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00화. 라면사장의 악몽
그 무렵, 나침반 아이가 라면사장에게 문득 낯선 질문을 던졌다. 가게 카운터 앞에 앉아 국물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아저씨는 이야기가 끝나서 여기 온 거예요, 아니면 뭔가 만들려고 온 거예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손을 멈췄다. 평소라면 짧게 얼버무릴 법도 했지만, 이번엔 오랫동안 대답을 고르다가 나직이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아직 시작 안 했다."
아이는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는 몰라도 된다. 국물이나 먹어라."
라면사장은 그렇게 말을 돌렸지만, 그 순간 그의 표정에 스친 그림자를, 옆에서 그릇을 닦던 수연만이 유심히 눈치챘다.
그날 밤, 라면사장은 늦게까지 가게에 남아 있다가 결국 잠들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주 낯선 꿈을 꾸었다.
그것은 소므니움이 두고 간 꿈이 아니었다. 그의 안에서 스스로 자라난 꿈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붉은 두건을 쓴 아이 하나를 보았다. 그 아이는 자꾸만 꺼지는 성냥불을 손에 쥐고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켜도, 바람도 없는데 그 불은 자꾸 꺼졌다.
그리고 그 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토끼를 부탁해."
그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수백 개의 목소리가 겹쳐서, 같은 문장을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어떤 목소리는 어린아이의 것이었고, 어떤 목소리는 노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절박함만은 모두 똑같았다.
꿈속의 그는, 그 목소리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짚어낼 수 없었다. 마치 수백 개의 비극이 하나의 장면 위에 겹쳐 재생되는 것 같았다.
꿈속에서 그는 그 목소리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려 했다. 그러나 다가갈수록 장면은 흩어지고, 다시 처음의 붉은 두건 아이와 꺼지는 성냥불로 되돌아왔다. 마치 이 꿈 자체가, 그가 특정한 답에 닿지 못하도록 스스로 짜여 있는 것 같았다.
'……이건 그냥 꿈이 아니다. 뭔가, 기록의 파편이다.'
그는 꿈속에서도 그렇게 직감했다. 자신이 오래전 서기관으로서 마주했던, 끝나버린 수많은 세계의 잔향 같은 것이라고.
성냥불이 다시 꺼졌다. 이번엔 완전히,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 순간, 붉은 두건의 아이가 처음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입 모양만이 또렷하게 움직였다.
"부탁해."
그 한마디를 끝으로, 꿈은 무너지듯 사라졌다.
그는 그 새벽,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물을 올렸다.
물이 끓는 소리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소리에 자신의 심장 소리를 조용히 덮었다.
'……별거 아니다. 그냥 꿈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도,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와 똑같이 가게 문을 열었다. 국물을 끓이고, 손님을 맞고, 수연과 짧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하루였다.
그러나 수연은 그 평소와 똑같음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너 어제 뭐 있었지."
그녀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없었다."
"……거짓말도 늘었네."
수연은 그 짧은 대답에서 뭔가를 확신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이 도시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비밀 앞에서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날부터, 그녀는 라면사장을 조금 더 자주 살피게 되었다. 그의 손이 멈추는 순간, 그의 시선이 허공에 머무는 순간들을.
그 무렵, 온실 견습 파야 진이 심어둔 씨앗에서 마침내 첫 싹이 텄다. 도시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온실로 몰려들었다.
"드디어 텄어요!"
파야 진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작은 초록 싹 하나에, 도시 전체가 마치 큰 사건이라도 난 것처럼 들썩였다.
"시간이 있어야만 자라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사람들은 그 작은 싹 앞에서 실감했다. 비아도 그 싹 앞에 다가와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라……이다."
수연은 그 인사가, 단순히 식물에게 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무렵, 리폼 가게의 이졸 텐은 계절 옷 만들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그녀는 수연에게 슬쩍 제안했다.
"수연 씨 후드도, 계절별로 다른 버전 만들어드릴까요?"
수연은 그 제안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건 사계절용이에요."
이졸 텐은 그 단호함에 웃으며 물러섰지만, 그 후드에 대한 수연의 애착이 유난하다는 걸 모두가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옆에서 듣다가 조용히 생각했다.
'……저 후드에, 뭔가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 역시,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 무렵, 도시 기록청에서는 오델 감, 셀린 무어스, 피피 모나가 힘을 모아 도시 최초의 연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역사, 이제 제대로 기록해야죠."
셀린 무어스가 그렇게 말하며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 첫 페이지, 첫 행에는 이렇게 적혔다.
'첫 시민 수연, 벽을 부수고 도착.'
수연은 그 문장을 우연히 보고 얼굴을 붉혔다.
"…그걸 꼭 적어야 해요?"
"역사입니다. 있는 그대로 적어야죠."
그날 저녁, 라면사장은 그 연대기의 초안을 잠시 훑어보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이 도시의 모든 순간이, 이제 여러 형태로 기록되고 있었다. 기록청의 연대기, 그의 외상장부, 수연의 달력.
'……기록이 쌓일수록, 이 도시는 더 진짜가 되어가는군.'
그는 그날 밤, 다시 잠들기 전 잠시 망설였다. 어젯밤의 그 꿈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눈을 감았고, 다행히 그날 밤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수연이 다음 날 아침, 그 사실을 눈치채고 조용히 물었다.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그래. 아무 꿈도 안 꿨다."
"다행이네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옅게 웃었다. 그녀는 그가 겪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가 편히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라면사장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그 붉은 두건의 아이와 수백 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저 목소리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거다. 그때는, 나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날, 세레나는 문득 달력을 넘겨보다가 놀란 얼굴로 수연에게 다가왔다.
"수연 씨, 오늘이 이 도시 기록으로 정확히 100번째 큰 사건 표시일이에요. 첫 손님, 첫 축제, 소므니움 아크, 200번째 밤까지 세어보니까요."
"우와, 그렇게나 많은 일이 있었어요, 우리?"
"그러니까요. 근데 이상하게, 하나도 안 질려요."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조용히 새 장부를 펼쳤다. 100이라는 숫자 앞에서, 그는 문득 자신이 이 도시에 처음 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관측자였고, 곧 사라질 도시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100번째 이정표를 세는 이 도시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켜야 할 곳, 그리고 그가 완전히 속하게 된 곳이었다.
"사장님, 100이라는 숫자 어떠세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묵직하다. 근데 나쁘지 않다. 이만큼 쌓였다는 뜻이니까."
"저는 200번째 밤보다 이게 더 실감 나요. 왜냐면 이건 사건들의 숫자잖아요. 저희가 진짜로 겪어낸 것들."
라면사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다음 100은, 더 많은 걸 겪어낼 거다. 너랑 같이."
그는 그 생각을 마음 깊이 눌러두며, 오늘 하루의 국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여전히 평화로운 겨울 햇살이, 눈 덮인 도시 위로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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