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37화. 이리스의 야근
가게 마감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수연은, 광장을 가로지르다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
이리스였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인데, 그녀는 광장 한가운데 홀로 서서 드론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앞치마 대신 평소의 화려한 드레스 차림도 아니었다. 그냥 편한 옷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수연은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아홉 대의 드론이 정교한 대형을 이루며 허공을 오갔다. 낮에 손님들 앞에서 보여주던 화려한 궤적과는 달랐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정교하고, 반복해서 같은 동작을 다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리스는 실패할 때마다 손목의 조종 장치를 조작해 다시 처음부터 시도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신입, 뭐 하냐."
수연이 다가가며 물었다.
이리스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수, 수연 씨! 아직 안 갔어요?"
"방금 마감하고 오는 길인데. 넌 왜 이 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 그냥…… 연습 좀 하느라고요."
수연은 드론들이 그리는 궤적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거 낮에 보여주는 거랑 다른데."
"네, 이건…… 아직 완성 안 된 거예요."
"누구 보여주려고 연습하는 거야?"
이리스는 그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아무도요. 그냥."
"그냥?"
수연이 되물었다.
"네. 그냥 연습이 하고 싶어서요."
"근데 손님들 앞에서 보여줄 것도 아닌데 왜 이 시간에 혼자 하고 있어?"
이리스는 그 질문에 대답을 고르는 듯 잠시 침묵했다.
"……낮에는 다들 보고 있으니까요. 완벽해야 하니까. 근데 지금은 아무도 안 보잖아요. 그냥 저 혼자 뭘 해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수연은 그 말에 광장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럼 나도 좀 봐도 돼?"
"어…… 네. 근데 완성 안 된 거라 이상할 수도 있어요."
"이상해도 돼. 그냥 궁금해서 그래."
이리스는 다시 손목 장치를 조작했다. 드론들이 천천히 새로운 대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나선형으로 시작해서, 점점 넓게 펼쳐지다가, 마지막에 한 점으로 모이는 궤적이었다. 그 마지막 순간, 아홉 개의 빛이 하나로 겹쳐지며 잠깐 눈부시게 밝아졌다가, 서서히 흩어졌다.
수연은 그 장면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예쁘다."
"진짜요?"
"응. 근데 뭔가…… 슬픈 느낌도 있어."
이리스는 그 지적에 놀란 눈치였다.
"어떻게 알았어요?"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느껴져서."
이리스는 드론들을 잠시 공중에 멈춰두고, 벤치로 다가와 수연 옆에 앉았다.
"이거, 사실 별을 표현한 거예요."
"별?"
"네. 하나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별. 원래 별은 그렇게 빛나잖아요. 모든 빛을 모아서, 한순간 가장 밝게 타오르고."
"근데 왜 슬프게 느껴지지?"
이리스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나직이 답했다.
"그 별이…… 결국 자기 자신은 아니라서요."
수연은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뭔가 중요한 걸 건드렸다는 걸 느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저는 원래 별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어요. 사람들이 보고 걸어둘 수 있는 별. 근데 그 별은, 제가 아니라 그냥…… 제가 만든 물건이었어요."
"그럼 넌 뭐가 되고 싶었는데?"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리스는 그 질문에 처음으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별이 되고 싶었어요.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게 다른 거야?"
"완전히 달라요. 만드는 건, 남을 위해 반짝이는 거예요. 되는 건…… 그냥 제 스스로 빛나는 거고요."
수연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근데 지금 하는 이 연습도, 결국 드론이 반짝이는 거잖아. 네가 아니라."
이리스는 그 지적에 순간 말을 잃었다.
"……맞아요. 그래서 계속 연습해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그럼 뭘 하면 네가 직접 빛나는 게 되는데?"
"그건…… 저도 아직 몰라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만들었을 때, 그때 기분이 어땠어?"
이리스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침묵했다.
