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55화. 지름길과 열쇠

"이거 봐라, 이거."

그날 아침, 비아가 카운터 뒤편의 냉장고 문을 가리키며 잔뜩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데?"

수연이 물었다.

"이 문, 창고로 지름길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이다!"

"냉장고에서 창고로 지름길?"

"응! 문은 원래 이어질 수 있는 곳이면 다 이을 수 있다……이다. 냉장고랑 창고, 둘 다 차가운 곳이니까 이을 수 있을 거다……이다."

비아는 그렇게 설명하며 자신만만하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자, 봐라……이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김이 확 뿜어져 나왔다.

"……어?"

비아가 당황한 얼굴로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은 창고가 아니라, 뽀얀 김이 자욱하게 서린 어딘가였다.

"이, 이게 아닌데……이다."

"뭐야, 이거."

수연도 놀라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김이 서린 너머로, 흐릿하게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리고 은은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목욕탕 아니야?"

"모, 목욕탕이 아니라 창고여야 하는데……이다!"

비아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문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문이 열렸네?"


문 너머 목욕탕에 있던 사람은 베르타 뭄이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이 도시의 대중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갑자기 문이 열려서 깜짝 놀랐네."

베르타가 수건으로 몸을 두른 채 그 앞으로 다가왔다.

"죄, 죄송해요! 저희 애가 실수로……."

수연이 서둘러 사과했다.

"애? 무슨 애?"

베르타가 두리번거리다가, 문 안쪽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비아를 발견했다.

"어머, 비아잖아. 오랜만이네."

"베, 베르타…… 미안하다……이다."

비아가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사과했다.

"괜찮아, 근데 이렇게 갑자기 문이 열리면 손님들 놀라잖니."

베르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다행히 크게 화를 내는 기색은 아니었다.

"저, 근데 왜 갑자기 여기가 열린 거예요?"

수연이 궁금해서 물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 혹시 오늘 물 온도 때문인가?"

"물 온도요?"

"오늘따라 유독 뜨겁게 데워놨거든. 냉장고랑 정반대로."

베르타의 그 말에, 비아가 문득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거다……이다. 너무 차가운 것과 너무 뜨거운 것은,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이다. 극단은 서로 통한다……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연이 되물었다.

"몰라……이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이다."

비아의 그 애매한 설명에, 다들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연결 통로 소식이 목욕탕 안에 순식간에 퍼지면서, 손님들이 하나둘 그 문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라면가게로 통하는 문이라고?"

"거기 라면 먹으면서 목욕도 할 수 있는 거야?"

"우와, 신기하다!"

목욕을 즐기던 사람들이 반쯤 장난삼아, 반쯤 호기심에 그 문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연은 당황해서 문을 막아섰다.

"자, 잠깐만요! 이건 실수로 열린 거고요, 원래 이런 문 아니에요!"

"에이, 재밌잖아요. 잠깐 넘어갔다 와도 돼요?"

한 손님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 아니요! 절대 안 돼요!"

수연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김 자욱한 목욕탕 쪽에서는 소소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소란을 듣고 라면사장이 부엌에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야."

그가 문 앞의 상황을 보고는 순간 말을 잃었다.

"사, 사장님! 비아가 지름길 만든다고 하다가……"

수연이 다급하게 설명했다.

라면사장은 김이 자욱한 문 너머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아."

"…미, 미안하다……이다."

비아가 잔뜩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닫아라. 지금 당장."

"어, 어떻게 닫는데……이다? 이거 원래 내가 여는 것만 알지 닫는 건……."

"뭐?"

비아의 그 말에 라면사장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닫는 법을 모른다고?"

"그, 그게…… 열 때는 저절로 됐는데, 닫는 건 또 다른 방식인 것 같다……이다."


그 순간, 골목 저편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측된 실패다!"

돈키호테였다. 그는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참이었다.

"이런 무단 차원 연결은 도시 규정 위반이다! 즉각 봉쇄해야 한다!"

"돈키호테 씨,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라……."

수연이 말리려 했지만, 돈키호테는 이미 자기 세계에 빠져 있었다.

"걱정 마라! 내가 이런 사태를 위해 미리 준비해둔 게 있다!"

그는 품속에서 정체불명의 도구를 꺼내 들었다. 나무로 만든 이상한 모양의 장치였다.

"이게 뭔데요?"

"차원 봉쇄기다! 이걸로……."

돈키호테가 그 장치를 문에 갖다 대자, 오히려 김이 더 세게 뿜어져 나왔다.

"……어라?"

"돈키호테 씨!!"


