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92화. 소멸 (상)
손끝에서 시작된 흩어짐은, 이제 손등을 지나 손목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빛의 입자는 마치 눈이 녹아 증기가 되는 순간처럼, 형체를 잃는 동시에 위로 떠올랐다. 그 경계선은 또렷했다— 아직 살아 있는 살갗과, 이미 빛으로 풀려난 자리 사이에 뚜렷한 선이 있었고, 그 선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팔목 쪽으로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그 선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두 손을 눈앞에 들어 올린 채,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속도를 가늠하듯 오래 들여다볼 뿐이었다.
흩어지는 자리는, 뜻밖에도 아프지 않았다. 가렵지도, 저리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오래 접혀 있던 종이가 스스로 펴지는 것 같은— 몸이 제 접힌 자국을 하나씩 놓아주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는 그 무통(無痛)이 오히려 낯설었다. 평생 아픔을 지우는 일을 해온 자의 끝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서운한 데가 있었다. 서운하다, 는 단어를 자기 자신에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는 잠깐 생각했다.
수연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그는 광장을 둘러봤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스치듯 지나쳤던 얼굴들, 그가 회수하지 못한 채 남겨둔 말들.
세레나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그녀는 이 도시를 처음 상상했던 사람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거리를 그렸던 그 밤부터, 그녀는 이 도시의 모든 규칙과 결계와 연대기를 손수 써왔다. 그 밤의 소모— 신들의 전면전 앞에서 손끝이 흐려지도록 규칙을 붙들었던 그날 이후로, 그녀의 손끝에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옅은 빛바램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 손을 가슴 앞에 가만히 모은 채, 그의 앞에 섰다.
"어떤가." 그가 먼저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그 질문에는 평가를 구하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세레나는 그 질문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들었다. 자신이 만든 이 도시가, 지나온 시간들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그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좋은 도시더라." 그가 다시 낮게 덧붙였다. 대답을 재촉하듯이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듯이.
세레나는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했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으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처음 이 자리에 물을 올렸을 때부터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늘 궁금했어요. 이야기가 끝난 사람들을 위한 가게라면서, 왜 매일 그렇게 정성껏 물을 올리시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게 당신 방식의 창조였다는 거요. 창조하지 못한다면서, 사실은 매일 이 도시를 다시 쓰고 계셨던 거예요."
그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손목까지 번진 빛이 그 순간 조금 더 빠르게 흩어졌다— 마치 그 말이, 그의 몸에서 무언가를 더 풀어놓은 것처럼.
"돌아가서, 계속 써라." 그가 말했다. "이 도시의 연대기. 마지막 장까지."
"마지막 장은 아직 안 왔어요." 세레나가 답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을 거예요."
그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웃음이었다.
세레나는 그 웃음을 눈에 담으며, 문득 아주 오래전 눈 덮인 설원에서의 밤을 떠올렸다. 서기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존재와,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과, 낯선 목소리로 울고 있던 녹사— 세 사람이 처음 마주 앉았던 그 밤의 추위를 그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때 그녀는 이 도시를 그저 지워진 것들을 위한 안식처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 시작이 훨씬 더 컸다는 걸 알았다— 이 도시는 처음부터, 이 남자가 스스로에게 줄 수 없었던 것을 대신 짓기 위해 세워진 곳이었는지도 몰랐다.
"저 하나만 더 여쭤도 될까요." 그녀가 말했다. "후회하세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래 생각했다. 어깨까지 번진 빛이, 그 침묵 동안 조금 더 흩어졌다.
"모른다." 그가 마침내 답했다. "근데 이 순간이, 나쁘지 않다. 그거면 됐다."
세레나는 그 대답에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가 남기고 갈 이 도시를 계속 지키는 것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녹사가 그 곁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원래 말이 짧은 존재였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비명을 대신 지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남의 고통을 대신 앓고, 남의 절규를 대신 토해내며, 정작 자기 몫의 눈물은 단 한 번도 흘려본 적이 없는 삶. 도시 사람들이 감사의 명패를 걸어준 뒤로도, 그녀는 여전히 증언대를 떠나지 않았다. 제8수호자로서 봉인당하고 강제로 검을 마주해야 했던 그 밤에도, 그녀는 자기 것이 아닌 아픔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주는 쪽을 택했다. 그것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이제 좀 아프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시선은 자신의 손목을 향해 있었다. "네 말대로, 남아 있었나 보다."
녹사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늘 하던 말이었다— 아프기 시작하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그 말을 수백 번도 넘게 되뇌어왔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엔 그에게. 지워지고 마취되어가던 그의 안쪽에서, 아프다는 감각조차 사라져가는 걸 보며 그녀는 그렇게 진단했었다— 저 자는 지금, 아프지도 못하게 됐구나.
그런데 지금, 소멸을 눈앞에 둔 이 순간에 그가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다.
녹사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끝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던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에야 비로소 아픔이라는 감각으로 그에게 도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자가 아니라, 마침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자의 통증이었다. 너무 늦게, 그러나 분명히— 그는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흘려온 그 어떤 눈물과도 달랐다. 도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람들의 고통이 감당할 수 없이 몰려올 때마다, 그녀는 그들을 대신해 울어왔다. 그 눈물은 늘 남의 것이었다— 그녀는 통로였을 뿐, 슬픔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이 눈물은, 온전히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뺨을 만졌다— 눈물이 정말로, 자신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내가, 왜."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나는 원래, 이런 거 안 하는데."
