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69화. 세레나의 정비
탑의 꼭대기에서, 세레나는 도시를 감싼 결계의 매듭들을 하나씩 짚어나가고 있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선들이었지만, 그녀의 손끝에는 그 결이 고스란히 만져졌다— 팽팽한 곳, 느슨해진 곳, 오래되어 뻣뻣해진 곳. 그녀는 그 하나하나를 매만지며 다시 조율했다. 손끝이 결계의 매듭을 스칠 때마다, 그 자리의 실선이 아주 잠깐 밝아졌다가 원래의 어둠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흐렸다. 그 밤, 녹사의 비명이 삭제의 파도를 밀어내던 그 순간부터, 그녀의 손가락 끝은 마치 오래된 유리처럼 반투명해져 있었다. 처음엔 며칠이면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손끝을 촛불에 가까이 대면, 불빛이 살에 완전히 가려지지 않고 살짝 새어나왔다. 그녀는 그 새어나오는 빛을 오래 들여다보다, 다시 결계 점검으로 돌아갔다.
도시의 결계는 겹겹이 짜여 있었다. 가장 바깥쪽은 침입을 걸러내는 층, 그 안쪽은 시간의 흐름을 지키는 층, 가장 안쪽은— 그녀가 창세 때 처음 그은 그 선, 이 도시가 지워진 것들을 위한 자리라는 약속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 가장 안쪽 선을 짚으며 눈을 감았다. 오늘 밤, 그 모든 층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었다.
"아직도 여기 있나."
녹사의 목소리가 계단 쪽에서 들려왔다. 세레나는 손을 거두지 않은 채 답했다. "확인할 게 아직 남았어요."
녹사가 옆에 와 섰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세레나의 손끝에 어린 흐린 빛을 잠시 바라봤다.
"그 손, 안 돌아오는 거냐."
"아마도요."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손끝 몇 마디 대신 도시를 지켰으니—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너답다." 녹사가 낮게 말했다. 그 말에는 타박도 걱정도 아닌, 오래 함께해온 자만이 낼 수 있는 담담함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나란히 서서 도시를 내려다봤다. 세레나가 이 설원에 처음 불을 피우던 밤, 녹사가 그 불빛을 향해 걸어오던 밤— 그 모든 것이 이 도시의 뿌리였다. 창조자와 수호자, 이 도시를 이루는 두 개의 기둥이 지금 이 탑 위에서 다시 나란히 서 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녹사가 입을 열었다. "이 도시도 완전히 달라질 거다. 이기든 지든."
"알아요." 세레나가 답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이 도시의 결을 전부 확인하고 싶었어요. 무너지기 전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해두고 싶어서요."
"무너지지 않는다." 녹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요." 세레나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기억은 해두고 싶어요."
녹사가 그 말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의 팔뚝, 오래된 흉터가 남은 그 자리를 손끝으로 한 번 쓸었다. "나도 오늘 밤, 다시 한번 정렬한다. 증언대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결국은 이 도시의 결 중 하나니까."
두 사람 사이, 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창조자의 결계와 수호자의 증언— 이 도시를 지탱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힘이, 오늘 밤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나란히 정렬하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 정렬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꼈다. 발밑의 탑이 아주 미세하게 진동했다— 마치 도시 전체가 지금 이 순간, 두 기둥이 다시 나란히 선 것을 알아챈 것처럼.
"두 분, 여기 계셨네요."
레테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올라왔다. 그녀는 손에 낡은 유리병 상자를 들고 있었다— 원정 내내 채워온 그 병들이었다.
"결전을 앞두고, 제 역할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그녀가 상자를 탑 난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는 이번엔 아무것도 보관하지 않을 겁니다. 전부, 여러분이 직접 기억하게 둘 거예요."
세레나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뜻이죠?"
"지금까지 저는," 레테가 설명을 이었다. "지워진 것들을 대신 받아 담는 존재였어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기억은 제가 대신 보관해왔죠. 그런데 오늘 밤 전투에서는— 그렇게 안 할 겁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 잃는 것, 되찾는 것 전부를 그 자리에서 직접 짊어지게 둘 거예요. 대신 짊어져드리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왜요?" 세레나가 물었다. 목소리에 옅은 불안이 섞였다.