결국 문제를 해결한 건 세레나였다. 소란을 듣고 순찰 중 달려온 그녀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비아, 문을 연 방식 그대로 반대로 해보세요."

"바, 반대로……이다?"

"열 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창고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럼 지금은 이 문이 원래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해보세요."

비아는 그 말에 따라 눈을 질끈 감고, 문이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잠시 후, 김이 서서히 걷히더니 문 너머는 다시 평범한 창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 됐다……이다!"

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목욕탕 손님들은 아쉬운 듯 탄성을 내뱉었지만, 이내 다시 각자의 목욕을 즐기러 돌아갔다.

베르타는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다음에 진짜 놀러 와, 다들! 목욕탕 이용권 줄게!"

"가, 감사합니다……!"

수연이 얼떨결에 답했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창고 안쪽은 다시 평범한 선반과 상자들만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까지의 소동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이거 완전 정신없었다."

수연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저,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이다."

비아가 여전히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세레나는 그 옆에서 상황을 정리하며 짧게 메모를 남겼다.

"이런 우발적 차원 연결은 처음이네요. 기록해둬야겠어요.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도움이요? 이런 사고가요?"

수연이 의아해서 물었다.

"사고도 데이터예요. 비아의 능력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작은 수첩에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녀의 그런 꼼꼼함이, 이 도시의 여러 소동들을 하나씩 기록이자 자산으로 바꿔가고 있었다.


소동이 끝난 뒤, 가게 안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듯 어수선했다.

"비아, 다신 이런 거 함부로 시도하지 마."

라면사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 미안하다……이다. 그냥 도움이 되고 싶었다……이다."

비아가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연이 옆에서 다독였다.

"괜찮아, 비아. 다치는 사람 없었잖아. 다음엔 확실한 것만 시도해."

"으응……이다."

라면사장은 그런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비아의 머리를 톡 두드렸다.

"그래도 마음은 알겠다. 다음엔 나한테 먼저 물어봐라."

"어, 화 안 났다……이다?"

"화날 뻔했지. 근데 뭐, 다친 사람 없으면 됐다."

비아는 그 말에 금세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 그럼 나중에 진짜 지름길 만드는 법 좀 가르쳐줄 수 있냐……이다? 이번엔 제대로 배우고 싶다……이다."

"진짜 지름길이라니, 그게 뭔데?"

수연이 물었다.

"그냥…… 사람들한테 도움 되는 문. 냉장고에서 창고 가는 거 말고, 진짜 필요한 곳으로 이어주는 거……이다."

비아의 그 말에는 평소의 장난기 대신, 어딘가 진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라면사장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답했다.

"그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거다. 급하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래도…… 배우고 싶다……이다."

"좋다. 다음에 시간 날 때 가르쳐주마. 대신 이번처럼 혼자 막 시도하지 말고."

"응! 약속한다……이다!"

비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활짝 웃었다. 라면사장은 그 작은 손가락을 잠시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자신의 손가락을 걸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두 분 그거 은근 잘 어울려요."

"뭐가."

"그렇게 약속하는 거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살짝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비아는 그저 신이 나서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카운터 주변을 뛰어다녔다.


그날 오후, 돈키호테는 자신의 실패한 차원 봉쇄기를 들고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도구, 분명 이론적으론 완벽했는데……."

"돈키호테 씨, 그거 이론이 원래 문제였던 거 아니에요?"

수연이 웃으며 놀렸다.

"무슨 소리! 이건 다음번엔 반드시 성공할 거다! 예측된 성공이 곧 도래할 것이다!"

"…네네."

수연은 그렇게 웃어넘기며, 돈키호테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오히려 이 가게에 활기를 더해준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근데 돈키호테 씨, 그 도구는 대체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이리스가 호기심에 물었다.

"내가 직접 제작했다! 지난 도시 행정 회의에서 이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지. 그래서 개인적으로 준비해뒀다!"

"근데 왜 작동을 안 했어요?"

"그, 그건…… 이론과 실전의 괴리다! 다음 버전에서는 반드시 개선하겠다!"

돈키호테가 그렇게 당당하게 선언하며 나무 장치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오히려 그 진지함 때문에 더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수연이 웃으며 말하자, 돈키호테는 흠칫 놀란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다, 당연한 거다! 이 도시의 질서를 지키는 게 내 역할이니까!"

