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2화. 캐스팅 난항

축제 준비 사흘째, 이리스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감독님, 큰일 났어요!"

솔이 다급하게 뛰어와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저랑 치로 어르신이랑 순서가 겹쳤어요. 둘 다 셋째 순서로 알고 있었대요!"


이리스는 그 말에 부랴부랴 명단을 확인했다.

"어? 제가 분명 치로 어르신은 넷째로 적었는데……."

그녀는 노트를 다시 살펴보다가, 자신의 글씨가 급하게 쓰느라 3과 4를 헷갈리기 쉽게 적어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 실수예요. 죄송해요, 다시 정리할게요."

"괜찮아요, 감독님도 처음 하시는 거잖아요."

솔이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이리스는 그 사소한 실수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무대에 서는 건 무슨……."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마침 옆을 지나가던 수연이 그 말을 들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리스는 급히 노트를 덮었다.


순서 문제를 정리한 뒤, 이리스는 곧바로 다음 문제와 마주쳤다.

파올라 링이 회전목마 앞에서 곤란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감독님, 이거 축이 하나 휘었어요. 돌리면 삐걱거려서 애들이 무서워할 것 같아요."

이리스는 회전목마를 살펴보았다. 정말로 축 하나가 미세하게 휘어 있었다.


"이거 고칠 수 있는 분, 누구 없을까요?"

"도시에 대장간 하는 분이 계세요. 근데 요즘 바쁘셔서 순서가 밀려 있대요."

이리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가 직접 부탁드려볼게요. 축제 전까지는 꼭 고쳐야 하니까요."

"감독님이 직접요?"

"네, 이런 것도 감독님이 하는 일이에요."

파올라는 그 대답에 안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스는 곧장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장이는 처음엔 곤란한 얼굴을 했지만, 이리스가 회전목마가 축제에서 왜 중요한지 — 도시의 아이들이 일 년 내내 그것만 기다렸다는 것 — 를 설명하자, 결국 순서를 앞당겨주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감독님이 저렇게까지 열심이신데, 저도 최선을 다해야죠."

대장장이의 그 말에, 이리스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도, 그녀의 노트 한구석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곤란들이 쌓여갔다. 무대 배경막이 부족하다는 문제, 조명용 기름이 모자란다는 문제, 리허설 시간이 겹치는 문제.

"이게 다 캐스팅 난항이라는 거구나."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대에 설 사람을 정하는 것보다, 무대 자체를 완성하는 게 훨씬 더 큰 일이라는 걸 그녀는 매일 새롭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더 큰 문제가 터졌다.

키에 안데르가 찾아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감독님, 저 이번 축제 못 나갈 것 같아요."

"네? 왜요?"

"얼음 초롱 만드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려요. 재료도 부족하고요."

이리스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재료가 얼마나 더 필요한데요?"

"얼음 원석이요. 근데 그건 도시 외곽에서만 구할 수 있어요."


"제가 구해다 드릴게요."

이리스가 즉시 답했다.

"감독님이요? 거긴 좀 멀어요."

"그래도 안데르 씨 순서는 꼭 있어야 해요. 도시에서 안데르 씨만큼 얼음 다루는 사람이 없잖아요."

키에 안데르는 그 단호한 대답에 놀란 얼굴로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감독님, 은근히 고집 있으시네요."

"필요한 건 필요한 거니까요."

이리스는 그렇게 답하며 이미 외곽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짐을 챙기는 걸 본 수연이 다가왔다.

"어디 가?"

"외곽에 얼음 원석 구하러. 안데르 씨 재료가 부족하대."

"혼자 가려고?"

"응, 별로 안 멀어."

"내가 같이 갈게. 어차피 배달도 그쪽 방향이야."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이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이리스는 잠시 말리려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외곽으로 가는 길, 두 사람은 눈 덮인 들판을 나란히 걸었다.

"근데 신입, 아까 그 말 뭐였어?"

수연이 문득 물었다.

"어떤 말?"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어쩌고."

이리스는 그 질문에 걸음을 멈췄다.

"……그냥, 순서 하나 헷갈린 것도 실수인데, 제가 무대에 선다고 하면 얼마나 더 큰 실수를 할까 싶어서."


"그게 왜 연결돼?"

"연출은 뒤에서 하는 거니까 실수해도 눈에 덜 띄잖아. 근데 무대는 안 그렇잖아. 실수하면 다 보여."

