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4화. 겨울 축제 (상)
축제 당일 아침, 도시는 눈부신 설경 속에서 깨어났다.
"오늘이다……이다."
비아가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평소보다 유난히 들뜬 목소리였다.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얼음 초롱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회전목마 주위에는 벌써 아이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우와, 저거 봐! 얼음으로 만든 거래!"
"저것 좀 봐, 회전목마도 있어!"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광장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가게에서는 라면사장과 수연이 새벽부터 준비한 재료들을 수레에 싣고 있었다.
"이걸 다 옮기는 거예요?"
"오늘 하루 종일 팔아야 한다. 부지런히 옮겨야 한다."
두 사람은 삶은 계란과 라면 봉지, 육수 재료들을 수레 가득 실은 뒤, 광장 한쪽에 마련된 임시 부스로 향했다.
"사장님, 여기 자리 괜찮아요?"
"무대 잘 보이는 자리다. 나쁘지 않다."
수연은 그 대답에 웃음이 났다. 라면사장이 부스 자리를 정하면서 은근히 무대 방향을 신경 썼다는 사실이 귀엽게 느껴졌다.
"사장님도 신입 나오나 궁금하신 거죠?"
"국물 끓이기 편한 자리를 골랐을 뿐이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답하며 애써 무심한 얼굴을 했지만, 수연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가게 부스 근처에서는 세레나가 잠시 짬을 내어 라면 한 그릇을 받아 들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 정말 바쁘시죠?"
"괜찮다. 이런 날이야말로 국물 끓이는 보람이 있다."
"위원장으로서 감사드려요. 축제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으니 다들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라면사장은 그 인사에 옅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란을 하나 더 얹어주었다.
"이거 서비스다."
"어머, 감사합니다."
세레나는 그 계란을 받아 들고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며칠간의 피로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피로 위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겹쳐 있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위원장님도 좀 쉬면서 즐기세요."
"그럴게요. 이 라면부터 다 먹고요."
세레나는 그렇게 답하며 부스 옆 의자에 앉아 천천히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였다.
한편, 이리스는 무대 뒤편에서 마지막 점검에 한창이었다.
"코모 씨 준비되셨죠? 솔 씨 다음 순서예요."
"네, 감독님!"
"벨 씨, 도장 부스 위치 확인하셨어요?"
"네, 다 됐어요!"
이리스는 그렇게 하나하나 확인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녀의 손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 야무졌다.
"감독님, 저 긴장돼요."
솔이 무대 옆에서 유리 오르간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저도 긴장돼요. 근데 솔 씨 연주, 리허설 때도 정말 좋았잖아요. 그대로만 하시면 돼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좀 낫네요."
이리스는 그렇게 하나하나 공연자들을 다독이며 자신도 함께 긴장을 다스렸다.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그 과정이, 어느새 그녀 자신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혀주고 있었다.
"감독님, 순서표 다시 한번 확인해주세요."
한조 벨이 다가와 물었다.
"첫 번째 코모 씨, 두 번째 솔 씨, 세 번째 치로 어르신, 네 번째 벨 씨, 그다음 볼도 씨 낭독이에요."
"완벽해요."
벨은 그렇게 답하며 안심한 얼굴로 자신의 부스로 돌아갔다. 이리스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지난 며칠간 겪었던 온갖 곤란들이 결국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열 시, 광장 중앙 단상에 세레나가 올라섰다.
"오늘, 노바 니발리스 최초의 겨울 축제를 시작하려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로 쏠렸다.
"개회 선언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 이 자리를 지켜오신 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세레나가 옆으로 물러서자, 비아가 단상 위로 올라섰다.
사람들은 순간 술렁였다. 비아가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비아는 잠시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짧게 입을 열었다.
"노바 니발리스…… 축제…… 시작한다……이다."
그 짧고 투박한 선언에, 광장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곧 누군가의 웃음을 시작으로, 광장 전체가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와아아아!"
폭죽 대신 준비된 색색의 종이 눈발이 하늘 위로 흩날렸다. 축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코모의 인형극이었다. 작은 무대 위에서 인형들이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움직이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저 인형 좀 봐,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
"코모 씨 손재주가 저 정도였어?"
관객석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리스는 무대 뒤에서 그 반응을 지켜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솔의 유리 오르간 연주였다. 유리관을 두드려 만들어내는 맑고 투명한 선율이 광장 전체에 은은하게 퍼졌다.
"이런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신비롭네요, 정말."
관객들은 그 낯선 아름다움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리스는 무대 옆에서 순서표를 확인하며, 다음 공연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어진 치로 어르신의 곡예는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와 공중제비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우와아!"
"저 연세에 저런 게 가능해?"
치로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세 개의 접시를 동시에 돌리며 인사하자, 광장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뒤덮였다.
뒤이어 한조 벨의 즉석 도장 새기기 시연이 이어졌다. 그는 관객 중 몇 명을 무대 위로 불러,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이름이 새겨진 작은 도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이야, 진짜 순식간에 만드시네요!"
"이거 평생 간직할게요!"
아이 하나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자, 관객석 전체에서 흐뭇한 웃음이 번졌다. 이리스는 무대 옆에서 그 장면을 보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신이 발굴한 재주 하나하나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볼도의 낭독까지 — 여기까지 공연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돈키호테가 단상에 올라 자신의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을 때, 광장은 처음으로 완전한 정적에 잠겼다.
"나는 오랫동안 창고에 숨어 울었다……."
그 첫 문장이 낭독되는 순간, 이리스는 무대 뒤에서 그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낭독을 마친 볼도가 무대 뒤로 돌아왔을 때, 그의 눈가는 살짝 젖어 있었다.
