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31화. 신들의 전쟁
쪽지 사건 다음 날 밤, 가게에서는 늦도록 그 문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형사와 수연, 비아, 세레나까지 모두 카운터에 둘러앉아 "아흔"이라는 숫자를 놓고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어? 별이 왜 저래요?"
파빌라의 목소리였다. 카운터 옆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가 문득 창밖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봤다.
평소 도시의 밤하늘은 별들이 제각각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별들이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늘 전체를 한쪽으로 쓸어내리는 것처럼, 별빛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유리창에 손을 대자 이상하게도 서늘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세레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순환이 당겨지고 있어요. 누가 시간의 흐름을 감는 거예요."
그녀가 낮게 말하며 반사적으로 자기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도시의 연대기를 기록할 때 늘 차고 다니는, 이 도시의 흐름과 직결된 낡은 시계였다. 초침이 갑자기 거꾸로 반 바퀴 돌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튕겨 돌아왔다. "이런 적, 없었는데."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밤하늘 저편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이 커다란 구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형체가 서서히 도시 전체를 가릴 만큼 커지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구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반투명한 촉수들이 별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촉수들은 물속을 부유하듯 느리게 흔들렸고, 중심에는 둥근 갓 모양의 거대한 형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해파리였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뒤덮을 만한 크기의.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 자체가 젤리처럼 무겁게 출렁였고, 차가운 기운이 안개처럼 번져 거리 곳곳의 등불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시장 상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아이들은 부모의 옷깃을 붙잡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노점의 등불들이, 그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게 안에서도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숨을 죽였다.
"…세레스티아." 비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오랜 기억을 다시 마주한 사람 특유의 떨림이 있었다. "순환의 수호자다……이다."
녹사가 그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녀는 지붕 위로 뛰어올라,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수호자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거대한 형상을 좀 더 자세히 살피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눈이 없다." 낮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붙잡혔다."
그 말의 의미를 다들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녹사의 표정에서, 이것이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전해졌다.
형사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전원 지하로." 그가 가게 손님들을 향해 소리쳤다.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그 침착함 안에는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서두르지 마시고, 순서대로 이동해주십시오."
손님들이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의 지시를 따랐다. 형사는 문가에 서서, 한 사람씩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며 대피를 유도했다. 예전 형사 시절의 현장 통제 능력이, 지금 이 순간 고스란히 발휘되고 있었다.
"파빌라, 너도." 그가 말했다. 파빌라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형사의 단호한 눈빛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지하로 향했다.
수연은 창밖의 그 거대한 존재를 오래도록 노려봤다.
"…저게 뭐길래 저렇게 무섭게 생겼어."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비아가 그녀 옆에서 대답했다. "세레스티아는 원래 무섭지 않다……이다. 순환을 지키는 수호자다. 시간이 부드럽게 흐르도록, 생과 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돕는 존재다……이다."
"근데 지금은?"
비아는 잠시 침묵했다. "지금은, 그 힘이 반대로 쓰이고 있다……이다. 흐르게 하는 힘이, 멈추게 하는 힘으로."
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자기 검을 고쳐 쥐었다. "…그러니까 저것도, 나쁜 새끼가 시켜서 저러는 거네."
"그렇다……이다."
수연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럼 나도 준비해야겠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후드를 챙겨 썼다. 온기는 여전히 희미하게만 남아 있었지만, 그 익숙한 무게가 그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형사는 마지막 손님까지 지하로 대피시킨 뒤, 잠시 가게 안을 둘러봤다. 카운터, 낮은 의자들, 붉은 테두리 그릇. 이 모든 것들이 무사하기를, 그는 조용히 바랐다. 그는 국자 대신 낡은 코트 안주머니의 메모를 한 번 매만졌다. "내 토끼를 부탁해." 그 부탁을 지키기 위해, 그는 이 도시도 지켜야 했다. 부탁은 언제나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 지키다 보면, 지켜야 할 것들이 계속 늘어났다.
