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니발리스

제146화. 파빌라 없는 세계 (교차)

이리스의 작업대 위, 청룡의 끊어진 실 조각 하나가 낮게 진동하고 있었다. 손톱만 한 파편이었지만, 표면의 나이테 무늬가 이따금 빛을 머금었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그 파편을 낡은 드론의 회로 기판에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얇은 서리 결정을 덧씌워 하나의 작은 돌 모양으로 다듬어냈다. 형사가 원정을 떠나기 전, 그녀가 손수 쥐여준 물건이었다 — "말이 안 통해도 최소한 목소리는 오게 만들어볼게요."

작업대 위의 돌이 갑자기 차가운 진동을 내뿜기 시작한 건, 저녁 설거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리스는 손을 멈추고 그 돌을 집어 들었다. 표면에 서리가 순식간에 맺혔다가,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낮고 또렷한 형사의 음성이었다.

"들리고 계시길 바랍니다. 형사입니다. 이 돌은 이쪽 목소리를 보내는 것만 됩니다— 그쪽의 답은 저한테 닿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이리스가 곧장 가게 안쪽을 향해 외쳤다.

"형사님이에요! 다들 이리로!"

세레나가 붓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다가왔다. 녹사도 팔짱을 낀 채 느긋한 걸음으로, 그러나 눈빛만큼은 재빠르게 움직여 왔다. 비아는 카운터 뒤에서 그릇을 닦다 말고 행주를 든 채로 다가섰고, 파빌라는 이층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돌을 가운데 두고 다섯이 둘러앉자, 이리스가 저도 모르게 돌 표면을 두 번 두드리며 외쳤다.

"들려요! 형사님, 저희 여기 다 있어요!"

그러나 돌 너머의 목소리는 아무런 반응 없이, 제 속도대로 말을 이어갔다. 통신은 한 방향뿐이었다— 목소리는 건너올 수 있어도, 건너보낼 수는 없었다. 이리스가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맞다. 이거, 가는 길은 못 만들었지."

"짧게 보고드리겠습니다." 형사의 목소리가 서리 낀 돌을 통해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아주 미세하게 지연되어 마치 먼 우물 밑에서 올라오는 소리처럼 울렸다. "오늘 지나온 세계에서, 확인해야 할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형사의 보고는 담담했다. 마치 현장 조서를 읽듯, 그는 사실관계만을 순서대로 짚어나갔다.

그 세계는 형사 일행이 전날 밤을 보낸 곳— 이름표 없는 302호 병실이 있던 그 병원에서 반나절쯤 떨어진 마을이었다. 그 마을에 하은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형사가 만난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그저 마을 어귀 빵집 집 딸이었다 — 매일 아침 아버지의 빵 반죽을 훔쳐 먹다 혼나고, 저녁이면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는 걸 좋아하는 아이. 형사가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성장기의 초상이었다.

그러나 마을의 오래된 우물가 벽에는, 지워진 낙서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형사의 눈에는 그 흔적이 보였다 — 페인트를 몇 번이고 덧칠했지만, 아주 오래된 것일수록 흐릿하게 배어 나오는 각인. 그는 그 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마침내 그 무늬의 정체를 알아냈다. 키를 재던 눈금이었다. 같은 자리에, 같은 아이의 키가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반복해서 새겨졌다가 지워진 흔적.

"제가 확인한 바로는," 형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아이는 특정 나이, 특정 사고로 반복해서 죽었다 되살아난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빌라 양과 유사한 경우입니다. 다만—"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돌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다만 지금 그 세계에는, 그 반복 자체가 없습니다. 아이는 그냥 한 번 자랐고, 지금은 이미 성인이 되어 마을을 떠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부모는 그 아이를 평범하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은, 자기 딸이 한때 몇 번이고 같은 죽음을 겪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죽음들을 버텨내며 지금의 그 아이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복도, 그 반복을 버틴 흔적도, 통째로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제 판단으로는, 이건 단순히 고통을 지운 게 아닙니다. 고통을 버텨낸 결과로 생긴 어떤 것 — 그 아이가 지금의 그 아이가 된 과정 자체를 지운 겁니다.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보고드립니다. 이상입니다."

말이 끝나자 돌의 진동이 잦아들었고, 표면의 서리도 서서히 옅어졌다. 파빌라가 반사적으로 "형사님—" 하고 불렀지만, 돌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이 다들 한가득이었지만, 그 물음이 건너갈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침묵이 가게 안을 덮었다. 세레나가 먼저 그 침묵을 깼다.

"…그 논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네요."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좋은 결과 밑에 아무도 동의 안 한 희생이 하나쯤은 있다던 그 얘기랑— 방향만 반대일 뿐, 같은 저울이에요. 이번엔 희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장 자체가 저울 밑에 깔린 거죠."