그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나 그 뒷모습에서, 수연은 그가 이 도시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세레나는 그날 오후, 도시 기록부에 이번 사건을 짧게 남겼다. "비아의 문 연결 능력, 온도 극단값에서 우발적 발현 가능성 확인." 그녀는 그 메모 옆에 작은 물음표를 하나 덧붙였다. 이 능력이 앞으로 이 도시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그녀 자신도 아직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베르타가 감사 인사를 하러 가게에 들렀다. 목욕 후라 그런지 얼굴이 유독 개운해 보였다.

"오늘 재밌었어. 다음엔 진짜로 그런 지름길 하나 만들어줘도 좋겠던데."

"저, 저는 사양할게요."

수연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지 말고. 라면 먹으면서 목욕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베르타의 그 농담에,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라면사장도 드물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수연은 문득 생각했다. 이 가게는 매번 이런 사소한 소동들로 채워지지만, 그 소동들 하나하나가 이 도시를 조금씩 더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는 걸.


가게 마감 후, 수연은 라면사장과 나란히 오늘의 소동을 정리하며 웃었다.

"오늘 진짜 정신없었네요."

"그러게 말이다."

"근데 재밌었어요. 비아 표정이 진짜 볼만했어요."

"……그래, 재밌긴 했다."

라면사장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 웃음을 옆에서 지켜보던 수연은, 그가 이렇게 편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녀는 그 마음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저 그 웃음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사장님, 아까 비아 혼낼 때 진짜 무섭게 반응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풀어주셨네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릇을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답했다.

"저 아이가 뭔가 잘못했을 때, 매번 화만 내면 아무것도 안 배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맞아요?"

"실수는 인정하게 하고, 그다음엔 왜 그랬는지 들어주는 거다. 저 아이는 늘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사람들을, 그리고 이 도시의 존재들을 대하는 방식에는 언제나 일관된 다정함이 있었다. 그 다정함이 그녀에게는 유독 크게 다가왔다.

"사장님은…… 항상 그렇게 다 이해해주려고 하시네요."

"……그런가."

"네. 저한테도 그랬잖아요, 처음 왔을 때."

라면사장은 그 말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 기억하나."

"당연하죠. 아무것도 몰랐던 저를, 아무것도 안 캐물으시고 그냥 받아주셨잖아요."

"……그건 딱히 특별한 게 아니다. 이 가게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

"그래도, 저한테는 특별했어요."

수연의 그 말에, 라면사장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그런가."

그는 그렇게만 짧게 답하고 다시 그릇 정리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의 귀 끝이 살짝 붉어져 있다는 걸, 수연은 이번에도 놓치지 않았다.

가게 밖으로는 오늘 하루의 소동을 잊은 듯, 골목이 다시 고요한 밤의 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게 안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소동보다도 조용하게, 어떤 감정이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세레나의 머리에는 늘 같은 자리에 꽂혀 있는 비녀 하나가 있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그 비녀는, 자세히 보면 손잡이 부분이 작은 열쇠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평소엔 머리카락 사이에 감춰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몸을 숙일 때마다 살짝 드러나곤 했다.

며칠 뒤, 가게 청소를 돕던 소예가 그 비녀를 발견하고 물었다.

"세레나 씨, 이 비녀 예쁘네요. 열쇠 모양이에요?"

세레나는 순간 손을 뻗어 비녀를 살짝 매만졌다.

"네, 열쇠 모양이에요."

"진짜 열쇠예요? 아니면 그냥 장식이에요?"

소예의 질문에, 세레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진짜 열쇠예요."

"무슨 문을 여는 열쇠인데요?"

세레나는 그 질문에 옅게 웃으며 답했다.

"열지 못한 문이 하나 있어서요."


그 대답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소예는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더 캐묻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 지내며 배운 것 중 하나는, 모든 질문에 답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언젠가 열게 되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세레나는 그렇게 답하며 다시 하던 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은 잠시 그 비녀 위에 머물렀다.

마침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수연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 문, 어디 있는 문인데요?"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열쇠는 있는데 문의 위치를 모른다고요?"

"네. 이상하죠?"

세레나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때, 조용히 카운터 뒤에서 정리를 하던 라면사장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 비녀, 처음 봤을 때부터 궁금했었다."

세레나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신기하네요."

"궁금한 건 나도 있다."

"근데 왜 지금까지 안 물어보셨어요?"

"물어봐도 될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라면사장의 그 대답에, 세레나는 옅게 웃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장님한테 궁금한 게 많은데, 물어봐도 될지 늘 확신이 없어서 못 물어봤거든요."

"……그런가."

"네. 예를 들면, 사장님은 이 가게를 왜 시작하셨어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세레나도 더 캐묻지 않고 기다렸다.

