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59화. 제8수호자 (하)

실이 닿는 소리부터 달랐다.

지금까지 그 실이 내던 소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것이 마찰하는 끼익 소리였다. 그러나 검이 닿는 순간 들린 것은 전혀 다른 소리였다— 타닥, 탁, 타다닥. 마치 오래된 심지에 불이 옮겨붙어 타들어가는 소리처럼, 실이 매듭에서부터 한 땀씩 풀리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은 실이 붉은빛도 없이 그저 조용히 재가 되어, 바람에 실려 눈보라 속으로 흩어졌다.

그다음에야 시각이 그 광경을 따라잡았다. 촘촘하게 얽혀 있던 매듭들이 하나씩, 순서대로 풀려나가는 게 보였다. 처음엔 입꼬리 끝의 작은 매듭부터, 그다음엔 뺨을 파고들었던 굵은 가닥들이, 마지막엔 입술 정중앙을 가로지르던 가장 굵은 실이. 그 모든 과정이 채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일어났다.

타는 냄새가 났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아니라, 오래된 종이가 마지막으로 재가 될 때 나는 냄새— 옅고 마른, 한 시대가 끝날 때 나는 냄새였다. 수연은 그 냄새를 맡으며 이상하게도 슬픔을 느꼈다. 이 실을 만든 사람도, 어쩌면 이 냄새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풀려난 실 가닥들이 바람에 실려 눈보라 속으로 흩어지는 동안, 녹사의 뺨에 남아 있던 깊은 자국들이 서서히 아물어갔다. 오랫동안 살을 파고들었던 자리마다 옅은 흉터만 남긴 채, 피부가 제 색을 되찾았다. 그녀의 뺨 위로 흐르던 눈물도, 마침내 흐름을 멈췄다.

녹사의 입이, 몇 계절 만에 처음으로 열렸다.


터져 나온 것은 낮고 길었다.

수연이 예상했던 건 날카로운 고음이었다. 지금까지 새어 나오던 파편들이 그런 소리였으니까. 그러나 실제로 터진 것은 정반대였다— 아주 낮은 음역에서 시작해, 끊이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울림. 산이 울부짖는다면 이런 소리일 것 같았다. 오랫동안 억눌려온 것이 마침내 밖으로 나올 때, 그것은 비명이 아니라 차라리 탄식에 가까운 포효였다.

그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 잿빛 구름이 그 진동에 밀려 소용돌이치듯 갈라졌고, 그 틈으로 오랫동안 이 세계에 없었던 색이— 아주 옅은 푸른 하늘빛이 잠깐 비쳤다가 다시 구름에 덮였다. 대성당의 남은 첨탑 하나가 그 울림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그러나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폐허에 남아 있던 벽들이, 그 울림의 중심에서부터 둥근 파문을 그리며 일제히 바깥쪽으로 넘어갔다—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낮고 긴 숨결 한 번에 밀려 눕는 것처럼. 계곡 바닥 전체에 쌓여 있던 눈이 그 한 번의 날숨에 통째로 허공에 떠올랐다. 수백 번의 겨울이 겹겹이 쌓아 올린 눈이 전부, 아주 잠깐 땅에서 손을 뗀 것이었다. 무너지는 돌더미마저도 그 낮은 울음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수연은 그 자리에 선 채로, 그 소리를 온몸으로 맞았다. 그건 세레스티아가 도시를 덮었던 그 밤, 광장에서 들었던 비명과는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그때는 방어를 위한 비명, 무언가를 막아내기 위해 순간적으로 터지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지금 이 소리는 막는 소리가 아니었다. 놓아버리는 소리였다. 오래 참아온 숨을 마침내 전부 내쉬는 것 같은, 낮고 긴,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지는 해방의 울림.

