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36화. 정지된 세계
문을 통과한 세 사람 앞에 펼쳐진 것은, 작은 마을이었다.
낮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굴뚝마다 흰 연기가 똑같은 각도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빵집 주인이 갓 구운 빵을 진열하고,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고,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었다. 언뜻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수연이 먼저 그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해."
"뭐가요?" 레테가 물었다.
"저 사람들, 다 웃고 있어."
형사도 그 말에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그리고 그제야 알아챘다. 빵집 주인은 정확히 같은 각도로 몸을 기울여 빵을 진열하고 있었고, 그 손짓은 조금 전과 완전히 동일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경로도, 자세히 보니 매번 같은 길을 같은 순서로 돌고 있었다. 노인들의 대화도— 형사가 귀를 기울이자, 똑같은 문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좋은 아침이네요."
"그러게요, 오늘도 참 좋은 날씨예요."
"이따 낚시나 갈까요."
"좋죠, 저번처럼."
그 대화가 골목 저편에서도, 이쪽에서도 거의 같은 억양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수연의 후드 끝을 만지던 손끝이 멈췄다. 후드는 희미하게 식어 있었다— 완전히 차갑지는 않았지만, 온기가 눈에 띄게 옅어져 있었다.
"…여기 왔었어."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근데 벌써 갔어."
"그가 지나간 자리라는 겁니까." 형사가 물었다.
"응. 근데 오래전은 아니야. 아직 온기가 남아 있으니까."
세 사람은 마을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듯, 그저 자신들의 반복되는 하루를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빵집 주인은 세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고도 그저 "좋은 아침이네요"라고 인사할 뿐이었다. 그 인사는 세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아침마다 하는 의례처럼 허공에 던져진 것이었다.
수연은 그 빵집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진열대에는 늘 같은 종류의 빵 다섯 개가, 같은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주인은 그중 하나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고, 또 다른 하나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동작을 반복했다. 마치 고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 손짓이었다.
"…저것 좀 봐." 수연이 낮게 말했다. "고르는 척만 하고 있어. 근데 결국 매번 똑같은 걸 집어."
레테가 그 손짓을 유심히 살폈다.
"선택하는 몸짓은 남아 있는데, 선택의 내용은 사라진 거예요. 몸은 아직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향할 곳이 없어진 거죠."
골목 저편에서는 아이 둘이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공이 날아가는 궤적도, 아이들이 웃는 타이밍도 완전히 동일했다. 마치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되감아 보는 것 같았다.
"…행복해 보여요." 레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그 행복이, 이상하게 텅 비어 보여요."
"매일 같은 하루를 살면, 저렇게 될 겁니다." 형사가 답했다. "선택할 게 없으니까요. 선택할 게 없으면, 걱정할 것도 없죠."
"근데 왜 이렇게 슬퍼 보이지." 수연이 중얼거렸다. "다들 웃고 있는데."
"웃음에도 결이 있으니까요." 형사가 답했다. "이 사람들의 웃음에는, 그다음 순간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오늘의 농담이 내일은 어떻게 다르게 들릴지, 그런 게 없는 거죠. 그냥 같은 자리에서 계속 도는 웃음입니다."
그들이 마을 중앙 광장에 다다랐을 때, 한 노인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불렀다.
"…거기, 잠깐만."
세 사람이 걸음을 멈췄다. 노인은 낡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지팡이 외에도 작은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색이 바랜, 오래된 흑백 사진이었다.
"당신들, 뭔가 낯이 익은데."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세 사람을 살폈다.
"…저희를 아십니까?" 형사가 물었다.
"모르겠어."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낯이 익어. 이상하지. 이 마을엔 매일 같은 사람들만 있는데, 당신들 얼굴은 처음 보거든. 근데도 낯이 익어."
그는 사진을 든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이것 좀 봐줄 수 있겠나. 이게 누군지, 나도 잘 기억이 안 나서."
수연이 그 사진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노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그 옆에 선 한 여인이 찍혀 있었다. 두 사람은 어딘가 낯선 들판에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웃고 있었다.
"…이분이 누구세요?" 수연이 물었다.
"그걸 나도 모르겠어." 노인이 지팡이에 몸을 살짝 기대며 말했다. "분명 내 사진첩에서 나온 건데, 저 여자가 누군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 근데 이상하게,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저릿해. 마치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사진을 다시 품 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근데 이상한 게 그것만이 아니야."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이 삶이 좋아. 매일 같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같은 빵집에서 빵을 사고, 같은 자리에서 낚시 얘기를 하는 거. 불행하지 않아. 오히려— 아주 평온해."
"그런데요?" 레테가 조용히 물었다.
노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손끝이 지팡이의 손잡이를 꾹 눌렀다.
"근데 이상하지." 그가 낮게 말했다. "나는 지금 이 삶이 좋아. 근데 이게… 내가 골라서 좋은 건지, 누가 좋게 만들어놔서 좋은 건지, 이제 구분이 안 가. 그게 왜 이렇게 무서울까."
그 질문이 광장의 공기 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저는 잃은 게 없어." 노인이 덧붙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모르겠어.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삶을 대신 골라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형사가 그 말을 오래 곱씹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르신, 그건 상실의 공포가 아닙니다."
노인이 그를 바라봤다.
"이분은 아무것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형사가 말을 이었다. "다만 자기 삶의 저자가 자기인지, 확신을 잃으셨을 뿐입니다."
