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208화. 첫 기일 아닌 날
그가 떠난 지 정확히 한 계절이 되는 날이 다가오자, 도시 기록청에서는 작은 논쟁이 일었다.
세레나는 그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처음 제안을 올린 것은 기록청의 나이 든 서기 하나였다 — 이런 날은 응당 추모의 날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견이었다. 도시가 큰 상실을 겪은 지 정확히 한 계절이 되는 날, 등불을 낮추고 다 함께 그 이름을 부르며 애도하자는 것. 세레나는 그 제안서를 손에 쥐고 오래 고민했다. 상식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쩐지 그 제안서에 서명하는 손이 자꾸 멈췄다.
"기일로 만들면," 그녀가 녹사에게 물었다. "이날은 매년 슬픔의 날이 되겠죠."
"그렇겠지." 녹사가 답했다.
"근데 그 사람은," 세레나가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슬픔을 없애려다 실패한 사람이에요. 우리가 이날을 기일로 만드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이 두려워했던 방식으로 이 도시를 기억하게 되는 거예요 — 슬픔을 고정된 하나의 자리에 못 박아두는 방식으로."
녹사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되물었다.
"그럼 뭘로 만들고 싶은데."
세레나는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낡은 공책 하나를 떠올렸다 —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물건, 외상장부. 돈을 받지 못한 손님들의 이름이 아니라, 갚아야 할 마음을 적어두던 그 공책. 완료라는 도장이 찍히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벽값과, 이름들과, 말들.
"외상 갚는 날로 하죠."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뭐?"
"그 사람이 남긴 게 외상장부잖아요." 세레나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돈이든 마음이든, 다 갚지 못하고 미뤄둔 것들의 목록. 우리가 매년 이날을 슬픔으로 채우는 대신— 밀린 걸 갚는 날로 만들면 어때요. 못 한 말, 못 한 사과, 못 한 고백. 그런 걸 이날 하나씩 갚는 거예요."
녹사는 그 말을 곱씹다가, 드물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새끼답네." 그녀가 말했다. "지 물건 하나로 도시 전체를 또 이렇게 써먹게 만드는 거."
"그러게요." 세레나도 낮게 웃었다. "근데 나쁘지 않죠."
기록청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도시의 새로운 명절, "외상 갚는 날"이 만들어졌다. 첫해였다. 아무도 이 명절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밀린 것들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라면가게는 그날 아침부터 평소와 다른 공기로 가득했다. 형사가 물을 올리며 파빌라에게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을 것 같습니다."
"왜요?"
"밀린 말을 하기엔, 국물 한 그릇 앞이 제일 편하니까요."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오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게 안은 평소보다 훨씬 무거우면서도 훨씬 따뜻한 공기로 채워졌다.
첫 번째로 그 자리에 앉은 것은, 시장 골목에서 오랫동안 옷감을 팔아온 노인이었다. 그는 젊었을 적 이 도시에 처음 정착했을 때, 형편이 어려워 옆 가게 주인의 천 뭉치를 몰래 조금씩 덜어 쓴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고, 그 옆 가게 주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노인은 국물을 한 술 뜨고는, 그 오랜 이야기를 웃으며 꺼냈다.
"허허, 이거 참 부끄러운 얘긴데 말이오."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그 양반 천 뭉치에서 매번 한 뼘씩 슬쩍했었어. 들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근데 그 양반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뭐라 안 하더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양반,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대. 그냥 못 본 척해준 거였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이야기에 스스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크고 개운했다 —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었던 부끄러움을, 이제는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사람의 웃음이었다.
"그래서 오늘, 갚으러 오셨어요?" 파빌라가 물었다.
"갚을 데가 없어." 노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양반 자손도 다 떠났고. 그래서 그냥— 여기 와서 말이라도 하고 가는 거야. 누군가는 들어야 갚은 셈이 되지 않겠나."
형사가 국물을 더 부어주며 짧게 답했다.
"들었습니다."
노인은 그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웃으며 국물을 마저 비웠다.
두 번째로 자리에 앉은 것은,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국물이 나오기도 전부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파빌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여인이 손끝으로 눈가를 훔치며 답했다. "그냥, 이 가게 오면 늘 이래요."
그녀는 오래전, 이 도시가 아직 완성되기도 전 어느 겨울밤, 오갈 데 없이 떠돌다 이 가게의 불빛을 보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라면사장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뜨거운 국물 한 그릇을 내주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 이 도시에 정착했고, 지금은 작은 빵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날의 그 그릇값을 정식으로 갚은 적이 없었다.
