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87화. 소므니움의 상점

도시 아이들도, 대부분의 어른들도 소므니움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금,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돈키호테의 방이었다.

그는 낭독회 이후로 한동안 창고에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밤, 오랜만에 다시 그 오래된 감정이 그를 찾아왔다.

꿈속, 돈키호테는 낯익은 방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그가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다고 믿어온 사람이 살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이다."


돈키호테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의 오랜 죄책감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빨랐으면……."

"바보 같은 소리. 네 잘못 아니었어. 그때 상황이 그랬던 거야."

돈키호테는 그 말에도 쉽게 죄책감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랜만에 마주한 그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어도 될까."


소므니움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돈키호테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이 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는 그 방 안에 머물렀다.

"이 정도로 깊이 머무는 건, 오랜만이군요."

소므니움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돈키호테는 그 방 안에서, 그가 잃은 사람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 못했던 말들,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 시간은 그 안에서 하염없이 늘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정작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째, 걱정된 이리스가 그의 방을 찾았다.

"볼도 씨, 괜찮으세요?"

그러나 그는 깊은 잠에 빠진 채 눈을 뜨지 않았다.

"녹사 씨, 이거 심각한 것 같아요!"

녹사가 곧장 달려와 그의 손을 잡았다.

"볼도."

그녀가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더 불러도, 그는 여전히 그 오래된 방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 정도로 깊으면, 시간이 걸린다."


그때, 이리스가 문득 떠올린 게 있었다.

"볼도 씨, 낭독회 때 자기 시를 낭독하면서 나왔었잖아요. 혹시 이번에도……."

녹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 만하다."

이리스는 곧장 돈키호테의 방에 있던 노트를 찾아, 그가 최근 써온 시들을 조심스럽게 낭독하기 시작했다.

"오래 담아두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넘쳐흐르려 할 때……."


꿈속, 돈키호테는 그 목소리를 아주 희미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잃은 사람의 얼굴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 시, 들려?"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꿈속의 그 사람은, 그 질문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 시는, 내가 죽은 다음에 시작됐잖아."

그 말에, 돈키호테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그 시들, 내가 못 읽은 게 아깝네."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 그가 이 방에서 느꼈던 그 어떤 위안보다도 크게 그를 흔들었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그가 애써 외면해온 진실이었다.

'……이 사람은, 내 시를 읽은 적이 없어.'

그는 그 사실을 그제야 온전히 받아들였다.

"내가 계속 여기 있으면, 새로운 시는 못 쓰겠지."

"그렇겠지."

꿈속의 그 사람이 답했다. 그 대답에는, 이상하리만치 다정한 체념이 담겨 있었다.


"……나갈게."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며,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그 얼굴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했어. 근데 이제, 너를 위해서라도 나는 계속 시를 써야 할 것 같아. 네가 못 읽은 시들, 앞으로도 계속 쓸게."

풍경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방금 전까지 잡고 있던 그 온기가 조금씩 옅어졌다.

돈키호테는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일으켰다. 이리스와 녹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가게 카운터 앞에 선 그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창고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카운터 앞, 라면사장과 수연이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그는 오랫동안 참아온 눈물을 쏟아냈다.

"돈키호테……."

"미안하다. 근데, 여기서 울고 싶었다. 창고가 아니라, 여기서. 숨어서가 아니라, 다들 보는 앞에서."

라면사장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그의 앞에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내밀었다.

"울어라. 여기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본다."


돈키호테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더 울었다. 그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가게 안 그 누구도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한참 뒤, 그는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웃었다.

"고맙다. 다들."

"어떤 꿈이었어요?"

"내가 지키지 못한 사람이 살아 있는 꿈이었다. 근데 그 사람이, 나한테 진짜로 필요한 말을 해줬다. 내 시를 못 읽었다고. 그게 아깝다고."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었다.

"그 말 듣고 나니까, 알겠더라. 나는 계속 써야 한다는 거.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녹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수첩에 짧게 적었다.

'볼도 사례 — 위안이 아니라 결핍이 꺼낸 경우. 시가 그를 구했다.'

