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1화. 마법은 물리

"배달도 청구서에 있었어?"

수연이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안에는 봉지라면 다섯 개와 계란 한 판, 그리고 어묵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없었다."

라면사장이 대답했다.

"근데 왜 시켜?"

"열흘 안에 뭐든 시킬 수 있다."

"그런 조항 없었잖아!"

"소자로 적혀 있었다."

수연이 청구서를 다시 꺼내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아무리 봐도 소자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이미 봉투를 받아 든 이상,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어디로 가져다줘?"

"골목 끝, 목욕탕 옆. 베르타 아주머니한테."

"거기까지 걸어가려면 십오 분이야."

"그러니까 얼른 가라는 거다."

수연은 봉투를 들고 문을 나섰다. 걸어서 십오 분이라는 말은, 그녀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거리였다.


그녀는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정확히는, 얼음으로 만든 발판을 계단 삼아 지붕까지 뛰어올랐다. 발밑에서 서리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가 곧 흩어졌다. 그녀는 눈 쌓인 지붕들을 훌쩍훌쩍 건너뛰며 골목을 가로질렀다.

아래에서 걷던 주민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거 뭐야?"

"수연 아니야? 알바생."

"근데 왜 지붕 위로 다녀?"

"배달 빠르게 하려고 그러나 본데."

"저게 빠른 거 맞아? 위험해 보이는데."

수연은 그런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얼음 발판을 밟으며 정확히 목표 지점을 향해 이동했다. 배달원으로서는 지나치게 화려한 동선이었지만, 본인은 그게 제일 빠른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목욕탕 굴뚝 위를 지날 때, 발판이 미끄러졌다.

몸이 살짝 기울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회전시켜 다음 발판을 만들었다. 세계 최강의 균형 감각이 봉지라면 배달에 낭비되고 있었다.

착지는 정확히 베르타의 목욕탕 앞이었다.

"……배달 왔습니다."

베르타 뭄이 문을 열고 나왔다가, 지붕에서 방금 내려온 듯한 수연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너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거니?"

"아뇨, 지붕으로 왔어요."

"왜 지붕으로 와?"

"빠르니까요."

베르타는 봉투를 받아 들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도시에서 이상한 것에 익숙해질 만큼 오래 산 그녀도, 지붕을 타고 오는 배달원은 처음이었다.


"……마법사니?"

"마법도 할 줄 알아요. 근데 이건 마법 안 썼어요."

"방금 지붕 위를 얼음으로 뛰어다녔잖아."

"그러니까요. 그건 마법이 아니라 물리예요."

베르타는 그 구분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물리랑 마법이랑 뭐가 달라. 다 이상한 힘 아니야?"

수연은 그 질문에 자못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 도시에 와서 가장 많이 받는 오해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제대로 된 마법은요, 순서가 있어요. 자세 잡고, 손으로 뭘 그리고, 주문을 외우고, 기다리고. 그런 건 저도 할 줄 알아요. 잘해요, 사실."

"진짜?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지금은 안 할래요. 귀찮아서."

"방금 잘한다며."

"잘하는 거랑 하고 싶은 거랑은 달라요."

베르타는 그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까 그건 뭐야?"

"물리요."

"근데 왜 물리라고 불러?"

수연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설명을 제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보통은요, 조건을 갖춰야 결과가 나오잖아요. 씨앗을 심어야 나무가 자라고, 불을 붙여야 뭔가 타고. 마법도 그래요. 순서를 밟아야 결과가 나와요."

"그런데?"

"저는 그 순서, 굳이 안 밟아도 돼요."

베르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얼려야겠다 싶으면 얼고, 부숴야겠다 싶으면 부서져요.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오는 그 관계를, 저는 그냥 건너뛰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이게 마법보다 물리에 더 가까워요. 물리는 그냥, 힘을 주면 그만큼 반응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식이에요. 제일 확실하고, 제일 빠르니까."


베르타는 그 설명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과만은 확실히 봤다.

"그럼 격식 차린 마법은 언제 써?"

"보여줘야 할 때요. 예쁘게 보이고 싶을 때라든가."