"……그것도, 아직은 말 못 한다."

"저도 제 비녀에 대해 똑같이 답했잖아요. 피차일반이네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침묵을 존중하며 옅게 웃음을 나눴다. 이 가게에는, 서로에게 캐묻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그런 종류의 대화가 자주 오갔다.

"이 비녀는, 제가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거예요."

세레나가 문득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디서 났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눈을 떴을 때, 이미 제 머리에 꽂혀 있었어요."

"그럼 그게 뭘 여는 건지도 모르시는 거예요?"

수연이 물었다.

"네. 근데 이상하게, 이걸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뭔가 중요한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비녀를 살짝 뽑아 보여주었다. 가까이서 보니, 열쇠 부분의 세공이 유독 정교했다. 마치 실제로 무언가를 열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세레나 씨는 도시 전체를 관리하시잖아요. 이런 걸 조사하는 것도 잘하실 것 같은데."

"저도 여러 번 시도해봤어요. 도시 안의 모든 문을 다 맞춰봤죠. 근데 어디에도 맞는 문이 없었어요."

"그럼 이 도시 밖에 있는 문일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이 도시 밖으로 나가는 문은…… 아직 아무도 찾은 적이 없잖아요."

그 말에 가게 안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도시의 존재들에게, "밖"이라는 개념은 늘 막연하고 아득한 것이었다.

이리스가 조심스럽게 그 침묵을 깨며 물었다.

"세레나 씨는 이 비녀, 무섭지 않으세요?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르는 문의 열쇠를 계속 갖고 다니는 거요."

"무섭기보다는……."

세레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궁금해요. 그리고 조금은 설레기도 하고요."

"설렌다고요?"

"네. 열어보지 않은 문은, 무엇이든 될 수 있잖아요. 실망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상상 이상으로 좋은 것일 수도 있고요."

이리스는 그 말에 문득 자신의 열 번째 드론을 떠올렸다. 아직 켜지지 않은 그 불빛도, 언젠가는 무언가로 밝혀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일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보려고요. 아직 못 찾은 것들에 대해서."

이리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찾으실 거예요. 이리스 씨도, 저도."

세레나가 그렇게 답하며 옅게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미완성을 품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다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급하게 찾을 필요 없다."

세레나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때가 되면, 그 문도 나타날 거다."

"……사장님도 뭔가 아세요?"

"모른다. 근데 이 가게에 오는 사람들 다, 결국 자기 문을 찾더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세레나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 말, 위로가 되네요."

"위로하려고 한 말은 아니다."

"그래도요."

세레나는 그렇게 답하며 비녀를 다시 한번 매만졌다. 그녀는 문득 이 도시를 설계하며 품었던 오래된 소망을 떠올렸다. 연결이 강요되지 않는 곳, 선택이 그 선택을 한 사람에게 온전히 남는 곳. 그녀가 만든 이 도시의 모든 원칙이, 사실은 그녀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것들이었는지도 몰랐다.

"저도 언젠가는, 이 열쇠에 맞는 문을 스스로 선택해서 열게 되겠죠. 누가 대신 열어주는 게 아니라."

그녀의 그 말에는, 이 도시를 지은 창건자로서의 신념과, 한 존재로서의 개인적인 바람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럴 거다."

라면사장이 짧게 동의했다. 그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그 확신의 근거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 특유의 여백도 함께였다.


그날 오후, 수연은 배달을 나가는 길에 문득 그 비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세레나는 늘 침착하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도시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관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런 그녀에게도 열지 못한 문이 있다는 사실이, 수연에게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나도…… 열지 못한 문이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었던 마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자신. 그 기억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지만, 여전히 그녀 안 어딘가에 닫힌 문처럼 남아 있었다.

'세레나 씨의 문은 앞으로 열릴 문이고, 내 문은 이미 닫혀버린 문이라는 게 다르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녀는 문득 라면사장의 말을 떠올렸다. 이 가게에 오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문을 찾는다는 말. 그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될지, 그녀는 궁금해졌다.


가게로 돌아온 그녀는, 마침 홀로 카운터를 정리하고 있는 라면사장을 발견했다.

"사장님, 아까 하신 말씀요."

"뭐 말이냐."

"다들 자기 문을 찾는다는 거요. 저도 그런 문이 있을까요?"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있겠지."

수연은 그 짧은 대답 뒤로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운터 위의 등불이 그의 옆얼굴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그 옆얼굴이, 오늘따라 유독 눈에 들어왔다.

'……왜 자꾸 저 얼굴을 이렇게 오래 보게 되지.'