그날 이후, 돈키호테는 창고에 발길을 거의 끊었다. 대신 그는 매일 저녁, 가게 한쪽에 앉아 새로운 시를 썼다. 이제 그의 눈물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니었다.


돈키호테가 눈물을 쏟아낸 다음 날, 수연은 문득 도시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다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무게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다들, 아직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겠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콜라 캔과 비빔면 봉지를 여러 개 챙겼다.

"신입, 이거 뭐 하려고?"

이리스가 물었다.

"콜라비빔면. 좀 많이 만들려고. 다들 힘든 거, 나눠주려고."


그녀는 광장으로 나가, 지난 며칠 소므니움과 마주쳤던 사람들을 하나둘 찾아다녔다. 헤라, 소예, 마왕, 부관, 미다, 그리고 이든 홀트까지.

"이거, 한번 드셔보실래요?"

"이게 뭔데?"

"콜라비빔면이요. 진짜 맛없어요. 근데 조건이 있어요. 제가 비벼드리는 게 아니라, 직접 비비셔야 해요."

헤라는 그 이상한 조건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윽, 진짜 맛없어!"

헤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어? 나 왜 울지?"

"맛없어서 우는 거예요. 근데 그거면 돼요."

수연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맛없는 걸 알면서도 직접 비볐잖아요. 그거, 자기가 뭘 선택했는지 온전히 느끼는 거예요. 소므니움이 보여준 건 다 완벽하고 달콤했잖아요. 근데 이건 정반대예요. 별로인 걸 알면서도, 내가 골랐다는 거."


헤라는 그 설명에 눈물을 닦으며 옅게 웃었다.

"이상한 위로네. 근데 왜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지."

소예도, 마왕도, 부관도, 미다도, 이든 홀트도, 저마다 그 이상한 그릇을 받아 들고 직접 비볐다. 그리고 하나같이, 한 입을 먹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옅게 눈물을 흘렸다.

"직접 고르고, 직접 비비는 거. 그게 중요한 거예요. 소므니움이 뭘 보여주든, 그건 결국 남이 만든 선택이잖아요. 이건 아니에요. 내가 만든, 내가 고른 맛이에요."


그 이상한 의식은 곧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상담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녹사는 이제 이렇게 안내하기 시작했다.

"얘기 다 했으면, 콜라비빔면 한번 만들어봐라. 수연이 방식이다."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다가도, 결국 하나같이 그 이상한 그릇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가게 카운터, 라면사장은 그 광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차례로 콜라비빔면을 비비고, 얼굴을 찌푸리고,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는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돌아가는 그 반복.


"수연."

그가 문득 그녀를 불렀다.

"이 음식, 원래 네가 자신을 위해 만들던 거였다. 근데 지금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만들고 있군."

"제가 저 자신을 구했던 방법이, 다른 사람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틀린 선택이라도, 내가 고르면 그게 내 거잖아요."

라면사장은 그 대답에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많이 컸다."


"그거 칭찬이죠?"

"칭찬이다."

수연은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웃었다. 라면사장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드물게 먼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고맙다. 이 도시 사람들 대신."

수연은 그 손길에 순간 숨을 멈췄다. 라면사장은 그 반응을 눈치채고 서둘러 손을 뗐다.

"미, 미안하다. 갑자기."

"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시선을 피하며, 동시에 옅게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애썼다.


그날 저녁, 도시 곳곳에서는 콜라비빔면을 비비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맛없다고 투덜대면서도, 다들 그 그릇을 끝까지 비워냈다.

"도시의 기묘한 회복 의식이네요."

세레나가 그 풍경을 보며 웃었다.

가게 안, 라면사장은 그 모든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 도시는, 결국 사람들이 서로를 구하는 방식으로 굴러가는군.'


콜라비빔면 나눔이 도시 전체의 유행이 되어가던 무렵, 문턱시장 뒤편에 낯선 소식이 날아들었다.

"저기, 새로 가게가 생겼던데. 꿈 상점이라던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간 그곳에는, 정말로 작고 세련된 가판대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소므니움이 정중한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노바 니발리스 최초의 꿈 상점입니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세레나가 소식을 듣고 달려와 물었다.