"저는 그날 이후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매일 아침 빵을 구울 때마다 생각해요. 그 국물 한 그릇이 없었으면, 저는 그날 밤을 못 넘겼을 거예요. 근데 정작 그분한테는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도 못 했어요. 늘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이렇게 됐네요."
그녀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소리 없이 흐느꼈다. 파빌라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형사는 그 옆에서 새 냄비에 물을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마음, 저희가 대신 갚아드리겠습니다. 오늘 그릇값은 안 받습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압니다." 형사가 그녀의 말을 부드럽게 끊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오늘 이 명절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여인은 그 말에 다시 한번 눈물을 훔치며, 이번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담긴 얼굴이었다.
세 번째 손님은, 대장간의 늙은 대장장이였다. 그는 서늘한 불의 밤— 주작이 마을을 덮치던 그날— 육 대째 이어온 가게가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아이들을 지하 저장고로 밀어 넣던 사람이었다. 그는 카운터 앞에 무뚝뚝하게 앉아, 국물이 나오자 별말 없이 젓가락부터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국수를 먹던 그가, 그릇을 반쯤 비웠을 즈음 불쑥 입을 열었다.
"그 사람한테, 못 한 말이 있었다."
형사가 국자를 든 채로 그를 바라봤다.
"이 가게 처음 생겼을 때," 대장장이가 계속했다. "나는 이 가게가 오래 못 갈 줄 알았어. 손님도 뜨문뜨문, 라면 하나로 뭘 하겠나 싶었지. 근데 몇 년 지나고 보니, 이 도시에서 제일 오래 버틴 가게 중 하나가 됐더군."
그는 젓가락으로 국수 가락을 뒤적이며 낮게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사람한테 딱 한 번, 잘될 거라고 말해준 적이 없어. 속으로는 늘 응원했는데, 입 밖으론 한 번도 안 냈지. 남자끼리 그런 말 하는 게 쑥스러웠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수를 마저 먹고, 그릇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값을 동전 하나까지 정확히 치렀다. 형사가 그를 배웅하며 짧게 물었다.
"전해드릴까요, 그 말?"
대장장이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 그러나 끝내,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문을 밀고 나갔다. 육십 년 넘게 쇠를 다뤄온 그 넓은 등이, 오늘만큼은 조금 좁아 보였다.
형사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수첩을 꺼내려던 손이 도중에 멈췄다. 도착하지 않은 문장은 받아 적을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문가에 서서 짧게 생각했다 — 어떤 외상은, 갚는 데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 그리고 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줄 것이다.
수연은 그날 오후 내내 카운터 안쪽에 앉아, 그 모든 장면을 지켜봤다. 직접 나서서 손님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릇을 나르고, 물을 채우고, 가끔 눈물을 흘리는 손님 옆에 조용히 앉아 등을 쓸어주는 정도의 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계속,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그 표정들 속에서 낯익은 감정 하나를 발견했다. 부끄러움도, 감사도, 그리고 끝내 입 밖에 나오지 못한 진심도 —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같은 재료가 깔려 있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이 오래 묵으면, 결국 그 말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짐이 된다는 것. 그녀는 그 짐의 무게를 아주 잘 알았다. 그녀 자신도 그런 종류의 말을 하나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국물 그릇을 정리하며, 자신에게도 이 명절이 적용된다면 무슨 말을 갚아야 할지 생각해봤다. 미안하다는 말은 이미 여러 번 주고받았다. 고맙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남은 건 다른 종류의 말이었다 —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아니라, 아직 그 말을 할 자리조차 오지 않은 말. 그를 향한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분명했지만, 그 마음을 완전한 문장으로 그의 얼굴 앞에서 말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그 문장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만들었다 지웠다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꺼낼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오직 그가 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에만, 완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이었다.
'나도 밀린 게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근데 이건 오늘 갚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와야 갚을 수 있는 거야.'
