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8화. 비명을 대신 지르는 자

그날 저녁, 손님이 뜸해질 무렵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소리였지만, 가게 안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울보다! 울보가 온 것이다!"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벌떡 뛰어오르며 목청껏 소리쳤다. 그대로 카운터를 뛰쳐나가려는 그녀를, 라면사장이 재빨리 손을 뻗어 붙잡았다.

"천천히."

"오래간만이다……이다! 진짜, 진짜 오래간만이다……이다!"

비아는 붙잡힌 채로도 발을 동동 구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까지 냄비 앞에서 조용히 서 있던 아이가, 순식간에 세상에서 가장 신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문가에 서 있는 것은 진홍 망토의 여자였다.

수연은 그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광장에서 재단사를 부축했던, 오렌지빛 단발머리에 입가에 오래된 꿰맨 흔적이 남아 있는 그 여자.

가게 안 몇몇 손님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순간 몸을 굳혔다. 한 손님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나가려 했다. 그 냉랭한 반응과 비아의 환호가 기이한 대비를 이루며, 가게 안 공기를 한층 더 묘하게 만들었다.

"계산은 다음에 해도 된다."

라면사장이 낮게 말했다. 그 손님은 뒤도 안 돌아보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여자는 그 모든 반응을 익숙하다는 듯 담담히 지켜보았다. 놀라지도, 상처받은 기색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비아를 향해서만은, 그 담담함이 살짝 허물어졌다.

"……오랜만이야."

그녀가 나직이 답했다. 목소리에 옅은 떨림이 섞여 있었고, 발음은 어딘가 살짝 옆으로 새는 듯 뭉개져 있었다. 입가에 남은 오래된 흉터 사이로 숨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탓이었다.

"진짜 오래간만이다……이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이다!"

비아가 여전히 라면사장의 손에 붙잡힌 채 발버둥 치며 물었다.

"……미안."

"미안할 거 없다……이다! 온 게 중요하다……이다!"

여자는 그 말에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감추려는 듯,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녀가 물었다. 방금 전의 떨림은 이미 다시 담담함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당연하다."

라면사장이 즉시 답하며 그제야 비아를 놓아주었다. 비아는 곧장 여자에게 달려가 옷자락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울보 왔다……이다! 다들 봐라……이다!"

"비아야, 조금만 진정……."

수연이 웃으며 다가가 말리려 했지만, 비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소예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볼도가 슬쩍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짚으며 낮게 말했다.

"손님이야. 평소처럼 하면 돼."

"……응."

소예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물수건을 챙겼다. 손이 살짝 떨렸지만, 그녀는 그 떨림을 애써 감추며 다가갔다.

여자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남은 손님 몇몇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며 그녀에게서 최대한 먼 테이블로 향했다. 가게 한쪽 구석,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 — 늘 비어 있던 그 자리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수연은 문득 깨달았다. 저 구석 자리가 유독 늘 비어 있었던 이유를.

"여기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다. 뭘 줄까."

"아무거나 괜찮아요."

라면사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평소와 다름없는 손놀림이었지만, 수연은 그의 등에서 미세한 긴장을 읽었다.


비아는 자기가 직접 나르겠다며 라면사장 손에서 그릇을 거의 낚아채듯 받아 들고 여자 쪽으로 달려갔다. 국물이 찰랑거릴 정도로 신난 걸음이었다.

"짜잔……이다! 내가 갖다준다……이다!"

여자는 그 부산스러운 손길에 옅게 웃었다. 입가의 흉터가 웃음을 따라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고마워, 비아야."

비아는 그릇을 내려놓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옆 의자에 폴짝 올라앉았다. 평소라면 진작 다른 일을 하러 갔을 텐데, 오늘만큼은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기색이었다.

"안 무섭다……이다?"

비아가 불쑥 물었다.

"내가?"

"다들 무섭다고 한다……이다. 근데 나는 하나도 안 무섭다……이다. 옛날부터 안 무서웠다……이다."

여자는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아주 조용히 웃었다. 슬픔이 배어 있는 웃음이었다.

"……고마워."

그녀는 그릇을 앞에 두고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손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게 안 다른 테이블에서는 여전히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오갔다.

수연은 그 젓가락질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서두르지 않고, 한 입 한 입 음미하듯 먹는 모습이었다. 마치 이 평범한 순간 자체가 아주 오랫동안 허락되지 않았던 사치라는 듯이.

"맛있어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맛있어요."

"다행이다."

"오랜만이라서 더 그런가 봐요."

"자주 못 드셨어요?"

녹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옅게 웃었다.

"사람들 앞에서 뭘 먹는다는 게, 저한테는 오랫동안 상상도 못 할 일이었거든요."

그녀의 말끝이 살짝 뭉개지며 옆으로 새어 나갔다. 오래 입을 다물고 지낸 사람 특유의, 발음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소리였다.

