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5화. 골목 끝의 울음소리
그 소리는 자정이 넘어서야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낮고, 길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 그러나 바람치고는 너무 규칙적이었고, 짐승의 울음치고는 너무 사람 같았다.
수연은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도시 경계 쪽, 가로등이 드문드문해지는 골목 끝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 조짐은 낮부터 있었다. 수연이 오전 배달을 돌 때, 시장 좌판 사람들이 평소보다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군밤 할머니는 화로 앞에 앉아 밤을 굽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 하늘이 좀 낮다."
"하늘이 낮다뇨?"
"구름이 무거워. 저럴 때 꼭 무슨 일이 있더라고."
수연은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시계방 앞을 지날 때도, 세탁소 앞을 지날 때도, 사람들의 시선이 은근히 도시 경계 쪽을 향해 있는 걸 느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혹은 두려워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배달을 받던 한 주민에게 물었더니,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아니, 그냥……. 요즘 좀 뒤숭숭해서."
"왜요?"
"몰라. 그냥 느낌이 그래."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수연은 남은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왔다.
가게로 돌아오자 분위기가 이상했다. 손님들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몇몇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조용히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소예가 카운터를 정리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다들 빨리 집에 가려고 해요. 평소 같으면 한 그릇 더 시킬 사람들인데."
라면사장은 아무 말 없이 냄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놀림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 들었어."
수연이 말했다.
"울음소리 같은 거."
그 말에 가게 안 몇몇 손님들의 어깨가 움찔했다. 구석 자리의 노인 하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왔구먼……."
"뭐가 왔어요?"
수연이 물었지만, 노인은 대답 대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밤이 깊어질수록 거리는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라 긴장이었다. 창문마다 불이 꺼지고, 문마다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골목을 타고 들려왔다.
비아가 카운터 위에 앉아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무서워한다……이다."
"뭘?"
"저 소리다……이다."
"왜?"
"몰라도 된다……이다. 오늘은."
수연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골목 끝, 도시 경계와 맞닿은 그 어두운 구역에서 여전히 그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확인하고 올게."
그녀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 된다."
라면사장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평소와는 다른 어조였다. 장난기도, 태연함도 없는, 처음 듣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수연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왜?"
"저건 쫓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쫓아내려는 게 아니야. 그냥 뭔지 확인하려는 거지."
"확인해서 뭐가 달라지나."
"적어도 뭔지는 알아야지. 다들 이렇게 겁먹고 있는데."
라면사장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농담 한마디로 넘어갔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은 안 된다. 부탁이다."
'부탁'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수연은 그 무게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 그렇게까지 말려?"
"지금은 설명할 수 없다."
"그럼 언제 설명할 수 있는데?"
"때가 되면."
그 대답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수연은 더 캐묻지 못했다. 라면사장의 눈빛에 담긴 것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뭔가 더 오래된 것 — 이를테면 죄책감 비슷한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왕이 그날따라 늦게까지 가게에 남아 있었다. 평소라면 진작 자리를 떴을 시간인데, 그는 구석 자리에 앉아 술잔도 없이 팔짱만 끼고 있었다.
"당신도 저 소리 알아요?"
수연이 물었다.
마왕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다스리던 시절에도 저런 소리가 도는 밤이 있었다."
"어땠는데요?"
"백성들이 문을 걸어 잠갔지. 나는 그게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지금은요?"
마왕은 잠시 침묵했다. 평소의 허세 섞인 말투가 사라져 있었다.
"지금은…… 그때 내가 뭘 몰랐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여몄다.
"오늘은 나도 일찍 들어가야겠다."
"마왕님도 무서워요?"
"그런 게 아니다."
"근데 왜 서둘러요?"
마왕은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저 소리를 오래 듣고 있으면…… 잊고 싶었던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수연은 그 뒷모습을 보며, 이 도시에 사는 존재들 모두가 저마다 저 소리에 얽힌 기억을 하나씩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카운터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는 그녀 옆으로 소예가 다가와 앉았다.
"저도 궁금해요. 근데 사장님이 저렇게 말리는 거 처음 봐요."
"그러니까. 평소엔 뭐든 알아서 하라는 식이잖아."
"그니까요. 뭔가 있나 봐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리는 밤새 그치지 않았다. 낮고, 길고, 마치 오래된 슬픔이 배어 나오는 듯한 소리.
그때 세레나가 순찰을 마치고 가게에 들렀다. 평소라면 잠깐 얼굴을 비추고 곧장 나갔을 텐데, 오늘은 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레나 씨도 저 소리 알아요?"
소예가 물었다.
세레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아요."
"뭔데요?"
"오늘은 말할 수 있는 날이 아니에요."
