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204화. 이리스의 새 공연
공연 당일 아침, 광장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겨울 축제 때와는 다른 종류의 인파였다 — 그때는 들뜬 기대감으로 가득했다면, 오늘은 조용한 기다림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담요를 두르고, 뜨거운 차를 담은 컵을 손에 쥔 채 무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불 여관 골목의 위나 홀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녀는 요즘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낮 동안의 빛과 색을 예전보다 더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대를 준비하는 이리스의 손짓 하나하나가, 그녀의 눈에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 무대는 이전보다 소박했다 — 화려한 장식도, 거대한 구조물도 없었다. 그저 넓은 눈밭 한가운데 낮은 단 하나와, 그 위로 열 개의 드론이 자리를 잡을 자리가 표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리스는 무대 뒤에서 마지막으로 드론들을 점검했다. 하나씩, 하나씩. 그녀의 손끝이 마지막 드론 앞에서 잠깐 멈췄다.
열 번째 드론이었다. 오랫동안 불이 꺼져 있던 그것.
그녀는 그 드론을 손끝으로 살짝 매만졌다. 표면이 차가웠다. 다른 아홉 개와 똑같은 재질, 똑같은 무게였는데도, 유독 이 하나만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전원을 넣었다.
빛이 들어왔다.
처음엔 흐릿했다. 예전에도 몇 번 켜졌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얼마 못 가 다시 꺼지곤 했다. 이번엔 어떨지,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흐릿한 빛은 곧 안정되기 시작했고, 다른 아홉 개와 같은 밝기로 차올랐다. 그녀는 그 빛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오늘은 안 꺼지네."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확신이라기보다는 바람에 가까운 말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열 개의 드론이 일제히 하늘로 떠올랐다. 그것들은 각자의 궤도를 그리며 눈밭 위로 빛의 선을 그려나갔다. 처음엔 흩어진 궤적들이었지만, 곧 하나의 형태로 모이기 시작했다 —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지는 탑의 모양, 꺼졌다가 다시 켜지는 별의 모양. 사람들은 그 빛의 궤적을 따라 눈을 움직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읽어냈다.
관객석 한 귀퉁이, 소므니움이 앉아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달리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혹의 신, 한때 이 도시를 농락하려 했던 존재. 하지만 지금 그는 그저 한 명의 관객으로 앉아 있었다. 비아의 말대로 가끔 가게에 들르던 그가, 오늘은 처음으로 무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의 능글맞은 미소 대신, 낯선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다른 이들에게 꿈을 팔아온 존재였다. 그가 보여주는 미래는 언제나 진짜였다 — 실제로 가능했던 미래, 다만 대가는 보여주지 않은 미래. 그는 그런 식으로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왔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가 만들어낸 어떤 환상도 아니었다. 진짜 사람들이, 진짜 무대 위에서, 진짜 눈물과 진짜 웃음을 담아내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팔아온 꿈들을 떠올렸다. 그 꿈들은 늘 완벽했다 — 후회 없는 선택, 이루어진 소망, 되돌린 실수. 그러나 그 완벽함은 언제나 대가를 숨긴 완벽함이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무대는 정반대였다. 완벽하지 않았다. 눈은 고르지 않게 흩날렸고, 드론의 궤적은 가끔 어긋났으며, 이리스의 목소리도 가끔 떨렸다. 그런데도 그는 그 불완전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가 팔아온 완벽한 꿈들에는 없던 무언가가, 이 어설픈 무대에는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대가를 이미 다 치른 자들의 얼굴이었다. 저 사람들은 이미 잃을 것을 다 잃었고, 아파할 만큼 아파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서 있었다. 그건 그가 여태 유혹해온 그 어떤 인간도 보여준 적 없는 종류의 강인함이었다 — 대가를 이미 알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
드론들의 궤적이 하늘 높이 뻗어나가는 동안, 이리스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평소의 화려한 의상 대신 비교적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뜻밖의 인물이 함께 서 있었다.
