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56화. 회상, 창조물과 마흔둘

세레나는 비녀를 뽑고 나서야 머리카락이 오래 당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순찰을 마친 뒤였다. 동쪽 골목의 등불을 확인했고, 시장 천막에 쌓인 눈을 털었고, 라면가게 냉장고가 다시 목욕탕으로 열리지 않는 것도 보았다. 돌아가 쉬면 되는 밤이었다.

그런데 발은 도시 기록관의 지붕으로 향했다.

세레나는 난간에서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앉았다. 손바닥 위에 놓인 은빛 비녀는 여전히 열쇠처럼 생겼다. 정교한 이빨도 있었고, 오래 쥔 물건처럼 손에 익기도 했다. 다만 어느 문에도 맞지 않았다.

그녀는 비녀 끝으로 엄지의 지문을 천천히 따라 그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금 하나를 건드렸을 때, 오래전의 빛이 눈꺼풀 안쪽에서 켜졌다.

문이 아니라 둥근 빛이었다.


링 라이트만 켜진 방.

책상 옆에는 초록빛 음료가 든 긴 잔이 있었다. 잔 안쪽에 이끼색 막이 얇게 붙어 있었다. 기억 속의 세레나는 그것을 매일 마셨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믿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어느 남자가 찾아온 뒤부터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지금 그 기억을 더듬으면 이상한 순서로 떠올랐다.

통증보다 ‘아팠다’는 설명이 먼저였다. 초록빛은 선명한데 맛은 없었다. 보육원의 복도에서는 축축한 나무 냄새가 났지만, 그 바닥을 맨발로 밟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장면은 있었고 그 장면을 살아낸 하루의 가장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때의 그녀는 그런 빈틈을 의심하지 않았다.

무릎에는 낡은 토끼 인형이 놓여 있었다. 왼쪽 귀가 유독 얇았다. 카메라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손은 늘 그 귀를 찾았다. 한 번 서랍에 넣어둔 날에는 질문을 세 개나 놓쳤다. 결국 광고 화면을 띄우고 인형을 다시 꺼낸 뒤에야 다음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채팅창에 낯익은 아이가 들어왔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 했던 아이였다. 세레나는 이름도 나이도 묻지 않았다. 아이가 먼저 말하지 않은 것은 빼앗아 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엔 더 안 좋아.

문장이 화면에 뜬 뒤 스크롤이 잠시 멈췄다.

세레나는 곧장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무슨 병인지도, 어른에게 도움을 청했는지도 캐묻지 않았다. 대신 토끼 귀를 엄지로 문지르며 그 문장과 잠깐 같이 앉아 있었다.

“그랬구나.”

잠이 안 와.

“잠깐 더 있어 줄래?”

세레나는 카메라를 보았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네가 여기 같이 있는 게 좋아.”

응.

그 아이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가지 않았다.

그날 세레나는 기다림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믿었다.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의자 하나를 비워두는 일. 그 믿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모든 밤이 그날 같지는 않았다.

기억의 바깥에서, 서른다섯 개의 닫힌 문이 잠깐 겹쳐 보였다. 너무 일찍 손을 뻗어 망친 날도 있었고, 손을 뻗어야 할 때 기다린 날도 있었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는 결과가 난 뒤에야 쉬운 말이 되었다.

세레나는 그 문들을 열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방송이 끝날 무렵 문 뒤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그 남자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여러분, 방금 아빠 들어왔어.”

채팅창이 순식간에 빨라졌다. 세레나는 피곤했지만 웃었다. 그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왜 이런 방송을 하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세레나는 준비해둔 답을 쓰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난 한때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누가 옆에 앉아줬지.”

그녀의 손은 토끼의 왼쪽 귀를 쥐고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 누가 곁에 있어 주면, 남은 평생 그 사람이 되어 준 공간이 되려고 애쓰게 되는 것 같아.”

입안에서는 다른 문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화면을 향해 나온 말은 조금 달랐다.

“나는 사랑을 받았어.”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받은 게 있으니까, 나도 누군가한테 그렇게 해 주고 싶어.”

