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1화. 첫 번째 겨울 축제

그날, 도시 광장에 이례적인 공고가 붙었다.

"노바 니발리스 최초의 공식 축제를 개최합니다."

사람들은 그 공고 앞에 모여 웅성거렸다.

"축제라니, 그런 것도 하는 거였어?"

"우리 도시에 공식적인 행사가 있었나?"

수연도 배달을 나갔다가 그 공고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이거 진짜예요?"

가게로 돌아온 그녀가 세레나에게 물었다.

"네, 제가 발의했어요."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이 도시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잖아요. 그래서 다 함께 축하할 자리 하나쯤은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준비는 누가 해요?"

수연이 궁금해서 물었다.

"준비위원장은 만장일치로 저로 정해졌어요."

세레나가 담담하게 답했다.

"만장일치요? 투표라도 한 거예요?"

"주민 회의에서요. 다들 저 말고 다른 이름은 안 내더라고요."


"그럼 무대는요? 축제면 공연도 있어야 하잖아요."

이리스가 마침 그 자리에 있다가 궁금한 듯 끼어들었다.

세레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무대 총감독은, 이리스 씨로 이미 정해졌어요."

이리스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저, 저요?"

"네. 그동안 극장 거리에서 해온 일들, 다들 알고 있어요. 이만한 적임자가 없죠."

"그, 그래도 갑자기……."

이리스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돼요.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니까요."

세레나의 그 말에, 이리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게요."


그렇게 이리스는 얼떨결에 축제의 무대 총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거 완전 큰일이네."

그녀가 가게로 돌아와 중얼거렸다.

"뭐가 큰일이야?"

수연이 물었다.

"무대 총감독이잖아요. 출연진도 정해야 하고, 공연 순서도 짜야 하고……."

이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노트를 펼쳤다. 벌써 여러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코모 씨 인형극, 솔 씨 유리 오르간, 치로 어르신 곡예…… 이 정도면 라인업은 얼추 됐는데."

그녀가 목록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수연이 그 목록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근데 신입 이름은 왜 없어?"


이리스는 그 지적에 순간 멈칫했다.

"저요? 저는 연출하는 사람이잖아요."

"연출도 하고 출연도 하면 안 돼?"

"저는…… 만드는 사람이에요."

이리스가 그렇게 답하며 다시 노트로 시선을 돌렸다. 그 대답에는,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되뇌어온 확신이 담겨 있었다.


수연은 그 대답에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누구누구 캐스팅할 거야?"

"극장 거리 분들은 거의 다 하실 거고요. 그 외에도 재주 있는 분들 좀 더 찾아보려고요."

이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 그녀는 도시 곳곳에서 숨은 재주꾼들을 찾아냈다.

기념 도장을 새기는 한조 벨, 얼음으로 초롱을 만드는 키에 안데르, 손수 회전목마를 돌리는 파올라 링. 그들은 저마다 이리스의 제안에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저 같은 사람도 무대에 설 수 있어요?"

"당연하죠! 이런 재주야말로 축제에 필요한 거예요."

이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하나하나 캐스팅 목록에 이름을 추가해나갔다.


"이야, 목록이 진짜 화려해지네."

수연이 그 목록을 보며 감탄했다.

"그쵸? 다들 이 도시에서 각자 재주를 하나씩 갖고 계셨더라고요."

이리스가 뿌듯한 얼굴로 답했다.

"근데 신입, 다시 물어보는 건데. 너는 진짜 안 낄 거야?"


이리스는 그 질문에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저는…… 캐스팅하는 사람이지, 캐스팅받는 사람이 아니에요."

"누가 그렇게 정했어?"

"제가요."

수연은 그 대답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법 어디 있어."


이리스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다시 노트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갈 자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빈칸이었다. 그녀는 그 빈칸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다른 이름을 적어 넣었다.


가게 마감 후, 라면사장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조용히 물었다.

"캐스팅 목록에 이리스 이름은 있나."

"없어요."

수연이 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

라면사장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사장님도 신입이 무대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수연이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저 아이가 정할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러길 바라시죠?"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바란다."


"근데 왜 직접 말씀 안 하세요?"

수연이 궁금해서 물었다.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저 아이 스스로 정해야 진짜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게의 오래된 원칙이,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근데 사장님도, 축제에 뭔가 참여하실 거예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나는 국물 담당이다."

"축제에도 라면 파실 거예요?"

