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화. 아직 세지 않는 날들
가게 문을 열면 늘 같은 풍경이었다.
카운터, 낮은 의자들, 김이 서린 창문. 그리고 이제는 카운터 아래 붉은 앞치마 한 장이 추가로 걸려 있었다. 소예는 아침마다 그 옷을 걸치며, 자신이 이 풍경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걸 조금씩 실감했다.
"오늘도 몇 명 올지 몰라요?"
그녀가 묻자 라면사장은 냄비를 올리며 짧게 답했다.
"몰라."
"이제 그거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자꾸 궁금해서."
"궁금한 건 나쁜 게 아니다."
"근데 안 알려주잖아요."
"모르니까 못 알려준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서 하품을 하며 끼어들었다.
"매일 아침 똑같은 대화를 한다……이다."
"그게 뭐 어때서."
"질리지 않냐."
"질리는 거랑 익숙한 건 달라."
소예가 그렇게 대답하자 비아는 잠깐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맞말 같다……이다."
볼도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때였다. 오늘은 눈이 붓지 않은 얼굴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창고 안 가셨나 봐요."
소예가 반갑게 물었다.
"오늘은 그냥 밥만 먹으러 왔어요."
"잘됐네요."
볼도는 카운터에 앉으며 가볍게 웃었다. 예전보다 조금 편안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세레나도 곧이어 들어왔다. 그녀는 가게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익숙하게 카운터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아침은 다들 모이셨네요."
"우연히요."
소예가 대답했다.
"우연이 반복되면 그건 습관이 됩니다."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이 도시에서는 그런 식으로 가족이 생기기도 하죠."
그 말에 소예는 잠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완전히 틀린 말 같지는 않았다.
라면사장은 그새 완성된 그릇들을 하나씩 카운터에 늘어놓았다. 볼도 앞에, 세레나 앞에, 그리고 소예의 몫까지.
"저도요?"
소예가 놀라 물었다.
"일하기 전엔 먹어야지."
"저 일하는 사람인데 제 밥도 줘요?"
"밥 안 주는 데가 어딨어."
"보통 알바생은 자기 밥 자기가 사 먹지 않나요?"
"여긴 안 그렇다."
비아가 옆에서 자기 몫의 어묵을 물고 우물거리며 끼어들었다.
"나도 밥 받는다……이다."
"넌 알바 아니잖아."
"나는 문이다. 문도 밥 먹는다……이다."
볼도가 그 대화를 들으며 낮게 웃었다.
"여긴 진짜 다 이상해요. 근데 그 이상함이 편해요."
"저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해요."
소예가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네 사람은 잠깐 아무 말 없이 각자의 그릇을 비웠다. 냄비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창밖으로는 눈이 조용히 쌓여갔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억지로 채우지 않아도 되는 침묵이었다.
세레나가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새로운 분이 오실 것 같아요."
"어떻게 알아요?"
소예가 물었다.
"며칠째 골목을 서성이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아직 문 앞까지는 못 왔다고."
라면사장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창밖을 향했다.
오전이 지날 무렵, 낯선 남자아이 하나가 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낡은 코트를 걸치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나침반 같은 걸 꼭 쥐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서 몇 번이나 들어올 듯 말 듯 망설이다가, 결국 등을 돌려 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라면사장은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았다.
"저 애, 어제도 저랬어요."
소예가 조용히 말했다.
"봤어요, 저도."
"들어오라고 안 해요?"
"본인이 정할 일이다."
소예는 그 대답이 이제는 익숙했지만, 동시에 조금 조바심이 났다.
"근데 계속 저러다가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요."
"가버리면 가버리는 거다."
"그래도……"
라면사장은 냄비를 젓던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소예."
"네."
"네가 처음 왔을 때, 누가 억지로 끌고 들어왔으면 좋았을 것 같아?"
소예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아니요."
"그거다."
그는 다시 냄비로 시선을 돌렸다.
"기다리는 것도 일이다.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오후가 되어서도 아이는 몇 번이나 가게 앞을 지나갔다. 한번은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소예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도망치듯 사라졌다.
"저러다 얼어 죽는 거 아니에요?"
"이 도시 눈은 사람을 얼려 죽이지 않는다."
"그래도 걱정되잖아요."
"걱정하는 거랑 나서는 건 다르다."
소예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세레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궁금한 거랑 물어봐도 되는 건 다르다. 이 가게, 이 도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말을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도 소예는 참지 못하고 잠깐 밖으로 나가보았다.
골목 어귀에 아이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에 쥔 나침반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는데, 바늘은 어느 방향을 가리켜도 자꾸 흔들리기만 했다.
"안녕."
소예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 나침반을 품에 감췄다.
"저 뭐 잘못한 거 없어요."
"알아. 그냥 인사한 거야."
"……왜요."
"그냥. 여기 자주 지나다니길래."
아이는 경계하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저 가게 사람이에요?"
"응, 일하고 있어."
"들어오라고 하려고 나온 거예요?"
"아니."
소예는 아이 옆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그냥 궁금해서. 뭐 보고 있었어?"
아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나침반을 다시 꺼내 보여줬다.
"이거요. 원래 있던 곳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데, 요즘은 계속 흔들리기만 해요."
"방향을 잃은 거야?"
"아니면…… 이제 가리킬 곳이 없어진 걸 수도 있고요."
소예는 그 말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침묵했다.
"들어오라고 안 할게. 근데 추우면 언제든 들어와. 그냥 앉아만 있어도 돼."
"그거, 저 가게 사장님이 시킨 말이에요?"
"아니,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아이는 그 대답에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왜요?"
