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97화. 200번째 밤

겨울이 무르익으면서, 도시에는 새로운 계절 풍습 하나가 생겼다. 바로 편지의 계절이었다. 각자 멀리 떨어진 이웃이나, 예전에 이 도시를 떠나간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이다.

"저도 하나 써볼까 봐요."

수연이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누구한테."

"음, 아직 정하진 않았는데…… 사장님도 써보실래요?"

라면사장은 그 제안에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조용히 종이를 한 장 받아 들었다.


그가 쓴 편지는 수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봉투에 넣어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누구한테 쓰신 거예요?"

"……아직 부칠 곳을 못 정했다. 근데 쓰고 나니, 마음은 좀 편해지더군."

수연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 무렵, 도시에는 작은 이별 하나가 있었다. 원래 이 도시에 잠시 머물다 가기로 되어 있던 한 방문객이,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정리하고 도시를 떠나게 된 것이다.

"드디어 가시는군요."

세레나가 작별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네. 여기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이제는,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은 이 도시가 처음 겪는 '완전한 이별'이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누군가 완전히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떠나는 것도, 이 도시의 한 기능이었네요."

라면사장이 그 배웅 자리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야기가 끝난 사람들이 오는 곳이니까. 이야기가 완전히 정리되면, 떠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 이별을 지켜본 사람들 중 몇몇은, 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아직 여기 남고 싶어요."

이든 홀트가 그렇게 말했다.

"저도 아직, 정리 안 된 게 많거든요."

"남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도시도 도시로 남는다."

라면사장이 그렇게 답했다.


그 무렵, 도시에는 기억이 서서히 흐려지는 한 노인이 있었다. 켄 오르드라는 이름의 그 노인은, 매듭을 짓는 솜씨로 유명했지만 최근 들어 종종 사람들의 이름을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봐, 자네 이름이…… 미안하네, 또 까먹었어."

그가 수연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어르신. 저 수연이에요."


"수연…… 그래, 수연이었지. 요즘 자꾸 이런다네. 젊었을 땐 안 이랬는데."

그의 딸처럼 그를 챙기던 마르타 벨지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 괜찮아요. 잊으셔도, 저희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켄 오르드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날, 그는 라면사장에게 자신이 평생 익힌 매듭 기술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이거 하나는, 절대 안 잊어버리겠어. 손이 기억하는 거니까."

라면사장은 그 매듭을 배우며 조용히 생각했다.

'……몸이 기억하는 것과, 마음이 기억하는 것. 둘 다 소중하다.'


"어르신, 잊히지 않는 법 같은 거 있으세요?"

수연이 문득 그렇게 물었다.

"있지. 누군가한테 뭔가를 가르쳐주는 거야. 그럼 내가 잊어도, 그 사람 안에 남거든."

그 대답은 도시 전체에 조용히 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아는 것들을 서로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뮤나 페브는 그 이야기를 듣고, 특별 방송 하나를 기획했다.

"오늘 밤은 특집으로,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주제로 사연을 받아보겠습니다."

그날 밤 라디오에는 유난히 많은 사연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라면사장도 가게에서 그 방송을 들으며, 조용히 국물을 저었다.

"사장님도 보내보실래요, 사연?"

"……아니다. 나는 그냥 듣는 걸로 됐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서, 수연은 그가 그 방송을 유난히 진지하게 듣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밤, 도시는 조용한 이정표 하나를 맞이했다. 라면사장이 이 가게를 연 지 정확히 200번째 밤이 되는 날이었다.

세레나가 그 사실을 먼저 알아채고 조용히 준비를 했다.

"오늘, 특별한 날이에요."

그녀가 도시 사람들에게 조용히 소식을 전했다.


그날 저녁, 가게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홀트, 헤라, 소예, 마왕, 부관, 미다, 이든, 켈 도미르, 켄 오르드, 마르타 벨지까지. 이 도시에서 라면사장과 인연을 맺은 거의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오늘이 200번째 밤이라고?"

라면사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저희가 다 세어봤어요."

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이 가게가 생기고, 200일 밤 동안 이 도시가 얼마나 변했는지 다들 얘기하고 싶어서요."

사람들은 저마다 이 가게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처음 이 도시에 와서 방황하던 날, 라면사장의 국물 한 그릇에 위로받았던 순간,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 이야기.


"저는 사실, 여기 처음 왔을 때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어요. 근데 사장님이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그냥 국물만 주셨거든요. 그게 되게 고마웠어요."

헤라가 그렇게 말했다.

"저도요. 저는 여기서 처음으로, 제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됐어요."

소예도 그렇게 덧붙였다.


"저는 여기서 처음으로 무적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배웠어요."

이든 홀트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문 여는 법을 다시 배웠어요."

비아가 짧게 덧붙였다. 그 말에 라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켈 도미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는 여기서, 제 시계가 진짜로 쓰일 곳을 찾았어요."


녹사도 오랜만에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경고해도 되는 존재라는 걸 배웠다. 예전엔 그냥 위험을 알리는 도구인 줄 알았다. 근데 여기서는, 나도 마음이 있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그 말에 가게 안이 잠시 숙연해졌다가, 이내 다시 따뜻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세레나가 마지막으로 잔을 들며 말했다.

"이 가게가 없었으면, 저희 중 누구도 지금 여기 이렇게 모여있지 못했을 거예요. 200번째 밤을 위하여."

"200번째 밤을 위하여!"


라면사장은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원래 이 도시의 관측자였을 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다들, 고맙다."

그가 짧게 말했다. 그 짧은 한마디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박수쳤다.


"사장님, 이 200일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 뭐예요?"

수연이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네가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날."

수연은 그 대답에 순간 말을 잃었다.


"그날, 나는 몰랐다. 네가 이렇게까지 소중해질 줄은."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가, 이내 여기저기서 놀리는 듯한 환호가 터졌다.

"사장님!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이리스가 웃으며 소리쳤다. 수연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200번째 밤을 기념하는 작은 잔치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간 뒤, 가게에는 라면사장과 수연만 남았다.

"200일이라니, 실감이 안 나네요."

"나도 그렇다. 근데 앞으로 200일, 또 200일, 계속 쌓일 거다."

"그럼 저도 계속 옆에 있을게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창밖에는 200번째 밤을 기념하듯, 유난히 맑고 깊은 눈이 소복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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