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93화. 같은 꿈

그해 겨울, 녹사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가게를 찾았다. 손님이 다 빠진 조용한 시간이었다.

"라면사장. 부탁이 있다."

"말해봐라."

녹사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에, 내가 못 막는 게 오면…… 네가 막고 싶어질 거다. 그때는, 나를 먼저 불러라."


"어째서."

"너 혼자 판단해서 움직이면, 위험하다. 나도 같이 판단하고 싶다. 너는 이 도시에서 가장 강한 존재다. 근데 가장 강한 존재가 흔들리면, 그건 이 도시 전체가 흔들리는 거다."

"……알겠다."

그러나 그 대답은, 완전한 약속이라기보다는 짧은 인정에 가까웠다. 녹사는 그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알아챘다.


"대답 안 하는군. 먼저 부르겠다는 약속. 안 했다."

"그 순간이 오면, 내가 어떤 판단을 할지 나도 모른다. 근데 약속을 해놓고 못 지키면, 그게 더 나쁘다."

"……솔직한 대답이군. 괜찮다. 그 무응답도, 나는 기억해두겠다. 네가 진짜로 대답할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물어보려고."


"근데 라면사장."

녹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연이, 너한테 브레이크가 되어준다고 들었다. 그거면, 나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나는 너를 막으려 한다. 근데 수연은, 네가 스스로 멈추게 만든다."

라면사장은 그 통찰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하나는 짚고 넘어가자. 브레이크가 있다고,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계속 경고할 거다. 수연은 멈추게 하는 쪽이고, 나는 멈춰야 할 이유를 말해주는 쪽이다. 역할이 다르다."

"안다. 둘 다 필요하다."


녹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앉았다.

"하나 더. 이번 소므니움 건, 내가 늦게 알아챈 거다. 그놈이 도시에 들어온 지 한참 지나서야 눈치챘다. 경고 담당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왜 늦었나."

"그놈이 원래 있던 놈이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침입이었다. 내 경고 체계는, 익숙한 위협에 맞춰져 있었다. 낯선 것 앞에서는, 나도 느려진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유형의 문 앞에서, 나도 판단이 늦었다."

"그럼 우리 둘 다, 이번 일로 배운 게 있는 셈이군."


며칠 뒤, 세레나는 도시 전체를 향해 짧게 발표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 도시에 '월동 준비'라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서로 마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담요, 난로, 저장 식량. 그리고 각자 집을 좀 더 따뜻하게 손보는 것도 필요했다.


담요 가게를 운영하는 품이 네는, 갑자기 밀려드는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가게에서도 준비가 한창이었다. 라면사장은 재료 창고를 점검하며 수연에게 지시를 내렸다.

"겨울 대비로, 재료를 평소보다 많이 비축해야 한다. 원래는 그냥 배경 같은 눈이었다. 근데 이제는, 진짜 계절이 시작되는 거다."


도시 곳곳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월동 준비가 이어졌다. 이졸 텐의 리폼 가게에서는 두꺼운 옷을 만드느라 분주했고, 시장 골목에서는 저장 식품들이 활발히 거래되었다.

"처음 해보는 거 투성이네요, 요즘."

수연이 문득 말했다.

"근데 그게 나쁘지 않아요. 처음이니까, 다 같이 배우는 거잖아요."


상담소에서도 겨울 채비가 한창이었다. 녹사는 내담자용 담요를 몇 장 더 들여놓으며, 이든 홀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네, 목수 일도 했다고 들었다. 창틀 좀 봐줄 수 있나. 겨울바람이 샌다."

"어, 그럼요. 근데 저도 사실 이 도시에서 겨울 처음 겪는 거라, 얼마나 추워지는지 감이 안 잡히네요."

"많이 춥진 않다. 근데 낯설 거다. 처음이니까."


이든은 창틀을 손보며 문득 물었다.

"녹사 씨는 겨울, 몇 번이나 겪으셨어요?"

"셀 수 없다. 근데 이번처럼, 사람들이 다 같이 처음 겪는 겨울은 없었다. 그게 좀 다르다."

"다르다는 게, 좋은 거예요?"

"좋다. 나 혼자 아는 계절보다, 다 같이 새로 배우는 계절이 낫다."


가게에서도 준비가 한창이었다. 라면사장은 재료 창고를 점검하며 수연에게 지시를 내렸다.

"겨울 대비로, 재료를 평소보다 많이 비축해야 한다. 원래는 그냥 배경 같은 눈이었다. 근데 이제는, 진짜 계절이 시작되는 거다."

"국물 종류도 좀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추운 날엔 뜨거운 게 더 잘 팔릴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다. 메뉴판, 네가 다시 짜봐라."

수연은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곧장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날 저녁, 도시 곳곳에서는 처음 겪는 겨울 준비에 지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게 안, 수연과 라면사장은 오늘 하루의 분주함을 마무리하며 나란히 앉았다.