"괜찮으세요?"
이리스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이렇게 후련한 기분은 처음이다!"
"잘하셨어요. 정말로요."
"감독님 덕분이다! 첫 문장 조언해준 거,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며 이리스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이리스는 그 뜨거운 반응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돈키호테의 낭독이 끝나자, 광장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침묵 후, 이내 뜨거운 박수로 뒤덮였다.
"저 사람, 원래 저렇게 진지한 사람이었나?"
"몰랐어, 되게 감동적이네."
이리스는 그 반응을 보며 뭉클함을 느꼈다. 며칠 전 어설프게 첫 문장을 고치던 볼도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후로 접어들며 축제는 점점 무르익었다. 파올라 링의 회전목마 주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모, 한 번 더 태워주세요!"
"그래, 몇 번이든 타렴!"
파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계속 목마를 돌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이 휘어 삐걱거리던 목마가, 지금은 매끄럽게 돌아가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키에 안데르의 얼음 초롱들도 저무는 햇빛 아래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이거 진짜 예쁘다. 얼음으로 어떻게 이런 무늬를 새기지?"
"안데르 씨 솜씨가 대단하죠."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감탄했다. 안데르는 그 반응에 뿌듯한 얼굴로 초롱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매만졌다. 부족했던 재료를 구하러 외곽까지 다녀왔던 그 고생이, 지금 이 순간의 빛으로 보답받는 것 같았다.
라면사장의 부스 앞에도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여기 라면 하나요!"
"저도 하나 주세요, 계란 두 개로요!"
"수연, 파 좀 더 썰어라."
"벌써 세 번째 그릇이에요! 잠깐만요!"
수연은 그렇게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도, 사람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축제 특유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라면 한 그릇이 주는 따뜻함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그때, 비아가 부스 앞에 불쑥 나타났다.
"라면 달라……이다."
"비아 씨도 오셨어요?"
"당연하다……이다. 축제인데 안 올 수 없다……이다."
수연이 웃으며 그릇을 건네자, 비아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비아 씨, 축제 재밌으세요?"
"재밌다……이다. 근데 시끄럽다……이다."
"시끄러운 게 싫으세요?"
"아니다……이다. 시끄러운 게 좋다……이다. 조용한 거보다 낫다……이다."
수연은 그 모순되면서도 솔직한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다. 비아는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다시 인파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부스 앞에 줄이 잠시 뜸해진 틈을 타, 수연이 무대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사장님, 저 잠깐 무대 쪽 보고 와도 돼요?"
"다녀와라. 여기는 내가 본다."
수연은 그렇게 허락을 받고 무대 근처로 다가갔다. 마침 볼도의 낭독이 막 끝난 참이었고, 이리스가 무대 뒤에서 다음 순서를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신입, 잘하고 있네."
수연이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 종일 이리스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맡았을 때의 불안한 얼굴은 어느새 사라지고, 지금은 오직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얼굴만 남아 있었다.
'……저 표정, 꽤 근사하네.'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부스로 돌아갔다.
그렇게 축제가 절정으로 치닫던 오후 늦게, 마지막 공연이었던 대미를 장식할 합동 무대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극장 거리 공연자들이 총출동해 만드는 이 도시 전체의 이야기를 담은 무대극이었다. 이리스가 몇 주에 걸쳐 준비한, 오늘의 가장 큰 순서였다.
이 무대극은 이 도시가 처음 세워지던 순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지금의 노바 니발리스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극장 거리의 모든 공연자들이 각자의 재능으로 한 장면씩 맡아 이어가는, 그야말로 축제의 대미였다.
"자, 다들 대본 마지막으로 확인하세요! 코모 씨는 개척 장면, 솔 씨는 음악, 치로 어르신은 첫 만남 장면, 벨 씨는 정착 장면이에요!"
이리스는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순서를 되짚으며 배우들을 독려했다. 관객석은 이미 초만원이었다. 라면사장의 부스에서도, 저 멀리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로 집중되고 있었다.
"자, 다들 위치로!"
이리스가 무대 뒤에서 신호를 보냈다. 조명 담당이 조명대를 조작하기 시작했고, 배경막이 서서히 올라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 어어……!"
조명대 하나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전선이 스파크를 튀기며 조명 절반이 꺼져버렸다.
무대 위는 순식간에 반쯤 어둠에 잠겼고, 배우들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감독님! 조명이!"
이리스는 그 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런 순간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관객석에서는 이미 웅성거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오늘 가장 중요한 무대가 엉망이 될 판이었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술렁임이 커져갔다.
"어떡해, 공연 중단되는 거 아니야?"
"저 조명, 누가 고칠 줄은 아나?"
라면사장의 부스에서 그 소란을 지켜보던 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장님, 저기 조명이……!"
"본다."
라면사장은 짧게 답하며 무대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조금 더 진지해져 있었다.
그때, 이리스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한 하나의 생각이었다.
'……내가 고쳐야 해.'
지난 며칠, 순서를 바로잡고, 재료를 구하러 뛰어다니고, 회전목마를 고치도록 사람을 설득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는 대신 해결하러 뛰어들던 자신이, 오늘도 여기 있었다.
이리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조명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무대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세레나가 짧게 숨을 삼켰다.
"이리스 씨……."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어딘가 기대에 찬 떨림이 섞여 있었다.
라면사장의 부스에서도, 수연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무대 쪽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님, 신입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옅게 웃으며 답했다.
"저 아이가 지난 며칠 뭘 해왔는지 봤다. 문제 앞에서 도망친 적, 한 번도 없었다."
수연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대를 바라보았다. 조명이 반쯤 꺼진 어두운 무대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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