"저자?" 노인이 되물었다.
"글로 치면— 이 삶이라는 이야기를, 누가 썼는지가 문제인 겁니다." 형사가 설명했다. "행복한 결말이라도, 그걸 자기가 직접 써 내려간 게 아니라 남이 대신 써준 거라면— 그 행복이 정말 자기 것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어르신은 지금, 그 의심과 마주하고 계신 겁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의 눈에 천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맞아." 그가 낮게 말했다. "그거야. 내가 무서웠던 게, 정확히 그거야."
레테가 그 옆에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늘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붙여주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이 노인은 잃은 게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다른 종류의 확인이었다.
"어르신."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제가 하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노인이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 평온이, 당신 것이 맞습니다."
노인의 눈이 흔들렸다.
"…무슨 뜻인가."
"저는 지워진 것들, 빼앗긴 것들을 알아보는 존재입니다." 레테가 말했다. "만약 이 삶이 온전히 강요된 것이었다면, 저는 그 흔적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겁니다. 근데 제가 보는 이 평온에는— 강요의 흔적이 없습니다. 다만 반복의 흔적만 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차이인가?"
"강요는 당신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다른 것으로 채운 겁니다. 반복은—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평온을, 그저 멈춰 세워둔 겁니다. 어르신이 지금 사랑하는 이 하루하루는, 원래 어르신의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그걸 계속 반복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노인은 그 말을 들으며, 품 안의 사진을 다시 꺼내 봤다.
"…그럼 이 여자는?"
"그건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레테가 솔직히 답했다. "그건 지워진 기억일 수도 있고, 그냥 오래돼서 흐려진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저릿함이 느껴진다면, 그건 진짜입니다. 지워진 게 아니라, 아직 거기 남아 있는 겁니다. 다만 손이 닿지 않을 뿐입니다."
노인은 그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안도와, 여전히 남은 의심이 뒤섞인— 복잡한 눈물이었다.
"…고맙네." 그가 소매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누가 내 얘기를 이렇게 들어준 것도 오랜만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레테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다시 벤치에 앉으며, 문득 수연을 올려다봤다.
"…아가씨는 뭘 찾으러 다니나?"
수연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사람이요. 데려와야 할 사람."
"그 사람도, 나처럼 뭘 잊어버렸나?"
"…아마도요." 수연이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걔는 자기가 뭘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아니,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걸 수도 있고."
노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사진을 품에 꼭 안았다.
"그럼 데려오거든, 이 사진 얘기 좀 해줘. 낯이 익은 사람을 만나면, 그 저릿함부터 믿어보라고. 그게 먼저더라고, 나는."
"…전해줄게요." 수연이 답했다.
세 사람은 노인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며, 수연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노인은 여전히 벤치에 앉아, 이번엔 사진을 품에 꼭 안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할아버지, 괜찮을까." 그녀가 물었다.
"괜찮으실 겁니다." 형사가 답했다. "적어도 이제는, 자기가 뭘 두려워하는지는 아시니까요. 그것만으로도 큰 차이입니다."
"근데 이 사람은 안 구해준 거잖아. 여전히 여기서 저렇게 반복되게 살 거고."
"맞습니다."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걸 되돌리는 게 아니라— 이분이 자기 삶을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되돌리는 건 나중 일입니다."
레테가 조용히 덧붙였다.
"이런 세계를 몇 개나 더 지나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적어도 하나씩은 이렇게 자기 삶을 되짚어볼 계기를 남기고 갈 겁니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후드의 온기를 확인했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방향이, 여전히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가자. 다음 세계로."
세 사람은 마을을 벗어나, 낯선 지평선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뒤로 멀어지는 마을에서는, 여전히 같은 인사와 같은 대화가 반복되고 있었다— 다만 벤치에 앉은 한 노인만이,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그 반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야영을 준비했다. 형사가 피운 작은 모닥불이 낯선 어둠 속에서 유일한 온기였다.
수연은 불빛을 바라보며, 낮의 대화를 계속 곱씹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 마음, 조금 알 것 같아." 그녀가 문득 말했다.
"어떤 부분이요?" 레테가 물었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진짜 내가 원해서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건지,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 걔를 데려와야겠다는 마음도, 진짜 사랑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억울해서인지."
형사가 모닥불에 나뭇가지 하나를 더 넣으며 답했다.
"그 헷갈림 자체가, 답이 아닐까요."
"무슨 소리야?"
"완전히 강요된 마음이라면, 헷갈릴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냥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근데 수연 씨는 지금, 그 마음의 진위를 스스로 의심하고 계십니다. 그건— 그 마음이 온전히 당신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남이 심어준 마음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수연은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모닥불의 불씨가 타닥거리며 튀어 올랐다.
"…그럼 저 할아버지도, 결국은 자기 마음이 진짜라는 거네."
"그럴 겁니다." 형사가 답했다. "다만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두려운 거죠. 저희가 오늘 한 건, 그 확인을 도와드린 것뿐입니다."
레테가 모닥불 너머로 조용히 덧붙였다.
"이런 세계를 몇 개나 더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잃은 게 없어도, 사람은 두려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도, 이름을 붙여줄 가치가 있다는 것도요."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후드의 희미한 온기를 다시 확인했다. 불씨 너머로, 낯선 밤하늘에 낯선 별자리가 떠 있었다.
"…가자, 내일도." 그녀가 낮게 말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첫 번째 밤을 낯선 세계에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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