녹사가 팔짱을 낀 채 낮게 덧붙였다.

"나는 남의 비명을 대신 지르는 존재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비명 지를 일 자체가 없었던 걸로 만들어버리면, 나 같은 존재는 뭘 위해 있는 건가. 그 아이의 비명이 없었다는 건, 그 비명을 들어야 했던 누군가의 몫도 함께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 말에는 그녀 자신의 오랜 존재 이유가 스쳐 있었다. 아무도 그 말에 곧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파빌라의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무릎 위에 얹혀 있던 그녀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이내 손 전체로 번졌다. 세레나가 그 손을 알아채고 뭐라 말을 건네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파빌라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거."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옥타브쯤 높았다. "그거 내가 겪은 거잖아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제가 그거 겪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건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살짝 밀려나며 마룻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냈다. "그 반복을, 그 버틴 걸— 통째로 지워버리면 그 애는 대체 뭐가 되는 거예요? 지금 웃고 있는 그 애가, 진짜 그 애가 맞긴 해요?"

녹사가 짧게 말했다.

"진정해라."

"진정 못 해요." 파빌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저는 알아요. 그 반복이 얼마나 지긋지긋했는지. 근데 동시에 알아요— 그 지긋지긋한 게 없었으면, 저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화낼 수 있는 사람도 못 됐을 거예요. 그 반복을 버텨서, 제가 지금 이만큼 단단해진 거예요. 근데 그걸 통째로 들어내면— 그 애는 그냥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다른 애가 되는 거잖아요."

파빌라는 잠시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방금 자신이 뱉은 말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 이렇게까지 큰 소리로, 이렇게까지 확신을 담아 말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동시에 그 말들이 하나같이 오래전부터 그녀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이라는 것도 알았다. 다만 이번에야 비로소 그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뿐이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처음 이 가게에 왔던 밤을 떠올렸다. 몇 번이고 죽었다 되살아나던 그 겨울, 자신이 몇 번째 삶을 살고 있는지조차 헷갈리던 시절. 그때의 자신은 그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 살아남고 나서 무엇이 될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정확히 무엇이 되었는지를 또렷하게 알고 있었다 — 화를 낼 줄 알고, 부당한 것 앞에서 목소리를 높일 줄 알고, 자신이 겪은 것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 그 모든 게 그 반복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하은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가 남 같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는 그 아이가, 자신과 똑같은 재료로 빚어졌다가 그 재료의 절반을 도둑맞은 채 살고 있었다. 웃고 있다는 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모른 채 웃는 얼굴은, 슬픈 얼굴보다 훨씬 더 완전한 상실이었으므로. 파빌라는 그 상실을 대신 화내줄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 말고는 없다는 걸 알았다.

세레나가 조용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파빌라."

"저 증언대에 다시 설래요." 파빌라가 말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그 안에 단단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이번엔 예전이랑 다르게 말할 거예요."


증언대 앞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소문은 빨랐다 — 그 소녀가 다시 단상에 선다는 소식에, 예전 첫 증언을 들었던 이들 몇몇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르 니에베도 그중 하나였다. 날씨를 예보하던 그녀는, 요즘도 매일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을 놓지 않고 있었다 — 비록 그 예보가 백 퍼센트 들어맞아 더는 놀랄 일이 없어졌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하늘을 보는 일 자체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녀는 파빌라가 예전 첫 증언에서 보여준 그 담담함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광장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파빌라가 단상에 올랐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떨리던 손을 가슴 앞에 가만히 모았다. 그러고는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저번에 여기 섰을 때," 그녀가 말했다. "저는 제가 구해진 이야기를 했어요. 반복해서 죽었던 애가, 어떤 선택 덕분에 살아났다고요. 그때는 제가 피해자로서 말한 거였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광장을 둘러봤다.

"오늘은 다르게 말할게요. 저는 오늘,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말할 거예요."

광장이 조용해졌다.

"저는 수백 번 죽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근데 저는 그 수백 번을 다 버텼어요. 그것도 사실이에요. 그 버팀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무서워도 한 발 더 내딛는 법을 저한테 가르쳤어요. 지금 제가 화를 낼 줄 알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그 버팀이 저한테 남긴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그러니까 누가 제 고통을 지운다고 하면, 저는 그 사람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고통을 지우면 저도 지워져요. 저는 제 고통의 결과거든요."

정적이 광장을 덮었다.

"제가 지금 여기 서서 이렇게 화내고 있는 이 모습— 이것도 그 고통이 만든 거예요. 고통 없이 그냥 처음부터 행복했던 저는, 지금 이 저랑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절대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가슴 앞에 모았던 두 손을 가만히 펴 보였다.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 오래 참아온 말을 마침내 다 꺼낸 사람의 떨림이었다.