"나도 처음엔 저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거든."
"들어갔어요?"
"응. 근데 아무도 나 억지로 안 끌고 들어갔어. 그냥 기다려줬어."
아이는 그 말을 한참 곱씹는 얼굴이었다. 소예는 더 캐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다시 들어갈게. 추우면 와."
"……네."
소예가 몇 걸음 걷다 돌아봤을 때,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나침반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더 말을 걸지 않고 가게로 돌아왔다.
"어땠어."
라면사장이 물었다.
"그냥 잠깐 얘기했어요. 들어오라곤 안 했고요."
"잘했다."
"칭찬 처음 받아보는 거 같아요, 이런 걸로."
"이런 게 가장 어려운 거다."
소예는 그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저 곁에 잠깐 앉아 있다가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이렇게까지 인정받을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동시에, 그게 얼마나 참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해 질 무렵, 아이는 결국 문 앞에 멈춰 섰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서 있다가, 마침내 문을 밀었다.
딸랑, 하는 소리는 없었다. 대신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저기."
아이가 작게 말했다.
"들어가도 되나요?"
라면사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그러려고 있는 가게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소예가 다가가 물을 한 잔 내려놓았다.
"뭐 먹을래?"
"……돈이 없어요."
"여기 돈 안 받아도 될 때가 많아."
"진짜요?"
"응. 나도 그랬거든."
아이는 그 말에 조금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이틀 동안 왜 안 들어왔어?"
소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는 손에 쥐고 있던 나침반을 만지작거렸다.
"……무서웠어요."
"뭐가?"
"들어가면, 진짜로 끝난 거 같아서요."
소예는 순간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중요한 걸 건드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라면사장이 조용히 다가와 그릇을 내려놓았다. 소예가 아직 뭘 시킬지도 안 물었는데, 그는 이미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먹어."
아이는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그를 올려다봤다.
"저는요,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못 갔어요. 문이 닫혔어요. 제가 망설이는 동안."
라면사장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로 왔어요. 근데 여기 들어오면, 진짜로 다시는 못 돌아가는 거 같아서……"
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예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옆에 서 있었다. 비아가 조용히 다가와 아이 옆 의자에 앉았다.
"돌아가고 싶었냐……이다?"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정하지 못하고 문이 닫힌 게 무서웠어요."
비아는 그 말을 한참 곱씹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문은 계속 생긴다……이다."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 문은 닫혔지만, 다른 문은 또 생긴다. 언제 생길지는 모른다. 근데 안 생기는 건 아니다……이다."
"진짜요?"
"내가 문이니까 안다……이다."
아이는 그 말에 처음으로 살짝 웃었다.
라면사장이 낮게 덧붙였다.
"지금 당장 뭘 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 앉아만 있어도 된다."
"……진짜로요?"
"그래."
아이는 젓가락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국물을 한 입 먹고, 눈을 크게 떴다.
"맛있어요."
"당연하지."
소예가 옆에서 작게 웃었다. 자신이 처음 이 가게에 왔을 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아이는 결국 잠들어버렸다. 카운터에 엎드린 채였다. 비아가 그 옆에서 담요를 끌어다 덮어주었다.
세레나가 조용히 다가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네요."
"응."
라면사장이 짧게 답했다.
"저 아이, 내일은 뭘 정할까요."
"몰라."
"항상 모른다고 하시네요."
"안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세레나는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당신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시는군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일이다."
"압니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잠깐 손을 멈췄다가, 다시 그릇을 정리했다.
소예가 옆에서 작게 물었다.
"사장님은 저 애가 뭘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몰라."
"진짜 아무 생각도 없어요?"
라면사장은 잠깐 침묵하다가, 아주 낮게 답했다.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소예는 그 대답을 오래 곱씹었다.
볼도가 카운터 구석에서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도 그랬어요."
다들 그를 돌아봤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사장님이 저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보셔서 오히려 무서웠어요. 뭔가 잘못한 줄 알았거든요."
"지금은요?"
소예가 물었다.
"지금은 알아요. 그게 배려였다는 거."
볼도는 잠든 아이 쪽을 바라봤다.
"저 애도 나중에 알게 될 거예요. 오늘 아무도 자기를 안 재촉했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이었는지."
세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에 처음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요. 재촉당하는 데 익숙해져서, 재촉당하지 않는 걸 오히려 불안해하죠."
"저도 그랬어요."
소예가 작게 웃으며 인정했다.
"첫날엔 뭔가 시켜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근데 아무도 안 시키니까, 이상하게 제가 뭘 원하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비아가 담요를 다시 한번 여며주며 끼어들었다.
"사람은 안 시키면 오히려 더 열심히 한다……이다."
"그거 어디서 배운 말이야?"
"방금 내가 만들었다."
"방금 만든 걸로는 안 믿어져."
"그래도 맞말이다……이다."
소예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세레나도 조용히 웃었다. 라면사장만 아무 말 없이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도 아주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냄비가 끓는 소리, 잠든 아이의 숨소리, 창밖에 내리는 눈소리만이 그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불을 하나씩 껐다. 마지막 불빛 아래, 잠든 아이와 비아, 그리고 아직 치우지 않은 그릇 몇 개가 남았다.
그는 그 풍경을 잠깐 바라보았다.
오늘 몇 명이 왔는지, 몇 명이 떠났는지, 그는 세지 않았다. 세는 순간 이 가게는 기록이 되고, 기록은 언젠가 결산이 된다. 그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일도 물을 올릴 뿐이었다.
노바 니발리스의 밤은 그렇게, 아직 아무것도 세지 않은 채 조용히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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