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42화. 세레나의 실패담

그날 밤, 세레나는 순찰을 마치고 평소보다 오래 가게에 머물렀다.

손님이 거의 다 빠져나간 시간, 그녀는 카운터 구석 자리에 조용히 앉아 물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수연은 그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오늘 좀 피곤해 보이는데."

"그런가요."

세레나는 옅게 웃으며 물잔을 매만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평소의 잔잔함과는 미묘하게 결이 달랐다.

"무슨 일 있어요?"

"별일 아니에요. 그냥…… 오늘이 좀 이상한 날이라서요."

"이상한 날이요?"

세레나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라면사장은 그 옆에서 국자를 젓다가, 아주 잠깐 손을 멈췄다.


"저는 서른다섯 번 실패한 명령들의 총합이에요."

세레나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수연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세레나는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옅게 웃기만 했다.

"그냥,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아니, 그게 무슨 뜻이냐고. 서른다섯 번 실패한 명령이라니."

수연이 다시 물었지만, 세레나는 여전히 웃음으로만 답할 뿐이었다.

"나중에요. 오늘은 그냥…… 이 말만 하고 싶었어요."


수연은 그 대답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세레나의 눈빛에서, 지금 더 캐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무게가 느껴졌다.

"……알겠어. 근데 그거 나쁜 뜻이야?"

"나쁘다고는 안 했어요."

"근데 표정이 안 좋잖아."

세레나는 그 지적에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오늘이 그 서른다섯 번째 날짜와 비슷한 날이라서요. 그냥 조금, 옛날 생각이 났어요."

"무슨 날짜인데?"

"말 못 해요, 아직은."

수연은 그 대답에 더 답답해졌지만,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마왕이 마침 근처 테이블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다가 낮게 끼어들었다.

"서른다섯이라는 숫자, 나도 들은 적 있다."

세레나가 순간 그를 돌아보았다.

"어디서요?"

"오래전에, 네가 아주 지쳐 보이던 날이 있었지. 그때 딱 한 번, 취한 척하며 그 숫자를 흘렸다. 기억 안 나나?"

세레나는 그 말에 표정이 살짝 굳었다.

"……기억나요. 그날 취한 게 아니었어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근데 묻지 않았지. 너도 나처럼, 아무한테나 쉽게 짐을 안 푸는 성격이니까."

수연은 그 대화를 들으며 점점 더 궁금해졌다.

"근데 마왕님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짐작만 한다. 정확히는 모른다."

마왕은 그렇게 답하고 술잔을 비웠다.

"근데 확실한 건, 그게 세레나 혼자 짊어질 무게가 아니라는 거다."

세레나는 그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낮게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

세레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순찰 마저 돌아야죠."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된다."

"제가 안 돌면 누가 돌아요."

라면사장은 그 대답에 옅게 한숨을 쉬었다.

"너는 늘 그런 식이다."

"어떤 식이요?"

"자기 몫보다 더 짊어지려는 식."

세레나는 그 지적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잘못된 건 아니다. 근데 가끔은 내려놔도 된다."

"내려놓으면요?"

"쉴 수 있다."

세레나는 그 말에 오래도록 침묵했다.

"저는 쉬는 법을 잘 몰라요."

"배우면 된다."

"어떻게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 역시 완전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수연은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무게를 느꼈다. 평소 무엇이든 담담하게 답하던 라면사장이, 처음으로 말문이 막힌 순간이었다.

그녀는 문득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 살폈다. 세레나는 애써 담담한 척하고 있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라면사장은 평소의 무표정 속에 뭔가 무거운 것을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 분, 진짜 뭔가 있으시네요."

수연이 재차 확인하듯 말했다.

"있다고 해도, 지금 말할 건 아니다."

라면사장이 단호하게 답했다.

"근데 궁금해서 못 견디겠는데요."

"궁금해도 참아야 할 때가 있다."

수연은 그 대답에 입을 삐죽였다. 그러나 이 가게의 오랜 원칙 —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 을 그녀 역시 이제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근데 저 이거 하나는 확실히 느꼈어요."

"뭘."

"이건 그냥 지나가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요. 언젠가 진짜 크게 터질 것 같은 얘기라는 거."

라면사장은 그 통찰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수연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기, 두 분 다 뭔가 숨기고 있는 거 같은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세레나와 라면사장은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숨기는 거 없다."

라면사장이 짧게 답했다.

"근데 왜 그렇게 심각해요?"

"심각한 거 아니다."

수연은 그 대답이 전혀 믿기지 않았지만, 더 캐물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세레나는 그 어색한 침묵을 깨려는 듯, 다시 옅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정말 별일 아니에요. 그냥 오늘 하루, 옛날 생각이 좀 많이 났을 뿐이에요."

"서른다섯 번 실패한 명령이라는 게, 언젠가는 말해줄 거야?"

수연이 물었다.

"네, 언젠가는요."

