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40화. 재하의 첫 외출
재하는 이 도시에 정착한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기 방을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다.
세레나가 처음 그를 만났던 그날 이후로, 그는 시장 근처 작은 집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지내왔다. 필요한 물건은 이웃이 대신 사다 주거나, 아주 가끔 세레나가 순찰길에 들러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오늘도 안 나오셨어요?"
세레나가 문 앞에서 물으면, 재하는 늘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 대답 외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세레나도 그 침묵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짧게 안부를 확인하고, 별일 없으면 다시 순찰을 이어갔다.
라면가게 사람들도 재하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세레나가 그의 이야기를 지나가듯 언급할 뿐이었다.
"오늘도 재하 씨 뵙고 왔어요."
"어떠셨어요?"
수연이 물으면, 세레나는 늘 비슷하게 답했다.
"여전히 조용하세요. 근데 오늘은 문 앞까지 나와서 인사하셨어요."
"그것도 발전이네요."
"그렇죠. 조금씩요."
그런 짧은 근황이 몇 달째 반복되고 있었다. 답답할 법도 했지만, 이 도시에서는 그런 속도로 나아가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소예가 한번은 그 이야기를 듣고 걱정스럽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분, 계속 그렇게 혼자 계셔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요."
세레나가 답했다.
"근데 사람이 그렇게 오래 혼자 있으면 안 좋다고 하잖아요."
"맞는 말이에요. 근데 혼자 있는 것과 혼자 두는 건 달라요. 저는 매일 들러요. 그냥 그분이 원할 때까지 곁을 지키는 것뿐이에요."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실 거예요?"
세레나는 그 질문에 옅게 웃었다.
"기다리는 데 기한을 정하면, 그건 이미 기다림이 아니라 재촉이에요."
소예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에서 배우는 것들은 늘 이런 식으로, 서두름을 내려놓는 법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였다. 가게 안 손님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며 국물을 비우고 있었다.
그때, 가게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틈으로 낯선 얼굴 하나가 빼꼼히 나타났다. 마른 체구에, 늘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걷는 사람. 재하였다.
가게 안 몇몇이 그를 알아보고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아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마치 늘 오던 손님을 대하듯 시선을 거뒀다.
재하는 그 반응에 조금 안심한 듯, 천천히 문턱을 넘었다.
라면사장은 그의 등장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릇 하나를 꺼내 놓았다.
"어서 와라."
그 짧은 인사가 전부였다. 재하는 그 담담함에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카운터 쪽으로 다가와, 가장 구석진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뭘 줄까."
라면사장이 물었다.
재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아무거나요."
"알겠다."
마왕도 그 자리에 있다가 재하를 흘끔 보고는, 평소와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기 그릇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이 도시의 짓궂은 존재조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걸 아는 듯했다.
수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오랫동안 이야기로만 듣던 사람이 직접 가게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녀는 애써 평소처럼 행동하려 했다. 손님상을 정리하고, 물잔을 채우고. 그러나 곁눈질로 계속 재하를 살피고 있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가게 안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소리들이 채워졌다. 국자 젓는 소리, 손님들의 잔잔한 대화, 창밖에서 들려오는 골목의 소음.
재하는 그 소리들을 하나하나 듣고 있는 듯, 가만히 앉아 시선을 내리깐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문이 다시 열리며 세레나가 순찰 도중 들어섰다.
그녀는 재하를 발견하고 순간 걸음을 멈췄다.
몇 달째 그의 집 앞에서만 마주쳤던 사람이, 지금 이 가게 안에 스스로 앉아 있었다. 세레나는 그 광경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아주 천천히, 깊게 고개를 숙였다.
재하는 그 인사를 알아차리고,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눈빛 안에는 몇 달간의 침묵이 담겨 있었다.
세레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순찰을 계속 이어갔다.
그릇이 재하 앞에 놓였다.
평범한 라면 한 그릇이었다. 재하는 그 그릇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었다.
첫 입을 삼키는 그 순간, 그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수연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보며 뭔가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라면사장은 그런 재하를 특별히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여느 손님을 대하듯 묵묵히 다음 그릇을 준비했다.
식사가 절반쯤 진행됐을 무렵, 비아가 조심스럽게 그의 옆으로 다가와 물잔을 채워주었다.
"맛있냐……이다?"
재하는 그 질문에 순간 멈칫하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행이다……이다."
비아는 그 짧은 대답에도 활짝 웃으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다른 손님들에게 하던 것과 똑같은, 자연스러운 응대였다.
재하는 그 자연스러움에 오히려 안도하는 듯했다. 아무도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동시에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한 명의 손님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재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었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그저 가게 안의 분위기를 조용히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라면사장이 그를 돌아보았다.
"왜."
"이 가게, 매일 열어요?"
"그렇다."
"……그럼, 또 와도 되나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담담하게 답했다.
"당연하다."
재하는 그 짧은 대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그 감정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
소예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빈 그릇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국물 더 드릴까요?"
재하는 그 물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물이라도 더 드릴게요."