레테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형사는 그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하늘이 우는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수연은 그 울림 속에서, 문득 자신이 처음 얼음의 힘에 눈떴던 밤을 떠올렸다. 그때도 자신은 참았던 무언가를 한꺼번에 터뜨렸었다. 그러나 그건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폭발이었다. 지금 녹사의 울음은 전혀 다른 결이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가 만들어내는 소리, 마침내 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만들어내는 소리. 같은 '터짐'이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다르면 전혀 다른 소리가 된다는 걸, 수연은 그 순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저릿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떨림은 이전과 달랐다. 무언가를 부순 대가로 오는 떨림이 아니라, 누군가를 온전히 풀어준 대가로 오는 떨림이었다. 그 차이가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수연은 처음으로 이 힘을 쥔 손이 조금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포효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가 스스로 물러가듯, 그 긴 울림이 조금씩 잦아들며 마침내 완전한 고요로 가라앉았다. 눈이 다시 조용히 흩날리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다른 눈이었다— 더는 무겁지 않은, 가벼운 눈이었다.


녹사가 눈을 떴다.

여전히 뺨에는 얼어붙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무너진 계단 쪽으로 걸어와, 여전히 눈밭에 무릎을 꿇고 있는 수연 앞에 섰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수연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잘 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몇 계절 만에 처음으로 내는 온전한 문장이었다. "아프게 쳤다."

수연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그 손을 붙잡았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그게 응답이다." 녹사가 말을 이었다. "네가 오늘 나에게 준 것."

수연의 눈에서 뒤늦게 눈물이 흘렀다.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듯,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죄송해요." 그녀가 말했다. "많이 아프셨죠."

"아팠다." 녹사가 담담하게 답했다. "그런데 그 아픔이, 내가 여기 계속 있다는 증거였다. 네가 나를 아프게 치지 않았다면— 나는 저 실에 먹혀서 그냥 사라졌을 거다."

레테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녹사의 뺨에 남은 흉터를 살폈다. "치료해드릴까요?"

"괜찮다." 녹사가 고개를 저었다. "이 흉터는 남겨둔다. 통각의 수호자가 흉터 하나 없이 돌아가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형사는 자신의 배낭에서 붕대를 꺼내 수연의 옆구리부터 살폈다. 여덟 번째 합에서 부딪힌 자리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그는 말없이 붕대를 감으며, 문득 예전에 자신이 놓쳤던 그 밤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는 아무도 아프게 부딪혀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 지금 이 붕대를 감는 손길에, 그는 그 오래된 후회를 조금씩 얹어 눌러 담았다.

"고마워요, 형사님." 수연이 나직이 말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형사가 붕대를 마저 감으며 답했다. "아까, 제가 소리 지른 거— 주제넘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에요."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 말 아니었으면, 저 아직도 저기 무릎 꿇고 있었을 거예요."


세 사람은 무너진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녹사는 잠시 눈을 감고, 실에 묶여 있던 그 계절들을 되짚는 듯했다.

"처음 실이 감겼을 때는," 그녀가 낮게 입을 열었다. "그냥 아무 소리도 못 내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실이 조여올 때마다,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흐려졌다. 세레나, 상담소에 오던 사람들, 광장의 얼굴들. 그게 더 무서웠다. 목소리를 잃는 것보다, 지켜야 할 이유를 하나씩 잊어가는 것."

"그런데도 안 잊으셨잖아요." 수연이 말했다.

"안 잊었다." 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마지막 하나는, 실도 못 건드렸다. 이 도시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그것만은 끝까지 남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시선을 눈 덮인 지평선 저편으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본 걸 말해주겠다." 그녀가 말했다. "실에 묶여 있는 동안에도, 그 실을 따라 그 사람의 상태가 조금씩 전해져 왔다. 통각의 수호자는 원래 그런 존재다— 묶인 자의 고통을 통해, 묶은 자의 상태를 거꾸로 읽어낸다."

"…그 나쁜 놈이, 어때요?" 수연이 물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 안에 남은 건 이제 아주 작다." 녹사가 천천히 말했다. "라면가게, 계약서, 백 그릇의 약속— 그런 것들이 남긴 자국이 여전히 있다. 그런데 그 작은 게, 끝까지 안 꺼진다. 몇 번이고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작은 불씨 하나만은 살아남는다."

레테가 낮게 물었다. "왜죠? 이유가 있나요?"

"모른다." 녹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신도 모른다. 마지막 삭제를 계속 미루고 있다— 목록엔 이미 그 항목이 올라와 있는데,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유를 계산하지 못해서, 계속 미루는 거다."


수연은 그 말을 듣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조여드는 걸 느꼈다.