수연이었다.
관객들 사이에서 낮은 술렁임이 일었다. 수연이 무대에 서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평소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쪽이었지, 스스로 앞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이리스 옆에 서서, 후드를 살짝 벗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신입."
수연이 이리스에게 나직이 말했다.
"오늘은 나도 좀 도와줄게."
"정말요?"
이리스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화려한 거 할 거예요? 예전에 별빛 다리에서 했던 것처럼?"
"아니."
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옅은 냉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냉기는 이전처럼 날카롭고 화려한 얼음 검이나 눈보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작고, 아주 부드러운 결정들이었다 — 마치 하늘에서 자연스럽게 내리는 눈처럼.
그녀는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 손끝에서 눈송이들이 하나둘 피어나, 무대 위로, 관객석 위로 조용히 흩날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빛도, 날카로운 검기도 없었다. 그저 눈이었다. 아주 평범하고, 아주 조용한 눈.
"오늘은 이걸로 됐어."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관객들은 그 눈을 맞으며 저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도시가 지나온 지난 계절, 그 모든 상실과 회복의 시간이, 이 조용한 눈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리스는 그 옆에서 수연을 바라보다가, 문득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화려한 무대만을 추구해왔던 그녀에게, 이 조용한 순간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반짝임을 만들던 사람이, 이제는 반짝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의 가치를 배우고 있었다.
"이것도 좋네요."
이리스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응. 너도 이제 알겠지."
수연이 답했다. 반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선배가 후배에게 건네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공연이 절정으로 치닫는 동안, 소므니움은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다른 존재의 감정을 소비해온 신이었다 — 사람들의 후회, 욕망, 미련을 재료 삼아 꿈을 짜고 팔았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이 무대는, 팔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손끝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오래된 버릇이었다 — 무언가를 평가하고, 값을 매기려 할 때 나오는 습관.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손끝이 아무 계산도 찾아내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수연이 뿌린 눈이 그의 어깨 위에도 내려앉았다. 차갑고, 그러나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감촉이었다. 그는 그 눈송이 하나를 손끝으로 받아 들었다. 녹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뜰 무렵,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형사가 그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떠셨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늘 그렇듯 격식을 갖춘, 그러나 은근한 호기심이 섞인 어조였다.
소므니움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못 팔겠군."
"뭘 말씀이십니까."
"이 무대 말이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미래를 보여주고 팔아왔다. 그런데 이건, 팔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그는 손끝에 남은 눈송이의 흔적을 내려다봤다. 이미 녹아 사라진 뒤였다.
"파는 게 아니라 사는 거라."
형사는 그 말을 잠시 곱씹었다.
"사는 것과 파는 것의 차이가 뭡니까."
"파는 건 대가를 숨긴다. 사는 건 대가를 함께 짊어진다."
소므니움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랫동안 유혹의 신으로서 살아온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팔 수 없는 무언가를 목격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것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하게 홀가분했다.
"이 도시는, 파는 게 아니라 사는 도시로군."
그가 중얼거렸다. 형사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라면도 그렇습니다. 파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눠 사는 겁니다."
"…그런가."
소므니움은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었다. 이리스가 무대 중앙에서 손을 들자, 열 개의 드론이 다시 하늘 높이 떠올랐다. 이번엔 궤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제히 한 방향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조금 특별한 걸 준비했어요."
이리스가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만든 열 개의 빛을, 이 도시 하늘보다 훨씬 높이 쏘아 올릴 거예요. 세계와 세계 사이, 그 어딘가에 닿을 수 있도록요."