"그 애도 그래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지금 웃고 있는 그 애가 행복하다고 해서, 그게 다 괜찮은 게 아니에요. 그 애는 자기가 뭘 버텨서 지금 이렇게 됐는지도 모른 채 웃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게— 그 애한테 제일 미안해요."

광장 어딘가에서 낮은 훌쩍임이 들렸다. 오르 니에베는 자신의 낡은 관측 노트를 가슴에 꼭 안은 채, 그 말을 곱씹고 있었다. 놀라움을 잃어버린 자신의 하늘과, 반복을 잃어버린 그 아이의 성장이— 결국 같은 종류의 상실이라는 걸 그녀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군중 뒤편에는 반 홀로도 서 있었다. 십 년째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던 그는, 첫 증언 이후로 매번 증언대 소식이 들릴 때마다 걸음을 옮겨오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의 결심이 진짜 자기 것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였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확신 하나를 얻었다.

"…나는 저 애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소." 그가 옆 사람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내가 십 년 문을 잠그고 살았던 것도,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 시간이었소. 그걸 누가 지금 와서 없었던 일로 치면— 나도 지금의 나로는 못 남는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래도록 단상 위의 파빌라를 바라봤다.


비아는 광장 뒤편, 사람들 틈에 조용히 서서 그 증언을 듣고 있었다. 파빌라의 목소리가 "고통을 지우면 저도 지워져요"에 이르렀을 때, 비아는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그건 그녀 자신의 감정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녀 자신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만은 아니었다. 가슴 한가운데, 오래전부터 그녀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그 절반의 무언가가 파빌라의 말에 반응하듯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 그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그녀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빌려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듣고 있는 것처럼.

비아는 자기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저 낯익은 온기였다.

"…이 말."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꼭 들어야 한다……이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가슴속 그 절반이 아주 잠깐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 마치 누군가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증언이 끝난 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파빌라는 세레나와 함께 광장을 정리하고, 녹사는 늘 그렇듯 증언대 옆에 남아 하늘을 살폈다. 비아는 먼저 가게로 돌아와 마감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는 카운터 주변을 정리하다가, 문득 손에 든 행주를 내려놓고 낮은 의자들 사이를 지나 카운터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자리는 오래전부터 정해진 자리였다 — 수연이 늘 앉던 자리,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늘 그 자리에 몸을 기대고 있던 그 구석.

비아는 그 자리에 앉아 카운터의 나뭇결을 손끝으로 가만히 쓸었다. 딱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몸이 저절로 그리로 움직였고, 앉고 나서야 자신이 앉아 있다는 걸 인식하는 정도였다.

세레나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파빌라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다,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벌써 며칠째, 같은 장면이었다. 저녁 마감 시간만 되면 비아가 그 구석 자리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것.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땐, 파빌라도 그냥 넘겼었다. 나흘 전 저녁, 설거지를 마친 비아가 그 구석 자리에 잠시 걸터앉아 있었을 때만 해도 파빌라는 그저 다리가 아파 쉬는 거려니 생각했다. 사흘 전에도, 이틀 전에도 같은 자리였을 때는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 정확히 같은 시간에 비아가 걸레질을 하다 말고 손을 멈추고 그 자리로 걸어가는 걸 보는 순간, 파빌라는 더는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아 언니." 파빌라가 다가서며 물었다. "거기 왜 자꾸 앉아요?"

비아는 그 질문에 순간 멈칫했다. 손끝이 나뭇결 위에서 멎었다.

"…내가?" 그녀가 되물었다. "내가 여기 앉아 있었나……이다?"

"오늘로 벌써 나흘째예요." 파빌라가 조심스레 말했다. "매일 저녁마다, 딱 이 시간에, 이 자리에요."

비아는 자신이 앉은 자리를 내려다봤다. 낮은 의자, 손때 묻은 카운터 모서리,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보이는 각도— 문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 누군가 돌아온다면 가장 먼저 알아볼 수 있는 자리.

그제야 비아는 자신이 지난 며칠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매일 저녁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었다— 수연이 없는 자리에, 수연이 늘 앉던 각도 그대로.

"…몰랐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도 몰랐다……이다."

그녀는 무릎 위에 두 손을 가만히 포개어 얹었다. 그리움이라고 하기엔 너무 몸에 밴 동작이었고, 습관이라고 하기엔 너무 낯선 자리였다.

"그냥— 몸이 저절로 여기로 왔다……이다." 그녀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평소의 확신이 없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른다……이다."

파빌라는 그런 비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옆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무엇이 비아를 이 자리로 이끄는지 파빌라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오늘 저녁만큼은 그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문 쪽을 바라봤다. 가게의 등불이 여전히 꺼지지 않은 채, 두 사람의 그림자를 조용히 카운터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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