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64화. 정원, 박수, 망설임

가게 뒤편에 자리한 수연의 얼음 정원은, 어느새 도시의 작은 명소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배달 틈틈이 검을 휘둘러 만들어낸 얼음 조각들이 모여,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나며 감탄하곤 했다.

그러나 그날, 돈키호테가 그 정원 앞에 서서 심각한 얼굴로 팻말을 하나 세우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수연이 다가와 물었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물리법칙 버그 – 철거 대상."


"수연 씨, 이 정원은 도시의 물리법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

돈키호테가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 얼음 조각들, 온도를 유지하는 원리가 설명이 안 된다! 주변 기온과 무관하게 계속 얼어 있는 게 말이 되는가!"

수연은 그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계속 관리해서 그런 거예요. 버그가 아니라."


"아니, 그게 바로 문제다! 개인이 물리법칙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도시 질서에 위배된다!"

"그럼 사장님 라면 국물은요? 그것도 물리법칙 무시하고 계속 뜨겁잖아요."

"그, 그건 다른 문제다! 식품은 예외 조항이 있다!"

돈키호테가 당황하며 억지 논리를 펼쳤다.

"무슨 예외 조항이요?"

"내, 내가 방금 만들었다!"


수연은 그 뻔뻔한 대답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이 정원도 예외로 하면 되잖아요."

"그건 안 된다! 형평성의 문제다!"

"형평성은 무슨. 그냥 철거하고 싶은 이유가 따로 있는 거 아니에요?"

돈키호테는 그 지적에 순간 움찔했다.

"그, 그런 거 아니다!"


"솔직히 말해봐요. 뭐가 문제인데요?"

수연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돈키호테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실토했다.

"……사실, 내가 만든 도시 조례 초안에 이 정원이 없어서 그렇다."

"네?"

"내가 이 도시의 모든 시설물을 문서화하려고 하는데, 이 정원은 어디에도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미등록 시설물이라 마음이 불편했다."


수연은 그 말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냥 등록하면 되잖아요!"

"그, 그런가?"

"네! 저 등록 신청할게요. 서류 어디 있어요?"

돈키호테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하며 품속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여, 여기 신청서다."


수연은 그 서류를 받아 들고 즉석에서 작성하기 시작했다.

"시설명: 수연의 얼음 정원. 용도: 관상용 및 정신 건강 증진. 관리자: 수연."

"자, 다 썼어요."

돈키호테는 그 서류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흠…… 형식은 문제없군."


"그럼 이제 정식 등록되는 거예요?"

"자, 잠깐! 아직 심사 절차가 남아 있다!"

"무슨 심사요?"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도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지!"

수연은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꼭 해야 돼요?"

"당연하다! 이게 바로 민주적 절차다!"


그렇게 즉석에서, 가게 앞 골목에 작은 공청회가 열리게 되었다.

"수연 씨의 얼음 정원, 정식 등록에 대해 의견 있으신 분?"

돈키호테가 근엄하게 물었다.

"완전 찬성이요! 그 정원 진짜 예뻐요!"

지나가던 손님이 즉각 외쳤다.

"저도 찬성이요!"

또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순식간에 모인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찬성 의견을 냈다. 돈키호테는 그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바, 반대 의견은 없나?"

"...."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 그럼……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음을 선언한다!"

돈키호테가 마지못해 선언했다.


"이제 됐죠?"

수연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 정식으로 '공인 예술'로 등록되었다."

"공인 예술이요?"

"그래! 단순 시설물이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 격상 등록하마! 이게 최초의 도시 행정 절차 사례가 될 것이다!"

돈키호테가 그렇게 선언하며, 새로운 등록증을 즉석에서 작성해 건넸다.


수연은 그 등록증을 받아 들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액자에 넣어서 정원 앞에 걸어둬야겠어요."

"그, 그래주면 영광이다."

돈키호테가 어색하게 답했다. 그는 방금까지의 위엄이 무색하게, 자신이 만든 절차의 결과에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 소란을 곁에서 지켜보던 라면사장이 다가와 물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나."

"제 정원이 공인 예술로 등록됐어요!"

수연이 신이 나서 말했다.

"잘됐군."

라면사장이 옅게 웃으며 그 등록증을 살펴보았다.

"근데 이 도장은 뭐냐."

"제, 제가 만든 공식 인장이다!"

돈키호테가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 도장에는 어설프게 그려진 풍차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수연 씨, 축하해요."

이리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축하했다.

"고마워! 이제 이 정원이 진짜 우리 가게의 명소가 됐네."

수연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돈키호테는 그 축하 분위기 속에서, 슬며시 물었다.

"그, 근데 이걸로 다음 조례 초안 작성 때 나 좀 도와줄 수 있나?"

