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39화. 문이 열리는 조건

한가한 오후, 소예는 창고 정리를 하다가 문득 비아의 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낡은 나무 문. 겉보기엔 평범한 창고 문이었지만, 그녀는 이 문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안쪽 공간이 매번 다르고, 나오는 물건도 제각각이고, 심지어 며칠 전에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되기도 했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저기, 비아."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왜……이다?"

비아가 카운터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문은 아무나 만들 수 있어?"

비아는 그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나 못 만든다……이다."

"그럼 누가 만드는 거야? 너?"

"나도 안 만든다……이다."

소예는 그 대답에 어리둥절해졌다.

"근데 이 문, 네가 만든 거 아니었어?"


비아는 창고 쪽으로 다가와 문고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문은 만드는 게 아니라 생기는 거다……이다."

"생긴다고?"

"응……이다. 문은 원래, 누군가 정말로 넘어가고 싶은 게 있을 때 저절로 생긴다……이다."

"그럼 넌 뭘 하는 건데?"

"나는 그걸 조금 도울 뿐이다……이다."

소예는 그 설명이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조금 돕는다는 게 무슨 뜻이야?"

비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

"문이 생기려면, 그 마음이 아주 간절해야 한다……이다. 근데 간절해도 길을 못 찾는 경우가 있다……이다. 그럴 때 내가 살짝, 아주 살짝 옆에서 밀어준다……이다."


"밀어준다고? 그럼 네가 문을 여는 거잖아."

"아니다……이다! 나는 절대 안 민다……이다."

비아가 발끈하며 정정했다.

"방금 밀어준다며."

"그건 문을 만드는 걸 돕는다는 거지, 사람을 미는 게 아니다……이다!"

"그게 뭐가 달라?"

비아는 잠시 진지한 얼굴이 되어 답했다.

"문은 열어줄 수 있다……이다. 근데 그 문으로 들어가는 건, 본인이 스스로 걸어야 한다……이다. 내가 등 떠밀면 안 된다……이다."

소예는 그 구분에 조금 놀랐다.

"그게 되게 중요한 원칙 같은데."

"중요하다……이다! 제일 중요하다……이다!"


"왜 그렇게까지 중요해?"

소예가 물었다.

비아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나직이 답했다.

"밀어 넣으면, 그 사람 거가 아니게 된다……이다."

"무슨 뜻이야?"

"자기가 스스로 걸어 들어온 문턱이랑, 누가 떠밀어서 넘은 문턱은 다르다……이다. 스스로 걸으면, 그 뒤에 오는 것도 다 자기 것이 된다……이다. 근데 떠밀리면, 그 뒤에 오는 것도 남 탓을 하게 된다……이다."

소예는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린아이 같은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원칙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 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그렇게 지켜봐 온 거야?"

"모른다……이다. 많이……이다. 근데 다 기억한다……이다. 밀어 넣지 않고 기다려준 사람들."


수연도 그 대화를 듣고 흥미로운 얼굴로 다가왔다.

"나도 그렇게 문을 넘었나?"

"응……이다. 수연은 스스로 벽을 부수고 들어왔다……이다. 그건 완전히 수연 거다……이다."

"근데 내가 만약 그때 문 앞에서 망설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기다렸을 거다……이다. 얼마가 걸리든."

"만약 영영 안 들어왔으면?"

비아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그럼 그것도 수연의 선택이다……이다. 나는 그 선택도 존중한다……이다."

수연은 그 대답에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이 작은 존재가 지닌 원칙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단단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근데 그 벽 부순 것도, 사실 나 혼자 결정한 거 맞아? 아니면 뭔가 이 도시가 나를 끌어당긴 거야?"

수연이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비아는 그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끌어당긴 건 맞다……이다. 근데 넘은 건 수연이다……이다."

"그게 어떻게 다른데?"

"냄새로 비유하면……이다." 비아는 잠시 고민하다 설명을 이었다. "이 가게 국물 냄새가 골목까지 퍼지는 건 우리가 하는 거다……이다. 근데 그 냄새 맡고 문을 열지 말지는 손님이 정하는 거다……이다."

