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77화. 볼도의 낭독회

축제가 끝나고 사흘 뒤, 극장 거리에는 작은 소문 하나가 퍼지고 있었다.

"볼도 씨가 또 낭독회를 연다면서요?"

"이번엔 제대로 된 자리를 마련한대요."

축제 때의 즉흥적인 낭독이 워낙 인상 깊었던 탓에, 사람들은 그 소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보였다.


"감독님! 낭독회 좀 도와주실 수 있나?"

돈키호테가 이리스를 찾아와 부탁했다.

"저번처럼 큰 무대는 아니고, 그냥 작은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어떤 자리를 원하세요?"

"극장 거리 뒷마당 정도! 편하게 둘러앉아서 들을 수 있는 자리면 좋겠다!"


이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의자 몇 개랑 작은 조명만 있으면 되겠네요."

"역시 감독님이다! 믿음직스럽다!"

돈키호테는 그렇게 말하며 신이 나서 자신의 노트를 펼쳐 보였다. 그 안에는 축제 이후 며칠간 새로 쓴 시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렇게 많이 쓰셨어요?"

"낭독 이후로, 계속 뭔가 쓰고 싶어졌다! 예전엔 창고에서 혼자 삭이던 것들을, 이제는 글로 풀어내고 싶어졌다!"

이리스는 그 말에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볼도 씨, 원래 창고에 자주 가셨었죠?"


돈키호테는 그 질문에 잠시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랬다. 감정이 벅찰 때마다, 혼자 있을 곳이 필요했다. 창고는 아무도 안 오니까,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렸다."

"근데 요즘은요?"

"요즘은…… 안 가도 될 것 같다. 낭독하고 나니, 마음속에 쌓아뒀던 게 많이 비워진 느낌이다."


"그게 어떤 느낌이에요?"

"음, 비유하자면…… 계속 채워지기만 하던 그릇에서, 처음으로 물을 좀 따라낸 느낌? 그래서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이리스는 그 비유에 웃음이 났다.

"볼도 씨답네요, 그 비유."

"내가 원래 비유를 좋아한다!"


낭독회 준비를 위해 이리스는 며칠간 뒷마당을 손보았다. 낡은 벤치 몇 개를 손질하고, 흩어져 있던 조명 부품 중 쓸 만한 것들을 골라 소박하게 배치했다.

"감독님, 이 정도면 충분할까요?"

솔이 조명 위치를 점검하며 물었다.

"네, 너무 화려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편안한 분위기가 낭독회엔 더 어울려요."


준비하는 동안, 소식을 들은 다른 극장 거리 사람들도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도 참석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편하게 오세요."

"저는 노래 하나 준비해도 될까요? 낭독회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아서요."

치로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요! 오히려 좋아요. 볼도 씨 낭독 사이사이에 넣으면 딱이겠어요."

이리스는 그렇게 답하며 즉석에서 작은 순서를 하나 더 추가했다. 거창한 축제와는 달리, 이번 낭독회는 즉흥적이고 편안한 분위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런 자리도 나쁘지 않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당 한켠에 마지막 조명을 매달았다.


며칠 뒤, 극장 거리 뒷마당에 작은 낭독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리스가 준비한 조명 몇 개가 은은하게 마당을 밝혔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오늘 뭐 낭독하세요?"

코모가 물었다.

"오늘은 특별한 걸 준비했다!"

돈키호테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가게에서도 소식을 듣고 라면사장과 수연, 세레나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사장님도 오셨네요?"

수연이 물었다.

"가게 마감하고 잠깐 왔다. 이런 자리, 놓치기 아깝다."

라면사장의 그 대답에, 수연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낭독회가 시작되기 전, 치로 어르신이 먼저 짧은 노래 한 곡을 불렀다. 소박한 가락이었지만, 마당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좋다, 좋아. 시작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군."

"어르신 목소리, 생각보다 좋으시네요."

사람들의 감탄에 치로 어르신은 흐뭇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낭독회가 시작되자, 돈키호테는 먼저 축제 때 낭독했던 시를 다시 한번 읊었다. "나는 오랫동안 창고에 숨어 울었다"로 시작하는 그 시는, 작은 마당에서 듣기에도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새로 쓴 시를 꺼내 들었다.


"이번 시의 제목은, '이제는 그릇을 비운다'이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낭독을 시작했다.

"오래 담아두었던 것들이, / 어느 날 문득 넘쳐흐르려 할 때, / 나는 창고 문을 닫고 홀로 울었다. / 그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밤, 누군가 내게 물었다. / 왜 그 눈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느냐고. / 나는 답했다, 무섭다고. / 그러자 그 사람은 말했다, 무서운 걸 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낭독을 듣던 이리스는 그 구절에 순간 마음이 저렸다. 그것은 그녀가 지난 며칠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과, 그리고 사람들에게 받았던 대답들과 닮아 있었다.


"이제 나는, 그릇을 비운다. / 창고 문을 열어두고, / 그 안의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이 마당에 늘어놓는다. / 그것이 눈물이든, 웃음이든, 부끄러움이든."

"더 이상 혼자 삭이지 않는다. / 나는 이 도시의 일부이고, / 이 도시는 나의 그릇을 함께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낭독이 끝나자, 마당은 잠시 고요한 정적에 잠겼다.

