 그런 종류의 침묵을 여러 번 겪어본 적이 있었다. 억지로 캐묻지 않는 것, 그것도 이 가게에서 배운 예의 중 하나였다.


그러나 수연 자신도, 그 그릇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저녁 무렵, 손님이 뜸해진 틈을 타 그녀는 슬쩍 선반 쪽으로 다가가 그 붉은 테두리 그릇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그릇이었다. 오래된 흠집 하나 없이, 오히려 다른 그릇들보다 훨씬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매일 손수 닦아온 것처럼.

'이거…… 왜 한 번도 안 쓰는 거지.'

그녀는 그 그릇을 조심스럽게 들어보려다가, 문득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손을 멈췄다.

"……그거, 만지지 않는 게 좋다."

라면사장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번엔 아까와 달리 부드러운 어조였다.

"아, 죄송해요. 그냥 궁금해서……."

"안다. 궁금할 거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 옆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 그릇을 함께 바라보았다.


"이거…… 누구 그릇이에요?"

수연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라면사장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수연은 자신이 물어서는 안 될 걸 물었나 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직 안 온 사람 거다."

마침내 그가 답했다.

"안 온 사람이요?"

"언젠가는 올 사람. 그때까진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말에는 이상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마치 그 사람이 올 거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은 확신. 수연은 그 확신의 무게에 순간 말을 잃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사장님도?"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릇을 향한 시선을 잠시 더 두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수연을 바라보았다.

"이 가게는, 원래 그런 곳이다. 다들 기다리다가 만나는 곳."


그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았지만, 수연은 왠지 그 말이 더 이상의 설명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다.

"그럼…… 저 그릇, 계속 저 자리에 둘게요."

"고맙다."

라면사장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 웃음은 아까의 날카로움과는 완전히 다른, 평소의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수연은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저 사람도…… 뭔가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녀는 그 생각에 이상하게 마음이 저릿해졌다. 늘 담담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던 그가, 사실은 무언가를 오래도록 기다려온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날 밤, 마감을 준비하며 수연은 다시 한번 그 그릇 쪽을 흘끔거렸다.

그릇은 여전히 그 자리에, 흠집 하나 없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문득 그 그릇 옆에 나란히 서 있던 라면사장의 옆모습을 떠올렸다. 평소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보는 듯한 눈빛, 조금은 쓸쓸해 보이던 그 표정.

"수연 씨, 뭐 봐요?"

이리스가 다가와 물었다.

"아니, 그냥……."

수연은 얼버무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작은 질문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저 사람이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 오게 되면, 이 가게는,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될까.

그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그릇을 바라보던 라면사장의 눈빛이, 그날 이후로도 오래도록 그녀의 마음에 남았다.


라면사장은 그날 밤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가게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그 선반 앞에 섰다.

그릇은 제자리에 있었다. 붉은 테두리가 희미한 불빛 아래 은은하게 빛났다. 그는 그 그릇을 향해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저 오래도록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이다.'

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 말에는 조급함도, 원망도 없었다. 그저 담담한 기다림만이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까지, 이 그릇은 이 자리에서 계속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이 가게에서 그 그릇과 함께 계속 기다릴 것이다.

그는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리스에게 날을 세웠던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그 직후 수연과 나란히 서서 그릇을 바라보던 순간. 이상하게도, 수연이 옆에 있었던 그 짧은 시간 동안은 기다림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생각에 스스로도 놀라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애써 그 생각을 밀어내며, 마지막 불을 끄고 가게 문을 잠갔다.

골목은 고요했고, 붉은 테두리 그릇만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릇에 관한 이야기는 가게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되었다. 누구도 정면으로 다시 묻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 그릇을 지나칠 때마다 한 번씩 눈길을 주게 되었다.

이리스는 특히 그 일로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으로 라면사장에게 날카로운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 며칠 동안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며칠 뒤, 다시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저 그때 일……."

"이미 사과했다."

"그게 아니라, 저도 죄송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제가 눈치 없이 굴었잖아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드물게 부드러운 얼굴로 답했다.

"네 잘못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해둔 내 탓이지."

"그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두실 거예요? 아무 설명 없이?"

"……언젠가는 말할 날이 있겠지."

그는 그렇게 답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말에는 확답도, 부정도 아닌 여운이 담겨 있었다. 이리스는 더 캐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후로 그 선반을 정리할 때마다, 그 그릇만은 조심스럽게 손끝만으로 먼지를 털어낼 뿐, 결코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 나름의 사과 방식이었다.


수연은 그 며칠 동안, 문득문득 그날 저녁 라면사장과 나란히 서 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평소와 다른 그의 표정, 그리고 그 표정 뒤에 숨겨진 오래된 기다림. 그녀는 그 기억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저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

그녀는 그 감정을 애써 눌러두려 했지만,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가 자신 아닌 다른 누군가를 그토록 오래 기다려왔다는 사실에 대한 미묘한 서운함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 감정의 정체를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저녁, 그녀는 다시 한번 그 선반 앞을 지나며 그릇을 바라보았다. 붉은 테두리는 여전히 흠 하나 없이 깨끗했다.

"또 보고 있네."

라면사장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아, 그냥…… 궁금해서요."

"저번에 말했잖나. 아직 안 온 사람 거라고."

"그 사람…… 언제 올지도 몰라요?"

"모른다. 그래도 온다는 건 안다."

그 확신에 찬 대답에, 수연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이 오면…… 사장님은 기쁘시겠네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릇을 바라보던 시선을 천천히 옮겨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렇겠지. 근데 지금도, 딱히 나쁘진 않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수연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시선이 그릇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심장을 다시 한번 이상하게 뛰게 만들었다.

그녀는 그 두근거림을 감추려 서둘러 시선을 돌리며, 괜히 앞치마 끈을 만지작거렸다.

"그,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 말보다도 편안한 침묵이었다. 붉은 테두리 그릇은 그 침묵 속에서, 여전히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가게 사람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약속 하나가 생겨났다. 그 그릇에 대해서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대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자리를 존중하기로.

이리스는 매일 아침 선반을 정리할 때마다 그 그릇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생겼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되었다.

소예는 매일 그릇 주변의 먼지를 살피며, 혹시라도 자신이 실수로 그 자리를 흐트러뜨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수연은 배달을 나갈 때마다 그 그릇 쪽을 한 번씩 흘끗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마치 그 그릇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그렇게 붉은 테두리 그릇은, 이 가게의 새로운 풍경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누구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모두가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언젠가 그 그릇의 주인이 정말로 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까지, 이 작은 침묵은 계속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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