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05화. 화려한 별

라면가게 앞 공터는 원래 공연장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곳이었다.

대충 치워 놓은 나무 상자 몇 개. 눈이 얇게 쌓인 바닥. 누가 걸어가다 멈춰 설 만큼의 공간. 그리고 컵라면을 들고 얼쩡거리는 손님들.

무대라고 하기엔 초라했다.

그런데 수연은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준비됐어?"

이리스는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노래는 기대하지 마세요."

"나도 네 가창력엔 기대 안 해."

"말 진짜 예쁘게 하시네요."

"대신 무대는 기대함."

이리스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주위에서 열 대의 드론이 천천히 떠올랐다. 빨강, 흰색, 주황, 노랑, 초록, 시안, 파랑, 보라, 분홍, 그리고 검정. 각기 다른 색의 조명이 눈발 사이를 얇게 가르며 번졌다.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진짜 하네?"

"신입 알바생이랑 수연?"

"저 드론들 다 쓰는 거야?"

비아가 라면가게 처마 위에 앉아 중얼거렸다.

"공연이다……이다."

라면사장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세레나는 가게 문가에 서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이 무대 한가운데로 나갔다. 토끼 후드 끝에 작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을 들어 올렸다.

"간다."

다음 순간,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눈이 아니었다.

함박눈.

한 조각 한 조각이 지나치게 컸다. 마치 잘게 부서진 수정 조각처럼, 형태가 보일 만큼 선명했다. 허공을 가득 메우며 천천히, 그러나 끊이지 않고 흩날렸다.


손님들 사이에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와……"

"저거 봐."

"눈이 커."

"저런 것도 되냐?"

수연은 손끝을 가볍게 튕겼다. 눈송이들이 바람을 탄 듯 무대 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 순간 이리스가 손가락을 올렸다.

"조명."

열 대의 드론이 일제히 움직였다.

빨간 빛이 눈송이 한 면에 스쳤고, 파란 빛이 그 뒤를 따라갔다. 노란 조명은 공중에 흩어진 눈을 따뜻하게 물들였고, 보랏빛은 무대 가장자리를 감싸 안았다.


커다란 눈송이들이 빛을 받아 반사되기 시작했다. 눈은 더 이상 흰색이 아니었다.

붉었다가, 푸르렀다가, 금빛으로 떨렸다. 수정처럼 투명한 눈송이의 면마다 드론의 조명이 부딪혀, 공기 전체가 반짝이는 파편으로 가득 찼다.

무대가 뒤집혔다.

아니, 정확히는 세상이 잠깐 무대로 바뀌었다.


이리스는 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완벽한 가수처럼 보이진 않았다. 호흡은 조금 짧았고, 첫 박자도 미묘하게 늦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들자 드론들이 위로 솟구쳤고, 왼손을 틀자 빛의 흐름이 비스듬히 회전했다. 눈과 조명과 움직임이 그녀의 몸짓을 따라 하나의 무늬가 되었다.


수연이 먼저 노래를 받았다. 맑고 단단한 목소리가 함박눈 사이를 가르며 울렸다.

이리스도 따라 불렀다. 완벽하진 않았다. 약간 흔들렸고, 중간에 숨도 모자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묻히지 않았다.

수연의 노래가 길을 만들고, 이리스의 목소리는 그 위에 빛처럼 얹혔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움직였다.


수연의 발끝에서 눈이 튀어 오르고, 이리스의 드론들이 그 궤적을 따라 회전했다. 수연이 한 바퀴 돌면 함박눈이 소용돌이쳤고, 이리스가 손을 뻗으면 그 눈송이들이 빛을 받아 하늘 쪽으로 쏟아졌다.

빛나는 눈보라.

그것이 무대 위를 완전히 덮었다.

손님들은 어느 순간 말을 멈췄다. 컵라면을 들고 있던 손도 멈췄다.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도 그대로 굳었다. 누구 하나 소리 내지 못했다.


다들 그냥 보고 있었다. 함박눈이 쏟아지고, 그 눈송이 하나하나가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수연과 이리스가 그 가운데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그리고 그 빛은 점점 위로 올라갔다. 드론들이 고도를 높였다. 조명은 하늘을 향해 퍼졌다. 눈발에 반사된 빛이 공중으로 번지며, 마치 무대 자체가 하늘까지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노바 니발리스의 밤하늘이 잠깐 색을 가졌다.

붉은빛. 푸른빛. 금빛. 보랏빛.

도시 전체가 그 공연을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수연은 노래 중간, 숨을 돌리며 이리스를 힐끗 봤다.