드론들이 점점 더 높이 떠오르는 동안, 그것들이 뿜어내는 빛의 색깔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도시의 익숙한 노란빛과 흰빛이었다 — 가게 등불과 똑같은, 사람들이 매일 밤 보아온 그 다정한 빛깔. 그러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그 노란빛은 서서히 식어가듯 옅은 푸른빛으로 물들었고, 사람들 머리 위 하늘과 구분이 안 될 만큼 높은 지점에 이르자 이번엔 그 푸른빛조차 낯선 보랏빛과 은빛이 뒤섞인 색으로 바뀌어갔다. 마치 익숙한 색이 한 겹씩 벗겨지며, 그 아래 숨어 있던 다른 세계의 색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 경계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이 노란빛의 끝이고 어느 순간이 낯선 빛의 시작인지, 지켜보던 사람들 중 누구도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다만 다들 그 변화를 느꼈다 — 마치 숨을 들이쉬다가 어느 순간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이리스는 그 경계를 손끝으로 좇으며, 이 색의 변화가 곧 이 도시의 하늘이 끝나고 다른 무언가의 하늘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낯익은 빛에서 낯선 빛으로, 그 옅은 이행 자체가 이 열 개의 소원이 정말로 어딘가에 닿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사람들은 고개를 완전히 젖힌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열 개의 별이 점점 작아지며 하늘 저 높은 곳으로 사라져갔다. 그 색의 경계 — 도시의 빛에서 낯선 빛으로 바뀌는 그 순간 — 을 목격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게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누군가 물었다.
"세계 사이요."
이리스가 답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었다.
"닿을지 안 닿을지는 몰라요. 근데 어딘가엔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쏘아 올리는 거예요."
수연은 그 옆에서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그 열 개의 별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이 비쳤다. 어딘가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그녀는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뻗었다. 손끝에서 마지막 눈송이 하나가 피어나, 그 별들의 뒤를 따르듯 천천히 위로 떠올랐다. 그러고는 다른 빛들과 함께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잘 가."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채로, 그 말은 별들의 뒤를 따라 하늘 어딘가로 올라갔다.
공연이 끝난 뒤, 광장에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남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미 별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다들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이리스는 무대 뒤에서 드론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열 번째 드론을 손에 들었다.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처음 켜졌을 때보다 조금 더 안정된 빛이었다.
"오늘은 안 꺼졌네."
그녀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이번엔 확신이 섞여 있었다.
소므니움은 광장 한쪽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비아를 떠올렸다. 라면은 판다는, 그 짧은 초대의 말. 그는 발걸음을 돌려 가게 쪽으로 향했다. 오늘 같은 날엔, 그도 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팔 수 없는, 그저 살 수만 있는 무언가를.
가게 문을 열자, 비아가 카운터 안쪽에서 그를 발견하고 무심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왔냐……이다."
"…왔다."
소므니움은 낯선 어색함을 느끼며 카운터 자리에 앉았다. 오랫동안 그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팔기만 하던 존재였다. 이렇게 손님으로 앉아 무언가를 사는 입장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뭘 먹겠냐……이다."
"…아무거나. 여기서 파는 걸로."
비아는 그 대답에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그녀의 손짓은 익숙했다 — 누군가에게 배운 그대로의 손짓.
"기다려라……이다. 이건 시간이 좀 걸린다……이다."
소므니움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그가 팔아온 모든 것은 즉각적이었다 — 원하는 순간 원하는 미래를 보여주는 것. 그러나 지금 그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대가도 계산하지 않은 채로.
형사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들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 빛이 남긴 잔상만은 오랫동안 눈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조용히 수첩을 꺼내 짧게 적었다.
"오늘, 열 개의 소원이 세계 사이로 떠났다. 닿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쏘아 올렸다는 사실은 남는다."
수연은 광장 한쪽에 남아, 이리스가 드론을 정리하는 걸 잠시 지켜봤다. 열 번째 드론이 여전히 빛나고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비로소 후드를 다시 눌러썼다. 그녀의 손끝은 아직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이 오늘은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본 뒤, 가게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엔 오랜만에, 콜라비빔면 두 그릇이 아니라 한 그릇만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든 순간, 그녀는 스스로도 놀랐다 — 슬픔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슬픔 옆에 다른 하루가 나란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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