그녀는 그런 생각에 스스로도 조금 당황하며 시선을 거뒀다.

"어떤 문인지 아세요?"

"모른다. 근데."

그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이었다.

"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그 시작이었을 거다."

수연은 그 말에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너는 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여기서 많은 걸 겪었지. 검을 다듬는 법도 배웠고, 토핑도 배웠고, 사람들도 만났고."

"네……."

"그게 다, 네 안의 다른 문들을 여는 과정일 수도 있다."

라면사장의 그 말에, 수연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건 드문 일이었다.

"……사장님, 오늘따라 말씀 많이 하시네요."

"……그랬나."

그가 그렇게 얼버무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 어색한 반응에, 수연은 웃음이 났다.

"근데 사장님은요? 사장님도 찾아야 할 문이 있어요?"

그녀가 문득 되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순간 손을 멈췄다.

"……있겠지."

"어떤 건데요?"

"그건…… 아직 말 못 한다."

"왜요?"

"나도 아직,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니까."

그의 그 대답은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수연은 그 말속에 숨겨진 여운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뭔가 자신과 관련된 것을 말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찾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실 거예요?"

"……그건 봐서."

"에이, 뭐예요 그게."

수연이 살짝 토라진 척 입술을 삐죽였다. 라면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옅게 웃으며 다시 정리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방금 그녀가 던진 질문이 오래도록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그 문은, 이미 열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카운터 위의 붉은 테두리 그릇 쪽으로, 그리고 다시 수연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개의 다른 기다림이, 그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겹쳐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세레나가 순찰을 마치고 다시 가게에 들렀다.

"아까 그 얘기, 계속 생각해봤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 열쇠에 대해서요?"

"네. 어쩌면 저는, 이 문을 찾는 것보다 이 도시를 만드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문을 찾을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 문을 찾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려고 했던 거죠."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수연이 답했다.

"네, 그렇긴 한데…… 가끔은 제 것도 좀 찾아야 하나 싶어요."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비녀를 다시 매만졌다. 그 손짓에는 오랜 세월 쌓아온 담담함과, 그 아래 감춰진 작은 갈망이 함께 담겨 있었다.

"찾게 되면 저희한테도 알려주세요. 같이 축하해드릴게요."

"고마워요, 수연 씨."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 웃음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편안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세레나가 자리를 뜬 뒤, 소예가 조심스럽게 수연에게 다가와 물었다.

"수연 씨는 세레나 씨 비녀 얘기 듣고 어떤 생각 들었어요?"

"음…… 나도 뭔가 찾아야 할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수연 씨도요?"

"응. 근데 그게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세레나 씨처럼 뭔가 구체적인 열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예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문득 물었다.

"혹시……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안 돼요?"

"뭘?"

"수연 씨가 찾아야 할 게 뭔지요. 사장님은 뭔가 다 알고 계신 것 같잖아요."

수연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소예의 순수한 눈빛에는 아무런 다른 의도가 없었지만, 그 말이 묘하게 그녀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건…… 사장님도 모르실 수도 있어. 아니, 알아도 말씀 안 해주실 것 같아."

"왜요?"

"이 가게는 그런 곳이잖아. 억지로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곳."

소예는 그 말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것도 이 가게의 방식이죠."


그날 밤, 라면사장은 가게를 정리하며 문득 세레나의 비녀를 떠올렸다.

이 도시의 창건자이자 관리자인 그녀조차 아직 찾지 못한 문이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어떤 울림을 주었다. 완벽해 보이는 존재도, 결국은 자기만의 미완성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는 문득 자신에게도 그런 미완성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선반 위의 붉은 테두리 그릇, 그리고 아직 그 자리에 오지 않은 누군가. 그 역시 자신만의 열지 못한 문을 안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즘 들어 부쩍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도 떠올렸다. 수연을 향한 이 낯선 감정 역시, 어쩌면 자신 안의 또 다른 문일지도 몰랐다.

'……이것도 열어야 할 문인가.'

그는 그 생각에 스스로도 조금 놀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랜 세월 그는 스스로에게 필요한 문이 무엇인지 굳이 묻지 않고 살아왔다. 그저 이 가게를 지키고,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충분함 너머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낯선 예감이 그를 자꾸만 건드렸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다. 다만 그 예감의 중심에 늘 한 사람의 얼굴이 있다는 것만은, 이제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가게 문을 잠갔다. 골목은 고요했고, 하늘에는 차가운 별들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빛 아래에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열쇠를 품은 채, 아직 찾지 못한 문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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