또 그 말이었다. 수연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들 왜 이래? 뭔지 말도 안 해주고 무섭다는 얼굴만 하고."
세레나는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명령하는 자의 눈빛이 아니라, 뭔가를 견디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당신도 언젠가 겪을 거예요. 그때 스스로 알게 되는 게 나아요."
"왜?"
"제가 미리 말해주면, 당신은 그걸 제 방식으로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수연은 그 대답에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세레나다운 대답이었다. 명령하지 않고, 정답을 쥐여주지 않는. 자유는 선언이 아니라 자리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세레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순찰을 돌러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골목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수연은 창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비아가 그 옆에 조용히 다가와 앉았다. 그녀는 평소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아니었다.
"저 소리, 처음 듣는 게 아니다……이다."
"전에도 들은 적 있어?"
"이 도시가 생겼을 때부터 있었다……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비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창밖만 바라보았다. 수연은 더 묻지 않았다. 오늘 밤은, 답을 들을 수 있는 밤이 아니라는 걸 알 것 같았다.
새벽이 가까워지자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 낮아졌다.
라면사장은 그제야 다시 평소의 태연한 얼굴로 돌아와 냄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장사 준비해야 한다."
"……벌써?"
"밤은 끝났다."
수연은 그 말에 뭔가 더 있다는 걸 느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창밖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골목 끝, 도시 경계 쪽은 다시 고요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일도 저 소리 들리면 어떡해?"
"그럼 또 견디면 된다."
"그냥 견디기만 하면 되는 거야? 뭔가 해줄 건 없고?"
"있다."
"뭔데?"
"내일도 이 가게 문을 연다. 저 소리가 들려도, 안 들려도."
"그게 무슨 도움이 돼?"
"저 소리를 내는 쪽도, 언젠가 이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
수연은 그 말에 멈칫했다. 라면사장의 표정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옅은 기다림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손님으로 올 수도 있다는 거야?"
"모른다. 그래도 문은 열어둔다."
"영원히?"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냄비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영원하지 않길 바란다."
그 말은 수연에게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아침이 되자 가게는 다시 평소의 활기를 되찾았다. 밤새 문을 걸어 잠갔던 사람들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침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그러나 몇몇의 얼굴엔 아직 지우지 못한 불안이 남아 있었다.
소예가 손님상을 치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소리, 다들 뭔지 아는 눈치던데. 저만 몰라요?"
"아직은."
라면사장이 짧게 답했다.
"언젠가는 알게 돼요?"
"때가 되면."
그 말은 어젯밤 수연에게 했던 대답과 똑같았다. 소예는 그 반복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무게를 느꼈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수연은 카운터에 앉아 아침 국물을 뜨며, 문득 지난밤 라면사장의 눈빛을 떠올렸다. 두려움도, 분노도 아닌, 아주 오래 짊어져 온 무언가를 다시 마주한 사람의 눈빛.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반드시 알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가게 밖, 도시는 다시 평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골목 끝의 그 침묵은, 밤이 되면 다시 그 낮고 긴 소리로 채워질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게의 문턱을 넘는 존재들 중 누구도, 아직은 그 정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배달을 나가기 전, 수연은 문가에 서서 잠시 도시 경계 쪽을 바라보았다. 낮의 햇살 아래서는 그저 평범한 골목의 끝일 뿐이었다. 안개도, 그림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곳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뭘 그렇게 봐?"
소예가 다가와 물었다.
"그냥……. 밤에는 저기서 그런 소리가 나는데, 낮에는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서."
"그러게요. 신기하죠."
"안 무서워?"
"무섭기는 한데……." 소예는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그래도 사장님이 저렇게까지 말리는 거 보면, 나쁜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나쁜 거였으면 그냥 없애버리라고 했을 것 같은데."
수연은 그 말에 조금 놀랐다. 자기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라면사장이 말린 이유가 두려움이 아니라 보호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 밤에도 또 들리겠죠?"
"아마도."
"그럼 오늘은 저도 창가에 같이 있을래요. 혼자 듣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수연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래. 같이 듣자."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한동안 말없이 도시 경계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라면사장은 주방에서 그 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손을 놀려 육수 준비를 이어갔다. 언젠가 저 소리의 정체를 밝혀야 할 날이 오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기를, 그는 조용히 바라고 있었다.
비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냄비 손잡이를 살짝 붙잡았다.
"오늘 잘 참았다……이다."
"뭘 참아."
"말리고 싶은 거 더 있었으면서 참았다……이다."
라면사장은 대답 대신 옅게 웃었다. 비아는 그 웃음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카운터 자리로 돌아가 다시 몸을 웅크렸다. 밤이 다시 오면, 그 낮고 긴 소리도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적어도 이 가게 안의 모두가 그 소리를 혼자 듣지 않아도 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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