"이 싸움은 대신 겪어드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요." 레테가 답했다. "그리고— 제가 오늘 처음으로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녀는 상자에서 손을 떼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는 사실, 오랫동안 숨겨온 능력이 하나 있어요." 그녀가 낮게 말을 이었다. "삶의 잔향에게— 이미 다 산 삶의 마지막 결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시 산다 해도, 그렇게 살겠는가.'"
세레나는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숨을 멈췄다.
"저는 이걸 함부로 안 씁니다." 레테가 말을 이었다. "대답이 늘 '아니오'만은 아니거든요. 어떤 삶은 정말로 '다시는 원치 않는다'고 답할 겁니다. 그럼 그때는— 그 사람 편을 들어야 하는 게 제 일입니다. 지우려는 쪽이든, 지키려는 쪽이든."
세레나는 그 말 앞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 싸움을 아주 단순한 하나의 축으로 이해해왔다— 고통을 지키는 것은 옳다, 지우는 것은 그르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증언이, 모든 되찾은 기억이 그 확신을 더 두텁게 만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레테가 하는 말은, 그 확신의 바닥에 아주 작은 균열 하나를 냈다. 만약 정말로, 어떤 삶이 그 질문 앞에서 "아니오, 다시는 원치 않는다"고 답한다면— 그 답 앞에서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삶에게 "그래도 그 고통이 당신을 만들었으니 간직하라"고 말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가.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서 있던 자리를 다시 돌아봤다. 도시를 세운 이래 그녀는 늘 지워진 것들의 편이었다. 증언대를 세우고, 잃은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 모든 것이 되찾을 가치가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어쩌면— 모든 삶이 결국은 되찾기를 원할 거라는, 또 다른 종류의 전제 위에 서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레테의 질문은 그 전제 자체를 건드리고 있었다. 지킨다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게 아니라면, 자신이 평생 세워온 이 도시의 근간은 무엇 위에 서 있는 걸까.
그 생각은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곳을 건드렸다. 세레나는 이 싸움이 언젠가는 명쾌하게, "고통은 지킬 가치가 있다"는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될 거라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그 결론이 그렇게 깔끔하게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했다. 어떤 고통은 정말로 그저 고통일 뿐,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무도 구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삶 앞에서는, 지우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중 어느 쪽이 옳은지조차 그녀는 더 이상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탑 위로 부는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이 그 침묵 속에 서 있었다. 녹사도, 레테도 그 침묵을 깨지 않았다. 세 사람 사이로, 지금까지 이 도시가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한 적 없는 질문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그럼요." 마침내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느렸다. "이 싸움이 끝나도, 우리가 옳았다는 확신까지 얻는 건 아닐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레테가 조용히 답했다. "다만 확신이 없어도, 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저는 그 답이 '아니오'로 나오는 삶을 만나면— 그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 설령 그게 지우는 쪽이라 해도요. 그게 제가 오늘 밤 여러분께 약속드릴 수 있는 유일한 공정함입니다."
세레나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편안해진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처음으로 이 싸움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녹사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오늘 밤은," 녹사가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것들을 위해 싸운다. 모르는 것 앞에서는— 그때 가서 다시 정한다."
"…그렇겠네요."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완전히 풀리지 않은 웃음이었지만, 그 안엔 다시 걸어갈 힘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 순간, 동쪽 하늘 끝에서 습한 바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겨울 도시에는 있을 수 없는 바람이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갓 돋아난 풀냄새가 섞인 바람. 사람들이 하나둘 창문을 열고 그 낯선 냄새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구름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길고 푸른 비늘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청룡이었다. 그의 몸이 지나간 자리마다 구름에 옅은 초록빛 기운이 스몄고, 그 기운이 지나간 곳의 눈은 아주 잠깐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었다. 그는 동쪽 하늘 한가운데 몸을 틀어 자리를 잡았다— 거대한 고리 모양으로 몸을 감아, 마치 도시의 동쪽 전체를 품듯이.
거의 동시에, 서쪽 능선에서 메마른 냉기가 불어 내려왔다. 습기라곤 한 톨도 없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건조한 추위였다. 그 추위를 타고, 능선 위로 새하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호였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능선의 바위 표면에 서리가 성에처럼 피어올랐다가, 다음 발걸음에 다시 갈라지며 부서졌다. 그 소리는 유리가 아주 얇게 금이 가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백호는 능선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도시를 향해 고개를 낮췄다— 결단의 수호자다운, 흔들림 없는 자세였다.