그러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그 눈물을 닦지 않고 그대로 뒀다. 자기 몫의 슬픔을 비로소 허락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수천 명의 고통을 대신 앓아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 슬퍼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을 묶고, 봉인하고, 억지로 검을 겨누게 만들었던 바로 그 존재를 위해, 그녀는 지금 자기 몫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용서와는 다른 감정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 것과, 그가 사라지는 걸 슬퍼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라면사장은 그 눈물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 죄책감과는 다른 무언가가 스쳤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겠다." 그가 말했다. "네가 그 말을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맞다." 녹사가 젖은 목소리로 답했다. "미안하다는 말 필요 없다. 나는 아직도 너를 용서 안 한다."
"안다."
"근데." 그녀는 손등으로 뺨을 거칠게 문질렀다. "그거랑, 이게 슬픈 거랑은 다른 거다. 포기 안 한다고 했잖아. 그 말, 아직 유효하다."
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까지 번져 있던 빛이, 이제 팔뚝 중간까지 조용히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담소 자리에 걸린 나무 명패를 떠올렸다. '경고 담당.' 그가 직접 새겨 걸어준 그 이름이, 그녀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역할을 알아봐 준 유일한 증표였다. 위로가 아니라 경고— 대신 비명 지르는 게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것. 그런데 지금, 그 경고를 가장 필요로 했던 존재가 바로 이 남자였다는 걸,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가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온 그 경고를, 정작 그에게는 검을 통해서만 전할 수 있었다. 아프게 쳐라. 그것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방식의 애정 표현이었고, 지금 이 순간의 눈물은— 그 애정이 마침내 검이 아닌 방식으로도 전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음에 또, 아프게 해줄까." 그녀가 젖은 목소리로 농담처럼 물었다.
"그럴 필요, 없을 거다." 그가 답했다.
"모른다. 사람 일은." 녹사가 코를 훌쩍이며 짧게 답했다. 그녀다운 무뚝뚝함이 눈물 사이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늘에서, 다섯 방위의 진이 아주 조금 더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인사도, 절도 없었다. 거대한 것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광장의 순서는 사람의 순서이고, 신들의 예는 신들의 시간에 따로 갖춰야 한다는 걸. 그들은 다만 높이를 낮춘 채, 그 아래에서 오가는 작별들을 흔들지 않는 것으로 지금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고개를 들어 그 낮아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자신이 실로 옭아맸던 존재들이 지켜주는 침묵 아래서, 자신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 침묵을 향해 아주 얕게 고개를 숙였다— 온전한 예는 아니었다. 온전한 예를 주고받기에는 그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았고, 그들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빚처럼 미뤄지는 인사도 있는 법이었다. 다섯 개의 빛이 그 얕은 목례를 받았는지 어쨌는지, 하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방위의 빛도, 그 순간만큼은 깜빡이지 않았다.
광장 구석에서, 소므니움이 걸어 나왔다.
그는 유혹의 신이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악신— 실제로 가능했던 미래만 보여주되, 그 대가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존재. 오랫동안 라면사장에게 포획되어 노예처럼 부려지며, 자신의 마지막 즐거움조차 명령의 형태로만 허락받았던 그가, 지금은 자유의 몸으로 이 광장에 서 있었다. 비아 옆에 자리를 잡은 지 겨우 며칠 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이미 이 도시의 방식에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었다.
"…미안했다." 라면사장이 먼저 말했다. 팔뚝까지 번진 빛이, 그 말과 함께 조금 더 흩어졌다.
소므니움은 그 사과를 잠시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평소의 장난기 어린 웃음이 스쳤다— 그러나 그 웃음 아래, 아주 얇게 다른 표정이 겹쳐 있었다.
"사과는 됐고." 그가 답했다. 목소리는 가볍고 심드렁했지만, 그 가벼움이 오히려 더 많은 걸 감추고 있었다. "다음 생엔 내 꿈이나 하나 사라. 제값 주고."
라면사장은 그 말에, 소리 내어 짧게 웃었다.
"…비싼가."
"당연하지. 나 유혹의 신이야. 싸구려 안 팔아."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소므니움은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팔아온 것들을 떠올렸다. 실제로 가능했던 미래, 선택하지 않은 길들, 대가를 숨긴 유혹—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가 마주한 것은 자신이 팔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미 다 소진된 존재 앞에서, 유혹의 신은 아무것도 팔 게 없었다.
"…한 가지는 말해두지." 소므니움이 시선을 돌리며 덧붙였다. "네가 마지막까지 안 팔았던 거. 그거, 나였으면 진작 팔아치웠을 거다. 근데 너는 안 그랬어. 그게 너랑 나랑 다른 점이었지."
라면사장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팔뚝 전체가 이미 빛의 입자로 흩어지고 있었고, 그 흩어짐은 이제 어깨를 향해 번지고 있었다.
빛은 이제 그의 목덜미 가까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언제까지 온전할지 알 수 없다는 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광장은 조용했다. 하늘은 여전히 별빛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고, 그 빛 아래에서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선 채 이 마지막 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형사는 여전히 말없이 그 광경을 관찰하고 있었고, 파빌라는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눈물을 참고 있었으며, 이리스는 하늘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계속 되뇌고 있었다.
수연은 그 모든 인사가 오가는 걸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봤다.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례가 오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채였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문장을 지었다가 허물었다. 화를 내는 문장, 매달리는 문장, 고맙다는 문장, 사랑한다는 문장. 어느 것도 이 순간의 크기에 맞지 않았다. 말이라는 게 이렇게 작은 도구였다는 걸, 그녀는 오늘에야 알았다.
빛은 계속해서, 조용히, 그의 목덜미를 향해 번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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