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45화. 형사의 옛 현장

소므니움이 넘겨준 좌표는 꿈의 형태로 왔다. 손에 쥘 수 없는, 그러나 눈을 감으면 방향이 보이는 종류의 지도였다. 형사는 그 방향을 따라 걸으며 몇 번이고 나침반 대신 자신의 감각을 확인했다 — 오랜 현장 경험이 만들어준 버릇이었다. 걸음의 리듬, 바람의 각도,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뒷목의 서늘함.

사흘째 되는 날 저녁, 문이 하나 나타났다.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나무 문이었지만, 손잡이를 쥔 순간 형사는 아주 잠깐 손끝이 저릿한 걸 느꼈다. 마치 오래전에 만졌던 물건을 다시 만졌을 때처럼.

"…이 손잡이, 낯익습니다."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레테가 그 말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낯익다는 게, 정확히 어떤 느낌이에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 예전에 제 손이 이 각도로, 이만큼의 힘으로 문을 밀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연은 그 대화를 들으며 형사의 옆얼굴을 살폈다. 평소 같으면 곧장 문을 밀고 들어갔을 사람이 손잡이를 쥔 채 잠시 멈춰 있었다. 그 잠깐의 정지가, 그녀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형사가 답했다. 그러고는 문을 밀었다.


문 너머는 조용한 주택가였다. 낮은 담장을 두른 이층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저녁 하늘은 옅은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어딘가에서 저녁밥 짓는 냄새가 옅게 실려 왔다 — 된장인지 카레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옅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생활의 냄새였다.

세 사람은 골목 어귀에 서서 잠시 주변을 살폈다. 겉보기엔 아무 이상 없는 저녁이었다. 아이들 몇이 골목 끝에서 공을 차고 있었고, 자전거를 끌고 가는 노인이 그들에게 짧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형사의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골목 중간의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낮은 대문, 손질이 잘된 화단, 그리고 그 앞에 세워진 차 한 대.

"…저 차."

그가 말했다.

"매일 저녁 이 시간에, 저 자리에서 후진합니다."

수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 이상해? 원래 사람들 매일 같은 시간에 차 빼잖아."

"이상한 게 아니라." 형사가 정정했다. "제가 어떻게 알았느냐가 이상합니다. 저는 이 골목에 처음 왔습니다. 그런데도 저 차가 몇 시에, 어느 각도로, 얼마나 천천히 후진할지가 — 마치 이미 본 적 있는 것처럼 몸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때 정확히, 그 집의 대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차에 올랐다. 시동이 걸리고, 차가 천천히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미러를 확인하는 남자의 손짓,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떼는 리듬, 룸미러 각도를 조정하는 순서까지 — 형사의 몸이 그 모든 동작을 예측이라도 한 듯 미리 긴장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차는 무사히 골목으로 빠져나갔고, 마당에서 놀던 아이는 애초에 그 근처에 없었다. 남자는 창문을 내려 옆집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는,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형사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레테가 그의 옆에 조용히 다가섰다.

"뭔가, 기대하신 게 있으셨어요?"

"…모르겠습니다." 형사가 답했다. 그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평소보다 낮았다. "다만 제 몸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오지 않아서 — 이상하게 허전합니다."

한참 뒤에야, 그는 그 기시감의 출처를 찾아냈다.

"…아니. 이건 제 기억이 아닙니다. 제가 맡았던 사건입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오래전, 후진하는 트럭에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고의 영상을 수십 번 돌려봤습니다. 운전대를 쥔 손짓, 브레이크의 리듬, 트럭이 사각에서 나타나는 각도까지— 화면이 몸에 새겨질 만큼요.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그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 일어났던 적이 없는 걸로, 지워진 모양입니다."

레테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가 지운 것은 형사 자신의 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평생 들여다봐온 남들의 지옥까지도, 여기서는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골목을 따라 걸었다. 어느 순간, 거리 끝에 하얀 건물이 보였다. 병원이었다. 낮고 오래된 건물, 응급실 표시등이 붉게 켜져 있었다.

형사가 그 건물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이번엔 손끝이 아니라 발이 먼저 반응했다 — 그는 자신도 모르게 건물 정문이 아니라 옆문, 응급실 통로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발이 길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안으로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옅게 감돌았다. 복도는 조용했다. 형광등 하나가 아주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고, 그 리듬이 초 단위로 일정했다. 벽에 걸린 안내판, 진료 시간표, 그리고 복도 끝의 문 하나.

형사는 그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에는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 302호. 그러나 그 옆의 환자 이름표는 비어 있었다. 새것도 아니고, 지운 흔적도 없이, 그냥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여기, 누가 있었어야 합니다."

형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확신이 아닌 흔들림이 섞였다.

"어떻게 아세요?" 레테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 제 두 손이, 이 문 앞에서 뭘 했었는지를 기억합니다. 문고리를 붙잡고, 안으로 못 들어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던 감각이요."

지나가던 간호사에게 수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302호에 누가 있었느냐고. 간호사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302호요? …글쎄요. 저희 병동은 원래 그 방을 잘 안 씁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별다른 의문 없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치 방금 자신이 무언가를 놓쳤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사람처럼.