수연은 그 대답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순서 헷갈린 것도 결국 다 알았잖아. 솔 씨도 이해해줬고."

"그거야……"

"실수해도 사람들이 이해해주는 거, 신입도 방금 겪었잖아. 근데 왜 무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해?"


이리스는 그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무대는 좀 다르지 않아? 다들 그 순간만 보는 거잖아.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도 없고."

"그럼 실수 안 하면 되지."

"그게 그렇게 쉬우면 다들 무대 공포증이란 게 없겠지."

이리스가 살짝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 말투 속에는 방어적인 떨림이 섞여 있었다.


수연은 그 반응에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 쉽게 말한 거 아니야. 그냥…… 신입이 사람들한테는 '괜찮아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이러면서, 자기한테는 왜 그렇게 안 하나 싶어서."

이리스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제 볼도가 던졌던 말과 비슷한 지적이, 오늘은 수연에게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눈길을 걸었다. 이윽고 외곽의 원석 채취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수연이 가리켰다.

두 사람은 얼음 원석 몇 덩이를 챙겨 다시 길을 되짚어 걸었다. 돌아오는 길, 수연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근데 나, 강요하는 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알아."

"진짜 무대 서기 싫으면 안 서도 돼. 그건 진심이야."

이리스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럼 왜 자꾸 물어봐?"

"신입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자꾸 스스로 막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리스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보여?"

"응. 그렇게 보여."

수연이 담담하게 답했다.

이리스는 그 대답을 곱씹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마침 눈밭 한가운데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근데 신입."

이리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응?"

"너는 무섭지 않아? 배달 다니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부딪히는 거."

수연은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무섭지. 근데 나는 원래 겁이 없는 척하는 거 잘해. 그게 습관이 됐어."

"습관이라니?"

"예전에…… 겁먹으면 안 되는 곳에 있었거든. 겁먹은 티 내면 더 안 좋아지는 곳."

이리스는 그 말에 순간 조심스러워졌다. 수연이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스치듯 언급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지금도 안 무서운 척하는 거야?"

"아니, 지금은 진짜 안 무서워. 그냥 그때 배운 방식이 아직 몸에 남아 있는 거지. 겁나면 일단 몸부터 움직여. 생각은 나중에."

"그거 되게 신입답다."

이리스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치? 근데 신입은 반대잖아. 생각부터 하고, 몸은 나중에."


"내가 그래?"

"응. 그래서 가끔 답답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못 움직이는 거."

이리스는 그 지적에 반박하려다가, 결국 인정했다.

"……맞아. 나는 확신이 없으면 못 움직여."

"근데 확신은 원래 움직이고 나서 생기는 거 아니야?"

수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처음 이 도시 왔을 때, 확신 같은 거 하나도 없었어. 그냥 여기 있어도 되나, 나 같은 애가 받아들여질까, 계속 그 생각만 했어. 근데 그냥 하루하루 몸을 움직이다 보니까, 지금은 확신이 생겼어. 여기가 내 자리라는 확신."

이리스는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확신이 생기고 나서 움직인 게 아니라, 움직이다 보니까 확신이 생겼다고?"

"응. 순서가 반대야. 신입은 계속 확신부터 찾으려고 하는데, 그거 어쩌면 순서가 틀린 걸지도 몰라."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리스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 들은 말 중 가장 마음에 오래 남을 말이라는 걸 직감했다.


가게로 돌아온 그녀는 키에 안데르에게 원석을 전달했다.

"감독님, 진짜 감사해요! 이 정도면 넉넉하게 만들 수 있어요."

"다행이에요."

"근데 감독님, 힘드셨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해주세요?"

이리스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안데르 씨 순서가 없어지면, 축제가 그만큼 허전해질 것 같아서요. 사람 하나하나가 다 이 축제의 일부니까요."


그 대답을 하고서, 이리스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방금 한 말이, 결국 자신에게도 그대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사람 하나하나가 다 이 축제의 일부.'

그 말에서 자신만 제외해온 게, 어쩌면 이상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 생각을 안고 조용히 캐스팅 목록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세레나가 준비 상황 보고를 받으러 가게에 들렀다.

"순서 문제는 다 해결됐어요?"

"네, 안데르 씨 재료도 구했고, 솔 씨랑 치로 어르신 순서도 다시 정리했어요."

"수고 많으셨어요. 힘들지 않아요?"

이리스는 그 질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힘들어요. 근데…… 괜찮아요. 다들 저를 믿고 맡겨주시니까요."