그 말에 수연은 더 캐묻지 못했다. 대신 그녀는 조용히 물잔을 채워주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마왕이 다른 테이블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녹사 쪽으로 다가갔다. 가게 안 사람들이 순간 긴장했다.

"오랜만이군."

마왕이 무뚝뚝하게 인사를 건넸다.

녹사가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에요, 폐하."

"이제 폐하 아니다."

"습관이라서요."

마왕은 그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내가 다스리던 시절, 너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사람이 나였지."

"기억해요."

"그때도 너는 나를 살렸다. 결전 전날 밤, 내가 무너지기 직전에."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수연은 그 말에 귀를 세웠다. 마왕이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꺼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날 네 울음이 없었으면, 나는 그대로 부서졌을 거다. 왕좌고 뭐고 다 놓아버렸겠지."

"저는 그냥 운 것뿐이에요."

"그거면 충분했다."

마왕은 그 말을 끝으로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계산하지."

"괜찮아요."

"내 방식대로 하는 거다. 반박하지 마라. 왕이 밥값 정도는 낼 수 있어야지."

그는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가 계산을 마쳤다. 수연은 그 뒷모습에서, 평소의 허세와는 다른 진심 어린 예의를 읽었다.


세레나가 순찰을 마치고 가게에 들렀다가, 구석 자리의 여자를 보고 옅게 미소 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오셨네요."

"오래 미뤘죠."

두 사람의 대화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임을 짐작케 했다. 수연은 그 곁을 정리하는 척하며 슬쩍 귀를 기울였다.

"이 도시가 생긴 밤 기억나요?"

세레나가 조용히 물었다.

"기억나요. 잊을 수가 없죠."

"그날 제일 먼저 들린 게 뭐였는지도요?"

여자는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았다.

"제 울음이었죠."

그 말에 수연은 순간 손을 멈췄다. 세레나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이 도시가 생기기 직전, 가장 먼저 울린 소리가 이분의 울음이었어요. 그 울음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여기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세레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골랐다.

"제가 태어나던 순간, 저는 아무것도 느낄 준비가 안 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이분의 울음소리가 저한테 처음으로 슬픔이라는 걸 가르쳐줬어요. 슬픔을 알아야, 기쁨도 알 수 있으니까요."

여자는 그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게 덧붙였다.

"나는 그냥…… 울었을 뿐이에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그게 시작이었어요."

세레나의 말에 여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수연은 그 대화의 조각들을 머릿속에서 이어 붙이려 애썼다. 그러나 아직 너무 많은 부분이 비어 있었다. 이 도시가 생긴 밤, 이 여자의 울음, 세레나의 탄생. 그리고 지금 이 도시가 재앙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는 존재.

"저기……."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여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답했다.

"녹사."

"녹사 씨."

"그냥 녹사라고 불러도 돼요."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수연이에요."

"알아요."

"저를 아세요?"

"이 도시에 도착한 첫 시민이잖아요. 다들 알아요."

수연은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자신이 이 도시에서 그런 식으로 불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저기, 물어봐도 될까요."

"뭐든지요."

"광장에서 그 아저씨 구하실 때요.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순간에 나타나셨어요?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잖아요."

녹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리가 들려요."

그 두 음절마저 살짝 뭉개져, 마치 바람이 옆으로 새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소리요?"

"사람이 무너지기 직전에, 아주 작게 새는 소리가 있어요. 본인도 못 듣는 소리예요. 너무 오래 참아서, 이미 익숙해져 버린 비명 같은 거요."

수연은 그 말에 오싹함을 느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저는 그냥…… 대신 질러줘요. 그 사람이 못 지르는 비명을요."

"그게 그 밤마다 들리는 소리예요?"

녹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면, 저는 그걸 먼저 느껴요. 그리고 참을 수가 없어서 대신 울어요."

"그럼 밤마다 누군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거예요?"

"매일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요즘은…… 좀 잦았어요."

수연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시가 재앙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그 소리가, 사실은 이 도시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경보였다는 것.


식사를 마친 녹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어요."

"또 와라."

라면사장이 짧게 말했다.

녹사는 그 말에 순간 멈칫하더니, 아주 오랜만에 듣는 말인 듯 눈시울이 옅게 붉어졌다.

"……그래도 될까요?"

"여기는 아무도 쫓아내지 않는다."

그 대답에 녹사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수연은 무심코 창밖으로 그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했다. 진홍 망토가 골목의 눈발 속을 몇 걸음 걸어갔다. 그리고 —

사라졌다.

모퉁이를 돈 것이 아니었다. 어둠에 묻힌 것도 아니었다. 열기 위에 뜬 신기루가 스러지듯, 윤곽이 흐려지더니 그대로 공기 속으로 풀려 없어졌다. 망토 자락이 마지막으로 한 번 펄럭인 것 같기도 했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

수연이 창문에 바짝 붙었다. 골목에는 발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지붕들 너머의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달이 붉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 희었던 달이, 잘 우러난 국물처럼 은은한 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하늘에서, 그 붉은 달만이 조용히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 사장님. 저거. 달이."