"보시다시피, 정식으로 개업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몰래 다가가지 않겠습니다. 원하시는 분만, 정당한 값을 치르고 꿈을 사가시면 됩니다."

"값이라니, 뭘로 받는데요?"

"기억 한 조각, 혹은 지금 이 순간의 시간. 손님이 정하시면 됩니다."

세레나는 그 뻔뻔함에 기가 막혔다.

"이걸 그냥 두라는 거예요?"

"제 도시 규칙을 잘 알고 계시잖아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거래는, 막을 근거가 없죠."


그날 저녁, 가게에 긴급 대응 회의가 열렸다.

"저놈이 아예 대놓고 장사를 시작했어요."

"근데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는 거죠?"

이리스가 물었다.

"그래.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다."

라면사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몰래 접근했다. 근데 이제는, 대놓고 경쟁하겠다는 거다."


"그래. 이 도시 사람들이 뭘 더 원하는지, 정정당당하게 겨뤄보자는 거다."

녹사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럼 저희도 정정당당하게 이겨야겠네요."

세레나가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사람들은 한동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강제로 막을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 사람들이 그 상점에 갈 이유 자체를 줄이는 것.


"국물."

라면사장이 문득 입을 열었다.

"따뜻한 국물을 먼저 먹이면, 꿈이 덜 당긴다. 배부르고 따뜻하면, 사람은 원래 덜 흔들린다."

"그럼 저놈 상점 바로 옆에, 저희도 포장마차를 내면 되겠네요!"

"꿈 사기 전에, 한 그릇 먹고 가라고 하자."


그렇게 다음 날, 문턱시장 뒤편 소므니움의 꿈 상점 바로 옆에, 작은 포장마차 하나가 새로 생겼다.

"어서 오세요! 꿈 사기 전에 한 그릇 드시고 가세요!"

수연이 신나게 손님을 끌었다. 라면사장은 그 옆에서 묵묵히 국물을 끓였다.

소므니움은 그 광경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좀 유치하지 않습니까?"

"장사에 유치하고 안 하고가 어딨나. 손님이 정하는 거다. 배부르게 먹고 갈지, 배고픈 채로 꿈이나 살지."


첫날, 몇몇 손님들이 호기심에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국물 한 그릇을 비우고는, 그대로 배부른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꿈 상점 안 갈래. 배부르니까 됐어."

소므니움은 그 반응들을 지켜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있군요."

첫날 그의 상점을 찾은 손님은, 놀랍도록 적었다.


그날 밤, 가게에 모인 사람들은 오늘의 작은 승리를 자축했다.

"국물 대 꿈,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근데 이게 이 도시다운 방식이다."

"힘으로 몰아내는 게 아니라, 그냥 더 나은 걸 보여주는 거."

녹사가 그 말을 정리했다.

"그래. 저놈이 뭘 팔든, 우리는 그냥 우리가 잘하는 걸 하면 된다."


가게 밖, 문턱시장 뒤편에서는 여전히 두 개의 작은 가게가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쪽은 달콤한 가능성을 팔았고, 다른 한쪽은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팔았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은, 하나둘 국물 쪽 줄에 더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소므니움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도시, 정말 만만치 않군요."


가게 안, 라면사장은 오늘 하루의 성과를 조용히 되짚었다.

'……싸움의 방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그냥 일상으로 저놈을 이겨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옅게 웃었다. 백 그릇째 국물을 끓이며, 그는 이 도시가 걸어온 지난 시간들을 천천히 되새겼다.

홀트에서 시작해, 헤라, 소예, 마왕, 부관, 미다, 이리스, 수연, 세레나,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과 볼도까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도시는 소므니움이라는 낯선 손님을 하나씩 이겨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싸움은 마침내 가장 이 도시다운 방식 — 따뜻한 국물 한 그릇 — 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창밖에는 오늘도 눈이 내렸다. 그러나 그 눈 속에서, 노바 니발리스는 여전히,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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