이리스는 웃고 있었다.

늘 사람들 앞에서 만들어 내던 그 완성된 미소가 아니라, 조금 벅차고, 조금 어설프고,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웃음.

그녀는 깨달았다. 자기가 별을 만드는 동안만 빛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꾸민 빛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손을 움직이고, 무대를 만들고,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이 상태 자체가 자기 안을 채우고 있었다.


무대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수연이 마지막 고음을 밀어 올렸다. 동시에 두 손을 펼쳤다.

"지금!"

이리스가 외쳤다.

드론 열 대가 일제히 원형으로 벌어졌다. 중앙에서 수연이 함박눈을 한꺼번에 터뜨렸다.

순간, 수천 개의 거대한 눈송이가 공중에서 피어났다.

그리고 아홉 드론의 빛이 그것들을 동시에 때렸다. 열 번째 하나만은 빛 없이, 그 원의 한 자리를 조용히 지켰다 — 그러나 그 어두운 자리마저, 오늘 밤에는 별자리의 일부였다.


새하얀 폭발.

빛나는 눈이 무대를 뒤집었다.

눈송이들은 거울처럼 반사되며 사방으로 흩어졌고, 수연과 이리스의 실루엣이 그 한가운데 떠올랐다.

마치 두 사람이 눈으로 만든 우주 속에서 춤추는 것 같았다.

마지막 음이 멎었다. 빛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함박눈 몇 장이 늦게 떨어졌다.

정적.


정말 아무도 말을 못 했다. 한순간 너무 조용해서, 누가 멀리서 컵라면 뚜껑 닫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았다.

이리스가 아주 작게 숨을 삼켰다.

"……망했나."

수연이 대답하려던 순간, 누군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공터가 터졌다.

박수. 환호. 웃음. 휘파람.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쳤다!"

"또 해!"

"방금 뭐였어?!"

"눈이 빛났어!"

"저 드론 봤어?"

"수연! 이리스!"

"한 번 더!"


환성은 점점 커졌다.

이리스는 잠깐 멍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이런 환호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환호는 전과 달랐다.

예전에 그녀가 듣던 건, 잘 만들어진 별에 대한 찬사였다.

지금 이건 — 방금 여기서 직접 만든 무대,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던 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였다.

이리스가 작게 웃었다.

"……어."

수연이 옆에서 물었다.

"왜."


이리스는 아직 관객들을 바라본 채 말했다.

"저, 조금 알 것 같아요."

"뭘."

이리스는 눈발 속에서 천천히 손을 펼쳤다. 아직 조명이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무대를 돌던 빛의 잔광이 손끝에 희미하게 맺혔다.

"제가 뭔가를 할 때요."

수연은 조용히 들었다.

"멈추지 않고 뭔가를 만들 때요."

이리스가 환호를 향해 웃었다.

"그때는…… 제가 비어 있지 않아요."


수연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됐네."

"뭐가요."

"계속하면 되잖아."

이리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참 쉽네요."

"응. 실천은 안 쉬움."

"이상하게 위로를 잘하시네요."

"칭찬으로 들을게."


관객들이 계속 이름을 불렀다. 이리스는 그 소리를 듣다가, 문득 세레나 쪽을 봤다.

세레나는 라면가게 문가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미소 짓고 있었다.

이리스는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눈은 아직 내리고 있었다. 빛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확실히 알았다. 자기는 단지 별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다. 자기가 직접 서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순간, 비아가 처마 위에서 크게 외쳤다.

"앙코르!"

라면사장이 바로 덧붙였다.

"앙코르는 좋은데, 바닥 얼기 전에 끝내라."

수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분위기 박살내네 진짜."

이리스는 처음으로 거리낌 없이 웃었다.

"좋아요."

그녀가 드론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한 번 더 해요."


환호가 조금 가라앉은 뒤였다. 눈은 아직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수연은 숨을 고르며 후드 끈을 풀었고, 이리스는 드론들을 하나씩 자기 곁으로 불러들였다.

수연이 먼저 세레나를 봤다.

"왜요."

세레나는 라면가게 문가에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차분했고, 언제나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왜라니요?"

"그 얼굴."

"어떤 얼굴인가요?"

"만족은 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한 얼굴은 아닌 거예요."


세레나는 잠시 침묵했다. 참 귀찮도록 정확한 아이였다.

"좋은 공연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두 분 다 잘하셨습니다."

수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리스가 거의 다 했죠. 전 눈 좀 뿌린 거고."

이리스가 바로 끼어들었다.