세레나는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이리스 씨, 처음보다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그래요?"

"네. 예전엔 뒤에서 조용히 만들기만 하셨는데, 지금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계시잖아요."

이리스는 그 말에 문득 부끄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럼 캐스팅 목록은요? 아직 그대로예요?"

세레나가 다시 그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리스는 그 물음에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근데 예전이랑 조금 다른 고민이에요."

"어떻게 다른데요?"

"예전엔 '내가 왜 서야 하지'였는데, 지금은 '내가 서면 뭘 보여줄 수 있을까'로 바뀌었어요."


세레나는 그 대답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그거면 충분한 변화예요."

"아직 답은 안 나왔어요."

"답은 천천히 나와도 돼요. 질문이 바뀐 것만으로도 큰 걸음이에요."

이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뒤편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라면사장이, 조용히 국물을 젓다 말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연이 그 미소를 보고 물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저 아이 질문이 바뀌었다."

"저도 들었어요."

"질문이 바뀌면, 답도 곧 바뀐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국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말속에는,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봐 온 이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한편, 그 시각 녹사는 창고 근처를 지나다가 비아와 마주쳤다.

"비아."

"녹사다……이다."

"요즘 저 아이, 이리스 말이다. 변화가 빠르군."

비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이다. 예전엔 그림자처럼 다녔는데, 요즘은 그림자가 좀 옅어졌다……이다."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저 아이가 결국 무대에 설 것 같나."

"모른다……이다. 근데."

비아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었다.

"저 아이 눈빛이 달라졌다……이다. 예전엔 무서워서 피하는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무서운데도 보는 눈빛이다……이다."


녹사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 차이가 크지."

"그게 왜 큰가……이다."

"피하는 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거고, 보는 건 이미 한 걸음 다가선 거니까."

비아는 그 설명에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답했다.

"어렵다……이다. 근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각자의 길로 다시 흩어졌다.


그날 밤, 이리스는 캐스팅 목록을 펼쳐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빈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빈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처음 그것을 마주했을 때와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내가 서면, 뭘 보여줄 수 있을까.'

그녀는 그 질문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아직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질문 자체가 이제는 두렵지만은 않았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축제까지 남은 날은 이제 이레였다.


이레라는 숫자를 되뇌던 그녀는, 문득 노트를 덮고 가게 쪽으로 내려갔다. 마감을 앞둔 가게에는 라면사장 혼자 남아 국물 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장님, 아직 안 주무세요?"

"정리할 게 남았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괜찮다. 거의 다 됐다."


이리스는 그 옆에 앉아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이 가게에 왔을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숨을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사장님."

"말해라."

"저 처음 여기 왔을 때, 왜 아무것도 안 물어보셨어요? 저 되게 이상한 상태였을 텐데."


라면사장은 국물 통을 마저 정리하고서야 답했다.

"물어본다고 달라지는 거 없다. 여기 있고 싶으면 있는 거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는 거다. 그거면 됐다."

"그때도 지금도, 사장님은 똑같으시네요."

"나는 원래 변하는 게 별로 없다."


"근데 저는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요즘."

"그런 것 같다."

"사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처음 왔을 때는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사람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

이리스는 그 비유에 웃음이 났다.


"그게 무슨 차이예요?"

"벽은 대답 안 한다. 사람은 대답한다."

"저 그때도 대답은 했었는데요."

"소리만 냈지, 대답은 안 했다."

라면사장의 그 단호한 지적에, 이리스는 반박하지 못하고 조용히 웃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장님은 제가 무대에 서면 좋으시겠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좋고 나쁜 건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궁금해서요."

라면사장은 그 물음에 잠시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다. 근데 안 서도 좋다. 어느 쪽이든, 네가 정한 거면 좋다."


이리스는 그 대답에 마음이 이상하게 놓이는 걸 느꼈다. 강요도, 기대도 아닌, 그저 그녀의 선택 자체를 존중하는 말이었다.

"고맙습니다."

"뭐가 고맙나.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다."

"당연한 말이 제일 어려운 거예요, 사장님은 모르시나 본데."

"어렵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다."

이리스는 그 대답에 다시 웃음이 났다. 이 사람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복잡할 것 하나 없다는 듯, 가장 단순한 말로 가장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이리스는 그 무뚝뚝한 대답에 다시 한번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캐스팅 목록의 빈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그 빈칸이 두렵지 않았다. 그저, 아직 답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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