그 말은 진심이었다.

세레나를 지금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진심이었다. 거짓말이었다면 버리기 쉬웠을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미워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받았다.

그리고 사랑받았다는 사실이, 그 사랑의 방식까지 옳게 만들지는 않았다.

기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창문이 닫힌 회의실과 식어버린 커피 세 잔이 이어졌다. 세레나는 같은 정장을 며칠째 입고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 울기 직전이면 휴지를 먼저 밀어주었고,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화보다 먼저 그 아래의 두려움을 찾아주었다.

그녀는 그 일을 잘했다.

한 남자는 자기 사람들이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했다. 그는 책상을 내리치며 모두를 멈추게 하겠다고 말했다. 세레나는 한동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고는 얼굴에서 온기를 거두었다.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녀는 그가 행동했을 때 약을 받지 못할 사람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사람과, 그를 원망하게 될 가족을 차례로 말했다. 숫자를 들이밀지는 않았다. 숫자보다 견디기 어려운 얼굴들을 보여주었다.

남자의 안색이 변했다.

그제야 세레나는 목소리를 다시 부드럽게 낮췄다. 그가 패배했다는 모양으로 방을 나가지 않도록, 스스로 지킨 것이 있다고 말할 문장까지 써주었다.

남자는 그녀가 마련한 퇴로를 선택했다.

그날 밤 그 남자는 세레나를 칭찬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건넸다고 했다. 세레나는 약속을 해준 것뿐이라고 답했다. 피곤했고, 자랑스러웠다. 누군가를 무너뜨린 뒤 무너지지 않은 얼굴을 돌려준 일을 선의라고 믿었다.

지금의 세레나는 그 기억 앞에서 오래 멈췄다.

상대에게 질문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선택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길을 막고 하나의 퇴로만 남긴 뒤, 스스로 고르라고 말하는 것도 명령이 될 수 있었다.

그녀가 훗날 명령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다정한 목소리로도 사람을 몰아갈 수 있다는 걸, 자기 손으로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둥근 빛이 수백 개의 사각형으로 갈라졌다.

카메라 플래시였다.

커다란 강당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세레나는 중앙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며칠 전 벌어진 비극과 앞으로 지켜야 할 사람들에 관해 답했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질문이 날카로워질수록 자세는 더 곧아졌다.

그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자부심처럼 가슴을 채웠다.

기자 하나가 그녀의 뒤에 선 남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느냐고.

그는 빛 속으로 걸어 나왔다. 세레나는 오래 연습한 대로 반걸음 물러서 자리를 내주었다.

그가 세레나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보는 눈이었다.

“이것이 제가 가장 아끼는 창조물입니다.”

창조물.

그 한 단어가 박수와 셔터음 사이에 너무 정확하게 놓였다.

딸.

직원.

후계자.

도구.

제품.

아이.

세레나는 그 단어들 사이에 ‘창조물’을 끼워보았다. 어디에도 맞지 않았다. 얼굴은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쓰던 공손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안쪽에서는 짧은 한 호흡이 끝나지 않았다.

조명 열기와 사람들의 숨소리와 그 남자의 손 위치가 따로따로 들어왔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만 지나치게 선명했다.

“아빠?”

자신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강당 전체로 번졌다.

그 뒤에 들은 말들은 기억 속에서 닫혀 있었다.

세레나는 억지로 열지 않았다.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사실에도 그것을 견딜 순서가 필요했다.

대신 한 장면만 새어 나왔다.

모든 질문이 끝난 뒤, 세레나는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자신을 아끼기는 했느냐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세레나는 그 대답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사랑을 거짓으로 꾸미지 않았다. 사랑을 허락처럼 사용했다. 사랑하므로 대신 정해도 된다고 믿었고, 지키고 있으므로 알 권리를 미뤄도 된다고 믿었다. 세레나가 자기 자신을 믿어야 다른 사람도 그녀를 믿는다는 말까지,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했다.

세레나는 그날 처음으로 자기 안에 남의 문장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지 들었다.