"웃기지 마세요. 수연 씨 눈 없었으면 그냥 드론쇼였어요."

"그럼 뭐. 멋있잖아."

"멋있는 거랑 다른 거예요."


세레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맞아요. 다릅니다."

수연과 이리스가 동시에 그녀를 봤다.

세레나는 조용히 말했다.

"드론쇼였다면 사람들은 감탄하고 끝났을 겁니다."

그녀의 시선이 이리스에게 닿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어요."

이리스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뭐가요."

"당신이 무대 위에 있었으니까요."


이리스는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세레나는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본 건 빛만이 아니었습니다. 빛을 움직이는 당신도 보았어요."

이리스의 손가락이 살짝 움찔했다. 드론 하나가 그녀 곁에서 작은 원을 그리다 멈췄다.

수연이 괜히 헛기침했다.

"그러니까. 제가 말했죠? 노래는 좀 대충이어도 된다고."

"그 말은 아직도 마음에 안 들어요."

"근데 틀린 말은 아니었잖아."


세레나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대충이 아니라, 충분했어요."

수연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세레나는 덧붙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은 빛납니다."

그 말은 누구에게 한 걸까. 이리스에게. 수연에게.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세레나는 아주 잠깐 하늘을 봤다. 빛의 흔적은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런 순간은 오래 붙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말했다.

"오늘은 정말 즐거워 보였어요."

이리스가 작게 웃었다.

"……조금요."

수연이 바로 옆구리를 찔렀다.

"조금이 뭐야. 너 아까 거의 얼굴로 조명 쏘고 있었잖아."

"그만하세요."

"좋았단 뜻이야."

세레나는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다행이네요. 적어도 한 사람은, 자기 자리를 조금 찾았으니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손님들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다들 공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 방금 저거 봤냐?"

"눈이 진짜 수정처럼 보였어."

"드론 열 개가 한꺼번에 도는 거 장난 아니더라."

"수연도 대박인데, 신입 걔 뭐냐."

"이리스 루멘?"

"응, 걔."

컵라면을 들고 있던 손님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스 루멘도 이름 멋있긴 한데."

다른 손님이 웃으며 받았다.

"오늘은 그냥 딱 그거던데."

"뭐?"

"화려한 별."


잠깐 정적이 있었다. 곧 다른 사람이 따라 말했다.

"아, 어울린다."

"맞네."

"진짜 화려한 별 같았어."

"아까 하늘까지 비춘 거 봤냐. 완전 별 터지는 줄."

라면사장이 안에서 컵라면 박스를 정리하다 그 말을 들었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 앉아 말했다.

"새 이름이 생겼다……이다."

라면사장이 중얼거렸다.

"이리스 루멘이면 원래도 빛 쪽 이름 아니야?"

비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같은 뜻도 두 번 붙인다……이다. 좋아하면 더 많이 부르기 때문이다……이다."

"그건 맞는 말이네."


밖에서는 손님들끼리 이미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쓰고 있었다.

"화려한 별, 다음에도 하지 않을까?"

"한다면 또 보러 오지."

"수연이랑 같이 하면 더 좋고."

"아니면 혼자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드론만으로도 무대가 되더라."

그 말을 문가에서 듣고 있던 이리스가 눈을 깜빡였다.

"……뭐래요."

수연이 팔짱을 끼고 씩 웃었다.

"들었지?"

"안 들은 척할래요."

"이제 별명 생겼네. 화려한 별."

이리스는 조금 인상을 썼다.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입에 잘 붙는데?"

"너무 대놓고 예쁘잖아요."

"너랑 어울림."

"그게 더 별로예요."


수연은 피식 웃었다.

"그럼 싫어?"

이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싫진 않아요."

수연이 바로 놀렸다.

"어이구, 화려한 별님."

"놀리지 마세요."

"손님들이 먼저 부른 건데 왜 나한테 화내."

세레나가 옆에서 조용히 말을 보탰다.

"좋은 이름이에요."

이리스는 세레나를 봤다.

"정말요?"

"네."

세레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화려하다는 건 눈에 띈다는 뜻이고, 별이라는 건 멀리서도 사람을 보게 만든다는 뜻이니까요."


이리스는 그 말을 곱씹었다. 멀리서도 사람을 보게 만드는 것. 예전에는 자기가 만든 별이 그랬다. 이제는 자기가 그 이름으로 불렸다.

손님 하나가 이리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화려한 별! 다음에도 해줘요!"

이리스는 순간 얼어붙었다.

수연이 낮게 웃었다.

"인사해."

"뭘 또요."

"네 팬이잖아."

"팬까지는 아니고—"

"인사."