그는 코트를 걸치고, 광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세레나는 광장으로 걸어가며, 도시 창세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도시가 처음 생겨나던 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설원에서 라면사장과 처음 마주쳤었다. 그 뒤로 이 도시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했고, 수많은 하루가 쌓였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순환을 관장하던 존재가 하늘 위에서 무기가 되어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사과였다. 어쩌면 이 도시 전체에게, 어쩌면 하늘 위의 저 붙잡힌 존재에게. "…가야겠습니다. 이 도시의 시간은, 제가 지켜야 하니까요."
형사와 수연, 비아가 그 뒤를 따랐다. 별빛조차 무겁게 가라앉은 그 밤, 도시는 아직 얼어붙지 않았다 — 다만 숨을 죽인 채,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신들의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세레스티아가 도시 상공에서 "생사의 호흡"을 늦추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광장에 발을 들여놓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처음엔 미세한 변화였다. 눈송이가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떨어지는 정도. 그러나 그 느려짐은 순식간에 가속됐다. 눈송이가 허공에 멈춘 듯 정지했고, 시계탑의 종소리가 늘어져 신음처럼 울렸다. 광장으로 뛰어가던 한 남자의 발이, 땅에서 반쯤 떠오른 채로 굳어버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 비명조차 느리게 늘어져 거의 들리지 않는 저음으로 변했다.
세레나가 광장 한복판에 다다랐을 때, 도시의 절반은 이미 그 끈적한 시간 속에 잠식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Writer의 명령은 명확했다. 도시를 "안전한 정지"에 담그는 것. 움직임이 없으면, 위험한 선택도 없다. 정지된 사람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없고, 잘못된 선택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 그것은 가장 폭력적인 형태의 안전이었다 — 삶 자체를 멈춰버리는 방식으로.
세레나는 도시 한복판, 자신이 처음 세워졌던 그 자리 — 중앙 성당 앞 광장에 섰다. 두 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몸에서 도시 창세 당시의 금빛 문장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오래전, 라면사장이 그녀에게 건넸던 그 힘의 흔적이었다. 문장이 타오를 때마다 손끝에서 미열이 번지고, 오래된 종이가 타는 것 같은 냄새와 함께 낮은 종소리 같은 진동이 피부 아래로 스며들었다.
"이 도시의 시간은." 그녀가 외쳤다. "제 것입니다."
그 선언과 동시에, 그녀 주위로 빛의 파도가 일었다. 파도는 실체가 있는 것처럼 광장의 돌바닥을 쓸며 퍼져나갔고, 지나간 자리마다 얼어붙었던 공기가 훅 풀리며 온기가 돌아왔다. 그 파도는 세레스티아의 촉수가 만들어내는 정지의 물결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하늘이 갈라졌다. 금빛과 은빛의 빛이 서로 부딪히며, 거대한 오로라처럼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그 빛의 파도가 지나가는 곳마다, 정지되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풀려났다 —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광장 곳곳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러나 세레스티아의 힘은 거대했다. 그녀는 원래 도시 하나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순환을 관장하던 존재였다. 그녀의 촉수 하나가, 도시 동쪽 구역 전체를 다시 정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세레나의 빛이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촉수는 이미 다른 구역으로 옮겨가 있었다.
"…혼자서는 안 되겠어." 세레나가 이를 악물었다.
바로 그때, 광장 한가운데서 녹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의 붉은 망토를 천천히 열었다. 그 안에는, 그녀가 평생 삼켜온 모든 비명이 응축되어 있었다.
"이제 됐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대신 소리칠 시간이다."
녹사의 망토가 완전히 열리는 순간, 그녀 안에 쌓여 있던 비명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진동이었다. 광장의 돌바닥이 미세하게 떨리고, 창문마다 성에가 갈라지듯 잔금이 번졌다.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그 파동이, 얼어붙은 사람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정지되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레스티아의 촉수가 그 진동에 반응하듯 움찔했다. 정지의 힘이 순간적으로 약해졌다.
"…버틸 만하다." 녹사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진땀이 배어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비명을 방출하는 건, 그녀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장 곳곳에서, 도시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군밤 할머니가 자신의 화로를 챙겨 나왔다. 시계방 노인이 손전등을 들고 나섰다. 아이들이 저마다 촛불 하나씩을 들고 부모를 따라나섰다.
"뭐 하시는 겁니까!" 형사가 놀라 소리쳤다. "위험합니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세요!"
