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27화. 완벽한 첫인상
다음 날 오후, 이리스가 정식으로 가게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밤의 은은한 조명 대신 낮의 환한 햇살 아래였다. 그녀는 어제와는 또 다른, 화사한 옷차림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사는 가게 안 전체에 울려 퍼질 만큼 낭랑했다. 손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어제 그 별 만드신 분이잖아!"
"진짜 대단하시더라고요!"
순식간에 가게 안이 이리스를 중심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관심을 능숙하게 받아내며, 테이블 사이를 오가듯 인사를 나눴다.
"어젯밤 보셨어요? 어떠셨어요?"
"완전 예뻤어요!"
"다음엔 더 화려하게 준비할게요. 기대해주세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이 웃고, 감탄하고, 박수를 쳤다. 마치 즉석 공연이 다시 시작된 듯한 분위기였다.
수연은 카운터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살짝 감탄했다.
"진짜 사람 휘어잡는 재주가 있네."
"그러게요."
소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 정도면 이 가게 손님 다 뺏기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
수연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실제로 이리스가 등장한 이후 가게 안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 쏠려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리스는 그 관심을 만끽하며 가게 한가운데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밤의 뒷이야기, 다음 공연 예고, 심지어 즉석에서 작은 드론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서 미니 시연까지 선보였다.
"우와, 그것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얘가 제일 재주가 많거든요."
가게 안은 완전히 그녀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마왕도 마침 가게에 있다가 그 소란을 지켜보며 팔짱을 꼈다.
"저 정도면 거의 순회공연단 수준이군."
"신기하지 않아요?"
수연이 옆에서 물었다.
"신기하다기보단…… 좀 낯익다."
"뭐가요?"
"나도 예전엔 저랬다. 백성들 앞에 설 때마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썼지. 실수 한 번 하면 그날 하루 종일 자책했다."
"근데 지금은요?"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술이나 마신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수연은 그 말에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이리스의 화려함 뒤에도, 마왕이 예전에 짊어졌던 것과 비슷한 무게가 있을지 몰랐다.
그 소란 속에서, 라면사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묵묵히 국자를 젓고 있었다. 이리스는 결국 카운터 앞까지 다가와, 그를 향해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제 신세 많이 졌어요."
라면사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왔나."
"오늘도 뭔가 특별한 걸 보여드릴까요? 여기 손님들이 다 좋아하실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된다."
이리스는 그 짧은 대답에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이 도시에 온 이후, 모든 사람들에게서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이 남자만큼은 그녀의 화려함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듯했다.
"저……. 제 소개가 마음에 안 드셨나요?"
"아니다."
"그럼요?"
"소개는 잘 들었다. 근데 여긴 그런 걸 굳이 안 보여줘도 되는 곳이다."
이리스는 그 말에 잠시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뭘 하면 되는데요?"
라면사장은 그릇 하나를 그녀 앞에 내려놓으며 짧게 답했다.
"먹어."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손님들도, 소예도, 수연도 모두 그 짧은 한마디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리스는 그 그릇을 내려다보며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있었다. 그녀에게 익숙한 반응은 감탄, 환호, 질문 세례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녀 앞에 놓인 건 그저 평범한 한 그릇의 라면이었다.
"……그냥 먹으면 돼요?"
"그럼 뭘 더 하려고 했나."
"보통은…… 제가 뭘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여긴 손님한테 뭘 보여달라고 안 한다. 그냥 먹으면 된다."
이리스는 그 말에 뭔가 낯선 감정을 느꼈다. 지금껏 자신을 대해온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 그녀는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얼어붙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수연은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화려한 언변으로 가게 전체를 휘어잡던 이리스가, 라면사장의 그 짧은 한마디에 순식간에 평범한 손님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신기하다."
그녀가 소예에게 속삭였다.
"뭐가요?"
"저 사람, 여기 온 이후로 계속 뭔가 보여주려고만 했잖아. 근데 사장님은 그냥 먹으라고만 하니까 완전 당황하네."