"그럼 나는 냄새를 맡고 내가 문을 연 거네."

"정확하다……이다! 우리는 냄새만 냈다……이다. 문은 수연이 부쉈다……이다."

수연은 그 비유에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그 구분이 얼마나 섬세하게 지켜지고 있는지도 다시 느꼈다.


마왕도 마침 카운터에 앉아 그 대화를 듣고 있다가 낮게 끼어들었다.

"나도 비슷한 걸 겪은 적 있다."

"어떤 거요?"

소예가 물었다.

"왕좌를 물려받을 때 얘기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나를 억지로 왕좌에 앉히려 하셨지.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도."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결국 앉았다. 근데 늘 그 왕좌가 내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가 떠민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뭘 해도 확신이 안 서더군."

마왕은 씁쓸하게 웃었다.

"비아의 저 원칙, 백 번 옳다. 등 떠밀린 자리는, 아무리 좋아 보여도 결국 자기 것이 안 된다."

비아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마왕을 바라보았다.

"마왕도 그랬냐……이다?"

"그랬다. 그러니 네 원칙을 지켜라. 그게 결국 상대를 위하는 길이다."

비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이 한결 든든해진 얼굴이었다.


라면사장이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게 끼어들었다.

"비아의 그 원칙,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다."

비아가 순간 움찔했다.

"사장님……."

"괜찮다. 소예도 알아둬야 할 이야기다."

라면사장은 그릇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전, 비아는 딱 한 번 그 원칙을 어긴 적이 있다."

소예와 수연이 동시에 비아를 돌아보았다. 비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어떤 일이었는데요?"

소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면사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어떤 존재가 문 앞에서 오래도록 망설이고 있었다. 비아는 그 존재가 안쓰러워서, 조금 세게 문을 밀어줬다. 그 존재를 문턱 너머로 등 떠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존재는 결국 그 문턱 너머의 삶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게 그 존재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

비아는 그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내 잘못이었다……이다."


"그 뒤로 비아는 절대 다시는 밀지 않기로 했다."

라면사장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안쓰러워도, 아무리 답답해도. 문은 열어주되, 넘는 건 반드시 본인의 발로 넘게 한다."

소예는 그 이야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근데 비아야, 그 존재는 지금 어떻게 됐어?"

비아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작게 답했다.

"모른다……이다. 그 뒤로 못 만났다……이다. 근데 언젠가 다시 만나면, 사과하고 싶다……이다."

"사과할 기회, 분명 있을 거야."

수연이 그렇게 위로했다. 비아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고맙다……이다."


"그럼 지금 이 문은, 그 실수 이후로 만들어진 규칙대로 작동하는 거야?"

소예가 물었다.

"응……이다. 지금은 아무리 간절해 보여도, 절대 안 민다……이다. 그냥 문을 살짝 열어두고 기다린다……이다.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는 그 사람 몫이다……이다."

"근데 그렇게 하면, 아까운 인연을 놓칠 수도 있잖아."

"놓치더라도 괜찮다……이다. 억지로 붙잡은 인연보다, 놓친 인연이 낫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의 원칙들이, 대부분 이렇게 아프게 얻어진 교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세레나도 순찰 도중 들렀다가 그 대화의 끄트머리를 듣고 조용히 거들었다.

"저도 비슷한 원칙이 있어요."

"세레나 씨도요?"

소예가 물었다.

"네. 저는 명령을 내리지 않아요. 아무리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해도, 제가 정답을 정해주지 않아요."

"왜요? 정해주면 더 빠를 텐데."

"빠르긴 하겠죠. 근데 제가 정한 답은 결국 제 것이지, 그 사람 것이 안 돼요. 비아의 문이랑 똑같아요. 스스로 고른 답이어야, 그 뒤에 오는 책임도 스스로 질 수 있어요."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 존재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움직이는구나."

"그런 것 같아요. 각자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은 같은 방향이에요. 억지로 끌지 않고, 그저 길을 보여주는 것."

세레나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순찰을 이어가러 걸음을 옮겼다.