군밤 할머니는 화로에 불을 지피며 콧방귀부터 뀌었다. "예순 넘게 이 광장에서 밤을 새운 사람한테 위험하다는 말이 통할 것 같아요? 저 위에 저게 뭔지는 몰라도, 우리 도시가 저러다 통째로 잠들게 생겼으면 답은 하나예요. 우리가 안 자면 되지." 그녀는 화로의 숯을 뒤적이며 코웃음을 쳤다. "젊은 총각이 자꾸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는데, 이 불 하나 못 지피게 하면 그게 더 서운하겠수다."
시계방 노인도 손전등을 높이 들어 올렸다. "오해는 마시오. 나는 아직도 저 증언대니 저항이니 하는 것들엔 동의 못 해요. 지울 수 있는 아픔은 지워도 된다는 생각, 지금도 안 바뀌었소." 그는 잠시 하늘의 거대한 그림자를 노려보다가, 손전등을 더 높이 치켜들었다. "근데 반대는 반대고, 도시가 통째로 잠드는 건 다른 문제요. 나는 삼십 년 동안 저 시계탑 종소리만 듣고 살았어요. 오늘은 그 종이 이상하게 울리더군. 그럼 내가 대신 시간 좀 재드려야지." 그는 손전등 스위치를 딸깍거리며 낮게 웃었다. "이래 봬도 이거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불 꺼뜨리지 않는 거."
하나둘 늘어나던 불빛이, 어느새 광장 전체를 채우기 시작했다. 화로의 불꽃, 손전등의 빛, 아이들의 촛불까지. 그 작은 불빛들이 모여, 거대한 등불의 바다를 이뤘다.
그때, 그 바다 위로 하늘에서 색색의 불빛 아홉 개가 천천히 내려왔다. 이리스의 드론들이었다. 근처 지붕 위에 선 그녀가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드론들은 사람들의 등불 사이사이로 내려앉아 함께 떠다녔다 — 땅의 불빛과 하늘의 불빛이 하나로 이어지도록. "이 도시의 빛은 제 담당이에요." 그녀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매캐한 숯 냄새와 촛농 냄새가 뒤섞여 광장 위로 낮게 깔렸고,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였다.
세레나는 그 광경을 보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느꼈다. 이 도시는 혼자 지키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런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 등불의 바다를 등지고, 다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럼." 그녀가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수연은 그 순간, 이미 지붕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세레나와 녹사가 광장에서 벌이는 싸움을 곁눈질하며, 촉수 하나가 시장 골목 쪽으로 뻗어가는 걸 발견했다. 그 골목엔 아직 대피하지 못한 상인 몇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착지와 동시에 촉수 끝 하나가 얼굴로 날아들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손안의 얼음검이 그 끝을 꿰뚫고 있었다. 뽑은 기억도 없었다. 그녀의 몸은 늘 머리보다 먼저 적에게 인사부터 했다. 그녀는 검을 거두고 허공에 손을 펼쳤다. 골목 입구를 따라 얼음 방벽이 세 겹으로 솟아올라, 골목 하나를 통째로 지붕까지 덮었다. "다들 벽 안쪽으로!" 그녀가 외쳤다.
상인들이 방벽 뒤로 몸을 숨겼다. 누군가 벽을 짚으며 "무, 무대막…" 하고 더듬거렸다. 그사이 그녀의 머리 위 밤하늘에 얼음 창 수십 발이 부챗살처럼 도열했다. 손끝을 내리긋자 창들이 일제히 쏟아졌다. 밤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지만, 창은 촉수 표면에 닿는 족족 부서져 우박처럼 지붕 위로 흩어졌다.
"…그래? 그럼 큰 거."
그녀가 밤하늘 높이 손을 들어 올리자, 구름 너머에서 붉은 빛이 점화됐다. 불타는 바위 하나가 대기를 찢으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운석 소환이었다. 무대에서는 제 실드로 받아 불꽃놀이로 터뜨리던 것을, 오늘은 받을 생각 없이 그대로 내리꽂았다.