복도 끝, 302호의 문이 스르륵 닫혔다. 안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며 만든, 아주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형사에게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오랫동안 현장을 읽어온 그의 눈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 읽을 게 없었다. 사건이 있었다는 흔적은 그의 몸 안에만 남아 있었고, 이 세계의 어디에도 그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레테가 그의 곁에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문이 닫힌 자리를 함께 바라봤다.

한참 만에 형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게, 제가 못 한 방식의 정의였군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그러나 그 건조함 밑에, 그가 평생 눌러온 무언가가 아주 조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레테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답했다.

"당신이 한 방식은 기억에 남았고, 이건 안 남았어요. 어느 쪽이 정의인지는 — 남은 쪽만이 물을 수 있어요."

형사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는 평생 사건을 종결시키는 일을 해왔다. 종결이란, 그에게 언제나 기록되는 것이었다 — 판결문에, 조서에, 누군가의 기억에. 그런데 여기, 이 조용한 병원 복도에는 종결조차 없었다. 애초에 사건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수연은 그런 형사를 처음 봤다. 언제나 흔들림 없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신이 딛고 선 바닥의 재질을 다시 확인하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의 옆에 조용히 함께 서 있기로 했다.


병원을 나서는 길, 정문 앞 화단 옆에 좌판을 펼친 노점상이 눈에 띄었다. 꽃을 파는 노파였다. 흰 국화와 노란 프리지어가 나란히 놓인 좌판 옆에서, 그녀는 저물어가는 손님들에게 꽃을 정리해 건네고 있었다.

레테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노파는 삼십 년 넘게 이 병원 앞에서 꽃을 팔아온 사람이었다 — 문병객에게는 쾌유를 비는 꽃을,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이들에게는 국화를 나눠 팔며 이 자리를 지켜온 세월이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이 병원을 드나드는 슬픔과 안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었을 터였다.

"302호요?" 노파가 되물었다. 형사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방, 이상하게 늘 비어 있었죠. 손님들도 그 앞에서 꽃을 안 사시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거기 앞을 지날 때마다, 뭘 사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할까."

"쾌유를 비는 꽃도, 애도하는 꽃도 아니라는 겁니까." 형사가 물었다.

"그러게요." 노파가 옅게 웃으며 국화 한 송이를 매만졌다. "이상하죠. 삼십 년을 여기서 꽃을 팔았는데, 저 방 앞에서만은 뭘 팔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치 저 방엔— 축하할 일도, 슬퍼할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은 채 다시 손님을 향해 몸을 돌렸다. 형사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삼십 년간 슬픔의 곁을 지켜온 사람조차, 정작 그 방 앞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슬픔을 팔아온 손이 슬픔을 감지하지 못하는 유일한 자리 — 그것이 이 세계가 지워버린 것의 정확한 모양이었다.

"…꽃집 할머니도 모르는군요." 수연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그냥 없었던 셈 치는 거잖아."

"없었던 셈이 아니라." 형사가 정정했다. "있었는데,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없는 겁니다. 미묘하지만 다른 겁니다."

레테는 그 구분을 잠자코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그렇게 병원 앞을 떠나,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병원 근처 공원에 자리를 잡고 야영 준비를 했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는 동안, 형사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수첩을 폈다가, 아무것도 적지 않고 다시 덮기를 몇 번 반복했다.

수연이 슬쩍 그 옆에 앉았다.

"…괜찮아?"

형사는 대답 대신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유난히 선명한 밤이었다. 이 세계에는 빛 공해가 없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수연 씨."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응." 수연이 짧게 답했다.

형사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총이나 칼 앞에서도 흔들린 적 없던 그 손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 눌러왔던 목록을 꺼내기로 했다. 낱개로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소리 내어 순서대로 말해본 적은 없는 목록이었다. 그는 그 목록의 무게를 알았다 — 하나씩 꺼낼 때마다, 그 무게가 자신을 짓누를 거라는 것도. 그러나 오늘, 이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복도를 본 뒤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기록하고 싶어졌다.

"제가 그 사람을 두 번 다시 못 볼 거란 공포."

그가 첫 항목을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제가 가해자를 제 손으로 끝내던 그 밤의 죄책감."

두 번째 항목. 이번엔 목소리가 아니라 어깨가 흔들렸다. 그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그 위에 이마를 살짝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복역하며 매일 아침 후회할 자유."

세 번째. 이 항목을 말할 때,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옅은 자조가 스쳤다. 자유라는 단어와 후회라는 단어가 그렇게 나란히 놓일 수 있다는 걸, 그는 그 감옥 안에서 배웠다.

"출소한 뒤 아무도 안 반겨주던 그 골목의 냉기."

네 번째.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두 손을 마주 쥐었다. 그 손이 십 년도 더 전에, 텅 빈 골목에서 얼마나 시렸는지가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 그 모든 것 끝에, 여기로 걸어오게 만든 부탁 한 장."

다섯 번째, 마지막 항목. 그는 코트 안쪽, 오래전부터 품고 다니던 그 낡은 메모의 자리를 손끝으로 짧게 짚었다. 실제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미 그 종이의 감촉이 손끝에 새겨져 있었으므로.