수연이 더듬거리며 창밖을 가리켰다. 그러나 라면사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많이 울 모양이군."

"……네?"

"달이 저러면, 저 사람이 그만큼 많이 짊어지고 갔다는 뜻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말하는 어조였다. 비아도 카운터 위에서 붉은 달을 올려다보며, 놀라기는커녕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울보는 원래 저렇게 다닌다……이다. 걸어서 온 게 신기한 거다……이다. 오늘은 예의 차린 거다……이다."

수연은 창밖과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사람이 신기루처럼 풀려 사라지고 달이 붉게 물드는 광경 앞에서, 이 가게의 둘만은 국그릇 정리하듯 태연했다.

"……저 사람, 사람이 아니구나."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물음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라면사장은 그 말에 잠시 손을 멈췄다.

"사람이 아니면 뭐가 되나."

"그건 모르겠는데…… 방금 그건 사람이 하는 게 아니잖아."

"……"

"사장님도 알고 있었지. 처음부터."

라면사장은 대답 대신 마른 행주로 카운터를 닦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부정이 아니었다.

"저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명이 다쳐 쓰러지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존재다."

그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쓰러지기 전에 나는 소리를 듣고, 본인이 못 지르는 비명을 대신 질러준다. 그게 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저 사람의 전부다. 사람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고통이랑 비명의……."

수연은 어떤 단어를 입에 올리려다가, 멈췄다. 신(神)이라는 글자가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어쩐지 소리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라면사장도, 비아도 그 단어를 채워주지 않았다. 다만 비아가 붉은 달을 올려다보며 작게 덧붙였을 뿐이었다.

"이 가게에는 원래 그런 손님이 많다……이다."

그 말이 손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걸, 수연은 어렴풋이 느꼈다. 국자를 젓는 저 남자도, 카운터 위의 이 토끼 후드도, 어쩌면 이 가게 자체도. 그러나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오늘 밤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던 몇몇 손님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저 사람이 진짜 그 밤의 울음소리예요?"

한 손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

라면사장이 답했다.

"근데 왜 그렇게 무서운 취급을 받아요? 오늘 보니까 그냥……. 슬퍼 보이던데."

"슬픈 것과 무서운 것을, 사람들은 종종 헷갈린다."

그 대답에 손님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잠시 자기 그릇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조용히 국물을 마저 비웠다.

수연은 그 대화를 들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왜 하필 녹사 씨가 그 소리를 듣게 된 거예요?"

라면사장은 그릇을 정리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

"누군가는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근데 왜 하필 그분이냐고요."

"그건…… 이 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이어진 이야기다. 나중에, 녹사가 직접 말하고 싶어 할 때 듣는 게 맞다."

수연은 그 대답에 더는 캐묻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보다, 언젠가 녹사 본인의 입으로 듣는 편이 맞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했다.


가게 문을 닫은 뒤, 비아가 카운터에 걸터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드디어 왔다……이다."

"오래 기다렸어?"

수연이 물었다.

"항상 기다렸다……이다. 근데 저 사람은 항상 자기가 여기 오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이다."

"왜?"

"자기가 슬픔 데려온다고 생각하니까……이다. 근데 슬픔도 손님이다……이다. 다른 거랑 똑같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자신이 목격한 것은 재앙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채 도시의 가장자리를 떠돌던 한 존재가 처음으로 문턱을 넘는 순간이었다.

라면사장은 마지막으로 녹사가 앉았던 구석 자리를 정리하며, 아주 오랜만에 조금은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엔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겠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아주 오래 미뤄왔던 무언가가 마침내 시작되었다는 안도가 담겨 있었다.

소예가 그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저 오늘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근데 지금은 그냥…… 마음이 아파요. 저도 이상해요?"

"이상한 거 아니다."

"근데 왜 처음엔 무서웠을까요?"

"몰라서 그랬다. 이제 알았으니 다음엔 안 그럴 거다."

소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사이, 그녀 안에서 재앙이라는 이름이 서서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처음 문이 열렸을 때의 그 얼어붙던 순간이, 이제는 조금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연은 가게 문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창밖 골목을 내다보았다. 오늘 밤은 유독 조용했다. 하늘의 달은 어느새 다시 희게 돌아와 있었다. 아까의 그 붉은빛이 꿈이었나 싶을 만큼 태연한 얼굴로. 어쩌면 오늘은,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너지던 누군가가 조금은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사가 대신 질러준 비명 덕분에.

그녀는 문득 자신의 후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이 도시에 도착한 첫 시민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다르게 다가왔다. 자신이 제일 먼저 왔다는 건, 어쩌면 이 도시가 앞으로 맞이할 모든 존재들 — 재앙이라 불리든, 괴물이라 불리든 — 을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 무게를 이제 막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가, 앞으로 이 가게의 문턱을 넘게 될 수많은 이름들과 함께 조금씩 나눠지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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