이리스는 못 이기는 척 손을 들었다.

"……다음엔 더 잘할게요."

손님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 순간 이리스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부끄럽고, 어색하고, 민망한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그날 밤, 가게가 조금 한산해진 뒤. 수연은 컵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었고, 이리스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드론들은 테이블 위에 하나씩 착륙해 있었다. 마치 공연 끝난 악단처럼 조용했다.

수연이 물었다.

"왜 그렇게 멍해."

이리스는 천장을 본 채 말했다.

"생각 중이에요."

"오, 큰일이다."

"입 좀 다무세요."

"뭘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시나, 화려한 별님?"


이리스는 젓가락을 집어 던질 듯 들었다가 말았다.

"다음 무대요."

수연의 손이 멈췄다.

"뭐?"

이번엔 이리스가 수연을 똑바로 봤다.

"다음에 하면요."

"응."

"눈만으로는 좀 아쉬워요."

수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오."

"오늘은 수연 씨 눈이 중심이었잖아요. 저는 그걸 받쳐 주는 느낌이었고요."

"불만이냐?"

"아니요."


이리스는 바로 부정했다.

"좋았어요. 근데 다음에는 제가 먼저 만들고 싶어요."

수연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어떻게?"

이리스는 테이블 위 드론 하나를 손끝으로 툭 밀었다.

"예를 들면, 처음엔 빛이 거의 없게 시작하는 거예요."

"음."

"검정 드론만 먼저 띄우는 거예요. 진짜 별도 없는 밤처럼."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다음에 하나씩 켜는 거예요."


이리스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빨강, 파랑, 노랑 이런 식으로 그냥 예쁘게 켜는 게 아니라, 관객이 '지금 뭐가 만들어지고 있지?' 싶게요."

"형태를 만든다고?"

"네. 별자리처럼 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처음엔 깨진 모양이었다가 점점 맞춰지게 할 수도 있고요."

수연이 웃었다.

"너 진짜 신났네."

이리스는 멈칫했다. 자기도 그걸 눈치챘다. 방금 전까지는 그냥 떠오르는 걸 말했을 뿐인데, 말하다 보니 손이 움직이고 있었고, 시선은 드론과 공간을 오가고 있었고, 머릿속은 이미 다음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저 이상해요?"

"응."

"저기요."

"좋은 뜻으로."

수연은 턱을 괴고 그녀를 봤다.

"아까 세레나 말이 맞았네."

"뭐가요."

"넌 무대 위에서 서는 것보다, 무대를 만드는 쪽에서 더 반짝여."

이리스는 잠깐 웃었다.

"저도 조금 그런 것 같아요."


그녀는 드론들을 다시 봤다.

"근데 이번엔 알겠어요."

"뭐를?"

"제가 왜 이걸 다시 하고 싶은지요."

수연은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리스는 천천히 말했다.

"환호를 받아서가 아니에요."

"응."

"화려해서도 아니고요."

"응."

"만드는 동안, 계속 뭔가를 맞춰 보는 동안—"

그녀는 드론의 각도를 이리저리 손으로 조절했다.

"그때는 제가 안 비어요."


수연은 말없이 그녀를 봤다.

이리스는 이번엔 조금 더 또렷하게 말했다.

"저, 만드는 동안은 안 어두워요."

수연이 작게 웃었다.

"좋네."

"뭐가요."

"네가 직접 말한 거."

이리스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무튼요. 다음 무대는 그냥 예쁘기만 하면 안 돼요."

"오케이."

"처음엔 어두워야 하고, 중간에 빛이 터지고, 마지막엔 하늘 쪽으로 길이 나야 해요."

"길?"

"네. 사람들이 올려다봤을 때, '아, 저기 어디론가 이어지는구나' 싶은 느낌이요."


수연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웃음기를 지웠다. 세레나가 했던 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 이곳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말. 그것들이 아주 희미하게 스쳤다.

하지만 수연은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말했다.

"좋아. 그럼 난 그 길에 눈 뿌려줄게."

이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진짜요?"

"콜라보 한다며."

이리스는 조금 놀란 듯, 그리고 조금 안심한 듯 웃었다.

"……좋아요."


수연이 다시 컵라면을 들었다.

"근데 조건 있음."

"뭔데요."

"다음엔 네가 먼저 나한테 와서 하자고 해."

이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왜요."

"맨날 내가 끌고 가는 느낌이잖아."

이리스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알겠어요."

그리고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덧붙였다.

"다음 무대, 같이 해요."

수연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컵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그래. 그 말 들으려고 기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