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97화. 각자의 애도
도시 전체가 하나의 슬픔을 나눠 가진 것 같아도, 그 슬픔은 사람마다 다른 모양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발끝으로, 누군가는 손끝으로, 누군가는 목소리로. 그날 하루, 도시 곳곳에서는 저마다 다른 방식의 애도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세레나는 아침 일찍 도시로 나섰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이었다. 큰 개입 이후로 그녀의 손끝은 늘 조금씩 저릿했고, 특히 오른손— 평생 이 도시의 연대기를 적어온 그 손— 은 펜을 쥐는 모양으로 오므릴 때마다 가늘게 떨렸다. 손끝의 옅은 빛바램도 여전히 다 가시지 않은 채였다. 그래서 그녀는 걷는 내내 오른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 속에서 몇 번이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했다. 쥘 때마다 손끝이 낯설었다. 마치 오래 길들인 만년필의 펜촉이 하루아침에 무뎌진 것 같은, 그런 낯섦이었다.
그녀에게 이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 자체가 이 도시의 규칙을 담는 그릇이었고, 도시가 다치면 그녀도 함께 다쳤다. 지난 결전에서 그녀는 도시 전체의 규칙을 붙든 채 쓰러지기 직전까지 갔었다— 녹사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 후유증이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늘, 그 손을 주머니에 감춘 채로라도 혼자 걷기로 했다. 이 도시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자기 발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골목을 지나며 그녀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봤다. 빵집엔 여전히 빵 냄새가 났고, 우체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얼굴에는 뭔가 다른 것이 스며 있었다— 웃고 있어도 눈매가 붉었고, 인사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했다. 세레나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걸었다. 자신이 기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한 문장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오늘 이 도시가 짓는 표정만은, 나중에 반드시 정확히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위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난간을 짚었다. 난간을 짚은 손끝으로, 그 저림이 유난히 짙게 몰려온 탓이었다. 그녀는 강물을 내려다봤다. 어제 쏟아진 별들의 잔광이 아직 수면 위에 희미하게 남아 흔들리고 있었다. 그 빛을 보며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좋은 도시라고 했었지."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혼잣말이었다.
그 말은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남긴 문장이었다. 소멸이 시작되기 직전, 그가 그녀에게 건넨 몇 마디 중 하나. 세레나는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의 목소리가 이미 절반쯤 빛으로 흩어지고 있었는데도, 그 문장만은 또렷했다는 것을. 그녀는 그동안 이 도시의 연대기를 쓰며 수많은 문장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의 도시를 두고 그가 남긴 그 짧은 평가만큼 무거운 문장은 써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다리 난간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이마를 타고 스몄다. 이 도시를 만든 건 그녀였지만, 이 도시가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의 힘만은 아니었다— 라면 한 그릇, 붉은 테두리의 그릇, 매일 아침 뒤집히는 간판, 그 모든 사소함들이 쌓여 만든 결과였다. 그는 그 사소함을 설계자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사실이 새삼 서글프면서도, 동시에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만든 것의 진짜 가치를 알고 떠났으니까.
그녀는 그 말을 곱씹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 속에서, 연대기를 적어야 할 오른손이 다시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그 떨림을 억누르는 대신 가만히 품었다— 이 떨리는 손으로 적게 될 문장이야말로, 오늘 이 도시가 짓는 표정에 가장 정직한 기록이 될 것 같았다.
녹사는 광장 한가운데, 오래된 분수대 옆 돌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아침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정오가 지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앉은 자리는 그늘이 지는 쪽이라 유난히 냉기가 심했다— 돌바닥의 한기가 옷을 뚫고 곧장 살에 닿을 정도였다. 그녀는 그 냉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차가움이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처럼, 두 손을 돌바닥에 가만히 얹어두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남을 대신해 비명을 지르는 존재였다. 생명이 고통 속에서 쓰러지기 직전, 본인이 지르지 못하는 그 비명을 대신 질러주는 것이 그녀의 오래된 일이었다. 그 일을 하며 그녀는 스스로는 울지 않는 법을 익혔다— 감정을 대신 쏟아내는 자는, 자기 감정을 위해 쏟을 자리가 없었으므로. 그런데 지난밤,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울었다. 대신 우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자기 눈물로.
지금 그녀가 짓고 있는 표정은 울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멍하니, 분수대의 얼어붙은 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멍함 안에, 어제의 눈물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돌바닥의 결을 따라 천천히 문질렀다. 차갑고,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감촉. 그녀는 그 감촉을 좋아했다. 세상이 흔들릴 때, 이 돌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지나가던 아이 하나가 그녀 앞에 멈춰 서서 물었다. "언니, 안 추워요?" 녹사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봤다. 그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춥다." 그녀가 짧게 답했다. "근데 이 추위는— 견딜 만한 거다."