"그러게요. 되게 낯선 표정이에요."
이리스는 그 시선들을 의식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국물을 한 술 떴다.
"……맛있네요."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의 연습된 매끄러움과는 다른,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거면 됐다."
라면사장이 답했다.
근처 테이블의 손님 하나가 슬쩍 끼어들었다.
"저기, 근데 어제 그 별자리 하나 더 보여주시면 안 돼요? 라면 그릇 모양이요."
이리스는 순간 반사적으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그 손이 젓가락을 놓기도 전에, 그녀는 문득 멈칫했다.
"……지금은 좀 그래요. 먼저 먹고요."
"에이, 잠깐이면 되잖아요."
"미안해요. 지금은 그냥 먹고 싶어서."
손님은 아쉬운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더 조르지 않았다. 이리스는 그 짧은 거절이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요청을 거절해본 적이 없었다.
수연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옅게 웃었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가게 안의 소란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손님들도 각자 자기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리스도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처음의 화려한 무대 같던 분위기가, 어느새 평범한 식당의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리스는 그 변화가 낯설면서도 묘하게 편안했다.
"저기……."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뭔가 실수한 거예요? 아까부터 제가 좀 과하게 굴었나 싶어서."
라면사장은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수한 거 없다."
"근데 왜 저한테는 다들 이렇게 반응이 다르죠? 밖에선 다들 제 얘기에 열광하는데, 여긴 좀……."
"여긴 열광 안 해도 되는 곳이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밖에서는 네가 보여줘야 사람들이 좋아한다. 근데 여긴 아무것도 안 보여줘도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이리스는 그 말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다. 그녀는 애써 그 감정을 감추며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신기한 곳이네요, 여기."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한다."
그때, 비아가 물잔을 채워주러 다가왔다. 이리스는 그 작은 손이 조심스럽게 잔을 채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마워."
"천만에……이다."
"너도 저 아저씨처럼 나한테 뭘 보여달라는 말 안 하네."
"왜 보여달라고 해야 하냐……이다? 그냥 손님인데."
이리스는 그 순진한 대답에 옅게 웃었다.
"밖에서는 다들 나한테 뭘 보여달라고만 해서, 그게 당연한 줄 알았거든."
"힘들었겠다……이다."
"힘든 건 아니야. 그냥…… 익숙한 거지."
비아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한 거랑 안 힘든 건 다르다……이다."
이리스는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린아이 같은 존재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그녀가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준 것 같았다.
"……그럴지도."
그녀는 그렇게만 답하고 다시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아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음 테이블로 물잔을 채우러 갔다.
수연도 그 대화를 곁에서 듣고 있다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저도 비슷한 적 있어요."
"뭐가요?"
"검 쓰는 거, 처음엔 다들 저한테 화려한 기술만 기대했거든요. 근데 저는 그냥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쓰고 싶었어요."
"지금은요?"
"지금은 그냥 저답게 써요. 화려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이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다.
"저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요. 여긴 그럴 수 있게 해주는 곳 같아요."
이리스는 그 대답에 옅게 웃었다. 오늘 처음 느껴보는, 뭔가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었다. 그녀는 그 감각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어, 젓가락을 든 손을 잠시 멈춘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식사를 마친 이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또 와도 돼요?"
"당연하다."
"올 때마다 뭔가 보여드려야 하는 건 아니죠? 진짜로요?"
"아무것도 안 보여줘도 된다. 여긴 원래 그런 데다."
이리스는 그 대답에 옅게, 그러나 이번엔 연습되지 않은 진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일 또 올게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밖에서는 여전히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다시 화려한 웃음으로 응대하며 걸어갔다. 그러나 그 발걸음에는, 가게에 들어오기 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가벼움이 있었다.
이리스가 완전히 자리를 뜨고 나서도, 가게 안에는 여전히 그녀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손님 몇몇이 조용히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저 사람, 나갈 때 표정이 처음이랑 좀 다르지 않았어?"