"당연하지. 사람들 모이는 곳엔 먹을 게 있어야 한다."

수연은 그 실용적인 대답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래주면 좋다."

"저 이제 토핑도 제법 하잖아요."

"파 써는 거 하나는 인정한다."

"그거면 충분하죠!"

수연이 신이 나서 답했다. 라면사장은 그 활기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회의가 끝난 뒤, 비아가 어느새 세레나 옆에 나타나 있었다.

"축제다……이다."

비아가 짧게 중얼거렸다.

"네, 비아 씨도 오실 거죠?"

세레나가 웃으며 물었다.

"당연하다……이다. 근데 나는 뭐 하나."

"비아 씨는 그냥 즐기시면 돼요."

"그건 이상하다……이다. 나도 뭔가 해야 한다……이다."


이리스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듣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비아 씨, 그럼 개회 선언 해주실래요?"

"개회 선언이 뭔가……이다."

"축제 시작을 알리는 말이에요. 제일 높으신 분이 하는 거예요."

비아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일 높다……이다. 하겠다……이다."

세레나와 이리스는 그 단호한 대답에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며칠 뒤, 이리스는 극장 거리에서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코모 씨, 인형극 순서는 두 번째예요. 솔 씨 유리 오르간 다음이고요."

"알겠어요, 감독님."

코모가 그렇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저기, 감독님."

한조 벨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벨 씨."

"저 같은 사람도 정말 무대에 서는 거 맞아요? 저는 그냥 도장 새기는 사람인데……."

"벨 씨의 도장 새기는 솜씨, 도시에서 벨 씨만 한 사람이 없어요. 그거면 충분해요."

이리스는 그렇게 답하며, 문득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쉽게 그 말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왜 나한테는 이 말을 못 해줄까.'

그 생각이 잠시 그녀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 저녁, 가게에서는 축제를 앞둔 특별 메뉴 회의가 열렸다.

"축제 때는 어떤 라면을 파실 거예요?"

수연이 물었다.

"평소랑 똑같다. 봉지 라면에, 토핑만 조금 더 신경 쓴다."

"오, 특별 토핑이에요?"

"계란 두 개, 파 두 배. 그 정도면 축제답다."

라면사장의 그 소박한 계획에, 수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게 무슨 특별 토핑이에요! 그냥 양이 많아진 거잖아요!"

"양이 많아지는 게 축제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답하며 진지한 얼굴로 냄비를 살폈다. 수연은 그 고집스러운 실용주의가 어쩐지 이 가게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는 뭐 도와드리면 돼요?"

"파 써는 거, 계란 삶는 거. 그거면 된다."

"네!"

수연이 신이 나서 답했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근데 사장님, 사장님도 축제 구경하실 거예요? 무대 보러 가시거나."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손을 잠시 멈췄다.

"……가야겠지."

"가야겠지가 뭐예요, 가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세요?"

"가고 싶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짧게 답하고 다시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 짧은 대답 속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선명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수연은 그 대답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남은 파를 더 신나게 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이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캐스팅 목록을 다시 펼쳤다.

빼곡한 이름들 사이,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는 한 자리를 그녀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내가 서면, 뭐가 달라질까.'

그녀는 그 질문에 아직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수연이 던진 질문 — "누가 그렇게 정했어?" — 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문득 자신의 열 번째 드론을 손에 들었다. 여전히 불이 켜지지 않은 드론이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그 드론에게 나직이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그녀는 문득 자신이 그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볼까.'

그녀는 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은.'

아직은 그 한 발자국을 내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적어도 그 질문 자체를 회피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캐스팅 목록의 빈칸을 다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다음 날, 이리스는 극장 거리 뒤편 창고에서 소품을 정리하다가 볼도와 마주쳤다.

"어, 볼도 씨. 여기서 뭐 하세요?"

"공연에 쓸 소도구를 찾고 있었다! 근데 감독님이야말로 여긴 웬일인가?"

"저도 소품 확인하러요."

이리스는 그렇게 답하며 낡은 상자들을 뒤적였다. 그러다 문득, 볼도에게 물었다.

"볼도 씨는 무대 서는 거 안 무서워요? 다들 쳐다보는 거."


돈키호테는 그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무섭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고 싶은 마음이요?"

"내 목소리를, 내가 만든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 마음이 무서움보다 크면, 무대에 설 수 있다!"

이리스는 그 대답에 잠시 말을 잃었다. 볼도의 그 단순하고도 확고한 논리가,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 마음이 더 크지 않으면요?"