사람은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잘 아는 누군가가 골라야 한다.

그 문장은 그 남자의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끝에서는 세레나 자신의 목소리와 구분되지 않았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보다 더 무서운 질문이 거기 있었다.

내가 믿어온 것 중 어디까지가 나인가.

그녀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거절했다.

사랑을 이유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하는 일.

그 거절은 훗날 도시의 규칙이 되었다. 그러나 규칙이 된 뒤에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상처에서 태어난 규칙은 때때로 너무 단단해졌다. 기다려야 할 때와 붙잡아야 할 때를 하나의 문장으로 가르려 했다.

서른다섯 번의 실패는 그 틈에서 생겼다.

세레나는 그 숫자를 떠올릴 때마다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을 존중한 것인가.

아니면 다시 틀릴까 봐 두려워 숨어 있었던 것인가.


현재의 지붕 위로 바람이 불었다.

세레나는 눈을 떴다. 손안의 비녀가 체온을 머금고 있었다. 손가락을 너무 세게 쥐었던 모양이었다. 열쇠 이빨 자국이 손바닥에 희미하게 남았다.

도시 아래쪽에서 늦은 웃음소리가 올라왔다. 누군가는 시장 천막을 접고 있었고, 누군가는 창문에 이불을 널었다. 동쪽 골목의 한 집에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문 앞의 눈은 치워져 있었다.

세레나는 자신이 그동안 만든 자리들을 내려다봤다.

끌어내지 않은 방.

한 번 더 두드렸어야 했던 문.

너무 빨리 대신 골라준 길.

끝까지 곁에 앉아 지켜낸 밤.

전부 같은 원칙에서 나온 일이 아니었다. 전부 같은 결과로 끝나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두 번째 기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둥근 빛도, 카메라도 없었다.

바람뿐이었다.


마흔한 층 아래로 대리석 광장이 보였다.

등 뒤에는 옥상 정원이 있었다. 벤치와 산울타리, 아이 하나가 낮잠을 잤던 돌길. 건물은 마흔한 층이었고, 그 위에 정원이 있었다.

마흔둘.

기억 속의 세레나가 웃었다.

허탈했고 조금 높았으며 금방 끊긴 웃음이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만든 표정도, 상대를 안심시키려고 고른 소리도 아니었다. 아무 의미 없는 숫자가 우스워서 나온, 쓸모없는 웃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것이었다.

세레나는 품에 안고 있던 토끼 인형을 내려다봤다.

왼쪽 귀의 닳은 자리.

처음 그 인형을 받았다는 기억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날의 방과 목소리도 이제는 함부로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밤 동안 그 귀를 문지른 손은 자신의 것이었다. 엄지 아래에서 천이 조금씩 얇아진 시간만은 누구도 미리 넣어둘 수 없었다.

그녀는 토끼를 난간 위에 조심스럽게 세웠다.

던지지 않았다.

광장 바깥을 보게 해주듯 똑바로 앉혔다.

바람이 왼쪽 귀를 흔들었다.

세레나는 난간을 잡았다. 손은 놓이지 않았고, 무릎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했다. 몸이 먼저 뒤로 가려 했다. 그녀는 그 저항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것 역시 자신을 살리려는 무엇이었을 테니까.

한 번 멈췄다.

다시 토끼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이어지지 않았다.

발끝 아래에서 사라진 바닥.

네 번 끊겨 들어온 한 남자의 목소리.

눈이 시릴 만큼 하얀 틈.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기억은 알려주지 않았다.

하얀 틈은 문처럼 보였다. 손잡이가 있었고, 문 너머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처럼 비어 있었다.

누구도 세레나를 부르지 않았다.

누구도 들어오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문은 열려 있는 채 기다렸다.

세레나는 오래 서 있었다.

그 뒤 스스로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기억이 닫혔다.


“세레나.”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났다.

세레나는 눈을 떴다.

비아가 지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삶은 달걀 두 개를 쥐고 있었고, 입에는 라면가게 행주가 물려 있었다.