아이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녹사는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다시 손을 돌바닥에 얹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 이 도시 곳곳에서 다른 존재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져왔다— 누군가 다쳐 쓰러지기 직전이면, 그 비명이 세상에 닿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짊어진 양이 늘어날수록 달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그 일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다. 다만 그 일을 하며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다— 대신 지르는 비명에는 자기 몫의 슬픔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그 존재가 빛으로 흩어지던 순간, 녹사는 처음으로 자기 몫의 눈물을 흘렸다. 누구를 대신하지 않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이었던 눈물. 그 눈물이 어색해서, 그녀는 하루 종일 이 광장에 나와 그 감각을 되짚고 있었다. 낯선 감정이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차가운 돌 위에 앉아, 자기 몫의 슬픔을 자기 손으로 만지는 지금 이 순간이— 그녀에게는 처음 느껴보는 온전함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렇게, 아무도 대신 울어주지 않아도 되는 슬픔을 오래도록 자기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해가 저물 때까지, 그녀는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리스의 연습실에는 저녁이 되어도 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 나머지 아홉 개는 이미 꺼진 채였다. 방 안에는 오래된 조명 열기와 드론 배터리에서 나는 옅은 금속 냄새, 그리고 나무 바닥에 밴 송진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수백 번의 연습이 남긴 냄새였다. 그녀는 그 냄새 한가운데 주저앉아, 켜진 채로 남은 드론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드론은 원래 꺼져 있던 열 번째였다. 오랫동안 그녀 자신의 못 찾은 조각을 상징하던 등불. 그것이 다시 켜진 날, 그녀는 자신의 하늘에 뚫려 있던 구멍이 마침내 메워졌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나머지 아홉 개를 일부러 하나씩 꺼트리고, 오직 그 열 번째만을 남겨뒀다. 나머지 별들이 그녀 자신의 반짝임이라면, 이 하나만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등불이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남을 위해 빛을 만들어 팔던 시절도 있었고, 이제는 자기 자신이 빛이 되는 법을 익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 방 안에서, 그녀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조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저 불빛 하나를 켜두고, 그 불빛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뿐이었다.
"…내 별 만드는 법, 가르쳐준 게 누군데."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드론의 불빛이 그녀의 뺨에 옅게 어른거렸다. 채용 공고 대신 골목에서 건네받았던 그 한마디를, 그녀는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능력이 아니라, 너. 그 말이 그녀를 이 무대까지 데려왔다.
그녀는 그 불빛을 끄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은 물론이고, 아마 당분간은 계속. 열 번째 별은 이제 그녀 자신을 위한 등불이 아니라, 돌아올 누군가를 위해 켜두는 등불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문득, 그 드론이 처음 추락하던 밤을 떠올렸다. 그날의 파열음, 부서진 프로펠러 조각이 바닥에 흩어지던 소리, 다친 사람의 낮은 신음. 그녀는 그날 이후 실패를 끄면 안전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날부터 그녀의 하늘에는 줄곧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이 메워진 게 얼마 전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메워진 자리를, 다시 자기 손으로 다른 의미로 채우고 있었다. 이번엔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그리움의 자리로.
연습실 바닥에 깔린 낡은 매트에 몸을 눕히며, 그녀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조명 하나만 켜진 방은 어둡고도 따뜻했다. 그녀는 그 온기 속에서 눈을 감았다. 별을 만들던 손으로, 이제는 그리움 하나를 밝혀두는 법도 배운 셈이었다.
볼도는 자신의 방 책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만년필 대신 낡은 나무 펜을 손에 쥔 채였다. 창고를 졸업한 뒤로, 그는 더 이상 어둠 속에 갇혀 시를 쓰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밝은 창가에 앉아, 원할 때만 펜을 들었다. 오늘은 오래도록 펜을 들지 않았다.
종이는 한참 동안 비어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첫 문장을 떠올렸다가 지웠다. 슬픔을 시로 옮기려는 시도는 늘 그랬듯 과장되거나, 혹은 너무 가벼웠다. 그는 그 두 가지 실패를 모두 겪어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르게 써보기로 했다— 많이 쓰지 않기로.
펜촉이 종이에 닿았다. 사각, 짧은 소리와 함께 단 한 줄이 새겨졌다.
"그가 마침표를 찍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는 그 한 줄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더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쓰지 않아도 되는 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그였다면 이 슬픔을 열 장, 스무 장에 걸쳐 늘어놓았을 것이다. 자신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그 깊이를 증명하려는 듯 문장을 쌓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창고를 나온 뒤로 그는, 슬픔이 반드시 길게 쓰여야 무게를 갖는 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어떤 마음은 마침표 하나로 완결된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종이를 창가에 세워뒀다. 그 문장이 마르는 동안, 창밖으로 저녁 빛이 서서히 스러지고 있었다. 그는 그 종이를 다시 서랍에 넣지 않고, 창가에 그대로 세워두기로 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었다. 그 한 줄은 이제 그의 방 안에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될 일이었다.
