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31화. 꺼진 드론
그날 오전, 소예는 창고 정리를 맡았다.
이리스가 알바를 시작한 이후, 창고 한쪽에는 그녀의 장비들이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드론 상자, 여분의 배터리, 작은 공구함까지. 소예는 그것들을 정리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거 진짜 신기하게 생겼다……."
그녀는 상자 하나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아홉 대의 밝은 드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살펴보다가, 구석에 따로 놓인 작은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다른 상자들과 달리 낡고, 손때가 많이 묻은 상자였다.
"이건 뭐지?"
소예는 호기심에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열 번째 드론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다른 드론들과 달리 표면이 살짝 긁혀 있었고, 불빛도 완전히 꺼져 있었다.
"어, 이것도 이리스 언니 거네."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드론을 집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안 돼!"
이리스의 목소리였다. 평소의 낭랑하고 부드러운 톤과는 완전히 다른, 날카롭고 다급한 외침이었다.
소예는 화들짝 놀라 손에 든 드론을 떨어뜨릴 뻔했다.
"어, 언니……."
이리스는 순식간에 다가와 소예의 손에서 드론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 동작이 어찌나 재빨랐는지, 소예는 순간 뭐라 반응할 틈도 없었다.
가게 안 창고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죄송해요, 언니. 그냥 정리하다가……."
소예가 더듬거리며 사과했다.
이리스는 드론을 품에 꼭 안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방금 전까지의 화려함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엔, 뭔가에 상처 입은 듯한 날것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미안."
이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크게 반응했네요."
"아니에요, 제가 함부로 만져서……."
"아니야, 소예 잘못 아니야. 그냥……."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드론을 조심스럽게 다시 상자에 눕혔다.
그때,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다시 그 완벽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미안해, 진짜! 이게 좀 오래된 거라 함부로 만지면 안 돼서 그랬어. 자, 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하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방금 전 순간의 날카로움을 덮기엔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완벽했다.
소예는 그 급격한 전환에 오히려 더 당황했다.
"네…… 괜찮아요."
가게 안에서 손님 몇몇이 그 갑작스러운 외침을 듣고 창고 쪽을 흘끔거렸다. 라면사장은 무심하게 국자를 저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의 속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아주 잠깐, 창고 문 쪽을 향해 있었다.
마왕도 그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글쎄요."
세레나가 마침 순찰 중 가게에 들렀다가 그 분위기를 감지하고 조용히 답했다.
"근데 왠지 캐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네요."
"왜?"
"저 목소리, 처음 들어보는 톤이었거든요. 이리스 씨답지 않은."
마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캐묻지 않았다.
수연은 마침 창고 근처를 지나다가 그 광경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녀는 소예의 얼떨떨한 표정과, 이리스의 지나치게 밝은 미소 사이의 이질감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리스가 재빨리 답했다. 그녀는 드론 상자를 서둘러 정리하며 화제를 돌렸다.
"창고 정리 다 됐으면 저 먼저 나갈게요! 손님 오실 시간이라서!"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창고를 빠져나갔다. 남겨진 소예와 수연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뭐였어, 방금?"
수연이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 꺼진 드론 만졌는데, 언니가 완전 다른 사람처럼 소리 질렀어요."
"어떤 드론?"
"저거요."
소예가 상자를 가리켰다. 수연은 그 낡은 상자를 바라보며, 이리스가 처음 이 도시에 도착했던 밤을 떠올렸다. 그때도 그 열 번째 드론은 유독 눈에 띄었었다.
가게로 돌아온 수연은 라면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아까 이리스 씨가 되게 날카롭게 반응했어. 그 꺼진 드론 때문에."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짐작 가는 게 있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드론에 대해서만 물어보면 좀 애매하게 넘어갔거든. 다른 아홉 대는 이름도 다 알려줬는데, 그거 하나만."
"그럼 그게 답이다."
"무슨 뜻이야?"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과,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그 경계에 있는 거다, 그 드론은."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자신도 비슷한 경계를 갖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 깊은 곳의 어떤 부분들.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수연은 그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신중하게 다음 말을 고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근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다른 아홉 대는 다 만지게 해주잖아."
"아홉 개는 그냥 도구다. 근데 저 하나는…… 도구가 아닐 수도 있다."
"도구가 아니면 뭔데?"
"모른다. 그건 이리스 본인만 안다."
수연은 그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구가 아닌 드론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이리스에게 훨씬 더 사적인 의미를 지닌 물건일지도 몰랐다.
"혹시……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물건 같은 걸까?"
라면사장은 그 짐작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어쩌면 긍정에 가까운 대답일지도 모른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그날 오후, 이리스는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여전히 화려하게 꾸미고 왔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묘한 경직됨이 느껴졌다.
소예는 그런 그녀를 신경 쓰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언니, 아까는 진짜 죄송했어요."
"아니야, 진짜 괜찮아. 오히려 내가 너무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근데……." 소예는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그 드론, 되게 소중한 거예요?"
이리스는 그 질문에 순간 손을 멈췄다.
"……응, 그런 셈이야."
"왜 항상 꺼져 있어요?"
"그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직은 말하기 어려워."
소예는 그 대답에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근데 저 진짜 나쁜 뜻으로 만진 거 아니었어요."
"알아, 알아. 진짜 소예 잘못 아니야."
소예는 그날 오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이 함부로 건드린 것이 이리스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계속 신경 쓰였다.
"수연 언니, 저 진짜 어떡하죠?"
그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뭘 어떡해?"
"제가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아서요. 이리스 언니, 겉으론 괜찮은 척하는데 진짜 안 괜찮아 보이잖아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몰랐던 거잖아."
"그래도……."
수연은 소예의 어깨를 다독였다.
