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8화. 녹사와 세레나

낭독회가 있던 밤 이후, 녹사는 세레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며칠간 축제 준비와 뒷정리, 그리고 도시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느라, 세레나는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가게에서는 이리스가 수연에게 낭독회 밤의 일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제 위원장님 표정, 나만 이상하게 느낀 거 아니지?"

"나도 봤어. 웃고는 있었는데, 뭔가 좀 지쳐 보였어."

"그치? 근데 위원장님한테 직접 물어봐도 괜찮다고만 하시고."


수연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위원장님, 원래 그런 사람 같아. 힘들어도 힘들다고 잘 안 하는 사람."

"왜 그럴까?"

"모르지. 근데 신입도 예전에 그랬잖아. 괜찮다고 하면서 사실은 안 괜찮았던 거."

이리스는 그 지적에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남의 일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세레나 씨."

녹사가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와 불렀다.

"네, 녹사 씨. 무슨 일이세요?"

세레나는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잠깐 시간 되세요?"


"물론이죠. 앉으세요."

녹사는 자리에 앉는 대신, 세레나의 책상 앞에 그대로 섰다.

"세레나 씨, 요즘 며칠 동안 하루에 몇 시간 주무세요?"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 세레나는 손을 멈추고 녹사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답해주세요."

세레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네다섯 시간 정도요."

"축제 전부터 계속 그러셨죠."

"할 일이 많았으니까요."


"할 일은 항상 많아요. 이 도시가 있는 한, 세레나 씨가 할 일은 끝없이 생길 거예요."

녹사의 그 말에, 세레나는 옅게 웃었다.

"그래서 제가 필요한 거잖아요."

"아니요. 그래서 세레나 씨가 무너지는 거예요."


그 단호한 말에, 세레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무너진다니요, 그런 거창한 말을."

"거창하지 않아요. 지금도 눈 밑이 그늘져 있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요."

세레나는 그 지적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이 정도는…… 다들 겪는 거잖아요."

"다들 겪는 게 아니에요. 세레나 씨만 유독 그래요."

녹사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가리켰다.

"이거, 전부 세레나 씨가 직접 처리하려고 하시죠. 다른 사람한테 나눠줄 수 있는 일들도요."


세레나는 그 지적에 잠시 침묵했다.

"……나눠주면, 제대로 안 될까 봐 걱정돼서요."

"그게 문제예요. 세레나 씨는 모든 걸 자신이 품어야 안심하는 사람이에요."

세레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세레나 씨."

녹사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더 낮고 진지했다.

"너는 모두를 품다가 무너질 것이다. 그 전에 아파해라."

그 말에, 세레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세레나 씨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 안 해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 안 하죠. 그냥 계속 웃으면서, 계속 품기만 해요."

"그게 나쁜 건가요? 다들 저한테 기대는데, 제가 힘들다고 하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왜 나쁜가요?"

녹사의 그 질문에, 세레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들 실망할까 봐요. 제가 흔들리면, 이 도시도 흔들릴까 봐요."

그 대답을 하고서야, 세레나는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두려움을 안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녹사는 그 대답에 옅게 한숨을 쉬었다.

"세레나 씨, 그 생각 자체가 오만이에요."

"오만이라니요."

"세레나 씨 하나가 흔들린다고 이 도시 전체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이 도시엔 세레나 씨 말고도 서로를 지탱해줄 사람들이 많아요."


세레나는 그 말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생각한 적 없다고 하시지만, 행동은 그렇게 하고 계세요.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는 그 행동이요."

세레나는 그 지적에 결국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세레나가 나직이 물었다.

"먼저, 아프다고 말하세요. 힘들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일을 나눠주세요. 도시 사람들을 믿으세요, 세레나 씨가 늘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처럼요."

녹사의 그 말에, 세레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녹사 씨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아세요? 제가 이런 상태인 거."

녹사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오래 지켜봤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어서요."

세레나는 그 대답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녹사 씨도요?"

"네. 예전에,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다가 정말 크게 무너진 적이 있어요. 그때 배웠어요. 무너지기 전에 아파하는 게, 무너지고 나서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걸요."

세레나는 그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근데 녹사 씨, 여쭤봐도 될까요. 예전에 어떻게 무너지셨는지."

세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녹사는 그 질문에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예전에, 제가 지키려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힘들다는 걸 숨기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무 도움도 못 됐어요. 몸도 마음도 이미 텅 비어 있었거든요."


"그게 언제 일이에요?"

"오래됐어요. 이 도시가 생기기도 전이죠."

세레나는 그 말에 녹사의 과거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그 눈빛에서 지금은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싶다는 신호를 읽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세레나 씨가 같은 실수를 안 했으면 해서 하는 말이에요. 저처럼 텅 빈 채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세레나는 그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녹사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드물었기에, 그 말의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럼 저도, 지금부터라도 좀 아파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아니, 그래야만 해요."