"오, 도와드릴게요! 재밌겠는데요?"

수연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날 저녁, 수연은 자신의 정원 앞에 새로 받은 등록증을 조심스럽게 세워두었다.

"공인 예술 제1호. 수연의 얼음 정원."

그녀는 그 문구를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처음엔 어이없던 소동이, 결국 이 도시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낸 셈이었다.

라면사장이 그 곁에 다가와 나란히 정원을 바라보았다.

"이 정원, 처음 만들 때보다 많이 늘었군."

"그쵸? 매일 조금씩 추가했거든요."

"잘 어울린다. 너랑."

그 짧은 칭찬에, 수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 감사해요."

두 사람은 그렇게 나란히 서서, 얼음 조각들이 은은하게 빛나는 정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편, 가게에서 배달 알바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노인이 있었다. 치로 반다라는 이름의 그는, 한때 이름난 곡예사였다고 했다.

"이 나이에 배달이라니, 다들 놀라시더군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곡예사셨으면 몸이 유연하시겠어요."

수연이 감탄하며 말했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아직 녹슬진 않았죠."


그날, 치로가 배달을 나가던 중이었다.

골목을 걷던 한 아이가 실수로 손에 든 접시를 놓치고 말았다.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치로가 순식간에 몸을 날려 그 접시를 받아냈다.

"괜찮니?"

그가 물었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우와, 방금 그거 봤어?"

"완전 멋있다!"

치로는 그 박수 소리에 순간 멈칫했다. 오랜만에 듣는 환호였다.

"……"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어르신, 왜 그러세요?"

옆에 있던 수연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 은퇴하고 나서, 처음 받아본 박수라서요."

치로가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그동안 아무도 안 쳐주셨어요?"

"곡예를 그만둔 뒤로는, 다들 그냥 늙은 배달부로만 봐주더군요."

그의 그 말에는, 오랜 세월 쌓인 서운함과 그리움이 함께 담겨 있었다.


수연은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럼 다시 보여주시면 되잖아요! 어르신 곡예 실력."

"이 나이에 무슨……."

"방금 그 접시 받는 거 완전 멋있었는데요? 아직 충분히 잘하시는 것 같은데."

치로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침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리스가 다가왔다.

"어르신, 혹시 다시 공연하고 싶으신 마음 있으세요?"

"이, 이제 와서요?"

"네! 제가 극장 거리 사람들 알거든요. 같이 공연해보시는 거 어때요?"

치로는 그 제안에 눈을 크게 떴다.


"저 같은 늙은이가 무대에 서도 될까요?"

"당연하죠!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이리스가 힘주어 말했다.

"저번에 아까 그 순간적인 몸놀림, 진짜 예술이었어요. 그런 걸 그냥 배달할 때만 쓰기엔 너무 아까워요."

치로는 그 말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열정이 다시 타오르는 걸 느꼈다.


며칠 뒤, 치로는 코모 리치, 솔 미제레와 함께 작은 시범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거, 진짜 오랜만이라 긴장되네요."

그가 대기실에서 손을 떨며 말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이리스가 다독였다. 그녀는 조명을 준비하며, 이 무대가 치로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공연 당일, 치로는 오랜만에 무대 의상을 갖춰 입고 관객들 앞에 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관객들은 그를 알아보고 술렁였다.

"어, 저분 예전에 유명했던 곡예사 아니야?"

"맞아! 오랜만이다!"


치로는 그 반응에 힘을 얻어, 천천히 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개의 접시를 저글링하며 균형을 잡았고,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는 세월이 쌓아온 노련함이 담겨 있었다.

"우와아!"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치로는 그 박수 소리 속에서,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이번엔 슬픔이 아니라, 벅찬 감격의 눈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이리스가 그에게 다가왔다.

"어르신, 어떠셨어요?"

"이런 순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치로가 감격한 얼굴로 답했다.

"이리스 씨 덕분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조명만 좀 도와드린 건데."

"아니에요. 저를 다시 무대에 세워준 건, 이리스 씨였어요."


이리스는 그 말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는 늘 자신이 무대 뒤에서 남을 위한 빛을 만드는 역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치로의 그 감사 인사는, 그녀가 하는 일이 단순히 부수적인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에 큰 의미를 더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저도…… 오늘 진짜 감동받았어요."

그녀가 진심으로 답했다.


그날 저녁, 수연은 가게로 돌아와 이 소식을 라면사장에게 전했다.

"치로 어르신,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다시 무대에 서셨거든요."

"그래?"

"네! 이리스가 도와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저 아이도,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군."