남쪽 탑에서는 열기가 먼저 도착했다. 겨울바람 속에서도 그 열기는 뚜렷하게 느껴졌다— 얼굴에 닿는 순간 겨울 외투를 벗고 싶어질 정도의 온기였다. 사람들의 콧속으로 옅은 잿내가 스몄다. 그 열기의 중심에서, 붉은 날개를 활짝 편 형체가 남쪽 탑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주작이었다. 그의 깃털 절반은 여전히 꺼진 채였지만, 나머지 절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만으로도 탑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그가 날개를 한 번 크게 펼치자, 남쪽 하늘 전체가 잠깐 노을처럼 붉어졌다.
북쪽 바다에서는 소리가 먼저 왔다. 깊은 물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떠오르는 저음— 바닷물이 갈라지며 밀려나는 둔중한 파도 소리, 그리고 그 파도 위로 부서지는 살얼음 조각들이 서로 부딪히는 챙그랑 소리. 현무였다. 그 밤, 스스로 자기 몸을 가라앉혔던 그 거대한 뱀머리 거북이, 이번엔 스스로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등딱지에서 흘러내리는 바닷물이 부두 위로 차갑게 튀었다. 그는 북쪽 바다 위로 완전히 몸을 드러내고, 고개를 돌려 도시를 향해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에서 짠 내와 깊은 물의 냄새가 함께 실려왔다.
그리고 중앙 광장 위로, 하늘 전체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은 압력이 내려앉았다. 발밑의 땅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곧 광장의 돌바닥 틈으로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그 압력의 정점에서, 등에 탑을 얹은 거대한 소의 형상이 서서히 하강했다. 황룡이었다. 그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발을 디디는 순간, 도시 전체가 한 번 크게 울렸다— 마치 거대한 저울이 마침내 평형을 찾아 멈추는 소리 같았다. 그의 등 위, 오랫동안 바람 한 점 없던 탑에서, 저울이 기운 그날 이후 처음으로 다시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은 낮고 길게, 마치 오랜만에 숨을 내쉬는 소리처럼 광장을 훑고 지나갔다.
동쪽의 습한 바람, 서쪽의 메마른 냉기, 남쪽의 열기, 북쪽의 짠 물비린내, 그리고 중앙의 무거운 진동.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공기가 도시 하늘 위에서 만나, 서로 섞이지 않은 채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오방(五方)의 진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 광경을 올려다봤다. 군밤 할머니는 화로 앞에 선 채 손을 가슴에 얹었다. 시계방 노인은 모든 시계를 같은 시각으로 맞춰둔 그 손을 멈추고, 오랫동안 하늘만 바라봤다. 마고 센느는 뜨개바늘을 손에 쥔 채로 굳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걸 느꼈다. 반 홀로는 활짝 열어둔 자기 집 문 앞에 서서, 다섯 방향의 하늘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이리스는 연습실 옥상에서 아홉 대의 드론을 하늘로 띄워 올렸다. 그 빛들이 다섯 수호자의 자리 사이사이를 은은하게 수놓았다— 신들의 거대함 곁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인간의 빛이었다. 볼도는 그 광경을 종이에 옮겨 적으려다, 결국 펜을 내려놓고 그저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어떤 광경은, 말보다 눈에 먼저 담아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의 태도였다.
가게 앞에서는 비아와 파빌라가 나란히 서서 그 다섯 방향을 눈에 담고 있었다. 비아의 시선은 유독 중앙의 황룡에게 오래 머물렀다— 최강의 수호자가 이제 이쪽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든든하게 다가왔다. 파빌라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 "…내일이면, 진짜 마지막이겠네요."
탑 위에서 세레나와 녹사, 레테도 그 다섯 개의 빛을 나란히 올려다봤다. 세레나의 손끝에 어린 흐린 빛이, 다섯 수호자의 기운과 공명하듯 아주 잠깐 밝아졌다. 그녀는 그 빛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도시가, 드디어 신들의 진 안에 들어갔네요."
녹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건 하루다."
레테는 상자 속 유리병들을 다시 품에 안으며, 다섯 방향의 하늘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채워지지 않은 병 하나가, 그 품 안에서 여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다섯 개의 빛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또렷해졌다. 도시 전체가, 이제 완전히 다른 종류의 밤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 아래, 사람들은 두려움과 벅참이 뒤섞인 얼굴로— 오래도록,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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