"……처음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사람들이 다 축하해줬고, 제 이름이 사방에 걸렸고. 근데 집에 돌아온 그날 밤, 방에 불을 켰는데……."
"켰는데?"
"불이 안 켜졌어요. 정확히는, 방은 밝았는데 제 마음은 계속 어두웠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만든 사람의 방이, 그렇게 캄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요."
수연은 그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그날, 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되고 싶었다는 걸 알았구나."
"네. 근데 안다고 해서 바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밤마다 헤매고 있어요."
"헤매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적어도 넌 지금 뭘 찾고 있는지는 알잖아. 그거 모르는 사람도 많아."
이리스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낫네요."
"근데 그 열 번째 드론, 왜 항상 꺼놓는 거야?"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리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건 아직 말 못 해요."
"미안, 캐물으려던 건 아니었어."
"아니에요. 그냥……." 이리스는 잠시 상자 속에 잠들어 있는 그 드론을 바라보았다. "저것도 언젠가 켜지긴 켜질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켜지는 거야?"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언젠지는 저도 몰라요."
수연은 그 대답에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 어두운 드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것도 결국, 이리스가 아직 찾지 못한 무언가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별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근데 그거 알아?"
수연이 불쑥 말했다.
"뭐요?"
"저 별들, 사실 다 자기가 만든 빛이 아니야. 핵융합이라는 반응으로 타는 거지. 근데 그게 자기 스스로 타오르는 거잖아. 남이 켜준 불이 아니라."
이리스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거 되게 위로되는 말이네요."
"위로하려고 한 말은 아닌데."
"근데 위로가 됐어요. 저도 언젠가 저만의 방식으로 타오를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지금도 타오르고 있잖아. 이렇게 밤늦게까지 혼자 연습하는 것도, 결국 뭔가를 찾으려는 거잖아."
이리스는 그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마워요. 근데……."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이거, 아무한테도 말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 아직 이런 얘기 할 준비가 안 됐어요."
"당연하지. 근데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뭔데요?"
"드론 말고, 다른 것도 시도해본 적 있어? 노래라든가."
이리스는 그 질문에 순간 표정이 굳었다.
"……노래는 자신 없어요."
수연은 그 반응에 조금 놀랐다.
"왜? 목소리 예쁠 것 같은데."
"예전에 딱 한 번 시도해봤는데…… 별로였어요. 그 뒤로는 안 해요."
"그래도 다시 해볼 수도 있잖아."
"……무서워요. 잘 못하는 걸 또 보여주는 게."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근데 여긴 잘 못해도 되는 곳이잖아. 아까 별자리 얘기 할 때도 그랬고."
"그건 알아요. 근데 아는 거랑 실제로 하는 거랑은 다르더라고요."
"맞아. 나도 그래."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나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완벽해야 한다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 사람이었다.
"천천히 해도 돼. 노래든 뭐든."
수연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너무 늦었어."
"조금만 더 연습하고 갈게요. 오늘은 왠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이리스가 다시 드론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매일 이렇게 늦게까지 하는 거야?"
"거의 매일요. 낮엔 손님들 보느라 못 하니까."
"몸 상해. 적당히 해."
"신입 걱정하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넌 내 후배잖아."
이리스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편한 대로 해."
"그럼 앞으로 선배라고 부를게요. 뭔가 더 든든한 느낌이라서."
수연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마음대로 해. 대신 힘든 일 있으면 말해. 후배가 힘들어하는데 모르는 척하는 선배는 되기 싫으니까."
"알겠어요, 선배님. 오늘은 이만 갈게요."
수연은 그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드론들을 정리하는 이리스를 기다렸다.
마침 순찰을 돌던 볼도가 그 광경을 발견하고 조용히 다가왔다.
"이 시간에 둘 다 여기서 뭐 해?"
"그냥 얘기 좀 했어."
수연이 답했다.
볼도는 광장 한쪽에 정렬된 드론들을 흘끔 보았다.