"나중에 이리스 씨 마음 편해지면, 그때 다시 편하게 얘기 나눠봐. 지금은 그냥 평소처럼 대해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평소처럼요?"
"응. 갑자기 너무 조심스럽게 대하면,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할 수도 있어."
소예는 그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는 남은 오후 내내, 평소와 다름없이 씩씩하게 손님상을 오가며 일했다. 다만 이리스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다정한 눈빛을 건네는 것만은 스스로도 알아챌 수 있었다.
저녁 무렵, 이리스는 결국 라면사장에게 다가와 조용히 사과했다.
"아까 창고에서 너무 예민하게 굴었죠."
"괜찮다."
"소예도 놀랐을 텐데……."
"이미 사과했다고 들었다. 그거면 됐다."
이리스는 그 말에도 여전히 표정이 편치 않았다.
"저 그렇게까지 소리 지를 생각은 없었는데."
라면사장은 그릇을 정리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소중한 걸 지키려는 반응이었다. 이상한 게 아니다."
"근데 다들 이상하게 봤을 것 같아요."
"안 이상하게 봤다. 다들 그런 게 하나씩은 있으니까."
이리스는 그 말에 조금씩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사장님도 그런 게 있어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순간 손을 멈췄다.
"……있다."
"뭔데요?"
"그건 아직 말할 수 없다."
이리스는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저랑 똑같네요. 다들 뭔가 하나씩은 숨기고 사는구나."
수연은 그날 밤, 이리스가 가게를 나서기 전 조용히 그녀를 붙잡았다.
"저기, 저 드론에 대해 물어봐도 되냐, 신입. 대답 안 해도 괜찮아."
이리스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봐도 돼요. 대답은 못 할 수도 있지만."
"그거…… 원래는 켜져 있었어요?"
이리스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침묵했다.
"……응. 원래는 제일 밝게 빛나던 애였어요."
"그럼 왜 지금은……."
"그건 아직 말 못 해요. 근데……." 그녀는 잠시 말을 골랐다.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라면."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릴게."
"고마워요."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이리스는 오늘 하루 겪은 감정의 파도가 조금씩 가라앉는 걸 느끼며, 문득 이 도시에 온 이후 가장 편안한 침묵을 경험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기, 수연 씨."
"네?"
"당신도 뭔가…… 아무한테도 못 보여주는 거 있어요?"
수연은 그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있어. 내 검."
"검을요? 근데 그건 다들 알고 있잖아요."
"검 자체가 아니라…… 이걸 쓸 때 가끔 떠오르는 기억. 원래 살던 세계에서의 기억. 그건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
이리스는 그 고백에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럼 우리 비슷한 거네요."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천천히 얘기해도 돼. 나도 그랬으니까."
이리스는 그 말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이리스가 떠난 뒤,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조용히 다가와 수연에게 물었다.
"그 드론, 왜 꺼졌는지 알아냈냐……이다?"
"아니, 아직."
"나는 알 것 같다……이다."
수연이 놀라 비아를 돌아보았다.
"진짜? 뭔데?"
비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 드론,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꺼진 것 같다……이다. 나도 문고리 잃어버렸을 때, 잠깐 내가 나 같지 않았다……이다."
"그거랑 이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비슷하다……이다. 소중한 걸 잃으면, 그 부분만 딱 어두워진다……이다. 나머지는 다 밝은데."
수연은 그 비유에 마음이 저릿했다. 비아가 문고리를 잃었을 때 느꼈던 그 두려움 — "내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이리스에게도, 그 꺼진 드론은 비슷한 무게를 지닌 존재일지 몰랐다.
수연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아 나름의 직관이,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그게 뭘 잃어버린 걸까."
"모른다……이다. 근데 그게 뭐든, 이리스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게가 늘 그래왔듯,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소예는 마감 정리 시간에 이리스와 다시 마주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언니, 내일 그 새로운 콘셉트 뭐예요? 오늘 못 물어봤잖아요."
이리스는 그 물음에 순간 놀란 얼굴을 하다가, 이내 옅게 웃었다.
"내일은…… 그냥 편한 대로 입고 오려고."
"오, 그것도 괜찮은데요? '자연스러움' 콘셉트."
"그런가?"
"네! 저 그거 완전 기대돼요."
이리스는 그 반응에 마음이 한결 풀리는 걸 느꼈다. 소예가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주는 것이, 오늘 하루 그녀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소예야."
"네?"
"아까는 진짜 미안했어. 너 놀랐지."
"괜찮아요. 저도 이제 이해했어요. 언니한테 소중한 거였던 거죠?"
이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되게 소중한 거야."
"그럼 저도 이제 안 건드릴게요. 근데 혹시 언젠가 얘기하고 싶어지면, 저도 들어줄게요."
이리스는 그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마워, 진짜."
라면사장은 마감 정리를 하며 문득 외상장부를 꺼내, 이리스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펼쳤다.
『이리스 루멘 — ?』
그는 그 물음표 옆에, 아주 작게 한 줄을 덧붙였다.
『꺼진 별 하나. 언젠가 다시 켜질 별.』
아직 완전한 답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더 가까워진 문장이었다. 그는 그 페이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다시 서랍을 닫았다. 이 가게에 도착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 속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연은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잠그기 전, 창고 쪽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낡은 상자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을 그 열 번째 드론을 떠올리며, 그녀는 언젠가 그 불빛이 다시 켜지는 날을 상상해보았다. 그날이 오면, 이리스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홀가분한 얼굴로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이 가게는 또 한 번 누군가의 가장 여린 부분을 조용히 받아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다들."
그녀가 가게 불을 끄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 화려함 뒤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 하나가 아주 조금 그 문틈을 열어 보였다. 나머지는, 이리스 스스로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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