"오늘 진짜 바빴어요. 근데 재밌었어요. 다 같이 준비하는 거."

라면사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드물게 먼저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겨울나기 준비가 마무리되어가던 어느 밤, 도시 전체에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평화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날 밤, 노바 니발리스의 모든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은 특별할 것 없는 꿈이었다. 오늘 하루가, 그대로 다시 반복되는 꿈이었다.


수연은 꿈속에서, 오늘과 똑같이 파를 썰고 있었다. 이리스는 오늘과 똑같이 무대 소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세레나는 오늘과 똑같이 도시를 순찰하고 있었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갈등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 꿈에서 서둘러 깨고 싶지 않았다.


비아 역시 그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오늘과 똑같이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꿈속의 그녀는 그 기다림이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꿈에서는, 안 외롭지……이다.'

그녀는 눈을 뜨고도 한참 동안 그 이상한 편안함의 정체를 곱씹었다.


녹사도 같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상담소 의자에 앉아, 오늘 낮과 똑같은 순서로 내담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만 꿈속에서는, 모든 상담이 끝난 뒤에도 그녀에게 그날의 무게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게 만약 소므니움이 판 꿈이었다면, 나는 이걸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녀는 그 사실에 스스로 조금 놀랐다. 완벽하게 평범한 하루라는 것도, 결국 하나의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리스도 꿈에서, 오늘과 똑같이 무대 소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속의 그녀는, 정리를 마친 뒤 아무도 없는 무대 중앙에 잠시 서보았다. 조명은 켜지지 않았다. 박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이, 이상하게 충만했다.

눈을 뜬 그녀는 스케치북에 짧게 적었다.

'무대는 꼭 켜져 있어야 완성되는 게 아니다.'


라면사장도 그날 밤, 자신도 그 같은 꿈에 잠겼다는 사실에 놀랐다. 꿈속에서 그는, 오늘과 똑같이 국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수연이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


아침이 되어 눈을 뜬 사람들은, 서로 이 이상한 우연을 나누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 어젯밤에, 이상하게 오늘 낮이랑 똑같은 꿈을 꿨어요."

"저도요! 근데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편안했어요."

세레나가 그 반응들을 들으며 옅게 웃었다.


"이거, 사도 되겠던데요."

돈키호테가 불쑥 끼어들며 그렇게 말했다.

"만약에 그게 소므니움이 파는 꿈이었어도, 나는 그거 살 것 같다!"

그 말에, 광장은 다시 한번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근데 돈키호테 씨, 그거 사면 반품 안 돼요. 아시죠?"

피피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반품 안 해도 된다! 이 도시가, 이미 내가 원하던 그 시야, 그 자체니까!"


그 우렁찬 선언에 광장이 다시 들썩였다. 마르타 벨지가 손수레에서 뜨거운 국밥을 나눠주며 한마디 보탰다.

"다들 잘 들었지! 오늘 국밥은 이 기념으로 공짜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세레나가 그 소란 한가운데서 조용히 웃으며 수첩에 짧게 적었다.

'같은 꿈을 꾼 날. 겨울 준비 완료. 모두 무사함.'


가게 안, 라면사장은 그 광경을 문가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도시 사람들, 이제는 자기가 사는 오늘 자체를 사랑하게 됐군.'

수연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사장님도 그 꿈 꾸셨어요?"

"그래.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평범한 하루가, 며칠짜리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라면사장이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오래 이어질 거예요. 저희가 지킬 거니까요."


그날 밤, 라면사장은 가게 문을 닫고도 한참 동안 카운터에 앉아 지난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소므니움이 도시에 처음 발을 들였던 밤부터, 텅 빈 거리,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이 평범한 꿈까지.

'……꿈을 파는 놈과 싸운 결과가, 겨우 이런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거였다니.'

그러나 그는 곧 그 생각을 스스로 정정했다. '겨우'가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평범한 하루를 지킨다는 것은 언제나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수연이 그 옆에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이번 일, 결국 우리가 이긴 이유가 뭐였을까 생각했다."

"뭐였는데요?"

"우리가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는 거다. 저놈은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한테만 통했다. 근데 이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도망치는 걸 그만둔 사람들이었다."


"그러네요. 다들 한 번씩은 도망쳐본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여기 와서, 도망 그만두기로 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이 도시가, 저런 놈한테는 제일 안 통하는 땅이었던 거다."

수연은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사장님도 그중 한 명이시고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이미 긍정이었다.


노바 니발리스는 그렇게, 소므니움이라는 낯선 손님을 이겨내고, 겨울이라는 첫 계절을 준비하며, 그리고 다시 살아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오늘 하루를 확인하며, 하나의 큰 아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오늘도 눈이 소리 없이, 그러나 조금씩 더 따뜻하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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