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43화. 유디 칸의 판결

시장 좌판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포목점 주인과 옆 가게 채소 상인이 자리싸움으로 다투고 있었다. 며칠째 이어진 갈등이 결국 오늘 폭발한 모양이었다.

"당신이 먼저 내 자리 침범했잖아!"

"무슨 소리야, 이 자리는 원래 내 거였어!"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배달을 돌던 수연도 그 소란에 걸음을 멈췄다.

"저기, 두 분 다 진정하시고……."

"넌 끼지 마!"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수연은 순간 당황해서 물러섰다.


"유디 칸 어른께 여쭤보자!"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동의했다.

"그래, 유디 님이면 공정하게 판단해주실 거야."

수연은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유디 칸이 누구예요?"

"은퇴하신 판사님이야. 저 골목 끝 집에 사시는데, 예전엔 엄청 유명한 재판관이셨대."

사람들은 곧장 그 집으로 몰려갔다. 수연도 궁금해서 뒤를 따랐다.


유디 칸의 집 앞에 도착한 사람들은 문을 두드리며 다급히 사정을 설명했다.

"어르신, 자리 다툼 때문에 그러는데, 좀 봐주십시오!"

잠시 후, 백발의 노부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형형한 눈빛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무슨 일이냐."

그녀가 담담하게 물었다.

포목점 주인과 채소 상인이 동시에 각자의 억울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디 칸은 그 소란을 한동안 묵묵히 듣고 있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판결해주십시오, 어르신."

포목점 주인이 다급히 청했다.

"제가 판결할 일이 아니다."

유디 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근데 어르신이 판사셨잖아요!"

"판사였다. 이제는 아니다. 내 판결은 이미 끝났다."

사람들은 그 대답에 당황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는 듣기만 한다."


"듣기만 하시면…… 어떻게 결론이 나옵니까?"

수연도 궁금해서 물었다.

유디 칸은 그 질문에 옅게 웃었다.

"두고 보면 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두 상인을 자기 집 앞 작은 벤치로 안내했다.

"앉아라.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봐라. 나는 그냥 듣기만 하겠다."

포목점 주인과 채소 상인은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시작해봐라."

유디 칸이 담담하게 말했다.

포목점 주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자리는 제가 십 년 넘게 써온 자리입니다. 근데 저 사람이 갑자기 자기 것이라고 우기니……."

"거짓말! 원래 그 자리 경계선이 애매했잖아!"

채소 상인이 발끈하며 끼어들었다.

유디 칸은 그 언쟁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듣기만 했다.


"자리 경계선이 원래 애매했다는 거, 그건 인정 못 해!"

포목점 주인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애매했잖아! 저번 달에 비 와서 표시선 다 지워졌을 때부터!"

채소 상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언쟁은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나 유디 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두 사람의 말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지켜보던 수연은 조바심이 났다.

"저기, 이러다 끝이 안 날 것 같은데……."

"기다려라."

유디 칸이 낮게 말했다.

"근데 벌써 삼십 분째 같은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

"같은 얘기가 아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하고 있다. 잘 들어봐라."

수연은 그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두 사람의 언쟁은 처음보다 조금씩 결이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엔 순전히 경계선 문제였는데, 이제는 서로의 태도와 서운함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처음의 격앙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사실, 자리 자체보다는."

포목점 주인이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

"당신이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그냥 자리를 넓힌 게 서운했어요."

채소 상인도 그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나도…… 사실 그날 당신이 나한테 화낸 게 계속 걸렸어. 그때부터 괜히 오기가 생겨서 그런 것 같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한 침묵에 빠졌다.


유디 칸은 그 침묵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미안해요. 사실 자리 문제보다 그게 더 컸던 것 같네요."

포목점 주인이 먼저 사과했다.

"저도 미안합니다. 괜히 감정적으로 대했네요."

채소 상인도 고개를 숙였다.

수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놀랐다. 판결은 단 한마디도 없었는데, 갈등이 스스로 풀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수연이 유디 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들었을 뿐이다."

"근데 왜 듣기만 했는데 문제가 풀렸어요?"

유디 칸은 그 질문에 옅게 웃었다.

"사람들은 대개 답을 몰라서 싸우는 게 아니다. 자기 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싸우는 거다."

수연은 그 말에 감탄했다.

"그럼 판결이 필요 없었던 거예요?"

"애초에 판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서운함이 쌓인 거였지."


유디 칸은 그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끝난 것 같은데, 어떻게 하고 싶으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동시에 어색하게 웃었다.

"경계선은 다시 그읍시다. 이번엔 확실하게."

포목점 주인이 먼저 제안했다.

"그래요. 그리고…… 서로 인사도 좀 하고 지냅시다. 십 년을 옆에서 장사했는데 제대로 대화 한번 안 해본 게 이상하네요."

채소 상인도 그렇게 답했다.

유디 칸은 그 화해를 지켜보며 옅게 웃었다.

"됐다. 이제 가봐라."

두 사람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함께 자리를 떴다. 조금 전까지 서로에게 삿대질하던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나란히 걷는 발걸음이 편안해 보였다.


포목점 주인과 채소 상인은 그날 이후로 자리 문제를 스스로 조율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예전보다 더 편안한 이웃이 되어갔다.

수연은 그 이야기를 가게에 돌아와 전했다.

"진짜 신기했어. 판결 한마디도 안 했는데 문제가 풀렸어."

라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디 칸 답다."

"원래 그런 분이세요?"

"은퇴하기 전엔 명판결로 유명했다. 근데 은퇴한 뒤로는, 판결이라는 걸 완전히 내려놨다."