그 정적 속에서, 세레나는 문득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넘치기 전에 비운다는 거, 나도 배워야 할 텐데.'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며칠 전 녹사가 했던 경고 — 모두를 품다가 무너질 거라는 말 — 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조용하지만 진심 어린 박수가 이어졌다.

"볼도 씨, 좋았어요. 정말로요."

세레나가 나직이 말했다.

"고맙다! 다 여러분 덕분이다!"

돈키호테가 눈시울을 붉히며 답했다.


라면사장은 그 낭독을 들으며 조용히 국물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사장님, 어떠셨어요?"

수연이 물었다.

"좋았다. 저 아이도, 이제 자기 그릇을 다룰 줄 아는군."

"그릇이요?"

"감정을 담는 그릇 말이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비우면 비우는 대로."


수연은 그 대답에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사장님도 그런 그릇 있으세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있다."

"어떤 그릇이에요?"

"……아주 오래된 그릇이다. 아직 비울 때가 안 됐다."


수연은 그 대답에서 뭔가 더 깊은 의미를 느꼈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라면사장의 그런 대답들은 언제나 그 이상을 묻지 말라는 신호와도 같았다.

"언젠가는 비우실 날도 오겠죠."

"그럴지도 모른다."

라면사장은 그렇게 짧게 답하고 다시 차를 마셨다. 그 옆모습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낭독회 중간, 세레나가 잠시 자리를 비켜 마당 구석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이리스가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갔다.

"위원장님, 괜찮으세요?"

"아, 이리스 씨. 괜찮아요. 그냥 잠깐 바람 좀 쐬려고요."

세레나는 그렇게 답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나 이리스는 그 웃음이 어딘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오늘 낭독, 좋으셨어요?"

"네, 정말 좋았어요. 볼도 씨가 저렇게 자기 안의 것들을 꺼내놓는 걸 보니까, 저도 뭔가 배우는 기분이었어요."

"위원장님도 안에 쌓아두신 게 있으세요?"

세레나는 그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글쎄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힘든 일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셔도 돼요. 위원장님이 저희 얘기 많이 들어주셨으니까요."

세레나는 그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요, 이리스 씨. 근데 지금은 괜찮아요. 정말로요."

이리스는 그 대답에 더 캐묻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세레나의 그 미소 뒤에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다.


낭독회가 끝난 뒤, 이리스는 돈키호테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오늘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 덕분에 이런 자리도 마련할 수 있었다! 고맙다!"

"근데 볼도 씨, 이제 창고에 안 가셔도 되는 거예요?"


"저도 궁금했어요. 창고에 그렇게 자주 다니셨던 이유가."

수연도 옆에서 물었다.

"음, 설명하기 어려운데. 감정이 너무 벅찰 때, 그냥 어딘가에 쏟아내야 했다. 근데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건 부끄러웠다. 그래서 창고에 가서 혼자 울고, 혼자 웃고, 그렇게 처리했다."


"근데 그게 왜 힘든 거예요? 혼자 처리하는 게."

"모아두면, 결국 넘친다. 나도 몰랐는데, 낭독하고 나서야 알았다. 혼자 삭이기만 하면, 언젠가 그 그릇이 감당 못 할 만큼 차오른다는 걸."

이리스는 그 말에 문득 자신의 캐스팅 목록을 떠올렸다. 무대에 서기를 주저하던 그 오랜 시간도, 결국은 혼자 삭이려던 시도였는지도 몰랐다.


돈키호테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완전히 안 가는 건 아닐 거다. 가끔은 여전히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까. 근데 이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안다."

"다른 방법도 생겼으니까요."

"맞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꺼내놓는 방법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리스는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캐스팅 목록에 적혀 있던 '다음엔, 조금 더'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볼도가 걸어온 길과,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어딘가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저도 언젠가, 볼도 씨처럼 뭔가 꺼내놓을 수 있을까요?"

"당연하다! 감독님도 이미 잘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고치면서!"


"그건 좀 다르지 않아요?"

"다르지 않다! 그것도 결국, 감독님이 가진 걸 사람들 앞에 꺼내놓은 거다! 방식이 다를 뿐이다!"

이리스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옅게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다르게 보이네요."


그날 밤, 가게로 돌아가는 길에 이리스는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그릇을 다루고 있구나.'

볼도는 낭독으로, 자신은 무대 위의 작은 순간들로. 그리고 라면사장에게는, 아직 비우지 못한 아주 오래된 그릇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 말이 문득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것을 캐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언젠가, 그 그릇이 비워질 날이 온다면 — 그때는 자신도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오늘도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는 축제의 여운을 천천히 갈무리하며,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가게에 돌아온 이리스는 잠들기 전, 오늘 세레나가 보였던 그 미묘한 표정을 다시 떠올렸다.

'……위원장님도 뭔가 참고 계신 걸까.'

그녀는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실은 괜찮지 않았던 그 수많은 순간들.

'……나중에, 위원장님한테도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미소 뒤의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했다.

수연도 방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신입, 오늘 낭독회 어땠어?"

"좋았어. 근데……."

"근데?"

"위원장님이 좀 걱정돼서."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슨 일 있으셨어?"

"딱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냥…… 느낌이 그래."

수연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럼 신입 느낌 믿어봐. 요즘 신입 촉, 꽤 잘 맞잖아."

이리스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오늘 밤은 그 어렴풋한 예감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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