"근데 신기해요. 이리스는 계속 남을 도와주는 역할만 하잖아요. 근데 본인은 그게 괜찮은 걸까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본인이 선택한 방식이면, 그것도 존중해야지."

"그렇긴 한데……."

수연은 뭔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이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치로의 눈물, 그리고 그가 건넨 진심 어린 감사. 그녀는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만드는 빛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수 있구나.'

그녀는 그 깨달음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동시에 작은 질문 하나가 계속 맴돌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빛 안에 서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녀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지만, 오늘의 경험이 그 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 것 같았다.


치로의 공연 이후, 이리스는 극장 거리 공연자들 사이에서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리스 씨, 다음엔 뭐 준비하세요?"

코모가 물었다.

"저요? 그냥 다음 공연 조명 준비하려고요."

"아니, 그거 말고 더 큰 거요. 이리스 씨 재능이면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리스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합동 무대는 어때요?"

그녀가 제안했다.

"합동 무대요?"

"네. 코모 씨 인형극이랑, 솔 씨 유리 오르간을 같이 엮어서 하나의 공연으로 만드는 거예요. 저는 그 전체를 조명으로 연출하고요."

코모와 솔은 그 제안에 눈을 반짝였다.

"오,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인데요!"

"저도 찬성이에요!"


두 사람의 흔쾌한 동의에, 이리스는 신이 나서 세부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코모 씨 인형극의 클라이맥스에 솔 씨 연주를 얹고, 그 위에 제가 조명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관객들이 시각, 청각, 스토리를 한 번에 느낄 수 있게요."

"완전 좋아요! 근데 이리스 씨는 그때 어디 계실 건데요?"

솔이 물었다.

"저는…… 무대 뒤에서 조명 조작할게요."


그 대답에, 코모가 문득 물었다.

"근데 이리스 씨는 왜 항상 무대 밖이에요?"

수연도 마침 그 자리에 있다가, 문득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맞아, 신입. 너는 왜 맨날 무대 밖이야?"

이리스는 그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그건……."

그녀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얼버무렸다.


"저는 그냥, 조명 만드는 게 좋아서요."

그녀가 결국 그렇게 답했다.

"근데 아까 치로 어르신 공연 때, 너도 표정 진짜 밝았잖아. 그거 관객으로서 즐거워하는 표정 아니었어?"

수연이 예리하게 지적했다.

이리스는 그 지적에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뭐가 다른데?"


이리스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무대 뒤가 자신의 자리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걸 그녀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솔직하게 답했다.

"모른다고?"

"네. 무대 뒤가 편한 건 확실한데, 가끔은…… 다른 것도 궁금해요."


그 솔직한 고백에, 주변 사람들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 합동 무대에서, 잠깐이라도 무대에 서보는 건 어때요?"

코모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저, 저요?"

"네. 조명 연출자로서, 마지막에 잠깐 인사만 하는 거죠. 완전히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짝."

이리스는 그 제안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 그건 좀……."

그녀가 머뭇거렸다.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돼요."

솔이 배려하듯 말했다.

이리스는 그 배려에 오히려 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하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동시에 그녀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생각해볼게요."

그녀는 결국 그렇게 얼버무리며 대답을 미뤘다.


그날 저녁, 수연은 가게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라면사장에게 전했다.

"신입이 무대에 서는 거, 계속 망설이고 있어요."

"그래?"

"네. 근데 저는 신입이 진짜로는 서고 싶어 하는 것 같거든요."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억지로 밀 수는 없다."

"저도 알아요. 근데 그냥 옆에서 조금은 응원해주고 싶어서요."


"응원하는 거야 나쁠 거 없지."

라면사장이 답했다.

"근데 너무 재촉하지는 마라. 저 아이 속도가 있을 거다."

수연은 그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마음은 좀 급해지네요."

"왜?"

"신입이 계속 자기 자신을 뒷전으로 미루는 게, 좀 안쓰러워서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너는, 다른 사람 마음 쓰는 게 참 자연스럽구나."

"그, 그런가요?"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구석이 있었다."

수연은 그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사장님도 그런 거 잘하시면서."

"나야, 원래 그런 게 일이니까."

"에이, 그것만은 아니잖아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향한 은근한 인정을 주고받으며 옅게 웃었다.


그날 밤, 이리스는 자신의 방에서 오늘의 제안을 계속 곱씹었다.

무대에 서는 것. 그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피해온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 제안을 들었을 때 그녀 안에서 일어난 그 두근거림은, 단순한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해보고 싶은 걸까, 나.'

그녀는 그 질문에 아직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예전처럼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 안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리모컨을 꺼내 열 번째 버튼을 매만졌다.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그 어둠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다른 색을 띠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그녀는 그렇게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창밖으로 극장 거리의 불빛이 여전히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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