방벽 뒤에서 한 상인이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저거… 공연에서 보던 그거잖아…." 무대장치인 줄만 알았던 불꽃이 처음부터 실탄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목소리였다.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홀린 듯 그 이름을 뱉었다. "…피날레."
그러나 운석은 촉수에 닿지 못했다. 낙하하던 불덩이가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다 — 세레스티아의 정지장이 그것을 통째로 삼킨 것이다. 불꽃의 혀까지 굳은 운석이 밤하늘 한가운데 박제된 듯 떠 있었다. 떨어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하늘. 그 광경은 어떤 반격보다도 소름 끼쳤다.
게다가 정지의 압력이 손끝까지 스며들어, 다음 주문을 짜는 감각마저 물엿 속을 젓듯 느려졌다.
수연은 짧게 숨을 뱉고, 검을 뽑았다. 손에 익은 무게가 잡히자 무거워진 감각이 조금 돌아왔다. 운석도 부르고 폭풍도 일으킬 줄 알지만, 결국 손에 제일 잘 붙는 건 이거였다. '제일 쉬운 게 제일 빨라.' 그녀는 느려진 세계 속을 파고들어, 촉수의 끝을 베어 방향을 꺾었다.
그 한 수에 촉수가 잠깐 흐트러졌고, 그 틈에 상인들은 무사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수연은 다시 다음 위험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오늘 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 한 사람이라도 더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두 블록 건너에서 또 비명이 올랐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뒤로 촉수 하나가 낮게 쓸어 들어오고 있었다. 수연은 지붕을 내달리며 손끝을 아래로 튕겼다. 골목 바닥이 갈라지며 얼음 첨주들이 솟아, 촉수를 바닥째 꿰어 박았다. '꼬챙이면 돼, 저런 건.' 사람들이 그 가시 울타리 너머로 빠져나가는 걸 확인하고, 그녀는 다음 지붕으로 넘어갔다.
세레나는 광장에서, 자신의 힘이 서서히 소진되어가는 걸 느꼈다. 그녀는 원래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의 힘은 도시 사람들의 신뢰와 이 도시의 규칙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 규칙이 이렇게 큰 존재에게 정면으로 도전받는 건 처음이었다.
'…버틸 수 있을까.' 그녀는 그 의문을 애써 밀어냈다. 지금은 의심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광장을 채운 등불들을 둘러봤다. 군밤 할머니의 화로, 시계방 노인의 손전등, 아이들의 촛불. 그 작은 빛들 하나하나가, 그녀에게 조금씩 힘을 보태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두 손에 힘을 더했다. 금빛 문장이 한층 더 밝게 타올랐다.
공방전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레스티아의 촉수 하나하나가 도시의 구역을 하나씩 노렸다. 동쪽 시장, 서쪽 주택가, 북쪽 다리까지 — 그녀는 여러 곳을 동시에 정지시키려 했고, 도시는 등불과 비명과 규칙으로 그 하나하나를 버텨내고 있었다.
세레나의 빛은 이제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직입니다." 그녀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녹사의 비명도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새겨진 흉터들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가였다.
수연은 도시 곳곳을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대피시키다가, 문득 지붕 위에서 세레스티아의 전체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그 거대한 형체를 정면으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반투명한 촉수들 사이로, 커다란 갓 모양의 몸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남은 마력을 쥐어짜 얼음 창 한 무리를 그 몸체에 퍼부었다. 창들은 표면에 닿기도 전에 정지장에 붙들려, 허공의 장식품처럼 굳어버렸다. 결국 그녀는 지붕을 박차고 뛰어올라, 그 몸체를 향해 정면으로 검을 내리쳤다. 검날에 얼음이 두껍게 서리며 충격이 배가됐다. 그러나 검은 몸체 표면에 닿는 순간 딱딱한 벽을 친 것처럼 튕겨 나갔고, 그 반동이 그녀의 팔뚝을 타고 어깨까지 저릿하게 울렸다.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수연은 이를 악물며 다시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세레스티아의 "눈" — 정확히는 눈이 있어야 할 자리, 텅 빈 그 공간과 마주쳤다.