"그러게. 처음엔 완전 반짝반짝했는데, 나갈 땐 그냥 편안해 보이더라."
"우리 가게가 뭐 특별한 걸 한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사장님이 그냥 '먹어' 한마디 했을 뿐인데."
수연은 그 대화를 들으며 옅게 웃었다. 이 가게의 힘은, 화려한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 데 있었다.
수연이 라면사장에게 물었다.
"일부러 그런 거야? 아까 그 '먹어' 한마디."
"일부러라니."
"그냥 무뚝뚝한 게 아니라, 뭔가 의도가 있어 보여서."
라면사장은 그릇을 정리하며 옅게 웃었다.
"저 사람은 아마 계속 보여주는 것에 지쳐 있었을 거다. 근데 아무도 그걸 눈치 못 챘겠지. 다들 화려한 것만 좋아하니까."
"그래서 일부러 그렇게 무심하게 대한 거야?"
"무심한 게 아니라, 그냥 평소대로 대한 거다. 손님으로."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게의 방식이 다시 한번 그 진가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화려함도, 초라함도 다르게 대하지 않는, 그저 있는 그대로 맞아주는 방식.
소예도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저도 처음엔 좀 놀랐어요. 사장님 진짜 아무 반응도 안 하시길래, 저 사람 기분 상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근데?"
"근데 나중에 보니까, 오히려 그게 저 사람한테 필요했던 거 같더라고요. 계속 반응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딱 한 명이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다 그렇지 않아? 처음 여기 왔을 때, 다들 이것저것 캐묻지 않고 그냥 받아줬잖아."
"맞아요. 저도 그래서 여기 계속 있는 것 같아요."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그 대화를 듣고 방긋 웃었다.
"오늘 그 사람 표정, 처음이랑 마지막이랑 완전 달랐다……이다."
"어떻게 달랐는데?"
"처음엔 무대 위에 있는 얼굴이었다……이다. 근데 나중엔…… 그냥 손님 얼굴이었다……이다."
수연은 그 표현에 웃음을 터뜨렸다. 비아 나름의 관찰력이 오늘도 정확했다.
"내일 또 온다고 했으니까, 또 그 얼굴 볼 수 있겠다."
"기대된다……이다!"
가게 안은 다시 평소의 잔잔한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러나 오늘 하루, 이 소박한 라면가게는 화려하게 무장한 한 존재의 가면을 아주 살짝, 처음으로 벗겨낸 곳이 되어 있었다.
그날 저녁, 이리스는 폐극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라면가게의 불빛이 여전히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의 조종 장치를 들어 아홉 대의 드론을 하늘로 띄울까 잠시 고민했다. 늘 그래왔듯, 오늘 하루의 마무리로 작은 불꽃놀이 하나쯤 보여주는 게 습관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장치를 다시 내려놓았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아."
아무도 보지 않는 밤하늘 아래,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오늘 하루만큼은 아주 조금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극장에 도착한 그녀는 상자 속 열 번째 드론을 다시 꺼내 손에 쥐었다.
"오늘은 좀 다른 하루였어."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그 가게, 다시 가고 싶어. 근데 이상하게…… 뭘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더 가고 싶어."
꺼진 드론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리스는 그 침묵이 오늘만큼은 조금 덜 외롭게 느껴졌다.
그녀는 창가에 걸터앉아 드론을 무릎에 올려둔 채, 오랜만에 아무 계획도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을 만들지 않아도, 누군가를 놀라게 하지 않아도 괜찮은 밤. 그것이 얼마나 낯설고도 편안한 감각인지, 그녀는 이 도시에 온 첫날 밤에서야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내일은…… 뭘 보여주지 않고 그냥 이야기만 해볼까."
그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작은 다짐이, 그녀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앞으로의 날들을 조금씩 바꿔놓게 될 것이었다. 화려한 별자리 대신, 그저 담백한 대화 하나로도 충분한 밤이 있다는 걸 그녀는 이 도시에서 천천히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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