그는 다섯 항목을 다 읊고 나서, 오랫동안 침묵했다. 수연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불을 살피던 레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비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다섯 개의 무게가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이 중 하나라도 없었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니 전부 돌려받겠습니다. 전부 다요."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다섯 개의 상처를 하나씩 이름 붙여 다시 자기 손에 쥔 사람의 목소리였다.

수연은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저 병원 복도의 텅 빈 이름표를 떠올렸다. 이름이 없으면 아픔도 없다. 그러나 아픔이 없으면, 저 다섯 개의 항목도 없었을 거고 — 저 다섯 개가 없었다면, 지금 자기 옆에 앉은 이 사람도 없었을 거였다. 그 망할 놈은 대체 무슨 계산으로 이런 걸 지워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형사의 어깨를 가만히 한 번 두드렸다.


밤이 깊어지고, 수연은 먼저 자리를 잡고 눕겠다며 두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정확히는, 오늘 형사가 꺼낸 이야기의 다음 장이 자신이 아니라 레테를 향한 것임을 눈치챈 배려였다.

불가에 형사와 레테, 둘만 남았다. 장작이 타는 소리와 이따금 부는 바람 소리 외에는 고요했다.

"…레테 씨." 형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제가 잊었던 걸 갖고 계셨죠."

"네." 레테가 답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걸 다시 당신께 돌려드렸고요. 당신이 그 무게를 다시 들 수 있다고 판단했을 때요."

"그때는 제가 그 무게의 전부를 아직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형사가 낮게 말했다. "오늘, 저 병원 복도를 보고 나서야 알겠습니다. 제가 돌려받은 게 정확히 뭐였는지."

레테는 잠자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형사는 불빛을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 이름을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한서윤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그 이름 앞에서 아주 잠깐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제 연인이었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렸고, 웃을 때 눈이 거의 감기다시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호숫가에서 김밥이 터지면 '터진 게 아니라, 속이 후한 거야'라며 웃던 사람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파티에서 약물에 당했고, 원치 않은 임신이었고, 가족과 종교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그 결혼을 밀어붙였습니다. 그 사람은 결혼식 전까지, 저한테 그 진실을 끝내 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호숫가에서 그 사람을 놓아줬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 사람은 몇 해 뒤, 아이를 가진 채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병원과 보험사와 법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에요. 서류에는 '14 영업일 처리 기준'이라는 말만 남았습니다. 남편은 끝까지 그 곁을 지켰습니다. 곁을 지키고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복도에조차 제때 서 있지 못했습니다."

레테는 아무것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람이 저한테 남긴 마지막 말은, 병원이 아니라 호숫가에 있습니다. '제발, 너 자신 좀 챙겨줘. 제발, 잘 지내야 돼.'" 형사가 그 말을 옮겼다. "그게 다였습니다. 원망도,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고 — 저더러 잘 지내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두 마디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가지 마'와, '잘 살아'. 저는 '잘 살아'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 사람의 부탁을 지킨 날이 없습니다. 매일 슬퍼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 제 평생이 됐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레테는 그 말을 오래 곱씹듯 침묵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망각을 다루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알아요 — 사람이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붙잡고 사는지를요. 당신은 그 말을 지키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은 그 말을 가장 오래 지켜온 거예요. 슬픔을 놓지 않는 것도, 어떤 이들에게는 약속을 지키는 방식이니까요."

형사는 그 말에 처음으로, 아주 옅게 웃었다. 슬픔이 섞인 웃음이었지만, 분명 웃음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저도 방금 생각났어요." 레테가 답했다. "당신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불을 바라봤다. 잃은 것을 다루는 두 사람 사이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동료애 같은 것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남자를 제 손으로 끝냈을 때." 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그 밤의 일은, 저 자신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정전 같은 어둠과, 두 번의 둔탁한 소리와, 세 번의 거친 숨소리—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오랫동안, 제가 정의를 실현했다고 믿으려 했습니다. 오늘 저 병원을 보고 나니, 잘 모르겠습니다. 정의라는 게, 기억하는 쪽에만 존재하는 개념이라면 — 저는 정의를 실현한 게 아니라, 그냥 기억할 자리를 하나 만든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요?" 레테가 조용히 답했다. "이 세계처럼 자리조차 없는 것보다는요."

형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어깨에서 무언가 하나가 아주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내일은," 그가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다음 좌표로 이동해야겠군요."

"네." 레테가 답했다. "서윤 씨가 남긴 부탁은 잘 지내라는 거였지만 — 오늘 밤 정도는, 슬퍼하셔도 될 것 같아요."

형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불빛을 오래 바라보며, 그날 밤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감추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잠든 척 누워 있던 수연은, 그 대화의 끝자락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오늘 밤 형사가 보여준 균열이, 약함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건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단단히, 얼마나 오래 혼자서 버텨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밤하늘의 별은 여전히 낯설게 밝았다. 그러나 그 밑에서, 세 사람의 야영지만큼은 조금 전보다 훨씬 따뜻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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