"오늘은 예쁘게 안 보이고 싶었어?"

"오늘은 빨리 오고 싶었어요."

베르타는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웃었다.

"아무튼 고맙다. 빠르네."

"감사합니다."

수연은 목례하고 다시 지붕으로 뛰어오르려다, 문득 멈췄다.

"저기, 혹시 그릇 돌려받아야 하는 거 있어요?"

"어묵 그릇? 아, 있지. 잠깐만."

베르타가 빈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수연은 그것을 받아 들고, 이번엔 골목으로 걸어서 돌아갔다. 지붕은 배달용이지, 반납용은 아니라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 모양이었다.


가게로 돌아온 그녀에게 라면사장이 물었다.

"몇 분 걸렸어?"

"삼 분."

"십오 분 거리를?"

"지붕으로 가면 빨라."

"주민들 놀랐다는데."

"어떻게 알아?"

"방금 세 명이 와서 말했다."

수연은 뜨끔했다. 그러나 딱히 잘못한 것 같지도 않아서 당당하게 말했다.

"빠른 게 좋은 거 아니야?"

"빠른 건 좋은데, 지붕은 배달용이 아니다."

"그럼 뭐야."

"그냥 지붕이다."

라면사장이 그릇을 받아 씻으며 낮게 덧붙였다.

"다음부터는 걸어가."

"십오 분이나 걸리는데?"

"십오 분이면 딱 좋다."

"뭐가?"

"국물이 안 식는다."

수연은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 지붕으로 삼 분 만에 도착한 배달은 사실 라면이 아니라 건라면과 재료였으니 상관없었지만, 언젠가 뜨거운 국물을 배달할 일이 생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음엔 국물 배달 있어?"

"있을 수도."

"그럼 그때만 걸어갈게. 오늘 같은 건 지붕으로 가도 되잖아."

"오늘은 계란이랑 어묵이었다. 안 식는 거."

"그럼 문제없네."

라면사장은 그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는 수연의 말이 맞았고, 그는 논리에 약한 편이 아니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수연이 조리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뭔데."

"너는 마법 안 써?"

라면사장이 손을 잠깐 멈췄다.

"쓴다."

"본 적 없는데."

"안 보여준다."

"왜?"

"필요할 때만 쓴다."

수연은 그 대답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방금 베르타에게 했던 설명과 비슷한 구조였다.

"너도 나처럼 아무 조건 없이 되는 거야?"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래 침묵했다.

"비슷하다."

"근데 안 보여줘?"

"보여줄 일이 없었다."

"그게 다야?"

"그게 다다."

수연은 그 짧은 대답 뒤에 뭔가 더 있다는 걸 느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캐묻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


비아가 그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나도 지붕으로 다니고 싶다……이다."

"넌 문으로 다니면 되잖아."

수연이 말했다.

"문은 심심하다……이다. 지붕은 재밌어 보인다."

"위험해."

"너는 했잖아."

"나는 세계 최강이니까."

"나는 문이다. 더 세다……이다."

수연과 비아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붙었다. 라면사장이 국자로 조리대를 톡톡 두드려 둘의 시선을 끌었다.

"둘 다 지붕 금지."

"왜!"

"애 데리고 다니면서 지붕 뛰는 배달원 소문나면, 다음엔 위원회가 온다."

"위원회가 있어, 여기?"

"세레나다."

수연은 그 이름 하나로 상황을 이해했다. 세레나가 나서면, 그것은 대개 아주 정중하고 아주 거절할 수 없는 규칙이 하나 새로 생긴다는 뜻이었다.

"……알았어. 걸어 다닐게."

"나는……이다?"

"너도."

비아는 못내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더 조르지는 않았다. 대신 카운터 위에서 발을 까딱이며 혼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으로 다니는 것도 사실 재밌다……이다. 그냥 억지로 부린 거다……이다."

"방금 그거 자존심 세운 거지."

수연이 웃으며 지적했다.

"아니다……이다."

"맞잖아."

"아니라고 했다……이다."


오후에 또 다른 배달이 있었다.