그날 저녁 방송에서, 뮤나 페브는 평소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심야 라디오는 원래 사연을 읽는 방송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익명으로 보내온 편지를 그녀가 목소리로 대신 읽어주는 것이 이 방송의 전부였다. 사람들은 저녁이면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서로의 사연을 들으며 낯선 이의 슬픔과 기쁨에 함께 웃고 울었다. 그 방송은 그렇게 도시의 새로운 밤 문화가 되어 있었다.
오늘도 사연은 잔뜩 도착해 있었다. 봉투 한 무더기가 그녀 앞에 쌓여 있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그녀는 평소처럼 그중 하나를 집어 봉투를 뜯었다. 광장의 그 밤에 대한 짧은 편지였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방송을 시작한 뒤로 단 하루도 사연 없이 방송을 내보낸 적이 없었고, 아무리 사연이 적게 와도 자신의 옛 일기라도 대신 읽으며 그 시간을 채워온 사람이었다. 사연을 읽는 것— 그것이 그녀가 이 도시에서 찾은 자기 몫의 쓸모였으니까.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의 중간에서, 목소리가 무너졌다. 그녀는 마이크를 끄지 못했다. 우는 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잠시만요." 그녀는 겨우 그렇게 말하고, 한참을 침묵했다. 도시 전체가 손을 움직이며 하루 종일 밀어내던 바로 그것이, 그녀의 마이크 앞에서만은 끝내 밀려나지 않았던 것이다.
침묵 끝에, 그녀는 봉투 더미를 옆으로 밀어두고 대신 낡은 레코드판 하나를 턴테이블에 얹었다. 손끝이 바늘을 조심스럽게 판 위에 내려놓는 동안,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읽겠습니다. 나머지는— 음악으로 대신할게요."
가사도 없는 잔잔한 선율이 도시의 라디오마다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오늘 밤 서로의 사연을 끝까지 듣지는 못했지만, 대신 같은 시각 같은 곡을 들으며 각자의 방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뮤나 페브는 그 침묵의 방송을 들으며, 마이크 너머 어딘가에 있을 청취자들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런 밤엔, 말보다 침묵이 더 정확한 언어였다. 그녀는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남은 봉투 더미에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사연들은 내일, 혹은 그다음 날 읽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방금 자신이 감추지 못한 그 울음이, 어쩌면 오늘 이 도시에서 나온 가장 정직한 방송이었다는 걸.
밤이 깊어질 무렵, 레테가 가게로 찾아왔다. 그녀는 늘 그랬듯 낡은 유리병 몇 개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중 어느 것도 꺼내지 않았다. 형사와 비아, 그리고 늦게까지 남아 있던 수연이 그녀를 맞았다.
"오늘 하루, 다들 어떠셨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레테는 잠시 침묵하다가, 품 안의 병들을 조심스럽게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뚜껑은 열지 않았다.
"이 상실은, 제가 보관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그 안에 어떤 확신이 담겨 있었다. "여러분은 잊지 않을 거니까요."
비아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무슨 뜻이냐……이다?"
"제 일은 원래, 지워질 위기에 놓인 것들을 대신 담아두는 거였어요." 레테가 답했다. "그런데 오늘 이 도시를 걸어봤는데, 다들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그 사람을 담고 있더군요. 형사님은 손으로, 비아 씨는 몸으로, 수연 씨는— 아마 매일 밤으로. 그러니 저는 이번엔 아무것도 대신 들지 않으려고요. 이건 여러분 모두의 것으로 남아야 하는 기억이니까요."
수연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 위에 놓인 빈 유리병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뚜껑이 열리지 않은 채로 남은 그 병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홀가분해 보였다. 저 병 하나하나에 세계 곳곳의 잊혀질 뻔한 기억들이 담겼던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밤엔, 레테의 손이 그 병을 열지 않았다.
"…그럼 당신은 이제 뭘 해." 그녀가 낮게 물었다.
레테는 옅게 웃었다. "저는 원래 이야기가 끝난 자예요. 이 원정에서 제가 할 일은 다 끝났고요. 당분간은— 그냥 어딘가에서 조용히 지낼 겁니다. 필요하면 다시 오죠. 하지만 오늘 같은 밤엔, 제가 여러분보다 더 할 일이 없어요."
형사가 그 말에 짧게 되물었다. "…다시 뵐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레테가 답했다. "다만 이번처럼 무언가를 보관하러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손님으로 올 겁니다. 그게 더 낫지 않겠어요? 저도 이 가게 라면 맛이 궁금하거든요."
그 말에 비아가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와라.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다……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병들을 다시 품에 안았다. 문 앞에서 그녀는 잠시 돌아서서, 가게 안의 세 사람을 눈에 담았다. 형사의 손에 아직 마른행주가 들려 있었고, 비아는 수연의 손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었다. 레테는 그 풍경을 오래도록 눈에 담은 뒤,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문에 달린 종이 짧게 울렸다— 그 소리만이, 오늘 밤 그녀가 다녀갔다는 유일한 증거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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