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92화. 눈이 굵어진 날

어느 조용한 오후, 라면사장은 오랫동안 써온 외상장부를 꺼내 새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평소와 다른 제목을 적었다.

'꿈에서 돌아온 값.'

수연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사장님, 그건 뭐예요?"

"이번 아크 동안, 저놈한테 흔들렸던 사람들 이름을 적어두려고. 기록해두고 싶어서."


그는 그렇게 답하며, 홀트, 헤라, 소예, 마왕, 부관, 미다, 이리스, 세레나, 볼도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그리고 각 이름 옆에, 지불 항목을 적었다.

"지불 수단이 뭔데요?"

"돌아옴. 다들 스스로 돌아왔다. 그게 이 장부에서 가장 값진 지불이다."


수연은 그 설명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저도 여기 적혀 있어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페이지를 넘겨 보여주었다.

'수연. 지불 항목: 짊어짐. 지불 완료.'

"완전히 짊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 무게를 짊어지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는 것, 그게 지불이다."


그 무렵, 마침 가게에 들른 소예가 우연히 그 장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소예. 지불 항목: 지금이 더 소중함을 앎. 지불 완료.'

그 문구를 읽으며, 소예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기록해둘 만한 일이었다."


"근데 사장님, 이 장부, 결국 이 도시 사람들의 역사책 같은 거네요."

수연이 말했다.

"사장님은 원래 이런 거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기록하는 거. 이 외상장부도, 손님들 하나하나 다 자세히 적어두시잖아요."

라면사장은 그 말에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옅게 웃었다.

'……맞다. 나는 원래, 기록하는 존재였다.'


재하는 이제 도시의 분실물 보관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방 안에만 머물던 그가 이렇게 매일 출근하는 일을 갖게 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날, 재하는 창고 정리를 하다가 낯선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작고 낡은 상자였다. 그 위에는 손글씨로 짧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라면사장.'


그는 그 라벨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창고 관리 대장을 확인했지만, 그 상자가 언제, 누구에 의해 들어왔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열어봐야 하나.'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분실물 보관소에서 일하며 그가 가장 먼저 배운 원칙이 있었다 — 주인이 아닌 사람은, 함부로 그 안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


그날 저녁, 그는 그 상자를 들고 가게로 향했다.

"이거…… 사장님 거예요."

라면사장이 그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의 표정이 순간 미세하게 굳었다.

"팔리지 않은 꿈이다. 소므니움이 나한테 보여주려던 것. 근데 내가 안 열어봤다. 그게 반품 안 되는 채로, 어디엔가 남아 있었나 보다."


"열어보실 거예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열어볼 때가, 아직 안 왔다."

그는 그렇게 답하며,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서랍 깊숙한 곳에 넣었다. 가게에서 가장 안쪽, 가장 깊은 서랍이었다.


"재하 씨, 이거 찾아줘서 고맙다."

재하는 그 인사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옅게 웃었다.

"……아니에요. 제 일인걸요."

"일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조금씩요."


그날 밤, 라면사장은 홀로 남아 그 깊은 서랍을 잠시 열어보았다. 그 안의 작은 상자는, 여전히 조용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반품 불가라고 했지.'

그는 그 상자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서랍을 닫았다.

'……때가 되면.'


그 며칠 뒤, 세레나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눈이, 평소와 달랐다. 늘 곱고 가늘게 내리던 눈송이가, 오늘은 훨씬 굵고 무겁게 떨어지고 있었다.

"저거,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가 지나가던 비아를 붙잡고 물었다.

"이상하다……이다. 이 도시 눈은, 항상 같은 굵기였다……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시간이……온다……이다."

세레나는 그 말에 오랫동안 그 뜻을 되새겼다. 그날 오후, 그녀는 그 이야기를 라면사장에게 전했다.

"……올 게 왔군."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 도시는, 원래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이었다. 이야기가 끝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니까. 근데 이제, 이 도시 안에서 진짜 삶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관계가 생기고, 미련이 생기고, 성장이 생겼다. 그럴수록, 이 도시는 점점 '진짜' 세계에 가까워진다."

"그럼,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둘 다다. 살아있다는 건 좋은 거지만, 동시에 그만큼 흐를 것도, 잃을 것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세레나는 그 대답에 조금 안도했다.

"그럼 저희가 뭘 해야 할까요?"

"지금처럼 살면 된다. 서로 아끼고, 서로 지키고. 시간이 흐르든 안 흐르든, 그게 가장 중요한 거다."


그날 저녁, 세레나는 다시 비아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굵어진 눈발을 올려다보았다.

"비아 씨, 이 눈 보니까 좀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러네요."

"나도 그렇다……이다. 근데 이상하게, 무섭다는 감정도 나쁘지만은 않다……이다.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이다."


"이 도시, 앞으로 많이 달라지겠죠."

"달라질 거다……이다. 근데 근본은 안 변할 거다……이다. 서로를 아끼는 거……이다. 그건, 시간이 흘러도 안 변한다……이다."

세레나는 그 확신에 찬 말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믿을게요."


며칠 뒤, 도시에 낯선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사장님, 이거 뭔가 이상한 게 왔어요."

수연이 엽서 한 장을 들고 다가왔다. 발신인란에는 흐릿한 손 모양의 문양만 그려져 있었다.

"……소므니움이다."

라면사장이 그 엽서를 소리 내어 읽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장사가 잘됩니다. 그쪽 도시가 이상한 겁니다.'"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가,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예요, 이거! 완전히 억울해하는 게 느껴지는데요."

라면사장은 그 소란 속에서도 옅게 웃으며 엽서를 다시 한번 읽었다. 그는 곧장 종이 한 장을 꺼내 짧은 답장을 적었다.

'그쪽 도시엔 콜라비빔면이 없나 보군.'


그날 오후, 라면사장은 그 답장을 도시 우체국에 직접 맡겼다. 가게로 돌아온 그는, 그 소므니움의 엽서를 외상장부 사이에 조심스럽게 끼워두었다.

"저놈이랑 이렇게 엽서 주고받는 사이가 될 줄은 몰랐네요."

이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몰랐다."


그 무렵, 도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자, 내가 꿈 장수 할게!"

탄지 로가 그렇게 외치며 나뭇가지로 만든 작은 가판대 흉내를 냈다.

"자, 이 꿈을 사시면 매일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어요!"

"저는 안 살래요."

미르 오벨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냥 지금이 더 좋아서요."


그 대답에, 지켜보던 어른들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아이들 사이에서는 '안 사는 역'이 더 인기 있는 배역이었다.

세레나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 도시답네요, 정말.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애들이 스스로 그 교훈을 놀이로 만들어냈네요."


돈키호테도 그 놀이에 끼어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내가 진짜 그 꿈 장수를 만난 사람이다! 자, 이 꿈을 사면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시인이 될 수 있다!"

"저는 안 살래요! 지금도 충분히 시 잘 쓰시잖아요!"

피피가 웃으며 말했다. 돈키호테는 그 반응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감동했다.


라면사장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 놀이가, 결국 저 아크의 진짜 결말이었군.'

소므니움과의 싸움이 남긴 것은 두려움이나 경계심이 아니라, 이렇게 아이들의 웃음으로 남은 유쾌한 놀이였다.

굵어진 눈발이 그 위로 소복이 내려앉고 있었다. 노바 니발리스는 그렇게, 시간이 가져온 크고 작은 변화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며,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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