"언제?"

"때가 되면요."

또 그 대답이었다. 수연은 이 가게 사람들이 다들 비슷한 말버릇을 갖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수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뭔데요?"

"그 실패한 명령들, 지금도 후회해?"

세레나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생각했다.

"후회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다만?"

"제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유가, 그 서른다섯 번 때문이라는 것만은 확실해요."

수연은 그 말에 뭔가 중요한 걸 스친 기분이었다.

"그럼 그때 명령을 내려서 실패한 거야?"

"……"

세레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옅은 미소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라면사장은 그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유독 말이 없었다. 손은 평소처럼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자주 세레나 쪽을 향했다.

"저기, 사장님도 그 얘기 알아요?"

수연이 문득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조금은."

"근데 왜 말 안 해줘요?"

"세레나의 이야기다. 내가 대신 말할 게 아니다."

수연은 그 대답에 답답함과 동시에, 이 가게의 원칙이 다시 한번 지켜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남의 이야기를 대신 말하지 않는다는 것.


세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오늘 이상한 얘기 꺼내서 미안해요."

"이상한 거 아니야. 근데 걱정돼."

"걱정 안 해도 돼요. 저는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세레나는 그 지적에 옅게 웃었다.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에요. 오늘은 그냥…… 잠깐 흔들렸을 뿐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문 앞에서 잠시 멈춰,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덧붙였다.

"언젠가 다 말할게요. 그때가 오면요."


비아는 세레나가 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였지만, 그 어깨에 실린 무게만큼은 유독 무거워 보였다.

"세레나, 오늘 많이 힘들어 보였다……이다."

비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너도 그렇게 느꼈어?"

수연이 물었다.

"응……이다. 세레나는 원래 잘 안 흔들리는데, 오늘은 좀 흔들렸다……이다."

"왜 그런 걸까?"

"오늘이 무슨 날인가 보다……이다. 세레나한테 특별한 날."

라면사장은 그 말에 손을 멈추고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맞다. 오늘이 그날이다."

"무슨 날인데요?"

수연이 물었다.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한참을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

"이 도시가 생긴 날."

가게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럼…… 세레나 탄생일이라는 거예요?"

"비슷하다. 정확히는, 세레나가 처음 '느끼기' 시작한 날."

수연은 그 말에 뭔가 중요한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그 서른다섯 번의 실패도, 그날과 관련 있는 거예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의 무게가,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되고 있었다.

"세레나는…… 명령하지 않는 존재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럼 예전엔 명령했었어?"

"했었다. 그리고 서른다섯 번, 그 명령들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떤 결과였는데?"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건 세레나가 직접 말할 이야기다."


수연은 그 대답에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예감이 자리 잡았다.

"근데 그게…… 지금 세레나가 명령 안 내리는 거랑 관련 있는 거지?"

"그렇다."

"그럼 그 실패들이, 세레나한테 되게 큰 상처였겠네."

"그렇다."

라면사장은 그 짧은 인정 이후,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리고……." 그가 낮게 덧붙였다. "그 서른다섯 번 중 몇 번은, 나와도 관련이 있다."


수연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사장님이랑요?"

"그렇다."

"어떻게요?"

라면사장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저 국자를 다시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수연은 그 완강한 마무리에 더 캐묻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확신했다. 이 가게의 두 축 — 라면사장과 세레나 사이에는, 아직 아무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언젠가 드러나는 날, 이 가게에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게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예감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비아는 그날 밤, 유독 말없이 카운터 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비아, 너도 그 얘기 알아?"

수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아는 오래도록 대답하지 않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조금 안다……이다. 근데 그건 세레나랑 사장님 거다……이다. 내가 말할 거 아니다……이다."

"걱정돼?"

"걱정된다……이다. 근데……." 비아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언젠가 그 얘기 나오는 날, 다들 잘 버텨야 한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도시에서 가장 평화롭던 가게 안에, 처음으로 어떤 균열의 예감이 스치고 있었다.

"버텨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아는 그 질문에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

"세레나랑 사장님, 둘 다 이 도시를 만든 사람들이다……이다."

"그건 알아. 근데?"

"만든 사람들 사이에도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이다. 지금까진 그 다른 생각을 서로 참아왔다……이다. 근데 언젠가 그게 안 참아지는 날이 온다……이다."

수연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이 오면 어떻게 되는데?"

"모른다……이다. 근데 그날이 오면, 이 가게도 예전 같지 않을 거다……이다."

비아는 그렇게 말하고 문고리를 꼭 쥐었다. 마치 그 다가올 균열로부터 이 가게를 지키려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래도……." 비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이 와도, 우리는 계속 여기 있을 거다……이다. 문은 계속 열려 있을 거다……이다."

수연은 그 다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무엇이 다가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 가게가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믿을 수 있었다.

가게 문을 닫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유독 별들이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다가올 무언가를 예고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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