그 텅 빈 자리 안쪽에서, 그녀는 무언가 울고 있는 것을 봤다. 형체는 없었다. 그러나 그 감각은 분명했다 — 거대한 몸집 안쪽 어딘가에서, 아주 작고 연약한 존재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은 수연의 검이 튕겨 나갔을 때 느낀 저릿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가슴 안쪽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검을 다시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멈췄다. 팔이 허공에서 굳은 채로, 그녀는 그 텅 빈 눈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너도." 수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인질이구나."
그 깨달음이, 그녀의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사실은 피해자였다는 사실. 그것은 소므니움을 마주쳤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무력한 좌절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것도, 검을 거두는 것도 답이 되지 못했다 — 눈앞의 거대한 것을 막아야 사람들이 살고, 그러나 그 거대한 것 안쪽에 갇힌 무언가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그 나쁜 새끼는, 대체 얼마나 많은 걸 이런 식으로 붙잡아 놓은 거야.'
수연은 그 생각에 목이 메었다. 사장님 — 아니, 지금은 그렇게 부를 수조차 없는 그 존재가, 도시 하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안전"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전의 대가로, 이렇게 죄 없는 것들이 텅 빈 눈으로 울고 있다는 것. 그녀는 검을 완전히 거두지도, 완전히 다시 휘두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때, 카운터에서 뛰쳐나온 비아가 광장 한가운데 도착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몸으로 그 거대한 존재를 올려다보며, 있는 힘껏 소리쳤다.
"루체모라!!"
그 이름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메아리처럼 광장의 벽들 사이를 튕겨 다니다가, 마침내 세레스티아의 거대한 몸체 깊숙한 곳까지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다!! 10번째다……이다!!"
세레스티아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그 옛 이름 — 그녀가 수호자였던 시절의 이름이, 오랫동안 붙잡혀 있던 그녀의 어딘가에 닿은 것이었다. 촉수들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흐트러졌다.
그 틈을 세레나가 놓치지 않았다. "지금입니다!" 그녀가 외쳤다.
녹사가 마지막 힘을 짜내 비명을 방출했고, 세레나의 빛이 그 진동을 타고 세레스티아 전체를 감쌌다. 도시 곳곳에 흩어진 등불들의 힘까지 한데 모여, 거대한 빛의 파도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세레스티아가 그 빛에 밀려, 서서히 하늘 저편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수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텅 빈 눈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쓸 일은 없었다. 그녀가 한 일이라곤, 그저 그 울음을 못 본 척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거대한 형체가 밤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광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의 함성이 터졌다. 그러나 세레나는 그 함성 속에서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승리가 아닙니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 "격퇴일 뿐입니다."
녹사가 그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모두가 안다." 그녀가 말했다. "신들마저 붙잡혔다는 것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서, 안도감이 서서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갔다. 두려움,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결의.
형사는 지하 대피소에서 사람들을 인솔해 나오며, 광장의 상황을 확인했다.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다. 그는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수첩을 꺼내 오늘 밤의 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 세레스티아(순환의 수호자) 침공 격퇴. 사상자 없음.
- 특이사항: 비아가 "루체모라"라는 옛 이름으로 개입을 성공시킴 — 이름을 부르는 것이 붙잡힌 신에게 유효한 접촉 수단일 가능성.
- 결론: 다음 수호자와 마주치면, 이 방법을 다시 시도할 가치가 있음.
그는 그 항목에 밑줄을 그었다. 이것은 이 도시가 처음으로 얻은, 신들의 전쟁에서의 구체적인 승리 공식이었다.
파빌라가 지하에서 나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연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다.
수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파빌라를 내려다봤다. "…응. 괜찮아." 그녀가 파빌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야말로 안 다쳤어?"
"저는 계속 지하에 있었는걸요." 파빌라는 그렇게 답하며 하늘을 함께 올려다봤다. 세레스티아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평범한 별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수연은 그 자리에 서서, 방금 세레스티아의 텅 빈 눈 안에서 봤던 그 울음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걔가 이만큼 많은 걸 붙잡고 있다는 거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곧이어 스스로 그 말을 정정했다. "아니, 그 나쁜 새끼가."
비아가 그녀 옆에 다가와 조용히 손을 잡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무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 이제는 적이 아니라, 구해야 할 것들의 명단이 하나 더 늘어난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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