이번엔 뜨거운 국물이 든 통이었다. 아픈 노인 하나가 목욕탕 골목 안쪽에서 라면을 주문했는데, 몸이 안 좋아 직접 오지 못한다고 했다.

수연은 그 통을 조심스럽게 들고 걸어서 출발했다.

지붕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십오 분을 정확히 걸어, 그녀는 통을 노인의 손에 건넸다. 뚜껑을 열자 김이 여전히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따뜻하네."

노인이 흡족하게 웃었다.

"그럼요."

수연은 그렇게 대답하며, 문득 자기가 이 배달을 위해 십오 분을 온전히 걸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세계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국물 식지 않게 하려고 얌전히 걸었다는 게 우스우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노인은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 힘이 세다고 들었는데."

"누가 그런 얘기를 해요?"

"동네에 소문 다 났어. 지붕으로 배달 다닌다고."

수연은 머쓱하게 웃었다.

"오늘은 안 그랬어요."

"왜?"

"국물 식으면 안 되니까요."

노인은 그 말에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센 사람이 걸어서 와주는 게, 더 고맙게 느껴지는 법이야."

수연은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세계 최강의 힘이 걷는 것을 선택할 때, 그 선택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힘이 강할수록 모든 걸 힘으로 해결했다. 여기서는, 힘을 아끼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었다.


가게로 돌아오자 라면사장이 물었다.

"어땠어?"

"따뜻하게 갔대."

"당연하지."

"당연한 걸 왜 나한테 확인해."

"확인이 아니라 자랑이다. 네 배달 실력."

수연은 그 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조금 웃었다.

"자랑까지 할 정도는 아니잖아."

"열흘 전엔 지붕으로 뛰었잖아."

"그건 옛날 얘기야."

"어제다."

"……옛날이야."

라면사장은 대꾸하지 않고 국자를 들었다. 수연은 앞치마를 정리하며, 오늘 하루 배운 것 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빠른 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걸어가는 십오 분이, 뛰어가는 삼 분보다 더 정확한 답이었다. 그리고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굳이 쓰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조리대 자기 자리에 앉아, 오늘 아침 놓여 있던 콜라 캔을 만지작거렸다. 마법은 물리였다. 원인 없이 결과가 나오는 것. 그러나 오늘 그녀가 배운 것은, 때로는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일부러 시간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저녁이 되자 소예가 그날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 눈을 반짝였다.

"진짜 지붕으로 다니셨다고요? 그거 완전 대단한데요."

"별거 아니야."

"저도 보고 싶었어요. 근데 왜 격식 있는 마법은 안 보여주세요?"

수연은 그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 낮에 베르타에게 했던 설명을 다시 반복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짧게 답했다.

"귀찮아서."

"에이, 그게 다예요?"

"진짜야. 순서 밟는 거 귀찮아."

소예는 그 대답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한 번쯤 보고 싶어요. 예쁘다면서요."

"누가 그래?"

"이 도시 사람들이요. 수연 씨 원래 세계에서 진짜 유명한 마녀였다고."

수연은 그 말에 조금 당황했다. 자기 과거가 이 도시에 어떤 식으로든 소문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

"그냥, 다들 그러던데요. 세계를 구했다느니, 신이랑 싸웠다느니."

"그거 다 과장이야."

"그럼 진짜는 뭔데요?"

수연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리듯 콜라 캔을 땄다.

"나중에. 지금은 아니야."

소예는 그 반응에서 뭔가를 눈치챈 듯, 더 캐묻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알겠어요. 근데 언젠가는 보여주세요. 그 격식 있는 마법이라는 거."

"공연 같은 거 하면 보여줄게."

수연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훗날 정확히 실현되리라는 것을, 지금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라면사장이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마감 시간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공연이라."

"그냥 해본 말이야."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뭐가?"

"네 힘을 다르게 쓰는 것."

수연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왠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라면사장은 마지막으로 조리대를 정리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원인 없이 결과를 내는 힘이, 언젠가 진짜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연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수연은 어깨를 으쓱하고 앞치마를 벗어 못에 걸었다. 오늘 하루도, 이 가게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말 한마디가 조용히 쌓였다. 언젠가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될 날이 올 것이었다. 이 도시의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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