녹사는 그렇게 말하며 세레나의 책상 위 서류 더미를 반쯤 집어 들었다.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이 정도는 저도 처리할 수 있어요."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세레나 씨, 방금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세요? 도시 사람들을 믿으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 도시 사람 중 하나예요."

세레나는 그 말에 결국 웃음이 터졌다. 녹사 특유의 이 직설적이고도 다정한 화법에는, 언제나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고마워요, 녹사 씨."

"고마우면,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주무세요. 여덟 시간, 최소한."

"여덟 시간은 너무 많은데……."

"세레나 씨."

녹사가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알겠어요. 오늘은 일찍 자볼게요."

세레나는 결국 그렇게 답하며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녹사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거면 됐어요."


녹사가 서류를 챙겨 나가려는데, 세레나가 다시 불러 세웠다.

"녹사 씨."

"네?"

"방금 그 미소, 무슨 미소예요?"

녹사는 그 질문에 잠시 답을 고르다가 말했다.


"세레나 씨가 방금 지은 미소요. '알겠어요'라고 답할 때 지었던 그 미소, 그거 사실 가장 위험한 증상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심으로 안심해서 웃는 게 아니라, 저를 안심시키려고 짓는 미소였거든요. 그 차이, 저는 압니다."


세레나는 그 지적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정확히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세요."

"오래 지켜봤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진짜로 쉬셔야 해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레나 씨 자신을 위해서요."


세레나는 그 말에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번엔 조금 다른 표정으로 웃었다.

"……네. 이번엔 진짜로요."

녹사는 그 미소를 확인하고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세레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아파해도 된다는 거, 언제부터 잊고 있었을까.'

그녀는 그 질문에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녹사의 말들이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 시각, 가게에서는 수연이 라면사장에게 낮에 있었던 걱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사장님, 저 위원장님이 좀 걱정돼요.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서."

라면사장은 국물을 젓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어떻게 아세요?"

"오늘 낮에 녹사가 여기 들러서 잠깐 얘기했다."


"녹사 씨가요? 뭐라고 하셨는데요?"

"세레나가 무너지기 전에 아파해야 한다고 했다."

수연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거 완전 맞는 말이네요. 위원장님, 항상 괜찮다고만 하시잖아요."

"그래서 녹사가 오늘 직접 얘기하러 갔다. 잘 해결됐을 거다."


"사장님도 그런 얘기, 누구한테 들어본 적 있으세요? 무너지기 전에 아파하라는 거."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손을 잠시 멈췄다.

"……있다."

"누구한테요?"

"오래전에, 지금은 없는 사람한테."

수연은 그 대답의 무게를 어렴풋이 느끼고, 더 캐묻지 않았다. 라면사장의 이런 짧은 언급들은, 언제나 그 이상을 묻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와 같았다.


"사장님도 가끔은 아파하세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끔은."

"어떨 때요?"

"말 안 해도 될 것 같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답하며 다시 국물로 시선을 돌렸다. 수연은 그 회피에 옅게 웃으며 더는 캐묻지 않았다. 언젠가는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막연한 예감만이 남았다.


그날 밤, 세레나는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서류는 절반쯤 남겨둔 채였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그 선택이,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는 오늘도 조용히 제 할 일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안에서 세레나 역시, 아주 조금씩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잠들기 직전, 세레나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세레나, 나다……이다."

비아였다. 세레나는 놀란 얼굴로 문을 열었다.

"비아 씨?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녹사가 말했다……이다. 세레나 오늘 일찍 잔다고……이다. 확인하러 왔다……이다."

"확인이요?"

"진짜 자는지 확인한다……이다. 안 자면 혼낸다……이다."

세레나는 그 예상치 못한 방문에 웃음이 터졌다.


"진짜 자려던 참이었어요."

"그럼 됐다……이다."

비아는 그렇게 짧게 답하고도,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비아 씨,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세레나."

"네."

"힘들면 힘들다고 해라……이다. 나는 안 무섭다……이다."

그 투박한 위로에, 세레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마워요, 비아 씨."

"고마울 거 없다……이다. 당연한 거다……이다."

비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복도를 걸어갔다. 세레나는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다들, 이렇게 나를 지켜봐 주고 있었구나.'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 생각을 곱씹었다. 녹사의 직설적인 충고도, 비아의 투박한 걱정도, 모두 자신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그동안 왜 이 마음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까. 어쩌면 그녀 자신이, 그것을 느낄 여유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그녀는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눈을 감았다. 창밖에 쌓이는 눈처럼, 그녀의 마음에도 조용한 안식이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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