"그럼 안 서도 된다! 억지로 설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감독님은, 그 마음이 없는 사람 같지는 않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소품 상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리스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창고를 나섰다.


그날 오후, 이리스는 텅 빈 무대 위에 홀로 올라가 보았다.

객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텅 빈 의자들만 줄지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무대 중앙에 서서, 그 텅 빈 객석을 바라보았다.

'……여기 서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조금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무서움인지 설렘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잠시 더 서 있다가, 조용히 무대를 내려왔다.

'……아직은, 여기까지.'

그러나 그 텅 빈 무대에 잠시나마 서 봤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작은 진전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세레나가 가게에 들러 축제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이리스 씨, 캐스팅은 잘 되어가나요?"

"네, 거의 다 정해졌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목록을 훑어보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이리스 씨 이름은 왜 없어요?"


이리스는 그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저는…… 연출자니까요."

"연출자도 무대에 설 수 있잖아요."

세레나가 담담하게 지적했다.

이리스는 그 말에 뭐라 답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시간은 아직 있으니까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 도시의 오래된 원칙 —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 을 이리스에게도 똑같이 지켜주고 있었다.

이리스는 그 배려에 마음이 뭉클해지면서도, 동시에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걸 느꼈다.


그날 오후, 축제 준비를 위한 첫 전체 회의가 열렸다.

가게 사람들, 극장 거리 공연자들, 그리고 도시 곳곳의 재주꾼들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자, 그럼 첫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세레나가 회의를 주재하며 말했다.


"축제 날짜는 다음 큰 눈이 내리는 날로 정하겠습니다. 준비 기간은 그때까지고요."

"눈 오는 날이 언제인지 어떻게 알아요?"

누군가 물었다.

"이 도시는 원래 매일 눈이 옵니다. 그러니 아무 날이나 정하면 됩니다."

세레나의 그 대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냥 열흘 뒤로 하죠."

돈키호테가 진지한 얼굴로 제안했다.

"왜 열흘인가요?"

"열흘이면 완벽한 준비 기간이라고 예측된다."

"그 예측, 근거가 있어요?"

"없다! 근데 열흘이 좋은 숫자다!"

돈키호테의 그 당당한 발언에, 회의장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결국 축제일은 열흘 뒤로 정해졌다.

"그럼 각자 맡은 준비를 시작해주세요."

세레나가 회의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흩어져 각자의 준비에 들어갔다. 이리스는 그 분주한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의 캐스팅 목록을 다시 한번 펼쳐 보았다.


여전히 빈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엔 그 빈칸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자리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열흘 안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노트를 덮고, 다음 준비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로 돌아온 저녁, 라면사장은 그녀의 표정에서 뭔가 미묘한 변화를 읽어냈다.

"오늘 회의 어땠나."

"좋았어요. 다들 신나 있어요."

"너는?"

이리스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저도…… 조금은 신나요."


그 대답에, 라면사장은 옅게 웃었다.

"그거면 됐다."

"근데 사장님, 세레나 씨가 자꾸 저한테 왜 캐스팅 목록에 제 이름이 없냐고 물어봐요."

"좋은 질문이군."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답 대신, 옅은 미소만 지었다.


그날 밤, 이리스는 잠들기 전 다시 한번 캐스팅 목록을 펼쳐 보았다.

빈칸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빈칸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열흘 뒤엔, 여기에 뭐라도 적혀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바람 자체가, 그녀에게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창밖으로는 오늘도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열흘 뒤의 축제를 향해, 도시 전체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리스는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창밖을 내다보았다.

거리 곳곳에 걸리기 시작한 장식들, 밤늦도록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그리고 그 위로 소리 없이 쌓이는 눈.

이 도시는 원래 이렇게,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이는 곳이었다. 그녀는 그 풍경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도 저 사람들 중 하나야.'

그것은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만드는 사람'과 '서는 사람'으로 나누어 생각해왔지만, 어쩌면 그 구분 자체가 그녀 혼자만의 벽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직은 무서워.'

그녀는 솔직하게 그 마음을 인정했다. 무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한 것 같았다.

그녀는 캐스팅 목록의 빈칸 위에, 연필로 아주 옅게 자신의 이름 첫 글자만 하나 적어보았다. 그리고는 그 위를 다시 지웠다.

지워진 자국은 남았다. 그녀는 그 희미한 흔적을 잠시 바라보다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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