"이리스 씨, 매일 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알아요. 순찰 돌다 몇 번 봤거든요."
이리스가 놀란 얼굴을 했다.
"……보셨어요?"
"네. 근데 방해될까 봐 말 안 걸었어요."
"부끄럽네요, 들킨 게."
"부끄러울 거 없어요. 저도 밤에 혼자 순찰 도는 거, 사실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그건 무슨 뜻이에요?"
볼도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낮엔 다들 절 필요할 때만 찾아요. 근데 밤엔, 그냥 저 혼자 이 도시 골목골목을 걷는 시간이에요. 아무한테도 안 보여줘도 되는 시간."
이리스는 그 말에 뭔가 통하는 게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랑 비슷하네요."
"비슷해요. 이 도시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낮의 얼굴과 밤의 얼굴이 다른 사람들."
볼도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순찰을 이어가려 걸음을 옮겼다.
"몸 조심하고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이리스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옅게 웃었다.
"이 도시 사람들, 다들 은근히 다정하네요."
"그러게. 나도 여기 와서 그거 제일 많이 느꼈어."
가게로 돌아가는 길,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근데 진짜 신기해요."
이리스가 문득 말했다.
"뭐가?"
"오늘 밤, 처음으로 누구한테 무대 얘기를 진지하게 해봤어요. 항상 화려한 겉모습만 얘기했지, 진짜 제가 뭘 원하는지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거든요."
"나도 오늘 처음 들었어. 별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
"이상하죠?"
"안 이상해. 오히려 되게…… 너답다는 생각 들었어."
이리스는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수연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넌 항상 화려하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잖아. 근데 그 화려함이 결국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거였다면, 그게 딱 너답다는 거지."
이리스는 그 말에 한참을 침묵하다가, 나직이 웃었다.
"……고마워요. 진짜로."
"뭘. 그냥 느낀 걸 말한 건데."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가게 불빛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수연 씨."
"왜."
"나중에 저 노래하는 거, 들어봐 주실 수 있어요?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수연은 그 부탁에 옅게 웃었다.
"당연하지. 언제든 말해."
이리스는 그 대답에 마음이 한결 놓이는 걸 느꼈다. 아직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여정을 함께 지켜봐 줄 사람이 하나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았다. 진짜 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묵묵히 타오르고 있었다. 언젠가 저렇게,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빛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녀는 조용히 바랐다.
가게 안에서는 라면사장이 늦은 시간까지 마감 정리를 하고 있었다.
"둘 다 왜 이렇게 늦었나."
"광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
수연이 답했다.
"우연히?"
라면사장이 되물었다. 그 짧은 반문에 수연은 순간 뜨끔했다.
"……우연히 근처 지나가다가."
"그렇군."
라면사장은 더 캐묻지 않고 그릇 두 개를 꺼냈다.
"둘 다 배고프겠다. 먹고 자라."
이리스는 그 그릇을 받아 들며 문득 물었다.
"사장님, 밤에 혼자 뭔가 연습하는 거, 이상한 거 아니죠?"
"이상할 거 없다. 낮에 못 하는 걸 밤에 하는 거다."
"근데 그게 아무도 안 보는 데서 하는 거라도요?"
"오히려 그런 연습이 더 진짜다. 보는 사람 없을 때 하는 노력이, 제일 정직한 노력이다."
이리스는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감사합니다."
"먹기나 해라. 국물 식는다."
두 사람은 그렇게 늦은 밤, 조용한 가게에서 마지막 그릇을 나눠 먹었다. 창밖엔 여전히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광장의 드론들은 상자 안에서 조용히 다음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연은 국물을 마저 비우며 생각했다. 이리스가 찾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몰랐다. 그러나 오늘 밤 나눈 대화가, 그 여정의 작은 이정표 하나는 되어주었을 거라고 믿었다. 별을 만들던 사람이 별이 되어가는 길은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 길 위에 발자국 하나가 더 남겨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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