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7화. 붉은 망토

사흘째 되는 날 오후, 광장에서 그 일이 벌어졌다.

수연은 마침 배달을 마치고 광장을 가로지르던 참이었다. 평소라면 활기로 가득할 시간이었지만, 요 며칠 도시는 눈에 띄게 조용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필요한 볼일만 서둘러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광장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휘청였다.

중년의 재단사였다. 며칠째 밤잠을 설쳤는지 얼굴이 창백했고, 걸음이 눈에 띄게 불안정했다. 그는 몇 걸음 더 걷다가 갑자기 무릎이 꺾이며 그대로 쓰러지려 했다.

"어어……!"

주변 사람들이 놀라 다가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붉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수연은 그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다. 다만 한순간, 진홍색 망토 자락이 시야를 스쳤고, 다음 순간엔 그 여자가 재단사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여자였다. 오렌지빛이 도는 단발머리가 바람에 흩날렸고, 입가 양쪽에는 오래되어 흐릿해진 꿰맨 흔적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마치 한때 입이 억지로 다물려 있었던 흔적처럼.

"괜찮아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사람을 안심시키는 데가 있었다. 재단사는 초점 잃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여자는 능숙하게 그의 머리를 받쳐 바닥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 손놀림에는 오랜 시간 반복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익숙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이런 순간을 수백 번, 수천 번 겪어본 사람처럼.

"쓰러졌다! 재앙이 왔어!"

누군가의 외침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몇몇은 아예 등을 돌려 달아났고, 상점 주인들은 서둘러 문을 걸어 잠갔다. 진홍 망토의 여자는 그 소란 속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쓰러진 재단사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의사를 불러야 해요."

그녀가 주변을 향해 말했지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다들 멀찍이서 손가락질만 할 뿐이었다.

"저 여자가 뭔가 한 거 아냐?"

"입가 저거 봤어? 무서워……."

"재앙의 전조가 사람 모습으로 온 거래."

여자는 그 말들을 다 듣고 있으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하다는 듯, 담담하게 재단사의 상태를 살필 뿐이었다.

수연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

"제가 도울게요."

여자가 고개를 들어 수연을 바라보았다. 처음 마주한 눈빛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고마워요."

두 사람은 함께 재단사를 근처 그늘로 옮겼다. 세레나가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도 도착했다. 재단사는 단순 과로와 탈진이었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 두려움에 식사도 거른 탓이었다.

상황이 정리될 즈음, 수연이 여자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붉은 망토 자락만이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얼핏 보였다.


"봤어? 그 여자?"

가게로 돌아온 수연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물었다.

"뭘 봤나."

"광장에서 사람이 쓰러졌는데, 누가 순식간에 나타나서 받아줬어. 근데 사람들이 다 도망가더라고. 재앙이라면서."

라면사장의 손이 아주 잠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사람 어떻게 생겼나."

"키 크고, 오렌지색 단발머리에, 진홍색 망토. 그리고……." 수연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입가에 뭔가 흉터 같은 게 있었어. 꿰맨 자국처럼."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몸을 움찔했다.

"……왔다……이다."

"뭐가?"

비아는 대답하지 않고 라면사장을 올려다보았다. 라면사장은 냄비 속을 들여다본 채 아주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장님, 그 사람 알아?"

"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누군데?"

"그건 지금 말할 수 없다."

"또 그 소리야."

"이번엔 정말 조심스러운 얘기다."

수연은 답답했지만, 라면사장의 표정에서 평소와는 다른 진지함을 읽었다. 장난도, 회피도 아닌, 무언가를 신중하게 지키려는 얼굴이었다.


세레나가 순찰 도중 상황을 전해 듣고 광장으로 달려왔을 땐 이미 재단사가 안정을 되찾은 뒤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흩어진 자리를 둘러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이렇게 됐네요."

"또요?"

수연이 물었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분이 누군가를 도우면, 사람들은 늘 도망부터 가요."

"왜요? 분명 좋은 일을 한 건데."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니까요. 갑자기 나타나서, 손을 대고, 사람이 쓰러진다. 그 순서만 보면 무섭게 느껴질 수 있죠. 그 손이 오히려 붙잡아준 손이라는 건,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거고요."

세레나는 그 말을 하며 광장 저편, 그 여자가 사라진 골목을 잠시 바라보았다.

"저분을 아세요?"

"조금은요."

"어떤 사람인데요?"

세레나는 옅게 웃었다.

"오늘은 제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에요. 사장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수연은 그 대답에 더 궁금증이 커졌지만, 세레나의 단호한 눈빛 앞에서 더 캐묻지 못했다.

그날 밤, 광장에서 있었던 일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에 퍼졌다. 소문은 부풀려지고 왜곡되며 점점 더 무서운 이야기로 변해갔다.

"쓰러진 사람한테 손을 댔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대."

"입에서 꿰맨 자국이 벌어지면 저주를 내린다더라."

"그 밤의 울음소리, 그 여자가 내는 거였대."

수연은 그 소문들을 들으며 점점 화가 났다. 자신이 직접 본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 여자는 재단사를 해치려던 게 아니라, 누구보다 먼저 그를 도우려 했던 사람이었다.