“그 행주는 왜 물고 있니?”

비아가 행주를 뱉었다.

“손이 모자랐다……이다.”

“달걀은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가져왔어?”

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레나는 손을 내밀었다.

“하나는 돌려드리자.”

“두 개 다 먹으려고 가져온 거 아니다……이다. 세레나 하나 주려고 훔친 거다……이다.”

“그건 선물이 아니라 공범 모집이야.”

“같이 먹으면 안 들킨다……이다.”

비아는 진심으로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는 얼굴이었다.

세레나는 달걀 하나를 받아 들었다. 다른 하나는 비아의 코트 주머니에 도로 넣어주었다.

“내려가서 말씀드리고 같이 먹자.”

“그러면 훔친 재미가 없어진다……이다.”

“대신 혼나는 재미가 남겠지.”

비아는 잠시 계산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조금 재미있다……이다.”

세레나는 비아의 목에 행주 대신 자기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비아가 답답하다고 몸을 비틀었지만, 끝내 풀지는 않았다.

“왜 여기 혼자 있었냐……이다?”

“기억이 돌아와서.”

“재미있는 기억이냐……이다?”

“아니.”

“그럼 왜 오래 봤냐……이다?”

세레나는 손안의 열쇠 비녀를 내려다봤다.

“내 이야기니까.”

비아는 그 대답을 금방 받아들였다. 좋은 이야기만 자기 것이라고 고르는 습관은 비아에게 없었다.

“비아야.”

“왜……이다?”

“누가 문 앞에 오래 서서 들어오지 않으면, 넌 어떻게 해?”

“기다린다……이다.”

“계속?”

“처음에는 문고리 센다……이다. 그다음에는 간식 먹는다……이다. 그래도 안 들어오면 한 번 더 물어본다……이다.”

“뭐라고?”

비아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직 거기 있냐고.”

“대답이 없으면?”

“문은 안 닫는다……이다. 근데 죽었으면 닫아야 한다……이다. 냄새난다……이다.”

잔인하고 정확한 말이었다. 비아에게 악의는 없었다. 세레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그렇다……이다. 기다리는 거랑 가버리는 건 다르다……이다.”

비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세레나 손의 달걀을 빤히 봤다.

“이제 먹어도 되냐……이다?”

“사장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역시 세레나는 재미없다……이다.”

“알고 있어.”

세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녀를 다시 머리에 꽂자 열쇠 끝이 제자리를 찾은 듯 머리카락 사이로 숨었다.

문은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밤 그녀가 본 것은 열쇠가 열어야 할 정답이 아니었다. 사랑받았던 자신과 이용당했던 자신, 기다려준 자신과 너무 오래 기다린 자신이 서로를 지우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었다.

세레나는 그중 하나를 골라 나머지를 버리지 않았다.

비아가 먼저 지붕 아래로 뛰어내렸다. 세레나는 혹시 미끄러질까 코트 뒤를 붙잡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라면가게 문을 열자 라면사장은 빈 달걀 바구니부터 봤다.

“비아.”

“세레나가 먹자고 했다……이다.”

“제가 공범으로 모집된 건 맞아요.”

세레나가 달걀을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라면사장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냄비에 물을 받았다.

“뭘 먹을 거냐.”

세레나는 예전처럼 아무거나 달라고 하지 않았다.

“국물만 주세요. 파는 빼고, 평소보다 조금 뜨겁게요.”

“달걀은.”

“반으로 나눠주세요.”

비아가 항의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라면사장이 먼저 달걀을 반으로 갈랐다. 노른자가 정확히 가운데에서 나뉘었다.

“기억은 봤나.”

그가 물었다.

세레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김이 오르는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손바닥에 남았던 열쇠 자국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 장면만요.”

“말할 건가.”

“언젠가는요.”

라면사장은 더 묻지 않았다.

세레나는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자기가 고른 온도였다. 파를 빼달라고 말했고, 달걀은 나누겠다고 정했다. 대단한 선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날 밤 그녀는, 그 작은 선택이 식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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