"왜요?"

"판결은 누군가를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 근데 그녀는 이제, 승자도 패자도 없이 그냥 서로를 이해시키는 법을 찾은 거다."


그날 저녁, 수연은 그 이야기를 전하러 가게에 들렀다가, 마침 방문한 마왕에게도 그 일화를 들려주었다.

"판결 없이 다 풀렸다고?"

마왕이 흥미로운 얼굴로 되물었다.

"네, 진짜 신기했어요. 그냥 듣기만 하셨는데."

마왕은 그 이야기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늘 판결을 서둘렀지. 백성들 다툼이 생기면, 빨리 결론을 내려야 왕의 위엄이 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셨는데요?"

"판결은 빨랐지만, 원한은 더 오래갔다. 진 쪽은 늘 억울해했고, 이긴 쪽도 뒤에서는 나를 원망했다. 아무도 진짜로 만족하지 못했지."

"유디 칸님 방식이었으면 달랐을까요?"

"달랐을 거다. 근데 그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왕이라는 자리가, 늘 빨리 답을 내놓으라고 재촉했으니까."

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비웠다.

"이 도시에 와서 제일 부러운 게 그거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것."


며칠 뒤, 수연은 다시 유디 칸의 집을 찾았다.

"저기, 궁금한 게 있어서 왔어요."

"뭐냐."

"판사 일 그만두신 이유가 뭐예요?"

유디 칸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

"내가 내린 판결 중에, 완벽하게 옳았던 건 하나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판결은 늘 한쪽 편만 든다. 근데 진짜 문제는, 대개 양쪽 다에게 조금씩 있더구나. 판결로는 그 복잡함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그냥 듣기만 하시는 거예요?"

"그렇다. 듣다 보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문제의 진짜 원인을 찾아낸다. 내가 정해주는 것보다, 그게 훨씬 오래간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르신은 이제 완전히 판결을 그만두신 거예요?"

"그렇다. 여기서는 듣기만 한다."

"그거, 어떻게 보면 진짜 판결보다 더 어려운 일 같아요."

유디 칸은 그 말에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맞다. 훨씬 어렵다. 참는 것도, 끝까지 듣는 것도."

"근데 힘들지 않으세요? 매번 그렇게 참고 듣기만 하시는 거."

"힘들다. 근데 판결할 때보다는 낫다."

"어떻게요?"

"판결은 순간이지만, 그 결과는 평생 간다. 내가 틀린 판결을 내린 날은, 그 뒤로 며칠씩 잠을 못 잤다. 근데 그냥 듣기만 하면, 적어도 내가 틀렸다는 죄책감은 없다."

수연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판사 시절에 힘드셨겠어요."

"힘들었다. 근데 그때는 그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버텼다. 근데 나이가 드니까, 버티는 것도 한계가 오더구나."

"그래서 은퇴하신 거예요?"

"그것도 있고…… 어느 순간, 내가 틀렸던 판결 하나가 계속 떠올랐다. 죄 없는 사람을 유죄로 몰았던 판결이었지. 그날 이후로, 다시는 누군가의 운명을 내가 정하고 싶지 않아졌다."

유디 칸의 목소리가 그 순간 낮게 가라앉았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모른다. 그게 내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다. 판결만 내리고, 그 뒤는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수연은 그 고백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그래서 이 도시에 왔을 때, 다짐했다. 다시는 누군가의 운명을 함부로 정하지 않겠다고."


수연은 그날 가게로 돌아와 라면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유디 칸님, 되게 대단하신 분 같아."

"그렇다."

"근데 사장님도 비슷하지 않아요? 손님들 얘기 그냥 듣기만 하시잖아요."

라면사장은 그 지적에 옅게 웃었다.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럼 사장님도 판결 안 내리시는 거예요?"

"나는 판사가 아니다. 그냥 국물 끓이는 사람이다."

"근데 결국 똑같은 거 아니에요? 듣고, 판단 안 하고, 그냥 곁에 있어주는 거."

라면사장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 옅은 동의가 담겨 있었다.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그 대화를 듣고 끼어들었다.

"이 도시엔 그런 사람 많다……이다. 판단 안 하고 그냥 들어주는 사람들."

"왜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수연이 물었다.

"아마 다들 예전엔 판단받기만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이다. 그래서 여기 와서는, 다른 사람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이다."

수연은 그 통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배려는, 대부분 자신이 겪었던 결핍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날 밤, 라면사장은 외상장부에 짧은 한 줄을 적었다.

『유디 칸 — 판결 없이 풀리는 문제 (완료). 듣는 것도 하나의 판결이다.』

수연은 그 페이지를 곁눈질로 보며 문득 자신의 검을 떠올렸다. 그녀 역시 원인 없이 결과를 내는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쓸 때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유디 칸의 무거운 후회를 듣고 나니, 그 책임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사장님."

"왜."

"나도 나중에, 뭔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손을 멈췄다.

"인정해라. 유디 칸처럼."

"그거면 돼?"

"인정하는 것부터가 제일 어렵다. 그다음은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 인정을 안고."

수연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비아가 카운터 뒤에서 그 대화를 듣고 조용히 덧붙였다.

"유디 칸, 오늘도 잘 들어줬을 거다……이다. 내일도 그럴 거다……이다."

"어떻게 확신해?"

"그게 유디 칸이 선택한 삶이니까……이다. 후회를 안고도 계속 걸어가는 거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에는 그렇게,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진 채로도 계속 걸어가는 존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걸음들이 모여, 이 가게와 이 도시를 조금씩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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