"이거 완전 왜곡됐잖아."

가게에서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던 그녀가 소예에게 말했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오히려 그 사람이 재단사 아저씨 목숨 구한 거잖아요."

"근데 왜 다들 무서워하지?"

"모르는 거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요. 게다가 저 밤 소리랑 겹치니까 더 그런 거 같고."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 라면사장이 아이에게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모르니까 무서운 거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마왕도 그날 저녁 가게에 들러 소문을 전해 듣고는 코웃음을 쳤다.

"인간들이란 늘 그렇지. 구해준 손보다 놀란 자기 심장을 더 오래 기억한다."

"당신도 옛날에 그런 취급 받아봤어요?"

"내가 다스릴 때는 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니, 입장이 반대였지. 그래도 원리는 같다. 정체를 모르면 일단 두려워하고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오해가 풀려요?"

마왕은 잔을 기울이며 잠시 생각했다.

"시간이다. 그것도 그냥 시간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계속 서 있는 시간. 도망가지 않고."

그 말은 어쩐지 라면가게 자체를 가리키는 말 같기도 했다. 아무도 캐묻지 않고, 그저 매일 같은 자리에서 문을 여는 곳.


라면사장은 그날 밤, 평소보다 오래 가게 앞을 서성였다. 문을 잠그지 않은 채, 골목 저편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거야?"

수연이 다가와 물었다.

"……아니다."

"근데 왜 안 들어가?"

라면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도시 경계 쪽, 그 낮고 긴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여자, 오늘 밤에도 올까?"

"모른다."

"온다면?"

"……그때 가서 생각한다."

수연은 그 대답에서 뭔가 복잡한 감정을 읽었다. 두려움도 아니고, 반가움도 아닌, 오랫동안 미뤄온 마주침을 앞둔 사람의 얼굴.

한참을 서 있던 라면사장은 결국 문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은, 그 붉은 망토의 여자가 가게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볼도는 그날 밤 순찰 중 우연히 그녀와 마주쳤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그 여자분 봤어."

"어디서?"

"경계 쪽. 그냥 가만히 서서 도시 쪽을 보고 있더라고."

"뭐라고 안 하셔?"

"그냥…… 눈이 마주쳤는데, 살짝 고개를 숙이더라. 인사처럼."

"무섭지 않았어?"

볼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안 무서웠어. 오히려…… 되게 지쳐 보였어. 오래 서 있었던 사람처럼."

수연은 그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도시 전체가 재앙이라며 두려워하는 존재가, 정작 가장 가까이서 마주친 사람에게는 그저 지친 얼굴로 남아 있었다는 것.

"근데 인사는 왜 했을까?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없이."

"그냥…… 반가웠던 거 아닐까. 나도 무섭다고 도망 안 갔으니까."

"그것만으로?"

"그거면 충분한 사람도 있는 거지. 도망 안 가는 사람 하나."

수연은 볼도의 그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며칠째 온 도시가 등을 돌리는 존재에게, 그저 도망가지 않는 것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였을지 짐작이 갔다.


다음 날 아침, 재단사가 완전히 회복해 다시 가게를 찾았다.

"그 여자분한테 감사 인사도 못 드렸는데……. 어디 사시는지 아세요?"

그가 물었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괜찮아요. 다들 무서워하는 눈치던데, 저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제가 넘어질 때 정확히 그 순간 받아주셨거든요. 마치 제가 쓰러질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말에 수연은 순간 멈칫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표현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원래 그런 사람이다."

아무도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수연만은 그 목소리에 담긴 오래된 안타까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확신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소문난 그 붉은 망토의 여자와, 이 라면가게 사이에는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재단사가 돌아간 뒤, 수연은 카운터를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왜."

"나 그 사람 눈빛 봤어. 재단사 아저씨 쓰러졌을 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정확히 받아냈거든. 마치 몇 번이고 연습한 것처럼."

"……그랬을 거다."

"그게 무슨 뜻이야?"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골목 안쪽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그런 순간들만 지켜봐 온 사람이다."

"쓰러지는 사람들?"

"쓰러지기 직전의 사람들."

수연은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얼마나 많은 순간을 지켜봐야, 사람이 넘어가는 그 찰나를 눈 감고도 알아챌 수 있게 되는 걸까.

"언젠가 저 사람도 이 가게에 올까?"

"올 거다."

"확신해?"

라면사장은 옅게,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아무도 쫓아내지 않는 곳이니까."

그 대답을 끝으로 그는 다시 저녁 준비로 돌아섰다. 수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도시에 아직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 있을지 가늠해보았다. 붉은 망토의 여자도, 언젠가는 그중 하나의 이름으로 이 문턱을 넘게 될 것이었다.

그날 저녁, 비아가 문가에 걸린 낡은 문고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곧이다……이다."

"뭐가?"

"그 사람이 여기 오는 날이다……이다."

수연은 그 확신에 찬 목소리에 놀라 비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비아는 더 설명하지 않고, 그저 문고리를 한 번 더 쓰다듬은 뒤 카운터 안쪽으로 총총 사라졌다. 수연은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이 가게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손님을 기다려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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