라면가게, 계약서, 백 그릇의 약속. 그 단어들이 하나씩 심장에 박혔다. 그건 자신이 처음 이 세계에 흘러들어와 만난 사람의 흔적이었다. 서기관이 아니라, 라면사장이었던 시절의 흔적. 지금 그 망할 놈이 신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세계를 편집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 안에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하나로 겹쳐지지 않았다.

'…그 작은 게, 끝까지 안 꺼진다니.' 수연은 속으로 되뇌었다.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그 작은 불씨가 언젠가 그 짜증나는 새끼를 되돌릴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건 그저, 그 새끼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 마지막으로 타는 심지에 불과한 걸까. 어느 쪽이든, 그 답을 알아내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라는 걸 수연은 알고 있었다.

동시에 다른 감정도 함께 밀려왔다. 그 사람이 여전히 뭔가를 미루고 있다는 사실이, 수연에게는 이상하게도 안도가 아니라 초조함으로 다가왔다. 미룬다는 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지만, 동시에 그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속 미뤄지는 마지막 삭제라는 게,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 불씨가 꺼지기 전에, 반드시 그 사람 앞에 다시 서야 한다고 다짐했다.


"녹사 씨는 이제, 저희랑 같이 가시는 거죠?" 형사가 물었다.

녹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도시로 돌아간다."

세 사람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레테가 먼저 물었다. "왜요? 저희랑 함께 다니시면, 다른 수호자들도 힘을 더 빨리 되찾을 수 있을 텐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 녹사가 답했다. "그런데 증언대를 오래 비워두면 안 된다. 그 자리는— 원래 내가 지켜야 할 자리다. 통증이 늦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이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아무도 없으면 안 된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세레나가 요즘 혼자 그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을 거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아무도 안 시켜도, 빈자리를 보면 자기가 채운다. 그런데 그 자리는 내가 채워야 할 자리다. 세레나의 자리가 아니다."

"내 자리는 증언대다." 그녀가 다시 한번, 이번엔 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연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다음에 그를 만나면, 나한테 한 것처럼 해라."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아프게. 그게 그 사람한테 남은 마지막 감각일 거다."

수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프게 치라는 말이, 이제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그건 미움도 복수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직 그 새끼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감각을 흔들어서라도 그 새끼를 붙잡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네."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녹사는 몇 계절 만에 처음으로 자유로워진 두 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세레나가 걱정하고 있을 거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돌아가서, 그 쪽지에 대한 답을 직접 해줘야지."

"어떤 답이요?" 레테가 물었다.

"내가 이겼다는 답." 녹사가 짧게 답했다. "붙잡히지 않고 걸어갔고, 걸어간 자리에서 이겼다는 답."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니 어쩌면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통각의 수호자에게도 웃음이 있다는 걸, 수연은 그 순간 처음 알았다.

녹사는 폐허가 된 대성당을 등지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밭 위에 남는 그녀의 발자국은, 예전 광장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깊고 곧았다. 붙잡혀 끌려가는 자국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가는 자국이었다.

"몸 조심하십시오." 형사가 그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이나." 녹사가 돌아보지 않은 채 답했다. "다음 수호자는 더 굵은 실을 두르고 있을 거다. 나는 여덟 번째였다. 위로 갈수록, 나보다 오래된 존재들이다."

"몇 명이나 더 남았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녹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답했다. "둘. 그리고 그 둘 중 하나는— 아마 실조차 필요 없을 거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묻기도 전에, 그녀의 모습은 이미 눈보라 저편으로 절반쯤 흐려져 있었다. 세 사람은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봤다. 손끝에는 아직 신살의 힘을 쓴 여운이 저릿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 저림이 처음으로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수연은 문득 비아를 떠올렸다. 지금쯤 도시에서,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의 빈자리를 붙잡고 있을 그 작은 아이. 녹사가 돌아가 세레나 곁에 서면, 비아도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수연은 그 생각을 하며 후드를 가만히 매만졌다. 이 여정이 길어질수록, 도시에 남겨둔 것들의 무게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가자." 수연이 마침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다음 수호자 만나러."

후드의 온기가, 이미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번엔 차가운 쪽이 아니라, 서서히 다시 따뜻해지는 쪽이었다— 마치 이 여정의 다음 상대는, 적어도 슬픔으로 가득 찬 존재는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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