소예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물잔을 채워주었다. 재하는 그 자연스러운 배려에 시선을 살짝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그 두 마디가, 그가 오늘 가게 안에서 건넨 가장 긴 문장이었다. 소예는 그 말에 별다른 티를 내지 않고 그저 옅게 웃으며 자리를 떴다. 과한 반응은 오히려 그를 부담스럽게 할 거라는 걸, 그녀도 어느새 이 가게에서 배운 터였다.
수연은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의 첫날을 떠올렸다. 그녀 역시 이 가게의 담담한 환대 앞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었다.
"저기, 재하 씨."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재하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비슷했어요. 아무것도 몰랐고, 무서웠고."
"……"
"근데 여긴 그런 거 다 괜찮은 곳이더라고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재하는 그 말에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 끄덕임 안에 담긴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세레나가 순찰을 마치고 다시 가게에 들렀을 때, 재하는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가셨어요?"
그녀가 물었다.
"방금."
라면사장이 답했다.
"어떠셨어요?"
"그릇 한 그릇, 조용히 비우고 가셨다. 그게 다다."
세레나는 그 짧은 보고에 옅게 웃었다.
"그거면 충분해요."
"내일도 올 것 같나."
"모르겠어요. 근데 오늘 스스로 걸어오신 것만으로도, 아주 큰 걸음이었을 거예요."
그날 밤, 수연은 마감 정리를 하며 문득 라면사장에게 물었다.
"재하 씨,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안 나오셨던 거야?"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이유는 본인만 안다. 우리는 그저 기다렸을 뿐이다."
"몇 달이나 기다린 거잖아."
"몇 달이 뭐가 대수인가. 어떤 사람은 몇 년도 걸린다."
"안 답답했어?"
"답답할 이유가 없다. 재촉한다고 빨라지는 게 아니니까."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아가 언급했던 문의 원칙이 다시 떠올랐다. 열어두되, 밀지 않는다. 오늘 재하가 넘은 문턱도, 그 오랜 원칙이 조용히 지켜낸 결과였다.
비아도 그 대화에 조용히 끼어들었다.
"오늘 재하 스스로 걸어왔다……이다. 아무도 안 밀었다……이다."
"응, 그랬지."
"그래서 오늘 그릇, 진짜 재하 거였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비아 나름의 표현으로, 오늘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낸 셈이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재하 씨는 원래 무슨 일 하던 사람이었어?"
"모른다……이다. 아무도 안 물어봤다……이다."
"안 궁금해?"
"궁금하다……이다. 근데 본인이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이다. 그게 원칙이다……이다."
수연은 그 대답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에서는 궁금함마저도, 서두르지 않고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며칠 뒤, 재하는 다시 가게를 찾았다.
이번엔 문을 여는 손길이 조금 덜 떨렸다. 여전히 말은 적었지만, 그는 지난번과 같은 구석 자리에 앉아 같은 그릇을 주문했다.
"오늘도 오셨네요."
수연이 옅게 웃으며 인사했다.
재하는 그 인사에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라면사장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조용히 그릇을 준비했다. 그의 얼굴엔 어떤 특별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손끝의 움직임만큼은 여느 때보다 조금 더 정성스러웠다.
세레나는 그날 저녁 순찰 중, 재하의 빈집 앞을 지나며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오늘 그가 가게에 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잘하고 계시네요."
그녀가 아무도 없는 골목을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명령도, 지시도 아닌, 그저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이었다.
라면가게의 외상장부에는, 그날 밤 짧은 한 줄이 새로 적혔다.
『재하 — 스스로 걸은 첫걸음 (진행 중). 서두르지 않는다.』
라면사장은 그 페이지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문득 옆에 있던 수연에게 말했다.
"이런 게 이 가게가 하는 일이다."
"뭐가?"
"화려한 것도, 극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매일 문을 열고, 그릇을 준비하고, 누군가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전부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제일 어려운 일 같아."
"어렵다. 근데 제일 오래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마지막으로 가게 문을 점검했다. 오늘 하루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 조금씩 자신의 문턱을 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게는, 내일도 변함없이 같은 시간에 문을 열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재하는 어느새 가게의 낯익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말수는 적었지만, 그의 방문 간격은 눈에 띄게 짧아졌다. 처음엔 며칠에 한 번, 나중엔 이틀에 한 번,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매일.
"오늘도 오셨네요."
수연이 인사하면, 재하는 이제 작게나마 먼저 목례를 건네는 여유가 생겼다.
한번은 소예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었다.
"재하 씨, 여기 자주 오시니까 좋으세요?"
재하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생각하다가, 낮게 답했다.
"……여기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밖에서는 항상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말도 해야 하고, 웃어야 하고. 근데 여긴…… 그냥 앉아 있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하잖아요."
소예는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맞아요. 여긴 그런 곳이에요."
"그래서 좋아요."
그 짧은 대답이, 그가 그동안 이 가게에 대해 느낀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세레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며 순찰길에 조금씩 안도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완전한 침묵이, 이제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많이 밝아지셨어요."
그녀가 어느 날 그에게 말을 건넸다.
재하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세레나 씨 덕분이에요. 계속 기다려주셔서."
"저는 그냥 곁에 있었을 뿐이에요. 걸은 건 재하 씨예요."
재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화 이후, 그는 조금씩 시장 다른 상점들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작은 걸음이었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이 도시는 오늘도, 누군가의 느린 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함께 걸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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