그 생각에 이르자, 그녀는 오늘 이 가게를 스쳐 간 모든 손님들의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갚을 상대가 이미 이 세상에 없거나, 자리를 뜬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가게에 와서, 대신 들어줄 사람에게라도 그 말을 풀어놓고 갔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가 갚아야 할 상대는, 지금 세상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다른 손님들처럼 서럽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 갚을 상대가 살아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오늘 이 모든 슬픔과 안도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유독 단단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릇을 마저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운터 너머, 문가를 잠깐 바라봤다. 언젠가 저 문이 열리고, 그가 걸어 들어오는 날 — 그날이 오면 그녀는 이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한 문장을 마침내 꺼낼 생각이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하루 종일, 밀린 말들이 가게를 스쳐 갔다. 오늘 다 갚아진 것도 있었고, 오늘도 끝내 갚아지지 못한 것도 있었다. 파빌라는 오후 내내 그 모든 말들을 곁에서 들으며,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다양한 속도로 뒤늦게 도착한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손님이 잠시 뜸해진 오후, 그녀는 카운터 뒤로 가 붉은 테두리의 그릇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 가게의 오래된 자리 하나를 늘 지키고 있는 그릇이었다. 그녀는 그 안에 접힌 종이 한 장을 살며시 꺼내 펼쳤다. 낡고 손때 묻은 종이였다.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이 가게의 몇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종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접어 그릇 안에 돌려놓았다.
"아직 반납 안 받아요." 그녀가 그릇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것은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향한 선언이기도 했다. 이 종이가 담고 있는 약속이 무엇이든, 그녀는 그것이 완전히 매듭지어지는 날까지 이 그릇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둘 생각이었다. 오늘은 밀린 것들을 갚는 날이었지만, 이 종이만큼은 아직 갚음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건 돌려받아야 할 것이지, 갚아야 할 것이 아니었다.
같은 시각, 비아는 카운터 아래 서랍을 열고 있었다. 손끝에 익숙한 감촉이 닿았다. 낡은 만년필이었다. 광장에 마지막으로 남겨졌던 것을 형사가 주워 와, 외상장부 옆자리에 나란히 보관해온 바로 그 펜. 장부의 어느 페이지에는 형사의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만년필 한 자루, 보관 중. 주인이 돌아오면, 돌려줄 것.
그녀는 형사가 지켜보는 앞에서 펜을 꺼내, 마른 천으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펜촉 부분을 특히 정성 들여 문질렀다. 오래 쓰지 않은 펜은 잉크가 말라붙어 촉이 뻑뻑해지기 쉬웠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았기에, 매달 한 번씩 이렇게 꺼내 손질했다 — 잉크를 아주 조금 흘려보내 촉을 풀어주고, 다시 마른 천으로 닦아 장부 옆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 형사는 그 손질을 말리지 않았다. 보관은 자신의 몫이었지만, 돌봄은 언젠가부터 그녀의 몫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안 쓴다." 그녀가 펜을 들여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근데 언젠가는 쓸 거다……이다."
그녀는 그 펜이 정확히 무엇을 쓰기 위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돌아와서 새로 쓸 메뉴판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그가 도착한 날 외상장부에 마지막으로 적어 넣을 한 줄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펜이 녹슬지 않도록, 그가 돌아와 손에 쥐는 순간 바로 쓸 수 있도록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펜을 서랍 안 원래 자리에 정확히 되돌려놓았다. 손잡이가 늘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하루하루 같은 각도로.
저녁이 되어 가게 문을 닫을 무렵, 형사는 그날 하루 받아 적은 수첩을 다시 펼쳐봤다. 적힌 문장들 사이로, 끝내 도착하지 못한 문장의 빈자리 하나가 유독 눈에 밟혔다. 그는 그 빈자리까지 포함해서, 그 페이지를 오래 들여다봤다.
"오늘 참 이상한 명절이었습니다." 그가 파빌라에게 말했다.
"근데 좋았어요." 파빌라가 답했다. "다들 뭔가 내려놓고 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습니다." 형사가 수첩을 덮으며 말했다. "밀린 걸 갚는다는 게, 꼭 무겁기만 한 일은 아니더군요."
비아는 카운터에 기대어 그 대화를 듣다가, 문득 서랍 쪽을 돌아봤다. 그 안에는 손질을 마친 펜이, 그리고 저편 선반 위 그릇 안에는 아직 반납받지 않은 편지가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두 물건 모두, 오늘 이 명절의 방식대로라면 진작 정리되었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가게 안에서만큼은, 그 두 가지가 예외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미뤄둔 게 아니라, 지켜지고 있는 것이었다. 갚을 대상이 아직 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을 뿐, 그 자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확히 마련되어 있었다.
가게의 마지막 불이 꺼졌다. 밖에는 조용히 첫눈이 아닌 두 번째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는 그렇게, 슬픔 대신 밀린 마음들을 하나씩 갚으며 그 첫 계절의 끝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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