"그럼 저 붉은 테두리 그릇도, 같은 원칙이야?"

소예가 문득 가게 한쪽의 그릇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이다. 그 사람 몫의 문도, 절대 억지로 안 연다……이다. 그냥 매일 그릇만 닦아둔다……이다. 그 사람이 스스로 걸어올 때까지."

라면사장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림이 힘들 때도 있다. 근데 그게 이 가게가 지키는 방식이다."

소예는 그 원칙을 마음 깊이 새겼다.

"저도 이제 이해했어요. 문은 여는 것까지만 도와주는 거고, 넘는 건 각자의 몫이라는 거."

"정확하다……이다."


그날 저녁, 소예는 창고를 정리하며 문득 그 낡은 문을 다시 바라보았다.

"비아."

"왜……이다?"

"오늘 얘기해줘서 고마워. 좀 어려운 얘기였을 텐데."

"괜찮다……이다. 소예는 알아야 한다……이다. 언젠가 소예도 누군가의 문 앞에 설 수도 있으니까."

"내가?"

"응……이다. 이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누군가 망설이는 걸 보게 될 거다……이다. 그때 소예도 밀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한다……이다."

소예는 그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비아야, 그 문 만드는 거, 힘들지 않아?"

수연이 문득 물었다.

"조금 힘들다……이다. 근데 그거보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 보는 게 더 힘들다……이다."

"그럴 땐 어떻게 해?"

"그냥 기다린다……이다. 그리고 문을 조금 더 잘 보이게 닦아둔다……이다. 그거면 충분하다……이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들으며 옅게 웃었다.

"이 가게 전체가 그런 식이다.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고, 그냥 문을 잘 보이게 닦아두는 것."

"근데 사장님은요?"

소예가 문득 물었다.

"사장님도 그런 원칙 있어요? 손님 대할 때."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있다. 먼저 묻지 않는다."

"뭘요?"

"손님이 왜 왔는지, 뭘 겪었는지. 말하고 싶어질 때까지 안 묻는다. 대신 그릇은 늘 준비해둔다."

"그것도 비아의 문이랑 비슷하네요."

"비슷하다. 결국 이 가게 전체가 그 원칙 하나로 돌아간다. 열어두되, 밀지 않는다."

소예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오늘부터 그렇게 할게요. 손님 대할 때도, 억지로 캐묻지 않고 기다리는 거."

"그거면 됐다."

라면사장은 짧게 답하며 다시 손을 움직였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에 도착한 첫날, 벽을 부수고 들어왔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 아무도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밀지 않았다. 그저 문이 있었고, 그녀가 스스로 넘었을 뿐이었다.

"그게 얼마나 큰 배려였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비아는 그 말에 조용히 웃으며 문고리를 한 번 더 쓰다듬었다. 오늘도 이 가게의 문은, 누군가의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문을 닫기 전, 소예는 마지막으로 창고 문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비아, 오늘 진짜 많이 배웠어."

"나도 오늘 얘기하면서 다시 다짐했다……이다."

"뭘?"

"절대 안 민다……이다.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아무리 답답해도."

소예는 그 다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원칙, 손님들한테 적용해볼게."

"소예라면 잘할 거다……이다."

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문고리에 달아둔 작은 매듭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실 하나가, 이 가게가 지켜온 오랜 원칙의 증표처럼 조용히 걸려 있었다.

그날 밤, 라면사장은 외상장부를 꺼내 문득 오래된 페이지 하나를 펼쳤다. 몇 년 전, 비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칙을 어겼던 그날의 기록이 짧게 남아 있었다. 그는 그 페이지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조용히 서랍을 닫았다. 아직 그 존재가 이 가게로 돌아올 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비아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그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단단한 원칙 덕분에, 이 가게를 거쳐 간 수많은 존재들이 저마다 자기 발로 걸어 들어와, 저마다 자기 몫의 이야기를 쌓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문은 오늘 밤도 조용히 닫혔다. 그러나 그 문 너머 어딘가에서, 아직 걸음을 떼지 못한 누군가가 천천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 가게는, 그날이 올 때까지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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